크리스마스가 가까이 왔을 때 건물 로비에 설치한 트리 가까이 어린 남매가 다가왔다. 어린 여동생이 오빠에게 뭔가를 부탁하니 오빠는 동생을 위해 기꺼이 무릎을 굽혀 앉았다. 그 모습이 어찌나 짠하면서 애틋하던지, 그리고 오빠는 동생의 손을 꼭 잡고 저 빛이 가득한 문으로 걸어 나갔다.


아이들의 뒷모습을 보니 유진 스미스의 ‘천국으로 가는 길’이 떠올랐다. 유진 스미스의 유명한 사진 시리즈가 많지만 그래도 유진 스미스 하면 ‘천국으로 가는 길’이라는 사진이 가장 따뜻하고 유명하지 싶다. 유진 스미스의 대부분의 사진은 처절하고 어둡고 짙다. 천국으로 가는 길은 자신의 아이들의 뒷모습을 순간포착으로 담아냈다.


유진 스미스는 정신질환으로 힘들었다. 보도 사진을 촬영하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는데 오키나와에서는 취재 중에 일본군의 탄환이 머리에 박혀 죽을 뻔하기도 했다. 유진 스미스는 완벽한 사진을 출력하기 위해 히스테리가 갈수록 심해졌다. 전쟁 중에 담은 사진이 마음이 들지 않아서 군인들에게 포탄을 터트려 연출해서 사진을 촬영했다는 설도 있다.


유진 스미스는 위대한 사진가라는 수식어가 붙는 대신 점점 정신질환이 심각해졌고 사진은 확고한 사실을 전달했다. 전쟁의 참상, 기근과 병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으로 적나라하게 담았다. 유진 스미스의 조수들은 날로 심해지는 정신질환에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고 한다. 히스테릭을 견뎌낼 수가 없었다.


어느 날 자신의 아이들이 손을 잡고 저 빛으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고 셔터를 누른다. 순간 포착으로 담아낸 그 사진은 너무나 아름다운 사진이었다. 아이들의 순수한 모습과 세상에서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 마치 벅찬 희망을 나타나는 것 같다.


유진 스미스의 ‘천국으로 가는 길’은 많은 예술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줬다. 이번 영화 ‘괴물’로 다시 한번 사람들에게 경종을 울리게 한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첫 영화[환상의 빛]에서도 주인공 유미코의 아이들이 동굴을 빠져나가는 장면이 있는데 유진 스미스의 ‘천국으로 가는 길’을 오마주 했다. 그 장면은 정말 너무나 아름다워서 몇 번이나 돌려서 봤다.

이 장면은 유미코의 일상을 말하며, 이쿠오의 부재가 존재를 증명하는 시간을 매일 가지는 유미코는 알 수 없는 결락을 치유하는 것이 보잘것없는 일상이라는 걸, 아이들이라는 걸 알게 되는 순간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또 한 영화에서도 ‘천국으로 가는 길’을 오마주 했다. 피가 터지고 낭자했던 영화. 이 만큼 처참하고 격렬하게 피가 터지는 영화가 있었을까 할 정도로 킬러 본능의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도 오마주 했다. 하드보일드 액션 영화인데 빛을 아주 잘 다루었다는 생각이 든다. 초반 황정민의 노을이 지는 장면이 너무나 아름답게 표현이 되었다. 그 장면은 그래픽 없이 노을이 질 때 촬영을 해야 해서 만약 그날 원하는 장면을 담아내지 못하면 다음 날에 다시 촬영을 해야 하는 장면이었다. 마치 사진을 보는 것 같은 장면들이 빛의 아름다움으로 잘 표현이 되었다.


 빛을 향해 인남(황정민)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유민의 뒷모습을 보며 희망을 품게 되는 것만 같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에서는 빛의 한가운데 있는 유민의 모습을 먼 앵글로 보여주며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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