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깅을 하는데 날이 부쩍 추워져서 달리다가 잠깐 쉬면 등에 난 땀이 식어 버려서 마지막까지 쉬지 않고 달려야 했다. 어제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옛날의 모습이 남아있는 곳은 한 동네밖에 남지 않아서 그곳으로 왔다. 골목이 있고 80년대 지어진 주택들이 죽 붙어 있다. 그곳으로 돌아오는데 저녁 8시경인데 주택의 주인으로 보이는, 아버지로 보이는 남자가 창문에 문풍지를 붙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예전 마당이 있던 집에 살 때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11월이 되면 창문이란 창문에 문풍지를 붙였다. 마당에는 깜순이의 집도 있었는데 깜순이의 집도 보온과 외풍에 신경을 써야 했다. 개집은 말 그대로 세모난 그런 개집이었는데 틈이란 틈에 문풍지를 바르고 개집 전체를 비닐로 감쌌다. 생각해 보면 매일 샤워도 할 수 없고 추워서 겨울을 어떻게 보내나 싶은데 기억 속에는 따뜻하게 겨울을 난 기억밖에 없다. 아버지가 일요일에 온 집구석 창문틀에 문풍지를 바를 때 동생과 나는 조수 역할을 하다가 끝나면 모두 앉아서 컵라면을 먹었다.
조깅을 하고 들어와서 그때 생각이 나서 컵라면을 하나 먹었다. 이제 어른이라 소주도 한잔 곁들였다. 물론 끝내주는 맛이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먹던 컵라면의 맛은 분명 아니다. 어린 시절에 먹던 그 맛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제대로 대답은 할 수 없다. 그때의 분위기나 이데아적인 맛을 떠나 후레이크의 맛이나 면발의 맛이 지금과는 다른 맛? 잘 설명은 못하겠지만 그런 맛이 있다.
초등학교 교실에서도 컵라면을 먹었다. 교실은 외부의 추위와 단절되어서 아이들이 외투를 벗어 놓고 수업을 듣고, 점심시간에 컵라면을 먹곤 했다. 창을 투과하는 빛 사이로 컵라면 뚜껑을 벗기면 올라오는 김이 마치 엑토플라즘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모여서 호호 깔깔거리며 컵라면을 먹었다. 그때에도 분명 컵라면 안에 들어있는 후레이크의 맛이 강했고 면발의 맛이, 퍼지지 않고 적당히 고들고들한 그런 맛이 있었다. 물론 내가 그렇게 기억하려고 하는지도 모르겠지만 지금 먹는 컵라면과는 다른 맛이었다. 맛있었다. 지금도 맛있지만 다르다. 다른 건 다르다.
요즘의 컵라면은 면이 잘 익기도 하고, 나트륨 때문에 라면 맛의 생명인 그 짠맛이 덜해서 그런지 맛있지만 썩 맛있지는 않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라면을 끓여서 먹던, 컵라면을 먹던 늘 라면에 무엇인가를 넣어서 – 방울토마토나 다진 마늘이나 김치를 넣어서 먹게 되어서 사실 온전한 라면의 맛은 저 멀리 달아나 버렸다. 그러거나 말거나 차가운 바람이 부는 추운 겨울에 컵라면만큼 간단하게 몸을 데워주는 음식도 없을 것이다.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반환점에 있는 벤치에 다가서는데 누가, 어떤 넘이 강아지를 버리고 간 것이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했단 말이야 하며 달려가니 인형이었다. 강아지 인형. 제기랄. 아주 오해하라고 옷까지 벗어서 그 위에 강아지 인형을 올려놓고 사라졌다. 사진으로 봐서 인형이지 저 멀리서 보면 강아지 새끼로 보였다. 춥지만 야외조깅을 하면 이런 재미를 맛볼 수 있다.
본격적인 추위가 닥치기 전, 일주일 전인가 위에서 말한 그 골목을 지나서 오는데 고양이 한 마리가 이제 갓 주차해 놓은 자동차 위에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보통 길고양이는 찰칵하는 소리에 발딱 일어나서 갈 텐데 이 고양이는 너무나 새근새근, 따뜻한 보닛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올해도 오늘까지 5일 정도 빼고는 매일 조깅을 했다. 그동안 조깅을 하면서 많은 고양이들을 만났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1269
그래서 길고양이의 습성을 조금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자동차 위 잠든 길고양이를 보니 기분이 발롱 발롱 했다. 고양이도 꿈을 꿀까. 꿈을 꾼다면 무슨 꿈을 꿀까.
근데 자동차의 번호판을 지웠는데, 내내 궁금한 건데 번호판을 왜 지워야 하지? 번호판이 드러나면 안 되는 것일까? 밖에서는 번호판을 드러내고 다니는데, 번호판을 보라고 붙여 놓았을 텐데 사진으로 대부분 번호판의 번호를 지운다. 범죄 때문이라는데 사진 속 번호판을 보고 범죄를 지어야지 하며 생각하지 않을 것 같은데. 현실에서 불법주차하고 번호판을 간판 같은 것으로 가리면 벌금 받는 걸로 알고 있는데. 뭐 중요한 건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