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기간에 맞게 비가 공백과 공백 사이를 뚫고 내렸었다. 장마기간에 비가 쏟아지면 언젠가부터 폭우 수준이다. 한 삼사십 분 엄청나게 비가 쏟아진다. 쏴아 쏟아지는데 재미있지도 않지만 보게 된다.


진정 장마기간이다. 비가 내리고 있다. 장마기간에는 몸관리를(딱히 하는 건 없지만) 잘해야 한다. 자칫 축축 늘어질 수 있으니까. 장마가 오기 전에 하던 루틴을 장마가 왔다고 해서 멈출 수는 없다. 비가 와도 나는 늘 강변으로 나가니 이번에도 장마라고 해서 그냥 있을 수는 없다.


그러나 하루는 비가 너무 왔다. 폭우였다. 사진으로는 그냥 비가 오네 정도로 보이지만 강변 조깅 코스에 그 누구도 나오지 않는, 자동차가 도로를 달리면 마치 물 위를 달리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거센 비가 내렸다. 우산을 들고 몸을 푸는 곳까지, 대략 500미터 정도 갔는데 홀딱 다 젖어 버렸다.


몇 해 전 장마기간에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비가 내내 내리거나 흐린 날의 연속이었다. 여행 중이라 오히려 비가 내려도 위화감이 덜 했다. 비가 엄청나게 내리면 더 가기를 멈추고 그 근처에서 숙소를 잡고 묵었다. 우리는 경주 근처쯤 밖이 보이는 카페의 테라스에 앉아서 비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비가 내리는 모습은 재미라고는 1도 없을 것 같은데 보고 있으면 빠져들어 버린다.


그때 비가 너무 와서 우리는 숙소에서 하루 종일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봤다. 공포 영화를 많이 봤고, 존 카펜터의 영화들이었다. 존 카펜터의 영화는 오래될수록 더 재미있는 것 같다. 물론 그래픽이나 뭐 그런 것들은 뒤쳐지지만 내용면에서 아주 흥미롭다. 86년 작품 ‘더 포그’라든가. 이 영화는 2006년에 스몰 빌의 히어로 톰 웰링을 대동해서 풍부한 그래픽으로 리메이크를 했는데 86년 작품보다 더 재미가 없었다.


존 카펜터의 영화는 원작 소설이 대부분 존재한다. 스티븐 킹의 소설도 존 카펜터에 의해 영화로 여러 편 만들어졌다. 존 카펜터의 영화를 보면 이걸 해야겠다는 집착과 집요가 좋은 쪽으로 밀고 나가는 힘을 보여준다. 공포영화의 명작에 꼭 들어가는 82년 작품 ‘더 씽’도 존 카펜터의 작품이다. 더 씽은 1938년에 나온 소설 ‘후 고우즈 데어?’가 원작이다. 더 씽은 존 카펜터의 집요가 이루어낸 쾌거가 보인다.

장마기간이지만 비가 오지 않는 날도 많다. 같은 강변의 비슷한 시간인데 비가 오나 비가 오지 않는 날도 사진으로는 왜 이렇게 비슷하게 보이냐.

한여름으로 갈수록 습도가 높고 굽굽한 더위가 사람들을 잠식한다. 그럴수록 몸을 열심히 움직이고 땀을 흘려 굽굽한 더위에 적응을 하는 몸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 나는 아직 에어컨을 틀지 않고 잠을 잔다. 집에서도 아직 에어컨을 틀어 놓지 않는다.


에어컨 바람을 싫어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가만있으면 시원하지는 않아도 덥지도 않아서 선풍기 바람으로도 좋은데, 에어컨 바람을 맞는 순간 에어컨 바람이 없어지면 덥다고 느끼게 된다. 그래서 몸을 더위에 적응하는 몸으로 만드는 게 여름에 내가 보통 늘 하는 일이다. 적당히 태닝을 하고 매일 몸을 움직이는데 격렬하거나 덜 격렬하거나, 이런 수위 조절을 해가면서 몸을 더위에 노출시켜 적응을 하면 에어컨이 없어도 생활하는데 무리가 없는 몸이 되는 것 같다.


장마가 끝나고 폭염이 오면 그제야 에어컨을 슬슬 틀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고 매년 그래서 에어컨 때문에 전기세가 많이 나오는 경우는 없다. 같은 시간을 에어컨을 틀었어도 작년에 비해 올해는 전기세가 더 많이 나온다. 그래서 이래저래 몸이 에어컨 바람을 밀어내는 체질로 바꾸면 좋다.

장마기간의 맑은 날에는 눈으로 보이는 풍경이 마치 그림처럼 보인다. 나는 이런 풍경을 보면서 또 쓸데없는 상상을 한다. 나의 뇌는 어떻게 생겨 처먹었기에 하루도 공상을 하지 않는 날이 없다. 조금만 빌미가 보이면 멍하게 앉거나 서서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상상을 하고 있다.

어김없이 찾아온 레인시즌. 이런 시기에는 이상하지만 새들도 평소보다 눈에 띄지 않는다. 원래 강변 조깅 코스에 참새들과 비둘기 떼, 매, 그리고 강에 서식하는 왜가리 같은 날개가 큰 조류들을 매일매일 보는데 장마기간에는 잘 볼 수 없다. 어제는 평소에 잘 보이지 않는 까마귀들을 보았다.


까마귀 떼는 2월에 강 상류 쪽에 엄청나게 나타난다. 10만 마리가 넘는 까마귀 떼가 상공에서 날아다니는데 그 소리와 형태가 신기하고 신비롭기보다 공포에 가깝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나면 까마귀는 잘 볼 수 없다. 특히 바다와 만나는 강 하류 쪽에서는 더더욱. 그럼 까마귀들이 장마 기간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제 까마귀 떼가 하늘을 날아가는데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왔다. 떨어져 나온 까마귀가 하늘에 머물러 있었다. 비행을 한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고 마치 박혀 있는 것처럼 날갯짓도 없이 그대로 허공에 5초 정도 머물러 있다가 다시 날아갔다. 나는 그 장면을 보았다.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같은 상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그걸 계기로 해서 지구에 조금씩 균열이 오더니 아포칼립스가 되는 상상.


그림처럼 보이는 풍경



조깅을 하다가 들러 몸을 푸는 중간지정이 있다. 다리도 풀고 허리도 돌리고 하는 그런 장소다. 늘 깨끗한 이곳에 누군가 소주를 마시면서 더럽혀 놨다. 아니 도대체 누가 이렇게 강변에 나와서 산책하는 곳에 앉아서 소주를 마시고 뒷정리도 하지 않은 채 이렇게 더럽게 해 놨을까. 이렇게 보니 안주도 없이 소주 두 병을 마신 것 같았다. 안주가 담배였던 모양이다.

강변으로 조깅을 하는 사람을 제외하고 산책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머니, 아버님 같은 나이가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도 할머니, 할아버지에 가까운 사람들은 산책을 하거나 자전거를 탈뿐 이렇게 앉아서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렇다고 20대나 30대 같은 젊은 사람들도 앉아서 깡소주를 마시지는 않는다.


아마 60년대 생, 부머세대이지 않을까. 7, 80년대 치열하게 공부해서 대학에 들어가 또 거기서 치열하고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기업체에 들어가서 퇴직할 때까지 역시 치열하게 일을 한 세대의 사람들. 오직 치열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경쟁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운 사람들이 회사를 영차영차 일구었다. 덕분에 7,80년대 영화를 보면 영화 배경에 고층건물이 꼭 나온다.


우리나라의 고층건물이 7, 80년대 엄청나게 올라갔다. 그 덕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고도성장을 할 수 있었다. 자동차 산업은 백 년짜리 계획하에 모든 나라가 사업을 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기간을 단축했고 기술력도 엄청났다. 이 작은 나라에 자동차를 만들어 내는 회사가 몇 개나 있다. 세상이 깜짝 놀라는 휴대폰을 만들어 내고 있고, 무엇보다 자체 검색 엔진, 포털사이트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이게 정말 엄청난 IT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은 카톡을 모든 사람들이 사용하는데, 일본도 카톡 같은 메신저를 온 국민이 사용을 한다. 근데 그게 네이버 라인이다. 일본의 메신저를 사용하는 게 아니라 네이버 라인을 일본의 국민 대부분이 사용을 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일군 주역이 60년대생, 부머세대들이다.


이 부머세대들은 퇴직을 하면 퇴직금과 함께 국민 연금을 받으며 편하게 노후를 보내는 상상을 하며 평생 열심히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막상 퇴직을 하고 나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다. 60세에 다시 20대처럼 뛰어들어 하루를 살아남아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마지막으로 부모세대를 봉양하며 처음으로 자식세대에게 노후를 맡기지 않는 세대. 이상하지만 끼인 세대.


아마도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소주를 마신 건 힘들어서 그럴지도 모른다. 강물은 아주 느리게 흐르나 절대 멈추지 않는다. 머뭇거림 없이 착실하게 흘러간다. 시간과 비슷하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그 흐르는 시간에 끼여 같이 흘러가는 쓰레기 같다고 느꼈을지도 모른다.


저기 보이는 많은 아파트가 있는데 이상하지만 집은 빚으로 점철되어 있고 자식들도 취직이다 결혼문제다 인간관계다 해서 허덕이고 있다. 소주를 마신 사람은 사는 게 힘들다고 느꼈을 것이다. 소주를 한 병만 마시고 싶어도 한 병으로는 취하지도 않는다. 두 병을 마셔야 그나마 조금 술을 마셨다는 기분이 든다. 병원에 가는 횟수는 자꾸 늘어가고 의사는 운동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고. 이만큼 살았는데 답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더 달려야 답이라는 게 보이는 것일까.


조깅을 하다가 몸을 푸는 곳에 홀로 등을 구부리고 앉아 강을 바라보는 아저씨들을 본다. 그들은 다른 노인들보다 젊다. 그러나 회사에서는 퇴직을 한 상태다. 경비로 취업을 하는 것 역시 치열하다. 사무실에서 평생일만 하다가 퇴직을 하면 그것마저 여의치 않다. 아저씨들의 굽은 등을 본다. 그 등을 타고 흐르는 어떤 불안한 기류를 느낀다.

언제나 물수제비 같은 길 고양이


김건모는 성공했으나 지금은 힘들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