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다닐 때 인문계인데 인문계 그 이외의 일로 나는 많이 바빴다. 사진부 클럽 활동으로 바빴고, 음악 감상실에 자주 들락거려야 해서 바빴고, 합기도를 배우느라 또 바빴다. 그래서 수업시간이 거의 수면 시간이었다. 특히 한문(선생님 죄송합니다) 시간은 숙면의 시간이었다. 태아가 되어서 몸을 말고 잠이 드는 것처럼 책상에 나름대로의 위치를 선정해서 기묘한 자세를 잡고 푹 자는 것이다. 소리만 내지 않으면 한문 선생님은 몰랐다. 이렇게 말을 하면 누군가는 다 알고 있는데 선생님이 가만 두는 거라고 하는데 한문 선생님은 몰랐다.


만약 알게 되어서 누군가 들키면 한문 선생님은 그 녀석을 불러내서 씹던 껌을 크게 펼쳐서 머리에 붙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데 아이들이 아무도 반항하지 않았던 건 한문 선생님은 나이가 엄청 많으신 분이었고, 아마 교장보다 더 많았을 것 같다. 1년 뒤면 아마도 정년퇴직 할 것 같았다. 하지만 1년 뒤에도 또 학교에 계셨는데 아무튼 나이가 많고 허리가 구부정하고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그래서 수업을 할 때에는 학생들보다 선생님 자신이 더 수업에 집중을 했다. 아무튼 나는 고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자마자 바쁘기 시작하더니 내내 바빴던 것 같다.


합기도 도장을 다닐 때의 일인데, 평일에는 수업을 다 끝나고 10시에 합기도를 배웠다. 끝나면 자정이었다.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성룡 발차기를 연습하다가 새벽에 집에 들어가기 일쑤였다. 그래도 부모님들이 나무라지 않았던 건 동네마다 있던 동네 깡패들에게 나 자신을 보호해야지!라고 부모들을 설득했기 때문이다.


좀 일찍 합기도 도장에 가고 싶어도 인문계니까 자율학습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진짜로 집으로 오다가 불량배들에게 가방에 들어 있던 아버지의 카메라를 빼앗길 뻔했다. 목숨을 걸고 그걸 지키느라 엄청 두드려 맞았다. 얼굴이 존 카펜터의 영화에 나오는 좀비처럼 얼룩덜룩한 채로 집에 들어오니 엄마가 놀랐다. 오예, 이 기회로 합기도를 배우는 거야. 그래서 합기도 도장을 다니기 시작했다.


합기도 도장은 토요일에도 훈련을 했는데, 오후 3시인가? 4시인가? 한 시간 정도 수업을 받는데 평일과는 달랐다. 도장도 학교처럼 토요일은 술렁술렁하는 것 같은데, 꼭 그렇지만은 않았다. 토요일은 대련을 하는데 하다 보면 격해져서 격투가 되고, 싸움이 되기도 했다. 사범은 교묘하게 그것을 부추기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실전에 써먹게 하려는 뭐 그런 사람이었다.


사진부라 학교 축제 때문에 여학교와도 교류가 있었는데 우리와 친하게 지내던 여자애가 합기도를 배우겠다며 토요일에 따라온 것이다. 남자애들만 발차기를 하고 낙법 치는 도장에 여학생이 한 명 오니 난리 아닌 난리가 났다. 그렇게 어영부영 그 애는 몇 개월을 도장에 꼬박꼬박 나오게 되었다.


토요일에는 대련을 하는데 그 애와 대련하는 녀석은 멱살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난감해했고 전부 나를 쳐다봤지만 나 역시 뭐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 애가 특별히 나와 친해진 건 그 여자애가 엄청난 록 마니아였다. 모르는 록 밴드가 없고, 모르는 노래가 없었다. 당연하지만 그쪽으로는 얘기가 잘 통하는 친구였다. 음악에 대한 덕질이 심한 학생들이 디제이를 하는 호산나 같은 음감에서 디제이를 할 정도로 그 애는 음악과 밴드에 대해서 훤히 잘 알고 있는 친구였다.


토요일에 합기도를 하고 나면 녹초가 된다. 땀에 절어서 기진맥진한데 사범이 우리를 데리고 시장 안의 카나리아 치킨집에서 후라이드를 사주었다. 물론 맥주도 함께. 도장이 시장 안에 있었는데 근처의 치킨집이라 자주 가서 주인아주머니와도 잘 알고 지냈다.  


그 애는 양념치킨은 잘 먹지 않고 후라이드만 한두 조각 먹을 뿐이었다. 하지만 술은 굉장히 세서 우리 중에 누구도 그 애에게 이길 수 있는 친구가 없었다. 얼굴표정이나 혈색이나 말투가 전혀 변하지 않기 때문에 술이 취했는지 모르는데 음악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지면, 아 취했구만, 하고 생각했다.


그 애가 합기도 도장에 나타났을 때 관장님을 비롯해서 사범들이 전부 놀랐고 대련을 할 때 난처해했던 이유는 그 애가 혼다 미나코처럼 생겼기 때문이었다. 몸은 너무나 가녀리고 얼굴은 귀여운, 그래서 발차기나 대련을 하다가 잘못하면 다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혼다 미나코를 잠깐 설명하자면 80년대 일본에서 인기 있는 아이돌이었다. 원래 소녀대 멤버로 활동하기로 했는데 워낙 노래도 파워풀하게 부르는 가창력, 무대 장악력이 뛰어나 솔로로 활동을 했다. 당시 소녀대가 한국으로 와서 코리아를 부르며 대대적인 친한 활동을 할 때 혼다 미나코도 한국으로 와서 솔로 활동을 했다. 하지만 홍보 프로덕션이 없어서 한국 사람들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혼다 미나코가 한국으로 와서 이름도 알리지 못해서 그저 그런 아이돌이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녀는 음악적 재능이 뛰어나 게리 무어, 퀸의 프레디 머큐리, 잭슨 패밀리와도 음악적 교류가 활발하게 있었다. 퀸의 브라이언 메이에게는 곡을 받기도 했다.


좀 벗어난 얘기지만 서문탁도 퀸을 너무나 좋아하고 존경해서 ‘디어 퀸’이라는 곡을 만들어 퀸의 공연 때 이 곡을 부르고 헌사해서 브라이언 메이가 너무 좋아했다고 한다.


혼다 미나코는 서울음반을 통해 한국에서 ‘OVERSEA’라는 앨범을 발매했다. 혼다 미나코는 말랑한 당시의 일본 아이돌의 노래를 버리고 록으로 전향을 했다. 그녀는 와일드 캣츠와 함께 '혼다 미나코 위드 와일드 캣츠'라는 그룹을 만들어서 활동을 했다. OVERSEA 앨범의 모든 곡이 외국 작곡가의 곡이라 전부 팝의 느낌이 강하다.


혼다 미나코의 가장 유명한 한국 일화는 88 서울 올림픽 한강 고수부지 기념 공연이었다. 그날 비가 폭우였다. 엄청나게 내렸다. 앞 공연의 이상은이 담다디를 부를 때만 해도 그렇게 비가 거세게 내리지 않았지만 혼다 미나코가 부를 때 비가 엄청 왔다. 하지만 혼다 미나코는 전혀 굴하지 않고 무대를 장악하며 '스낵 어웨이'를 불렀다.  https://youtu.be/OPUv4LDMxhM 1988. 한강 고수부지 공연


이런 혼다 미나코를 그 애가 쏙 빼닮았다. 마른 것도, 귀여운 얼굴도. 한강 무대에서 비를 맞으며 부른 다음 노래가 퀸의 브라이언 메이에게 받은 곡 '크레이지 나잇'이다. 신나는 팝록이다. 혼다 마니코는 이후 어떻게 되었을까. 그녀는 아티스트의 모습을 보이며 뮤지컬 등 여러 방면으로 활동을 했다. 그런데 혼다 미나코의 근래의 사진은 전혀 볼 수 없다. 그녀는 30대 후반에 백혈병으로 투병하다가 끝내 사망하고 만다.


너 혼다 미나코 닮은 거 알지?라고 우리가 말하면 멋쩍어서 흥, 하는 뉘앙스를 보였다. 합기도 도복을 입고 하얀 띠를 매고 찍은 사진이 있는데 올리고 싶다. 요즘은 연락이 되지 않아 도통 뭘 하면서 지내는지 모르겠다. 대학을 서울로 가면서 연락이 끊어졌다. 그 애는 밴드 음악에 대해서 박식했다. 바쏘리 같은 데쓰메탈도 빠삭하게 알고 있었다.


그 애에게 후라이드 한두 조각만 사주면 그 애를 우리를 앞에 앉혀 놓고 온갖 밴드에 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래서 그 애와 치킨을 먹으러 갈 때에는 우리는 늘 후라이드를 주문했다. 후라이드를 오랜만에 뜯어먹으니 그때가 생각나네. 그립네. 추억의 90%는 맛이네 맛. 그나저나 이 글은 음악 이야기에 집어넣어야 하나.


퀸의 브라이언 메이에게 받은 곡 CRAZY NIGHTS https://youtu.be/_HNu-k4H98c


오버씨 앨범


표지모델


브라이언 메이, 프레디 머큐리와 함께


잭슨일가와 함께


투병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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