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저녁의 향연이 이어지는 계절이다. 날이 선선해서 달리기에 너무나 좋은 요즘이다. 한 시간 정도 달리고 나면 온몸이 땀에 젖어 있는 것 역시 기분 좋다.
색감이 묘한 저녁이다. 화면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이쪽과 비슷한데 다른 세계가 있는 것 같다. 그쪽 세계는 이쪽 세계와 거의 같은데 조금 다르다. 그 다른 조금의 부분이 너무나 크고 무섭게 다가온다. 그쪽 세계에 있는 나는 지금의 나와 똑같이 생겼지만 음식을 먹을 때 입으로 먹는 게 아니라 배가 갈라지고 그 안에서 괴물 같은 입이 튀어나와서.
쓸데 없는 생각을 뒤로 물리고 다시 달려가자. 으샤으샤.
이렇게 유랑하는 달의 모습을 담을 때는 단렌즈인 아이폰 8을 원망해 본다. 최신 휴대폰이라면 이 모습을 너무나 예쁘게 담을 수 있을 텐데.
이상일 감독의 '유랑의 달'을 봤다. 이상일 감독은 식스티 나인과 훌라걸스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영화가 어둡다. 이번 유랑의 달을 끝내고 이상일 감독이 배우 송강호와 화상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영상이 유튜브에 있다. 한국어가 조금 서툴지만 송강호를 형님이라 부르며 영화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이 소탈하게 보였다.
이 영화는 슬픈 이야기며, 아픈 이야기고, 안타까운 이야기다.
이야기를 반영이라도 하듯 색감이 차갑고 초연하다. 기생충의 느낌이 나는 것은 아무래도 기생충 촬영감독이 촬영을 해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축축하고 차가운 대지 위에서 건조하고 따뜻한 부분을 내주는 건 다름 아닌 자신과 비슷한 결핍 인간이다.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을 겨우 만났는데 사람들은 그런 우리를 벌레 보듯 본다. 그리고 그 시선은 점점 더 크고 넓어지고 확대된다. 하지만 달은 처음부터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달이 웃고 있다. 달은 너와 나를 연결시켜 준다.
아니라고 하지 못한 말은 그대로 사실이 되어 사람들은 이야기조차 들으려 하지 않는다. 결핍 때문에 떠났지만 결국 결핍이 그리워 다시 결핍의 자리로 돌아오는 카나시이 하나시다.
장애라는 건 아픈 게 아니라 불편한 것이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욕을 하고 삿대질을 하며 마음대로 생각하는 그 사람들이 장애가 있는 것이다.라고 영화는 말하는 것 같다.
빗자루가 있다면 옆구리에 차고 강변으로 나가서 슥슥 구름을 쓸어서 담아 오고 싶다. 그래서 비닐에서 꺼낸 구름의 반은 집의 천장에 뿌려 놓고 반은 설탕을 뿌려서 솜사탕을 만들어서 먹고 싶다. 뭐? 먼지 때문에 구름이 더럽다고? 그래서 설탕을 넣는 거야. 하얀 그리움에 눈물이 흘러내리면 먼지 같은 것도 전부 사라지니까.
이제 저 연등도 일 년 뒤에나 볼 수 있겠지. 한 달 동안 잘 봤다. 연등들아. 구름을 빗자루로 쓸어서 담아 오고 싶은 저녁의 풍경이었다.
구름이 또다시 그림을 만들어냈다. 놓칠 수 없는 풍경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작은 희망이 없어서였을까. 별이 궤도에서 또 이탈해서 나 돌아갈래, 하며 한 번 멋지게 폭발을 하며, 셀 수도 없을 만큼 수억 개의 별 중에 존재를 각인시키고 사라진 별의 흔적일까. 이럴 때 김중식 시인의 시 ‘이탈한 자가 문득’이 떠오를 수밖에 없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구름과 새와 유랑하는 달을 담아냈다. 물론 신형폰의 유혹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지만 그래도 꽤 해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