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동안 계속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틀어 놓고 있다. 그래봐야 유튜브로 틀어 놓는다. 등 뒤로는 기묘하지만 라디오가 계속 나오고 있고 앞으로는 라디오보다 큰 소리로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이 나오고 있다. 이틀은 더 펄스 공연을 틀어서 들었고, 오늘은 디비전 벨 앨범의 곡들을 계속 듣고 있다. https://youtu.be/Nc7bHU6ylvM


나 예전에 이 앨범을 엘피로 구입을 했었다. 그때 내가 무슨 음악을 안다고(뭐 지금도 모르지만)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 앨범을 구입해서 너무나 기쁜 마음으로 어린놈 주제에 주말이면 몇 시간씩 거실의 벽에 기대어 앉아 헤드폰으로 디비전 벨 앨범을 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 이전에 핑크 플로이드의 앨범이 두 개 더 있었다. 가장 유명한 앨범과 또 하나 있었다. 그 두 개는 카세트테이프였다.


그래서 친구들이 불러도 주말에 나가지 않고 집구석에 앉아서 등을 구부리고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을 들었다. 음악은 기묘해서 듣고 있으면 그때의 기억들이 떠오른다. 기시감이 굉장하다. 나는 형이나 누나가 없었기 때문에 오직 라디오와 음악 감상실에서 음악을 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가요를 좋아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팝이나 강력한 음악에 매료될 수밖에 없었다. 그 사이를 뚫고 핑크 플로이드가 들어왔다. 로저 워터스의 이야기, 황제로 군림하던 그가 나가고 데이비드 길무어가 7년 만에 낸 앨범에 관한 이야기. 이런 가십은 몰입하게 만드는 이야기였다.


시간이라는 건 정말 알 수 없다. 시간은 때때로 사람을 조급하게 하거나 불안하게 한다. 그런 시간이 존재한다. 학창 시절에 일요일 오후 3시가 되면 불안하기 시작했다. 나는 얼마나 학교에 가기 싫었으면 일요일 오후 3시부터 불안했을까. 그때의 불안은 당시에 말로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서 혼자서 마당의 무화과나무 밑에 앉아서 오후 3시를 미워하고 있었다. 그런 불안을 완화시켜 준 것이 핑크 플로이드 음악이었다.


일요일 오후 3시는 토요일 오후 3시와 너무 다르다. 금요일 오후 3시와도 다르며 월요일 오후 3시와도 다르다.


자율학습이 비교적 일찍 끝나는 토요일은 오후 3시가 되면 마음이 풍요로웠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토요일이었으니까. 자율학습이 없어서 1시에 수업을 마치면 강원분식에서 라면 곱빼기를 한 그릇 먹었다. 분식집 티브이에는 벅스 바니가 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 하교 후 강원분식집에서 벅스 바니를 보며 먹는 라면 곱빼기는 정말 행복이었다.


4월의 봄, 토요일.

라면을 먹고 나오면 2시에서 3시 사이였다. 집으로 걸어서 왔다. 버스를 타야 하지만 토요일은 계속 걸었다. 도로에서 올라오는 아지랑이 냄새며 사람들의 봄옷이며, 전통시장의 넘쳐나는 봄기운이 토요일 오후 3시를 만끽하게 했다.


그러나 그 행복한 시간은 너무나 빨리 지나가 버렸다. 일요일 오후 2시까지는 괜찮다. 몸도 마음도 오후 2시부터 어떠한 구멍 속으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든다. 그 때문에 일요일에 낮잠을 자지 않았다. 잠이 들어 버리면 어김없이, 대책 없이 몰아치듯 오후 3시가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내 속에 있는 알 수 없는 무력감으로 일요일 오후 시간을 완전히 망쳐버리고 만다. 일요일 오후 3시는 그렇게 학창 시절의 어떠한 부분에서 불안을 잔뜩 가져다 준 시간이었다. 그럴 때 차분하게 핑크 플로이드의 음악을 들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하이 홉스에 와서 엄청난 마음의 차분함과 떨림을 동시에 느꼈다.


그래도 그때는 요즘처럼 이렇게 대기질이 엉망이거나 미세먼지로 마스크를 하고 다니지는 않았다. 우리가 생각하는 기존의 상식이 깨지고 있는 요즘이다. 학생들이 약을 구해서 약을 하는 이야기가 뉴스에서만 일어나는 일인 줄 알았는데 주위에서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학생의 부모는 천청벽력을 맞이했다. 요즘의 학생들은 내가 학생 때 느꼈던 일요일 오후 3시의 불안보다, 더 한 불안을, 몇 배는 더 큰 불안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약을 오래 하다 보면 약을 끊었다 해도 약을 하기 이전의 생활로 돌아가지 못한다. 맛있게 먹었던 과자나 음료가 아무 맛도 느낄 수 없게 된다. 사람들을 만나도 의욕이 전혀 없고 해서 뭐 하나 같은 허무가 늘 깔려있다. 생활이 힘든 것이 아니라 생활이 안 된다.


경북 고령 같은 고장에는 젊은 사람들이 다 빠져나가고 평균 연령이 54세라고 한다. 문제는 농사짓는 일을 거의, 대부분 동남아 사람들이 한다. 그러다 보니 다문화 가정이 많은데 오죽하면 한국인 드문 시골 고장의 학교에 다문화 아이들이 전부라 한국인 아이가 따돌림을 받기도 한다고 한다.


학령인구의 감소로 지방대학교가 폐교되는 이야기를 한 번 적었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3437


이 심각함을 영상으로 보면 더 충격이다. 유튜브에 폐교가 되어 유령 마을이 된 모습을 보여주는 영상도 많다. https://youtu.be/kRo-s1NEyNQ


썩 왕래가 없는 아는 친구가 아이가 열이 펄펄 나서 소아과를 갔는데 한 시간이 넘도록 대기를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제 겨우 말을 하는 아이가 아파서 기진맥진한 모습으로 병원 대기실에서 기다리는데 부모는 속이 타들어가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간호사들대로 힘들고, 아이는 아이대로, 아이의 부모는 부모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힘들고 피곤한 것이다. 너는 진짜 아이가 없어서 모른다고 하는데 속으로 맞아, 난 알 수가 없지.


일요일의 저녁은 금방 지나갔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이었다. 어제와 지금이 다른 점이라면 먼지가 조금 걷혔다는 것이다. 온 세상에 부옇고 부연 대기의 최악 상태였는데 오늘은 먼지가 조금 걷혔을 뿐인데 이렇게 하늘이 다르다. 하늘의 구름의 층위가 마치 질 좋은 마블링의 단면을 보는 것처럼 다 드러났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어차피 하루는 지나가고 오늘과 크게 다르지 않은 내일이 펼쳐질 것이다. 오늘 평안하고 고요하게 지나갔다면, 오늘과 다르지 않을 내일도 무료하지만 고요하고 아무 일 없이 지나간다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 정도면 덜 불행한 것이다. 거기에 핑크 플로이드의 디비전 벨 앨범을 듣는다면 조금 행복한 날이 될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