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일주일 전 포근한 겨울의 아침 집 앞 바닷가에서



어릴 때 어머니는 늘, 항상 치약 좀 아껴 쓰라고 했다. 이상하다, 그놈의 치약은 조금만 짜서 쓰는데 금방 닳아 버리고 만다. 그러면 늘 한 소리 듣는 건 나였다. 치약은 조금만 짜!


이후 사람들은 너도나도 치약을 아껴 쓰기 시작했다. 이 놈의 치약 조금만 짜야지. 그렇게 모든 집들이 치약의 절약에 들어갔다. 그러자 치약회사들은 낭패에 부딪혔다. 치약이 예전보다 덜 팔리는 것이다. 그래서 치약회사 수뇌부들이 모여서 작당 모의를 했다. 그 결과 치약이 나오는 구멍을 크게 만들어 버렸다.


그랬더니 치약이 예전만큼 판매고를 올리는 거였다. 우리는 분명 조금만 쓴다고 생각했지만 구멍이 작았을 때보다 훨씬 많은 치약을 짜 쓰고 있었다. 게 중에는 처음 치약 뚜껑을 따면 밖으로 툭 튀어 나가는 치약도 있었다.


우리는 아무리 똑똑하고 현명하게 생활을 한다고 생각하고 지냈지만 기업은 우리의 머리 위에 있었다. 이걸 알아채기는 쉽지 않다. 세상은 온통 이런 구멍들이 곳곳에 있어서 자타가 공인하는 똑똑한 사람이라도 그 구멍에 자기도 모르게 빠져버리고 만다.


안 그래도 많이 팔리는 소주를 어느 순간 첫 잔은 고시래 해야 한다며 땅바닥에 버리고 둘째 잔부터 소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 버리는 한잔 덕분에 소주는 훨씬 많이 팔려 나갔다. 고시래는 고수레의 방언 같은 말로 굿을 할 때나 들에서 음식을 먹기 전에 조금 떼어서 귀신에게 먼저 바치면서 하는 소리나 짓을 말하는데 어느 날, 느닷없이 소주에 그게 붙어 버렸다. 항간에는 이 첫 잔의 고시래를 소주 회사에서 흘렸다는 소문도 있었다.


어린이들의 인터뷰는 참 재미있는 게 많은데, 엄마는 늘 화가 나 있어요.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요. 엄마는 우리를 보면 좋은 말을 해요. 좋은 말로 할 때 밥 먹어라, 좋은 말로 할 때 빨리 자라. 그 어린이들이 엄마가 되면 이상하지만 늘 화가 나 있다.


여기서 발전을 하면, 사장님은 왜 아침마다 화가 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요. 사장님은 기분 좋아야 할 오전에 우리를 보면 늘 화를 내는 걸까요? 사장님이 화를 내는 건 우리 때문이라는데 우리가 뭘 그렇게 잘 못한 것일까요?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내가 사장이 되고 보니 그때 그 사장님이 아침마다 왜 우리를 보며 화를 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활을 하면서 알게 모르게 꽤나 똑똑하게 처신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한다. 매일 경험치를 쌓으니까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다. 요즘은 물가의 상승으로 인해 전부 가격이 올랐다. 그런데 가격이 오르지 않고 당당하게 마트의 매대를 지키는 과자나 음료도 있다. 그러면 우리는 착한 과자, 착한 음료라고 생각하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그러나 기업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바보들이 아니라는 말이지.


똑똑한 우리보다 한 수, 아니 두 수, 세 수 위에 있다. 초코바 같은 경우 원래 50그램인데 사람들에게 착한 분위기를 심어주기 위해 가격은 그대로 둔 채 양을 45그램으로 줄여서 판매를 한다. 용량 따위 사람들은 거의 보지 않는다.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들도 식품을 구입하면서 뒤에 적힌 성분이나 용량을 꼼꼼하게 전부 읽어보지 않는다. 게다가 글자가 너무 작아서 노안이 오면 에이 하며 아예 쳐다볼 생각을 않는다. 마치, 너 눈이 나쁘면 이런 건 읽지 않는 게 좋을 걸,라고 하는 것만 같다. 이 같은 편법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격 변동이 없는 과자나 음료를 착한 과자야 하며 서로 공유하게 된다. 아마 우유도 예전에 비해 용량이 많이 줄었다.


인간은 오류 덩어리고 모순적이다. 그걸 잘 알지만 그 사실을 인정하기는 싫다. 받아들이는 건 또 너무 어렵다. DC의 미드 시리즈 샌드맨을 보면 인간의 모순에 대해서 잘 이야기해준다. 인간이 타인에게 연민을 품는 이유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이기적이기 때문이다. 아무 편견 없이 말을 해보면 인간은 그렇게 설계되었고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 사실을 체득하면 우리가 생물학적이고 선천적인 이기심을 바탕으로 행동한다는 걸 안다면, 삶을 받아들이기 한결 쉬울 것이다. 인간이 이기적이란 걸 알면 누군가의 행동이나 거짓말에 상처받을 필요가 없어진다. 사람들은 이기적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거짓말은 안 좋은 것, 비난 받아야 하는 것, 호러블 한 것으로 배우고, 배웠고 또 가르치고 있다. 거짓말을 하면 안 돼. 연인 사이에는 더욱더 거짓말이 금기시된다. 절대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거짓말로 인해 망하는 경우를 많이 봐왔고 경험했기에 우리는 서로 진실해야 해.


진실이 하지만 언제나 옳은가. 참 애매하다. 한 아이의 엄마가 오랜만에 외출을 위해 얼굴에 화장을 했다. 거울을 보니 꽤나 화장이 잘 된 것 같다. 화장이 잘 먹히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기분이 좋다. 친구들을 만나서도 열심히 사진을 찍을 테야. 옆에 있는 4살 아들에게 엄마 얼굴 어때?라고 하니 “커!”



우리가 실은 얼마나 모순된 삶을 있는가 하면, 인간이 가장 사랑하는 울타리인 가족을 생판 모르는 이와 만나서 가족을 이룬다. 어릴 때는 모르는 사람은 따라가면 안 되는 존재지만 성인이 되면 아는 사람이 아닌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서 만나서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해서 가족이 된다. 완벽한 가족이 되려면 가족끼리 가족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옛날 옛적의 여러 나라 왕족들은 가족끼리 가족을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는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인간은 모순적이게도 모르는 이와 가족을 이룬다. 그리고 원래 가족이었던 부모와는 안녕, 하며 떨어져 지낸다. 자식을 낳고 애지중지 길러 애들이 성인이 되면 마찬가지로 우리 곁을 떠난다. 인간은 유전자처럼 이런 끊임없는 반복의 주기를 살고 있다. 모순에 모순을 거듭해서 모순을 뒤집어서 모순이, 모순이 아닌 것처럼 받아들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번 코로나(가 아직 끝나지 않았고 재유행이 된다고 하는) 사태를 보면 똑똑한 사람, 현명한 사람, 권위적인 사람 모두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처음 불어닥친 감염병 앞에서는 많이 알고 있는 지식은 전혀 무용지물이었다. 죽기도 많이 죽었다. 마치 지구가 흘러넘치는 모순 덩어리 인간들을 정리하고 있는 착각마저 들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태양도 수명이 다 할 때가 온다고 한다. 태양은 질량이 높지 않아서 뭐 이렇게 저렇게 해서 천천히 팽창하다가 펑, 하고 폭발을 하여 수명이 끝나는 날이 오는데 지금으로부터 50억 년 인지, 50억 만년인지 뒤라고 한다. 그때가 되면 태양은 소멸하고 태양계 역시 끝이 난다고 한다. 그때 인간은 정말 어떤 형태가 되어 있을까. 아무래도 진화가 될 때까지 되어서 지금의 모습과는 어떻게든 다를 것이다.


태양의 폭발보다 지금은,

엄마 얼굴 어때?

“커!”가 더 신경 쓰이는 현재,

뭐든 덜 신경 쓰며 살면 참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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