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가는 동네 빵집에서 사 먹는 우유식빵은 저녁에 가면 다 떨어지는데 가끔 남아 있는 식빵을 운 좋게 사 올 때가 있다. 우유식빵은 식빵만 먹는 게 가장 맛있는 거 같다. 부드러운 게, 말랑말랑한 게 그저 식빵만 먹어도 좋다. 우유식빵의 맛은 다 알겠지만 단맛이 없다고 해서 설탕이 안 들어간 건 아니다.
마시멜로가 칼로리가 아주 높다고 살이 엄청 띠는 식품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마시멜로 하나는 바나나 하나 보다 칼로리가 높지 않다. 우유식빵의 부드러운 맛에 현혹되어 ‘음, 달지 않군. 좋아’하며 한 번에 많이 먹다 보면 아마 운동을 해야 할 걸.
동네 빵집이라고 해서 사는 집의 동네 빵집은 아니다. 살고 있는 동네에는 전부 대기업 베이커리 밖에 없다.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작은 빵집이 있었는데 대기업 베이커리에 치이고, 동네에 쏙쏙 늘어나는 로켈 카페에서도 빵이나 조각 케이크를 판매하는 것에 치여 없어지고 말았다.
내가 가는 동네 빵집은 조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들리는 곳이라 집과는 거리가 먼 동네다. 아주 작은 빵집인데 한 40년 정도 된 집이다. 노부부가 하는데 주인 할아버지가 주방에서 새벽부터 빵을 굽고, 할머니가 손님이 오면 계산을 한다.
아주 작고 좁은 빵집이라 빵집 안에서 먹을 수는 없다. 예전에 역이 있던 곳의 빵집인데 역은 없어졌고 주위의 상가들도 역이 사라짐과 동시에 같이 사라졌지만 빵집은 아직까지 그 자리에 있다. 그래서 들어가면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빵 가격도 베이커리의 빵보다 저렴하다. 여기의 빵은 여러 빵 중에서 식빵류가 인기다. 저녁에 가면 다른 빵에 비해 식빵류는 싹 떨어지고 없다. 그러다가 운 좋게 식빵이 진열대에서 사라지지 않은 걸 볼 때가 있다. 쓱 들어가면 주인 할머니께서 아이구 이 추운데 오늘도 열심히시네, 같은 말을 건넨다.
그래서 우유식빵을 사들고 들어오는 날이면 꽤나 신난다. 우유식빵은 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린다. 라면 국물에 찍어 먹어도 맛있고(라면 국물에 밥을 말아먹기보다 식빵을 찍어 먹는 게 더 맛이 좋아), 멸치볶음을 올려 먹어도 맛있다. 그냥 김치와 먹어도 맛있다.
우유식빵 3개 사이에 치즈를 넣고 계한 프라이를 위에 올려 전자레인지에 돌리면 식빵의 맛이 확 달라진다. 무엇보다 우유식빵은 뜨겁게 먹으면 더 맛있는 것 같다. 빵과 빵 사이에 빛처럼 녹아내린 치즈가 뜨거운 우유식빵에 놀러 붙어 풍미를 더해준다.
뜨거워서 입 안에서 쓰으 후 하며 식혀 먹는 그런 맛이 있다. 어릴 때 어머니가 식빵을 밥을 할 때 그 위에서 쪄 준 적이 있다. 그러면 식빵에 밥의 냄새와 열기가 쌓여 식빵 같지만 식빵 같지 않은 뜨거운 식빵을 호호 불어 먹곤 했다. 물론 겨울이어야 그렇게 먹을 수 있었다.
박찬일 요리사의 글처럼, 추억의 절반은 온통 맛이 차지하고 있다. 맛으로 둘러싸인 추억을 벌리면 그리운 것들이 선물처럼 우르르 들어있어서 종종 벌리게 된다. 뜨거운 계란, 녹아내린 치즈, 하얀 식빵. 한국적인 맛은 아니지만 맛있음에 국적을 따지는 건 바보들만 하는 짓이다. 이렇게 먹으면 배가 불렀는지 모르게 자꾸 몇 개씩 해 먹게 된다.
이렇게 먹다가 다르게 먹어보는데 - 빵 위에 굽고 난 뒤 하루 지난 고등어구이를 올리고 치즈를 올린 다음 전자레인지로 돌린다.
음, 이게 무슨 맛일까,
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