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김밥도 종류가 많고 아주 맛있다. 우영우 덕분에 김밥이 더 인기다. 나도 음식 중에서 김밥이 가장 좋다. 몇 번이나 이야기를 했던 거지만 귀찮지 않기 때문이다. 굽고, 삶고, 끓이고 할 필요도 없고, 젓가락, 숟가락을 많이 움직일 필요도 없다.


김밥을 어찌나 좋아하면 1년 내내 점심을 김밥으로 해결했던 적도 있었다. 그때 김밥을 만들어서 건물마다 돌아다니며 파는 할머니가 있었는데 그 할머니에게 매일 김밥 두 줄을 구입해서 먹었다. 그 덕에 김밥 할머니에 대한 소설도 한 번 써 보기도 했다. https://brunch.co.kr/@drillmasteer/2339


김밥이 좋은 점은 강변 벤치에 앉아서 은박지를 벗겨내서 한 손으로 들고 먹으며 소설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옆 사람에게 김밥 예찬을 블라블라 하고 있으면 옆에서 시큰둥 한 얼굴을 하고 있기도 했다. 근래에 김밥 전문점도 많아지고 맛있고 맛있는 김밥이 흘러넘치지만 나에게는 김밥 중 최고는 '소풍 김밥'이다. 소풍 김밥이란 말 그대로 소풍 갈 때 엄마가 새벽에 말아 준 김밥이다.


원태현의 시처럼 4시에 너를 만나면 3시부터 행복해지기 시작하는 것처럼 소풍 가는 전날에는 기분이 째진다. 소풍 그거 별 거 아닌데 김밥이라는 점심을 들고 소풍을 간다는 기대가 엄청났다. 소풍 전날에는 잠도 잘 안 온다.


나는 소풍을 한 번 안 간 적이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 때 소풍 전날 집으로 오는데 도로가에 소형 트럭을 주차해 놓고 건물 공사 때문에 트럭의 모래를 인부가 삽으로 퍼서 밑으로 내리고 있었다. 근데 지나가는 나를 보지 못하고 삽으로 모래를 휙 던졌는데 그 삽에 귀를 찍히고 말았다. 얼굴 옆이 삽으로 찍혀 버린 것이다.


순간 머리와 얼굴에 모래가 다 들어가서 막 터는 순간 피가 두두두두 떨어졌다. 피를 보니 그 뒤로 띵한, 멍한 세상이 보이고 아직 덜 자라서 그런지 얼굴의 옆이 조금씩 아려오기 시작했다.


놀랐던 인부 아저씨가 수건을 들고 귀를 감쌌고 병원의 응급실로 가서 치료를 했는데 오른쪽 귀 밑부분이 겨우 붙어 있어서 그걸 꿰맸다. 손으로 튕기면 귀의 밑부분이 날아갈 정도로 너덜너덜거렸다. 지금도 흉터가 그걸 잘 말해준다. 집에는 엄마와 큰 이모가 있었는데 놀라서 달려오느라 신발이 짝짝이였다. 그 모습에 풋 하고 웃었던 기억이 있다.


어쩔 수 없이 그다음 날 소풍은 가지 못했다. 사실 중학교 때에는 먼지 같은 존재였고 공부도 못하고 그저 음악이나 듣고 지냈기에 친구도 없었다. 그래서 중학생활이 그저 빨리 지나가기를, 중학생 주제에 생각하고 있었다. 이런 쓸모없는 중학생 시절은 빨리 지나갔으면. 그런 생각을 3년 내내 하고 있었다. 그래서 중학교 3년 동안 소풍이라고 해봐야 기억이 없다.


어떻든 나에게 최고의 김밥은 소풍 김밥이다. 초등학교 때 소풍을 가서 먹는 김밥은 정말 맛있었다. 가방에 넣어서 소풍장소에서 놀다가 점심시간에 김밥을 꺼내면 약간 짓눌러져 있고 모양도 반드시 동그랗지 않았지만 소풍 김밥 만의 맛이 있었다. 그 맛이 좋았다. 김밥전문점에서 갓 나온 맛있는 김밥 과는 다른, 어머니 만의 맛이 깃든 김밥이 소풍 김밥이다.


소풍 김밥의 묘미는 같이 둘러앉아서 먹는 친구들의 김밥을 먹을 수 있는데 거짓말 1도 보태지 않고 집집마다 김밥의 맛이 달라도 싹 달랐다. 그저 밥과 들어가는 재료가 거기서 기기에 김으로 둘둘 말은 것뿐인데 맛이 다 다르다. 특별히 맛이 있는 김밥도 없고 아주 맛없는 김밥도 없다.


고만고만한 맛인데 다 다르며 야외에서 둘러앉아 깔깔거리며 칠성사이다를 마시며 약간 짓눌린 소풍 김밥을 먹고 있으면 행복했다. 소풍 김밥이 가장 맛있는 이유는 행복하다는 이유다. 시간에 쫓겨 편의점에서 앉아 먹는 김밥은 슬픔의 맛이다. 김밥전문점에서 나온 김밥은 맛은 있지만 비싸서 부담스럽다. 휴일에 애인이 집에서 만들어온 김밥은 그야말로 산더미다. 소풍 김밥을 따라올 수 없다.


그래서 소풍 김밥이 김밥 증에서 나는 제일이다. 요즘은 소풍 갈 일도 없고, 빙 둘러앉아 김밥도 먹지 않으니 소풍 김밥의 맛을 볼 수가 없다. 그만큼 행복의 총량도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생각을 해 보면 수많은 맛있는 김밥 속에서 소풍 김밥을 먹을 수 있는 기간은 아주 짧다. 복잡한 도심지의 생활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 틈에 있지만 어쩐지 고독하다고 느끼는 것과 비슷할지도 모른다. 아무리 김밥을 먹어도 행복하다고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꼭 예전으로 돌아갈 필요는 없지만 소풍 김밥의 맛을 다시 느끼려면 뭘 해야 할까.


남은 재료를 밥과 먹어도 맛있다. 소풍 김밥의 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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