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지 않아서 서늘한 기운이 피부에 스며드는 날이다. 지난주에도 선풍기를 틀어 놓고 잠을 잤는데 이제는 긴팔을 입어야만 한다. 한 시간은 느릿느릿 가는데 어느새 한 달이 지나가 버렸다.


지난주, 아직 여름의 끝자락 같은 날인데 그 틈을 벌리고 가을의 냄새가 들어왔다. 파랗게 멍든 하늘과 깨끗한 공기와 사람들이 빠져나가서 쓸쓸하게 보이는 해변과 문을 열어 놓은 카페의 모습에서 이미 가을을 보았다. 조금 당황스럽고 난처하기도 한, 마치 대중목욕탕에서 실컷 목욕을 하고 나왔는데 때를 밀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는 것처럼.


종잡을 수 없는 그녀의 마음처럼 계절은 언어를 잃어버리고, 바다는 여귀가 뿜어 놓은 듯한 해무도 소거하고 해풍도 사라졌다. 그건 바로, 여름을 밀어내고 밀려오는 파도처럼 가을이 오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개와 늑대의 시간 속으로 희미해지는 끝자락의 여름의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오늘 시월 구일은 여름이 다 태우고 남은, 완전히 재가 된 가을이었다. 누군가는 가을이 책을 읽는 계절이라 하고, 어떤 이는 천고마비의 계절이라 하지만 나에게 가을이란 겨울의 앞잡이처럼 눈에 띄지 않게 추위를 받아들이는 계절로 입술이 트기 시작하는, 독이 퍼지는 계절이다.


가을은


독서(讀書)의 계절이 아니라


독(毒) 서(㾷)의 계절이다


입술과 피부는 귀신같아서 가을이 왔다는 것을 여지없이 알려준다.

저 서쪽 너머의 마른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입술마저 타닥타닥 태워 말려 버리고 태양 밑에서 빳빳하게 변한 빨래처럼 피부를 건조한다.


온 세상이 말라가고 있다.

메마르지 않게 말라가는 것들을 불러 세워 놓고 물뿌리개로 사각사각 곱게 물방울의 옷을 입혀주고픈,

그리하여 작은 무지개가 곳곳에 펼쳐지는 아침을 맞게 해주고 싶다.


그래서 절박해지지 않게 하고 싶다.

절박해지면 잘못된 선택을 한다.

그리고 누가 잘못인지 알 수 없다.

그리고 잘못된 선택에는 반드시 대가가 따른다.

우리는 늘 그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요즘은 여기저기서 ‘형식’에 얽매이지 말자, ‘형식’에서 벗어나자고 한다. 코로나 이후 형식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모습이 더 엿보인다. 형식이란 틀에 갇히게 하고 사람들의 사고를 한정시키는 몹쓸 것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형식’이라는 게 정말 나쁜 것일까. ‘형식’이라는 것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배제해야 할 그 무엇이 아니다.


[일을 할 때의 일정한 절차나 양식 또는 한 무리의 사물을 특징짓는 데에 공통적으로 갖춘 모양]을 형식이라 한다. 형식은 사실 아름다운 것이다. 다양한 요소를 총괄하는 통일 원리라고 하며, 사물의 본질을 이루는 것으로 해석된다고 나와 있다.


계절이 오는 것 역시 형식이 있다.

‘형식적이다’라는 말 때문에 사람들에게 ‘형식’이라는 본질이 외면받고 있는 느낌이지만 형식 없이는 질서가 파괴되고 눈에 보이지 않게 아포칼립스 같은 세계가 올지도 모른다.


김영하 작가는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에 언급을 했지만, 어느 날 알게 된 것인데 지금 내가 하는 어떤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보다 지금 한 무엇이 후에 어떻게 ‘기억을 할 것인가'가 중요한 것 같다. 지금 하는 무엇이 거창하지 않고 형식적 이리자만 후에 나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오늘은 시월 구일.

매년 시월 구일은 있지만 오늘의 시월 구일은 역사적으로 단 하루만 있는 날.

해는 숨었고 일요일이고 한글날이다.

그런 단 하루뿐인 날 중심에 우리가 서 있다.

형식에서 너무 탈피하려 하지 말자.

그 안에서도 얼마든지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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