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최애라고 불릴만한 나만의 로컬카페가 있었다. 최애라는 말이 붙을 수 있는 건 몹시 세련되거나 화려하거나 메뉴가 많아서가 아니라 내가 아주 편안하게 언제든 쓱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커피 역시 나의 입맛에 딱 맞았다. 커피라는 건 말이야 무릇 이런 맛을 지니고 있어야 해.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커피라는 건 둔감함과 예민한 구석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양가감정 같은 것이다. 뜨거울 때 마시면 맛있고, 차갑게 해서 먹어도 맛있다. 그런데 뜨거운 커피가 식으면 맛이 떨어진다. 하지만 여기 커피는 식어도 맛있다. 식었는데 커피가 맛있는 것이다.


이곳은 정말 편안하게 들러서 커피를 한 잔 마실 수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그저 멍하게 유리 밖의 모습을 본다. 특별히 뷰가 좋은 것도 아닌데, 그래서 특별하지 않은 뷰가 특별하게 느껴져서 늘 앉는 자리에 앉아서 커피를 홀짝였다. 이제는 그 카페가 없어졌다.


그때가 아마 2015년쯤이었다. 라바짜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정오가 되기 전의 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에 라바짜 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치를 누리고 있었다. 창밖으로는 비가 내리고 사람들은 우산을 들고 저기서 여기로 오고 갔다. 자동차들은 노면 위의 고인 물을 가르며 붕 지나갔다. 부쩍 외제차가 많아졌다. 국산차가 비싸졌고 외제차가 가격이 떨어졌다고는 하나 잘 모르겠다.


라바짜에는 재즈가 흐르고 있었다. 카페까지 빠른 걸음으로 신경을 써 걸어오느라 들어와서 좀 더운 기운 때문에 후끈 달아오른 것 빼고는 모든 것이 완벽하다. 최애 카페는 그런 일반적인 기대를 가지게 만든다. 그곳에 가면 그 맛있는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기대, 그 자리에 앉아서 멍하게 아무 생각 없이 있을 수 있다는 기대, 유행을 좇지 않는 재즈를 들을 수 있다는 기대가 있다. 더운 기운은 앉아서 오분만 있으면 사라질 것이다.


나의 상태가 주위의 온도, 창밖의 풍경. 무엇보다 커피의 향과 맛. 이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어 완벽했다. 완벽한 시간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곳이 지금 이 순간의 라바짜 카페에 앉아 있는 이 시간이다.라고 최애 카페에서 자주 느꼈다. 카페에는 비 때문인지 사람들이 없다.


카페에 흐르는 소리는 오직 내가 마시고 내려놓을 때 부딪히는 커피 잔과 접시의 마찰음과 재즈뿐이다. 거기에 밖에서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리 정도. 이 정도면 시끄럽고 요란한 도심 속에서 고요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창밖의 비는 기분 나쁘게 내리고 있었다. 우산을 쓰지 않고 걸어도 될 법한 비다. 하지만 우산 없이 걷고 나면 머리카락의 끝이나 옷의 연약한 부분이 비에 젖어서 기분이 나쁘다.


그런 비는 사람을 평소보다 빠르게 걷게 만든다. 그 정도에 우산까지 썼어?라는 말을 들을 법한 비는 기분이 나쁘다. 우산을 쓰기에 모호한 비는 사람을 바삐 움직이게 만든다. 이런 비는 우산을 쓰고 걸어도 이상하게 우산을 쓰고 있어서 젖지 않을 것 같은 가슴 쪽이나 손에 들고 있는 휴대전화는 꼭 젖어 있다. 그런 비가 내리고 있었다.


일기예보에서는 저녁까지 비가 내릴 거라고 했지만 언제나 일기예보는 빗나가고 만다. 일기예보는 그때나 지금이나 그렇다. 앉아있는 동안 비가 그치고 사람들은 우산을 접어서 들고 다니고 있다. 누군가 외설스럽게 생긴 남자(팔에 문신을 잔뜩 한)가 전화를 받으며 걸어가면서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는 전혀 피하지 않고 시야에서 사라질 동안 나를 쳐다보며 지나갔다.


눈빛에 악의라든가 적의는 없었다. 늘 그래 왔다는 듯 나를 쳐다보며 전화기에 대고 이야기를 하며 지나쳤다. 어떻든 사람들은 머무르지 않고 스쳐 지나갔다. 무릇 이 시간의 사람들만 그런 것은 아니었다. 모든 사람들이 머물지 않고 스쳐가거나 지나쳐갔다.


한 사람의 인생에 있어서 또 다른 사람과의 스침이 많은 것이 잘 살아온 길인지 묻는다면 나는 알지 못한다. 답을 알고 있는 사람이 이야기를 해 준다면 맨 앞의 학생처럼 똘망똘망하게 듣고 싶다. 흘러나오는 재즈는 피아노 선율에 맞추어서 나오는 노래였다. 콰르텟이나 트럼펫처럼 관악기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피아노와 가수의 목소리만으로 나오는 재즈였다.


재즈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지만 나오는 노래는 꽤나 따뜻한 정감이 들게 만들었다. 꼭 중학교 2학년 때의 겨울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조그만 동생을 데리고 토요일 학교가 일찍 끝나고 어머니가 동생을 데리고 치과에 갔다 오라는 말에 동생을 손을 잡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치과에 가서 동생의 치료를 받고 온 날이 떠올랐다.


재즈를 들으며 어째서 그때가 떠오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 내 감정은 그때를 떠올리고 있었다. 동생은 신기한 것이 많은지 길거리의 모든 풍경을 눈에 담으려는 듯 여기저기 간섭하려 했다. 때는 겨울이었고 토요일에는 체육시간이 있어 발야구를 했는데 수비를 잘해서 체육선생님에 칭찬을 들었다. 우쭐해진 기분으로 동생을 데리고 XXX 치과에서 동생이 치료를 받는 동안 따뜻한 로비에 앉아 있었다.


그러다가 화장실에 갔는데 그 통로에는 지하로 가는 계단이 있고 철망이 쳐 있어서 밑으로 내려갈 수는 없었지만 고개를 주욱 빼서 보면 그 밑은 장난감 창고였다. 장난감의 세계로 향하는 문이었던 것이다. 저 안에는 아주 많은 장난감을 가지고 놀 수 있겠구나. 언젠가는 저곳에 갈 수 있을까. 동생은 울지 않았고 치과에서 나오는 길목의 겨울은 따뜻했다. 그리고 기억은 칼에 잘린 무처럼 싹둑 끊어졌다.


그때 최애 카페에 흐르는 재즈가 나의 따뜻한 기억을 꺼내 주었다. 노래란 그런 것이다. 노래도 따뜻했다. 겨울의 차가운 물속에서 따뜻한 얼음을 감싸 쥔 느낌처럼 아이러니했다. 창 앞에 트럭이 주차를 하여 풍경을 몽땅 가로막았다. 비가 내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는데 비가 떨어져 트럭의 앞 유리창에 맺히는 모습이 보였다.


비가 내리면 모든 것이 젖는다. 비에 젖지 않는 것이 있을까. 그래 맞다, 바다가 있다. 바다는 젖지 않는다. 앉아 있는 동안 빗방울이 또 굵어지고 촘촘하게 내리기 시작했다. 더불어 막히지 않았던 도로가 자동차들로 조금씩 막히기 시작했다. 손님이 들어왔다. 고요가 삽시간에 깨졌다. 시원한 음료를 주문해서 빨대로 죽죽 빨아 마셨다.


신경을 건드리는 소리는 대부분 사람이 내는 소리다. 두 사람은 어떠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욕이 이야기 속에 가득 나오는 미저러블 한 대화였다. 나는 남은 커피를 다 마시고 최애 카페를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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