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사람들이 너무 힘들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그리고 그 말이 진실되게 들립니다. 정말 힘들어서 자신도 모르게 탄식처럼 힘들어 죽겠다는 말이 튀어나오는 것 같습니다. 생계에 타격을 받은 사람은 그것대로 힘들고, 육아에 지친 사람은 그것이 힘들고, 매일 반복되는 하루가 지겹고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그게 힘듭니다.
저요? 저라고 뭐 별 거 있겠습니까.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지요. 살얼음판을 겨우 건너고 나면 또 다른 살얼음판을 걸어야 합니다. 조금 덜 두껍거나 더 두껍다 뿐이지 한 번 깨지면 그대로 왕창 무너져 내려갑니다. 그것을 알기에 매일 불안합니다.
개인이 힘들어도 사회가 부흥하고 정부나 국가가 탄탄하다면 희망을 가지고 영차영차 힘을 낼 텐데, 사람들의 마음속 희망이라는 것이 소멸해 버린 것 같습니다. 70년대 초반 영상을 보면, 오래된 티비 같은 영상을 보면 뉴스의 한 기자가 길거리로 나가서 리어카를 끌며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에게 요즘 살기가 어떻냐고 물으니 불경기라 힘들다는 말을 합니다.
불경기라는 말은 년대를 막론하고 늘 그런 것 같습니다. 단지 그때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살기가 힘들다는 말이 나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요즘은 몸도 힘들지만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정신을 무너트려서 더 힘이 든 것 같습니다.
현실은 힘듭니다. 어른이 되면 매일이 힘들어서 하루를 견디며 매일을 보내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옛 추억에 젖어 들어 기억을 계속 재생하기도 합니다. 어린 시절은 온통 행복의 꽃으로 만발해있어서 어렸을 때를 기억하며 행복해합니다. 왜 현실은 힘든데 기억 속은 언제나 행복하기만 할까요.
어린 시절의 기억은 올바른 기억일까요. 가끔 어릴 때 기억 속 친구와 이야기를 하면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재미로 보냈지만 서로 다른 기억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내 기억이 옳다고 우기기도 합니다. 어제 먹은 점심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오래전, 어린 시절의 기억은 생생합니다. 참 이상도 하지요.
시간이 오래 지날수록 기억이 생생한 것은 기억에 대한 사실을 나의 행복에 맞게 긴 시간 동안 계속 변형하고 왜곡시켜 현실이 힘들면 힘들수록 어린 시절의 기억은 행복합니다.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그럴 일은 절대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추억 속의 나는 행복한 얼굴을 하고 있는 것으로 기억을 만들어 갑니다. 그리하여 영화는 끊임없이 타임루프를 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이야기가 많습니다.
시대를 막론하고 이렇게 힘든 현실은 과연 진짜일까요? 물론 진짜라는 걸 부정하려는 건 아닙니다. 행복은 대체로 추상적인 반면에 힘든 건 세세하고 명료하고 정확합니다. 사람들은 진실을 믿고 싶어 합니다. 하지만 진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향한 자신의 그 마음을 믿어 버립니다. 그래서 진실이란 늘 모호하고 부정확합니다.
처음에 말했던, 요즘 너무 힘들다고 느끼는 건 내가 살고 있는 이 현실이 어쩌면 진짜가 아니라 가짜라서 그럴지도 모릅니다. 가짜라는 걸 깨닫지 못하는 겁니다. 설사 가짜라는 걸 알아도 진실을 바라는 그 마음이 가짜에서 머무르기를 바랍니다. 진실보다는 진실을 향한 그 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진실을 믿고 싶어 하지만 진실을 바라는 그 마음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버린다면 그게 진실이라고 믿어 버립니다.
느닷없이 밤의 바람이 시원해졌습니다. 바람에서 풀냄새가 납니다. 쑥 냄새에 가까운 냄새가 바람에 섞여 납니다. 잠이 잘 올 것 같습니다. 이런 날은 잠이 들면 꿈을 꿉니다. 꿈을 꾸는 그곳이 현실이고 지금 이곳이 그저 꿈이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