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경험으로 미루어 보건대, 단점이 없는 사람은 장점도 거의 없다고 링컨이 말했다. 그러니 우리는 타인의 단점을 찾기보다는 자신의 장점을 찾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의 장점 하나를 찾아보았다. 단점 투성이인 나에게도 장점이 하나 있었다. 나의 장점이라면 지금까지 반찬투정을 해 본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에이, 그게 무슨 장점입니까,라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장점이 꼭 슈퍼파워를 가져야만 하는 건 아니기에.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장점이 없기 때문에 이거 하나 정도를 장점이라고 우기고 싶다. 거의 없다는 말은 매운 것을 먹지 못하기에 매운 음식에 대해서는 투정을 한 두 번 정도 했었다. 그 때문에 매운 것에 적응을 하기 위해 요즘은 집에서 왕왕 땡초를 곁들여 먹고는 있다.


매운 걸 먹으면 나는 피부가 뒤집어진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매운 고추를 먹으면 그저 땀이 나고 마는데 화학적인 조미료를 사용해서 만든 매운 음식은 먹으면 피부가 뒤집어지는데 얼굴이 정말 볼품없이 지고 피부가 따끔거리는 것이 꽤 고통스럽다. 그래서 식당에서 파는 매운 음식에 좋은 고춧가루를 사용했는지, 아니면 캡사이신 같은 화학적으로 매운 조미료를 사용했는지 모르기 때문에 집 밖에서 매운 음식은 먹지 않는다.


오래전일이지만, 친구와 친구의 여자 친구가(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다) 그런 내가 싫었던지 매운 주꾸미 구이 집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때 나의 여자 친구도 합세를 해서 세 명이서 나에게 매운 주꾸미를 먹이려 했다. 나를 제외한 세 명은 주꾸미를 맛있게 먹고 나는 그에 딸려 나오는 것으로 밥과 술을 마시면 되니까, 라는, 늘 매운 음식 앞에서 하는 말을 했는데 그날따라 그들 모두가 만약에 먹지 않으면,으로 시작해서 어떤 무엇을 못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는 먹지 않겠다고 했다. 매운 음식을 못 먹는다는 걸 다 알면서 왜 굳이 나에게 매운 음식을 먹으려 하느냐. 그저 세 사람이 재미있으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분위기가 점점 안 좋아졌다. 기분이 나쁜 건 여자 친구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옆의 사람이 난처해하는 모습을 꼭 봐야겠다는 그런 마음을 이미 먹은 탓인지 동참하는 꼴이 너무 안 좋았다.


주꾸미는 나올 때부터 벌겋게 된 채, 불판 위에서 구우며 타들어갈 때 매 쾌한 매운 냄새만 났다. 친구의 여자 친구는 매운 음식을 너무나 좋아하는 사람으로 세상에서 가장 매운 음식에 땡초를 같이 넣어서 먹는 사람이었다. 매운 주꾸미 구이를 상추에 올려서 땡초와 마늘을 넣어서 맛있게 먹었다. 그래, 그렇게 너희들끼리 맛있게 먹으면 될 텐데. 하지만 그들은 내가 먹지 않으면 안 되는 분위기로 이끌었다. 할 수 없이 매운 주꾸미를 먹었다.


그리고 피부가 벌겋게 달아오르더니 나의 얼굴을 뒤집어졌고 눈은 금세 붉게 물들었다. 매움 뒤에 따라오는 땀과 혀의 고통보다는 피부가 따끔거렸고 무엇보다 그런 일행들이 너무나 싫었다. 왜 꼭 이런 모습을 보고 싶어 할까. 왜 이런 모습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것일까. 그래서 그 뒤로 나는 그들과는 자주 보지 않게 되었다. 사람들은 자그마한 나쁜 마음을 먹게 되면 꼭 옆에 있는 가장 친한 사람에게 그걸 확인하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 틈 속에 꼭 껴 있다. 그런 사람들이 이 세계를 호러블 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어떻든 밥상 위에 올라온 반찬이나 밥에 대해서 질다, 짜네, 다네, 같은 말은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반찬이나 밥을 내주는 사람이 너 오늘 한 번 죽어봐라, 라며 그렇게 만들어 내놓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실수로 양념이 많이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뿐이다. 너무 맛이 없어서 먹지 못하는 음식이면 다음부터는 먹지 않으면 된다. 밥투정이 없는 이면에는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이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좋아하는 음식이 확고해서 그 음식을 일정기간이 지나면 찾아서 먹거나, 또 그 음식을 판매하는 식당에 가는 행위가 나에게는 전혀 없다.


소문난 맛집이라고 해서 들어가서 먹어보면 눈이 번쩍 뜨일 만큼 맛있지도 않고, 돌아다니다 허기가 져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먹는 음식은 또 대체로 맛있었다. 배가 고프면 뭐든 맛있으니 식당에서 돈을 지불하고 먹는 음식이면 맛은 좋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줄을 서서 음식을 기다리는 건 정말이지 싫다.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몇 년 서울에 일 년에 두 번 이상 올라간 적이 있었다. 돌아다니며 볼일을 보고 저녁이면 고가다리 밑에서 생선구이도 먹고, 인사동에서 막걸리도 마셨다. 인사동에서 자주 먹었던 게 인사동 노가리였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예전에는 자리가 꽉 차도 기다리지 않았다. 두 명이 앉아 있는 테이블에 합석을 시켜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당연하게도 한 테이블의 사람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된다. 나는 경상도에서 올라왔기에 사투리가 심했고 술을 한 잔 두 잔, 노가리를 질겅질겅 씹어 먹다 보면 모두가 친밀하게 이야기를 주고받곤 했다. 서울은 전국에서 음식을 맛있게 하는 식당이 가장 많이 모인 곳이다. 물론 다 맛있지는 않겠지만 위에서 말한 곳은 대체로 기분 좋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특히 여름이 다가오는 밤의 기운이 오소소 내려앉음과 함께 고가다리 밑에서 생선구이를 파먹으며 술을 한 잔 마시고 주위의 이야기를 듣는 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재미다. 이제 서울에 가면  주머니에 돈을 두둑하게 넣어서 '몽로'에 가서 맛있고 먹고 멋지게 술이 취해야지, 같은 생각을 했는데 그럴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 좀 재미있는 것은 나는 '몽로'에는 한 번도 안 가봐놓고서 몇 년 전부터 인스타그램의 팔로워들에게는 '몽로'라는 주점이 생겼는데, 박찬일 요리사가 주점을 열었어, 그런데 김치도 가격을 받는데 아주 맛있나 봐, 그러니까 하루키가 주업이 소설이고 부업이 에세이지만 어떤 사람들이 에세이를 더 좋아하는 것처럼, 박찬일 요리사가 식당을 하면서 주점을 연 거지, 거기서는 비교적 식당보다는 저렴하게 박찬일의 요리를 먹을 수 있는데 아주 좋아, 같은 이야기를 하고 서울에 있는 팔로워들은 오오 그래? 하면서 가서 먹어보고 리뷰를 올리곤 했었다. 그게 벌써 8, 9년 전의 이야기다. 지금은 '몽로'도 여러 분점이 생긴 걸로 아는데, 어떻든 코로나를 핑계로 이제는 가야지 하는 생각이 많이 반감이 되었다. 


군대에서도 맛이 좀 떨어지는 추어탕이 나오는 날이 있다. 군대 추어탕에는 간 미꾸리가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고등어를 갈아서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맛이 이상하거나 추어탕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맛이 없다며 아이들은 대부분 먹지 않았다. 나는 그게 맛있어서 한 그릇 먹고는 또 한 그릇을 먹기도 했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미꾸리의 추어탕보다 더 맛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 두 그릇이나 먹었지. 어어 저 녀석 오늘 두 그릇 먹겠네, 라며 고참들은 그런 말을 했고, 나는 보란 듯이 한 그릇을 기분 좋게 미우고 다시 돌아서 한 그릇을 받아와야 깔끔하게 해치웠다. 그날은 저녁이 오기까지 든든한 것이다. 


 요즘에는(언젠가부터) 한 번 먹게 되면 많이 먹는 경향이 있어서 먹는 시간을 한 시간 이상 늘여놓고 있다. 그러다 보니 누군가와 함께 식사를 하는 건 무리가 되었다. 예전에 거래처 사장님과 함께 국밥을 먹으러 갔는데 그 뜨거운 국밥을 15분 만에 다 먹어 버리는 것이다. 물론 국밥은 그렇게 먹는 게 맛있지만 나는 아직 3분의 1 정도 먹었을 뿐이었다. 맙소사. 거래처 사장님은 한 그릇을 다 먹고 난 후에, 왜 이렇게 잡내가 나는 거야,라고 했다. 이런 태도는 좋다고 생각한다. 무슨 말이냐 하면 먹으면서 비난이나 욕을 하기보다 다 먹고 난 후 한 마디 하고 난 후에 그 집의 음식이 맛이 없으면 다시는 안 오면 된다. 그렇게 생각한다. 집에서 밥을 차려주면 먹으면서 이렇네 저렇네 하는 건 아주 옳지 못한 태도다. 정말 맛이 없거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 먹고 난 후에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 음식을 차려준 사람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밥을 먹지 않아서 숟가락을 들고 다녀야 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워낙에 밥을 먹지 않는 아이로 소문이 날 정도로 밥상 앞에 앉아 있는 것을 힘겨워했다고 한다. 전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의 사진을 보면 정말 말라서 뼈만 남아 있다. 밥뿐만이 아니라 과자나 다른 빵 같은 것에도 그렇게 달려들지 않았다. 아이스크림이나 문방구에서 파는, 그 좋다는 불량식품도 썩 마음을 잡아당기지 않았다. 그렇게 어른이 될 동안 죽 지내다 보니 무엇인가 먹는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덜하다. 오늘은 뭘 먹지? 같은 선택에서 고민하지 않는다. 있으면 있는 것으로 먹고 없으면 팔을 뻗을 수 있는 안에서 해결을 한다. 우리나라는 아무리 가난해도 라면을 먹을 수 있으니 먹을 게 없을 때 라면을 먹으면 더없이 행복하다. 보통 배고플 때 사람들은 짜증을 많이 내는데 그런 점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배고플 때 맛없는 것으로 배를 채우는 것만큼 화가 나는 일은 없다고 내가 아는 여자들은 말하는데, 위에도 말했지만 배고프면 아무거나 먹어도 맛있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물 하나에 밥을 먹어도 꽤나 맛있고, 김치찌개를 대충 끓여서 먹는 것도 좋고, 고등어를 구워서 먹는 날이면 진수성찬이고, 컵라면에 만두를 빠트려서 먹어도 기분 좋다. 그리고 물김치만 있을 때는 거기에 밥을 말아서 먹어도 맛있고 좋다. 물김치에 밥을 말아 오물오물 먹으면 참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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