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에는 잠을 몇 시간 못 자는 것 같다. 생각이 많으면 그렇다는데 딱히 생각이 많은 것도 아닌데 두 시간 정도 잠이 들었다가 뒤척이나 일어난다. 잠자리가 불편하면 그렇다고 하는데 일단 누우면 그대로 잠이 든다. 하지만 그렇게 길게 잠들지 못한다. 몇 시간 못 자고 일어났다는 게 억울해서인지 물을 마시거나 요거트를 하나 마시고 다시 눕지만 그 덕에 화장실에 또 한 번 가게 된다. 하루는 거의 뜬 눈으로 보내고 다음 날 피곤에 피곤을 거듭하여 푹 자겠구나 싶어도 잠이 들면 두 시간도 못 되어서 일어난다. 일어나서 진취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을 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것도 하지도 못한다. 눈이 아프고 몸이 무거워 그저 눈만 뻐끔 뜨고 고요 속에 몸을 파묻고 가만히 새벽의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린다.

 

 

가만히 어둠 속의 천장을 바라보다가 나는 깨달았다. 나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글이 아닌 입으로 나오는 구어로 된 이야기를, 될 수 있으면 쓸데없고 쓸모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누구라도 좋다. 길거리의 노숙자도 좋고 강압적인 정치인도 상관없다. 그러고 나면 양수 속의 태아처럼 몸을 말고 쿨쿨 잠이 들것 같다. 이렇게 잠을 못 자는 건 필시 벌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영원히 식지 않는 음식을 앞에 둔 것처럼 나는 어떤 구멍을 통해 그런 세계에 들어와 버린 것이다.

 

 

근래에는 구름을 많이 찍는다. 하루 중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구름이다. 구름은 사진가 스티글리츠가 간파한 것처럼 이퀴벨런트다. 매일 구름이 하늘에 떠 있지만 같은 구름은 없다. 늘 다르고 매일 다르고 언제나 다르다. 사람의 마음과 비슷하다. 잠이 안 올 때 구름을 떠올리지는 않는다. 그리고 떠오르지도 않는다. 그저 ‘구름’라는 형상이 떠오르지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확고한 구름의 모습이 아니다. 그래서 구름을 눈으로 직접 봐야 한다. 그래야 한다. 구름을 눈으로 본다고 해서 딱히 하루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름을 보지 않는다고 해도 하루는 늘 비슷하다. 깨지기 쉽고 망가지기 쉬운 인간의 삶에 구름은 늘 저렇게 아름다운 모습으로 하늘에 떠 있으니, 돈이 드는 것도 아니니 열심히 볼 수밖에 없다.

 

 

어쩌다 보니 글을 좋아해서 인스타그램에서 주로 글에 관련된 피드를 들여다보게 된다. 나에게는 무척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다 보면 아아 작가도 아닌데 이렇게 글을 잘 적는 사람이 이렇게나 많구나, 하게 된다. 어떤 면으로는 감격스럽고 감동이고 또 질투도 난다.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사람의 글이 있고, 마음을 교묘하게 숨기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사람의 글이 있다. 또 그들 대부분이 책을 많이 읽는다. 글을 잘 쓰는데 꼭 책을 많이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글을 잘 쓰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었다.

 

 

한 달에 몇 권 정해놓고 전투적으로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익숙하지 않다. 책을 매일 읽고 있지만 필사적으로 읽지는 않는다. 보통 세 권의 책을 내가 움직이는 활동 반경 내에 배치해놓고 읽는데 그 중 한 권은 여름부터 읽고 있는 책도 있다. 그건 아마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서부터 시작하여 7분 정도 걸어서 주차장까지 가는 동안 읽어서 그럴 것이다. 대체로 느긋하게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는 경우는 없고 빠듯한 시간 속에 틈을 살짝 벌려 책을 좀 읽는다. 그러니까 복잡한 시스템은 단순하게 움직이는 것이다. 여름에 가장 많은 책을 읽는 것 같다. 아무래도 집 앞 바닷가에서 이른 오전에 홀라당 벗고 한 시간 정도의 시간을 내서 책을 보기 때문이다.

 

 

책은 참 좋지만 책이 반드시 필요하지도 않다. 하지만 지금까지 늘 책을 곁에 두고 있어서인지 책이 없으면 허전하다. 국물을 한 방울도 마시지 않고 면만 건져먹은 라면을 먹은 느낌일까. 라면은 짜게 먹어야 맛있는데 물을 이만큼 부어서 맹탕으로 먹은 느낌일까. 그 말은 평소에도 계획은 없다는 말이다. 내일 보다 오늘을 더 생각하고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티는가에 집중하고 더 중요하다. 그렇게 미래에 대한 어떤 계획도 없이 지냈는데도 신기하게도 아직 대출이 없다. 대단한 성공보다 빚 없이 살고 있는 요즘의 내가 신기하다. 어쩌다 보니 살고 있는 집도, 그렇게 큰 평수의 아파트는 아니지만 가지게 되었다.

 

 

삶에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지나고 나서 보니 계획은 크게 무의미한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이런 생각에 접어들면 마왕인 신해철을 소환하고 싶다. 그는 조금 살이 찐 모습으로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언제 행복해야 할까, 우리는 과연 행복을 언제 느껴야 할까

지금, 바로 지금이다

내일 행복하려고 오늘 비축한다? 일 년 뒤에 행복하겠다? 다 좆같은 말이다

지금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도 일 년 뒤에도 행복하리라는 보장은 개뿔도 없다

지금 당장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해

 

 

까지만 기억이 난다. 물론 마왕이 대 놓고 좆같느니 어떻니 하지는 않았지만 지금 행복해야 내일도, 또 일 년 뒤에도 행복하다. 우리가 매일 행복할 수는 없다. 그렇기에 덜 불행하다면 괜찮다. 덜 불행하게 사는 삶이 행복하지 않는 삶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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