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의 이분법

 

 

사람들에게 호소 같은 건 아니지만 사람들과 섞여 살아가다보니 나 같은 인간은 참 살기가 힘이 드는구나 하게 된다. 세상의 남자를 하루키의 말처럼 이과형과 문과형의 이분법으로 나뉜다면 여자들에게 필요한, 사람들에게 필요한 남자는 이과형 남자들이다. 그런데 나는 문과형에 속하는 남자다. 아아 좌절. 좌절은 늘 이런 곳에서 타격을 준다

 

 

남자의 이분법에서 말하는 문과형은 학창시절 국문학이나 영문학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른이 되고 보니 삶은 시시때때로 이과형 남자를 필요로 하는 순간이 복병처럼 숨어 있다가 나타난다. 요컨대 전기배선의 문제라든가 수도꼭지의 문제, 냉장고의 냉각기라든가 냉장고의 수평 같은 문제가 나타난다. 욕실의 양변기 문제 등이 일어나면 싫든 좋든 집 안의 남자가 ‘어험 그래 내가 한번 보지’하며 호기롭게 일어나지만 문과형에 속하는 남자는 난처하기만 하다

 

 

형태를 가진 물품은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면 으레 문제가 발생하고 그렇기에 전문가나 서비스센터나 방문출장이 있지만 보통 집안의 남자가 일선에서 그것을 해결하기를 바란다. 에어컨에 작동이 안 된다거나 현관문이 틀에서 떨어져 있는데 내가 호출이 되면 식은땀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순간이 고문당하는 기분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나 같은 컴맹이 노트북 문제를 아무리 봐도 알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넌 그래픽을 잘 하니까 컴퓨터도 잘 알거라는 묘한 생각이 주위 사람들에게는 있다. 특히 사진을 편집하고 사진으로 밥을 먹고 사니까 카메라가 문제가 있으면 전부 나에게 들고 온다. 카메라를 들고 오면 저기서부터 벌써 이거 난처하군,라는 생각이 든다. 카메라라는 기계의 고장은 내가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사촌동생이 자신의 남편과 집에 왔을 때 그녀석이 소파의 기울어진 것과 냉장고의 소리문제를 비롯해서 가스와 냉방기기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손을 봐주고 갔다. 어른들은 전부 만화적인 눈동자가 되어 그 녀석을 칭찬을 했다. 그 녀석은 이과형의 남자로 복병처럼 숨어있는 그런 문제가 나타나도 상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남자였다. 그러니까 문과형의 남자인 내가 그동안 사진을 편집해서 액자를 만들어주고 시간을 들여 그림을 그려서 선물로 주거나 거실에 장식을 하게 한 것들은 물거품인 것이다

 

 

자동차가 멈추면 보험회사를 불러야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그 녀석 같은 남자가 멋지게 나타나서 뚜껑을 열어서 뭔가를 만지면 해결이 된다. 문과형에 속하는 나같은 남자는 전혀 이해되지 않을 뿐더러 뭐지? 하는 마음만 든다. 잠이 들면 꿈을 꾼다. 손오공처럼 분신 12마리를 만들어서 넌 배선공사를 해! 넌 컴퓨터! 넌 수도를 고치고! 넌 드릴질을 하고 넌 벽면에 페인트를 잘 발라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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