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월요병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나 지금과 같은 계절에는 월요일 오전에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이 힘겹다. 그건 급작스럽게 바뀌어버린 계절 탓에 밤 새 높은 온도에서 잠을 자면서 몸이 따뜻하고 안온함에 적응이 되어 있다가 먼지가 많고 쌀쌀한 이른 오전에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에서 오는 괴리가 몸을 힘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대부분 가족을 위해서 또 욕 들어 먹지 않기 위해서 더 나아가 나를 위해서 힘든 몸을 일으켜 세워 월요일의 오전을 극복하고 각자도생의 길로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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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월요병이나 월요일 개념이 없기 때문에 월요일이 딱히 힘든 날도 아니고 일요일이 마음의 안식 같은 날도 아니다. 구치소에도 월요일이나 일요일의 개념이 잘 없는 편이다. 구치소 법무부 직원들이나 재소자들도 일요일이나 월요일이나 거의 흡사하게 흘러간다. 같은 시간에 기상을 하고 점오를 하며 번호를 외치고 이발소에서 일을 하는 기결수(미결수만 있는 구치소에도 형을 사는 기결수가 복역한다)는 면도날을 갈고 가위를 제자리에 두고 직원들의 이발을 하고 수염을 깎아주고 월급을 받는다. 단지 평일처럼 접견, 즉 면회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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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처럼 겨울 속 온도가 높은 날은 구치소의 소각장에 겉옷을 입고 있으면 등에 땀이 흐른다. 구치소에서는 매일 엄청난 양의 인분과 굉장한 양의 쓰레기와 설명 할 수 없는 양의 더러운 물이 나와서 처리 장에서 처리과정을 거친다. 겨울의 소각장은 꽤 재미있고 무엇보다 따뜻하다. 활활 타오르는 불기둥을 보는 것은 어린이 때나 어른이 되어서나 어째서 재미있는지 모를 일이다. 쓰레기 중에는 책도 많다. 미결수인 재소자들은 기결수가 되어서 교도소로 이송이 되거나 아니면 그대로 구치소를 빠져나갈 때까지 사방 안에서 할 일이 없기에 책을 많이 읽는다. 암수살인에서 주지훈이 법률에 관한 책을 독파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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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소자들이 소설을 많이 읽는데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읽는 사람은 드물다. 소각장에서 만난 평식이 형은 레이먼드 카버의 팬이었다. 오전 소각을 하고 점심시간에는 사방으로 올라가지 않고 따뜻한 소각장 옆에 비스듬히 누워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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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책을 읽고 있으면 옆에서 도대체 그 사람 책이 뭐가 재미있냐고 해. 읽어봤는데 도통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고 하면 그럼 한 번 더 읽어 보라고 말해. 두 번이나 읽었는데 당최 뭔 소리지? 하는 사람에게는 세 번 읽어보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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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식이 형이 나에게 해 준 말이었다. 나는 레이먼드 카버에 대해서 잘 모르고 있었는데 평식이 형 덕분에 그의 소설을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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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의 글이 중의적이라고 하는 서평이 많은데 그것도 받아들이는 사람 나름이라고 생각해. 카버의 단편들은 대체로 당시 미국 중산층의 이야기야. 80년대 이전의 미국 중산층은 자식에게는 엄격한 교육과 제재가 있었고 이웃과의 교류가 지금보다는 암묵적으로 이어진 화합 같은 것이 많았지. 눈에 드러나지 않는 견제가 있었고 중산층을 벗어나기 위해 부부관계도 여러모로 고충을 겪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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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치소는 한 곳에서 보통 일주일 씩 근무를 하기 때문에 평식이 형과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죽 같이 지내게 되었다. 저녁을 제외한 시간에는 평식이 형이 레이먼드 카버에 대해서 하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따뜻한 소각장과 날름 거리는 불꽃과 레이먼드 카버의 이야기. 갇힌 곳, 구치소지만 꽤 낭만적이었다. 지옥 같은 곳에도 틈은 언제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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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먼드 카버가 단편만 쓴 이유는 돈 때문이었지. 돈을 벌기 위해 몇 년씩 걸리는 긴 장편을 쓸 수가 없었던 거야. 190센티미터가 넘는 거구로 카버는 마땅히 집필할 수 있는 공간이 없었어. 그는 자동차에 구겨지듯 애매하게 앉아서 글도 썼지. 그런 것을 생각하면 참 글을 쓰고 싶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뭉클하기도 하지. 지금 손에 들린 이런 멋진 글을 남겨 놓았으니.라며 평식이 형은 손에 들린 카버의 책을 흔들며 그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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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카버는 18살에 결혼을 했어. 나는 대단하다며 박수를 쳤다. 그래서 장모에게 늘 미움을 받았고 죽을 때까지 그 미움이 계속 이어졌지. 카버의 첫 단편 ‘목가’가 ‘웨스턴 휴머니티스 리뷰’라는 잡지에 실렸을 때, 카버가 그 잡지를 들고 무척 기뻐했다고 해. 그때 한 푼의 돈도 받지 못했지만 그 잡지를 들고 기뻐했지. 이후 (평식이 형은 자신의 책을 보이며) 제발 좀 조용히 좀 해요,라는 단편이 ‘폴리 선집’이라는 단편집에 실리면서 알려지기 시작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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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카버는 술 때문에 서서히 망가지지. 알코올 의존 재활치료센터에 두 번이나 들어갔고 한 번은 병원에 입원도 했었지. 카버의 글이 좋은 게 뭔지 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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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른다고 했다. 

카버의 글이 좋은 것은 지식이나 아는 것이 많아서 쓴 글이 아니야. 그저 수정하고 수정하고 또 수정을 한 글이라 좋은 거야. 그는 수정하는 것을 즐겼고 그것은 작가에게 바람직한 거야. 글을 마지막까지 수정을 하는 거지. 하나의 단편에 수정 본이 스무 개나 있는 경우도 있고 더 많은 경우도 있었지. 원래 카버는 시인이 되려고 했어. 그래서 쓴 시도 수 십 번이나 수정을 했어. 매일매일 앉아서 10시간을 글을 썼는데 대부분이 수정에 수정에 또 수정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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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식이 형은 어찌 된 일인지 목요일부터 보이지 않았다. 평식이 형의 재소자 복의 앞주머니에 5살짜리 딸의 사진을 늘 넣고 있었는데 가끔 둘이 비스듬히 소각장 앞에 누워 있을 때 그 사진을 꺼내서 보여주었다. 귀여운 모습의 아이에게서 평식이 형의 얼굴이 조금 보였다. 평식이 형도 작가를 꿈꾸고 있었는데 알코올 때문에 사고를 치고 복역을 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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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째서 목요일부터 보이지 않는 것일까. 평식이 형은 기결수다. 구치소에서 형을 살고 있는 것이다. 조금씩 월급을 받아 가면서. 가끔씩 담배가 몹시 피우고 싶다고 했다. 그러던 평식이 형은 흡연욕을 참지 못하고 소각장에서 담배를 몰래 주워 피다가 걸려버렸다. 그것도 계장에게 걸리는 바람에 야외로 나갈 수가 없게 되었다. 평식이 형에게서 아직 레이먼드 카버의 이야기를 좀 더 듣고 싶었는데, 그날이 오늘처럼 겨울의 틈을 벌리고 있는 아주 따뜻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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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덕분인지 레이먼드 카버의 글이 거부감 없이 다가왔다. 삭막한 구치소의 추운 겨울의 따뜻한 소각장과 평식이 형과 레이먼드 카버. 오늘의 먼지가 낀 따뜻한 겨울의 공기가 그날과 비슷했다. 점심 맛있게들 드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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