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가 영화로 나오고 다행인지 이곳 어촌에도 상영관에 걸려 꽤 오래 걸려 있었다. 비포 미드나잇이 3일 만에 개봉했다가 사라지는 이 어촌의 도시에 있는 극장가에서는 이례적인 일이었다. 내가 개츠비를 보러 간 날이 2013년 4월 마지막 날이었는데 밤 10시에 보러 간 것에 비해서 상영관의 좌석이 전부 꽉 들어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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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관에 사람의 머리가 다 들어차서 영화는 봤던 건 몇 년 만에 처음이었다. 그건 내가 늘 마지막 상영을 보러 간 이유가 많겠지만. 중반부를 넘어서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사람들이 많이 기다렸던 영화라고 생각했다. 한 달 동안 상영관에서 꾸준히 상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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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보고 난 후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서 자신만의 감상평을 내놨다. 대립하기도 하고 설전을 벌이기도 하고 각종 영화 관련 프로그램에서도 ‘위대한 개츠비’의 감독과 배우들에 대해서 호평과 혹평을 뱉어내고 있었다. 어찌 되었던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개츠비’에 대해서 관심이 많아서 나타는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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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이야기는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스콧 피츠제럴드에 대한 이야기다. 피츠제럴드는 위대한 개츠비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반으로 나누었다고 생각했다. 반은 데이지를 얻기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해 버린, 오직 의지만을 지는 개츠비의 모습과 나머지 반은 그 모습을 바라보는 닉의 모습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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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는 누구나 읽어 봤을 것이고, 그 미려한 직유가 가득한 문체 속 데이지를 위해 자신의 미래를 포기해 버린 개츠비에 대해서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하루키는 자신의 글을 통해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 이상 읽은 사람과는 친구가 되어도 좋다고 했는데 나는 세 번 이상 읽지 않아서 그런지 친구로는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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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를 읽어보면 제일 첫 장에 ‘다시 젤다에게’로 포문을 연다. 1920년대에 피츠제럴드는 미국이 가장 사랑하는 글쟁이였다. 출판사들은 그의 글을 내고 싶어 안달했고, 피츠제럴드는 그런 미국 사람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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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츠제럴드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무척 잘생겼다. 육군 소위로 장교복을 입고 있는 피츠제럴드의 외모는 누구나 반할 만큼 멋있었다. 영화 속 개츠비가 데이지를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하지만 1차 대전이 끝나고 군복을 벗어버리자 피츠제럴드는 한낱 볼품없는 청년의 모습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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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회사에 다니면서 소설가의 꿈을 키웠다. 그는 프린스턴 대학을 성적 하락으로 중퇴를 하고 광고 문구를 만들면서 꾸준하게 소설을 썼다. 하지만 그의 글은 출판사에서 언제나 퇴짜를 맞았다. 그런 생활을 하던 그의 눈앞에 일생에 한번 사랑에 빠질만한 여자가 나타났으니, 그 여자가 바로 조지아 주와 앨라배마 주에서 가장 미인인 ‘젤다 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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