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는 네 편의 옴니버스 공포영화로 구성되었다. 1시간 20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속에 네 편이 들어있다. 이 영화의 제목을 모르겠다. 화면은 넷플릭스의 화면 같다. 넷플릭스는 넷플릭스 특유의 화면이 있다. 마치 교촌치킨 만의 실내장식이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영화는 영화가 끝나고 중간을 이어주는 공간에 또 다른 시그널 화면 같은 것이 있는데 인형극처럼 보이는 것으로 이것 역시 공포스럽다. 일본의 기묘한 이야기의 미국식 공포 영화라고 보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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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짧은 시간 안에 공포영화를 압축해서 넣었기에 상상력을 가동해야 한다. 멍하게 보다 보면 뭐지? 하게 된다. 그러니 머리를 굴려야 하고 초현실적인 내재적 감성도 끄집어 내야 한다. 총 네 편이지만 첫 번째 옴니버스 영화 ‘상자’를 리뷰하려고 한다. 캡처한 화면이 뒤로 갈수록 징그러우니 싫어하는 사람은 뒤로 가기를 누르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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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날 대니의 가족은 전철에서 상자를 든 한 남자의 옆에 앉게 된다. 대니는 남자에게 상자에 대해서 묻고 엄마와 누나는 성가시게 굴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고 한다. 하지만 남자는 괜찮다고 하며 상자는 선물이라고 한다. 대니는 남자에게 상자 안을 볼 수 있냐고 하고, 엄마와 누나는 그러면 안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남자는 대니에게 상자 안을 보여준다. 상자를 본 대니의 얼굴은 대번에 굳어지고 남자는 가버리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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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누나가 대니에게 상자 안에 대해서 물어보니 대니는 기억을 못 하는 투로 대답을 하고, 저녁에 밥을 먹는데 대니는 밥을 먹지 않는다. 대니는 음식 꾸러기인데 먹지 않는다며 누나도 약을 올린다. 누나는 맛있게 밥을 먹는다. 대니는 이제 가서 놀아도 되냐고 묻고 나머지 가족만 밥을 먹는다. 대니는 그다음 날에도 음식을 거부한다. 학교에서 피자를 먹었는데 대니는 피자도 먹지 않았는데 배가 고프지 않다고 밥을 먹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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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 날에도 대니는 도시락에 손도 대지 않고 밥을 먹지 않았다. 하지만 엄마는 학교에 가기 싫어서 대니가 꽤 부리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빠는 대니를 의사에게 데리고 가려 하지만 넘어간다. 그리고 그다음 날 대니가 좋아하는 스파게티를 내놓았는데도 먹지 않는다. 이상하게 생각한 부모는 데니를 데리고 병원으로 가지만 아무런 이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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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날 밤 데니는 누나와 그 상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다. 그 뒤로 누나도 음식을 거부한다. 이제 식탁에는 아이들이 빠진 두 사람만 앉아서 식사를 하게 된다. 불안했던 아빠는 대니의 방에서 조용히 그 상자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아빠도 음식을 거부하게 된다. 엄마를 제외한 이제 모든 가족이 식사를 거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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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에 든 엄마가 눈을 뜨니 아빠와 아이 둘이 엄마의 팔과 다리를 잘라서 접시에 담아서 맛있게 먹는다. 엄마는 마치 마취에 걸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지만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살아있다. 하지만 이 장면은 영화 속 하나의 장치다. 이 장면은 암시로 보인다. 장면이 바뀌고 맞이한 크리스마스에는 엄마를 제외한 모두가 마를 대로 말라빠진 미라의 모습처럼 보인다. 결국에는 병원에서 모두가 죽는다. 그리고 엄마는 전철을 돌아다니며 그 상자를 든 남자를 찾는다. 그 상자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보고 싶다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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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단편 공포영화의 맹점은 상상력을 건드리는 맥거핀과 트리거의 활용이다. 상자 속에는 무엇이 들어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리고 영화는 그것을 알려주지 않는 태도를 취한다. 대니를 비롯한 가족은 같은 행동을 반복하면서 서서히 공포를 준다. 익숙한 것이 어떤 무엇인가를 통해 낯선 것으로 바뀌게 되면 우리는 대단한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점프 스케어보다 이런 종류의 상상력의 공포가 좋아서 그런지 4편 중에 ‘상자’편은 몇 번을 봤다. 인육을 먹는 장면이 환영처럼 지나간 것을 보면 상자 속의 ‘그것’은 식사를 거부하게 하고 인간을 먹게 하는 무엇인가가 있거나, 그렇게 하게끔 하는 ‘어두운 존재’가 있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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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대니를 비롯한 나머지는 음식은 거부하지만 인간은 먹지 않으려 하는지도 모른다. 이런 모습은 스웨덴의 장편영화 ‘렛미 인’을 봐도 잘 나타난다. 비록 자신은 이엘리에게 물려 이종이 되었지만 인간을 죽이기를 거부하고 창을 통해 투과된 햇빛에 자신의 몸을 던져 재가 되는 장면이 있다. ‘렛미 인’은 참 슬프고 어둡고 여운이 짙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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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옴니버스 식 네 편의 단편영화는 각각의 색깔을 확실히 지니고 있다. 세 번째 영화는 10분 미만인데 공포가 확 등장했다가 휙 가버린다. 마지막 단편영화는 미국식 종교 이야기다. 그동안 공포영화를 아주 많이 봤는데 꽤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다. 상자 속의 선물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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