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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빌라
전경린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고향이 남쪽 바닷가의 도시다. 이름도 이쁜 산호동의 수정아파트에 살았다. 만이어서 수평선은 보이지 않지만 해변빌라와 많이 다르지 않는 분위기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새벽 선창가에 나무토막 몇개만 들고 가면 어부들이 잡아온 물고기도 얻어오고 생선경매하는 것도 보곤 했었다. 낚시가 취미인 아버지 따라 시 외곽 바닷가에서 해초들을 살짝 걷으면 팔뚝만한 해삼이란 놈들이 있었다. 그땐 어느 바닷가 어느때나 다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해변빌라를 읽다 그렇지도 않은 것인가 보다. 사실 팔뚝 만해 보이던 해삼은 물속에서 나오는 순간 10분의 1 크기로 변해 버린다. 이 기억은 내가 너무 어려 외곡된 면이 있을 가망이 크긴 하다.
해변빌라는 제목이 왜 해변빌라일까? 이책의 주인공이라 할수있는 유지가 어느날 부터 살게 되는 곳이 해변빌라 509호 여서 인듯하지만 만약 내가 이 책의 제목을 지었다면 해변카페, 부유하는 샌들, 피아노호텔, 타오르는 해변, 해변의 하데스라고 했을 지도 모르겠다. 해변빌라는 소설이다. 그런데도 스토리에 몰입이 안되고 이런 저런 추억속으로 빠져버리는 것은 바닷가가 고향인 나에게 바다이야기와 바닷가의 삶을 동경하는 나 자신의 현재를 벗어나고픈 소망때문인지 어쩌면 주인공이 였어요 이었어요. 하는 작가의 표현들이 순간 순간 옆길로 빠지게 하는 촉매가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표현들이 너무 어색한것이 어린 아이가 선생님에게 이야기 하는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그런 표현은 아니고 어느 순간 자연 스러운 대화체가 되어있다. 그러다 또 였어요... 챕터마다 시작과 끝이 다른 사람같은 느낌. 약간은 시 공간을 옮겨 다니는 느낌도 있다. 몰입을 안해서 인지 어느순간 시간이 훅 지나간 것 같은 시점도 있고 작가가 말하는 아무일도 일어 나지 않는 그냥 흘러가는 하지만 그 작은 흐름들로 인해 또 뭔가가 일어나는 스토리다.
해변빌라에는 폐해수욕장, 바다, 먼바다에 지나가는 큰배가 일으키는 파도, 부유, 부양, 존재하는 자의 죽음과 과거에 존재 했던 자의 죽음 그리고 큰고모부와 아버지와 고모였던 여자의 남자 그들의 연관 관계등 생각하고 보고 느낄게 너무 많다. 영씨미는 훅 읽히지 않을 지도 모른다고 했지만 난 유지가 나같은, 내가 유지 같은 느낌이다. 그래서인지 책이 무지 얇고 후루룩 읽었다. 중간 중간 엄청난 명상의 시간을 가졌음에도 금방 읽었다. 어떤 사물이든 스스로 보이고 느껴 지는 것이 있는가 하면 이사경이 유지에게 이것봐라 할때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거다. 누구와 함께이거나 누군가 가리켜 보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음악을 좋아 하지도 않으면서 고객에게 피아노 소리를 들려주는 악기점의 점원처럼 불안하면서도 충실한 표정" ☞ 그런데 과연 그 악기점 점원은 뭔가가 불안하기는 할까? 피아노 조율사가 피아니스트가 아니듯 점원은 소리가 잘 나는 기계를 팔면서 구매 하셔서 옮기시면 자리잡고 조율을 하시고 사용하셔야 됩니다.로 모든 책임을 전가하지는 않을까? 그것이 정석인양. 그저 필요한 사람이 알아서 사야 하는 것이다. [책을 좋아 하지도 책을 읽지도 않지만 카페를 운영하려면 책 몇권을 가져다 두는게 요즘 트렌드라는 것 때문에 중고책방이나 서점에 여행서적 몇권 바나나, 가오리 책 몇권 가져다 두는거나 다르지 않은 듯] 요즘 카페몽실 단골님이 출연한다고 해서 드라마 내일도 칸타빌레를 봤다. 지금 두편 밖에 못 봤지만 설내일이라는 여자아이는 악보도 못보지만 천재적인 귀와 음감을 가진 피아니스트가 될 듯한 인재인것 같다. 그는 피아노를 치거나 연주하는 것이 아닌 피아노와 하나가 되어 논다. 이 드라마에서 가끔 들었던 피아노 곡들을 새로운 느낌에 듣고 해변빌라를 읽으며 설내일의 피아노 소리를 듣는 느낌을 여러번 받는다. 유지에게 피아노는 피신처였을까? 나에게 책은 ?
해변빌라를 읽으며 두번 울뻔했다. 어둡고 밤안개같은 느낌이지만 울컥할것 같지는 않은 책인데 내 속에 어둠의 추억이 많았나 보다. 처음 눈물 찔끔은 [바다를 향한 작은 창엔 블라인드가 쳐져 실내가 어둑했지만 블라인드 틈새로 환한 햇빛이 보였다] 이건 뭐 별 내용 아니잖아. 그런데 내가 꿈꾸던 아침이었나 보다. 바닷가의 비릿한 냄새는 그리 좋아 하지 않으면서도 잠에서 깻을때 큰 창을 열면 수평선이 보였으면 좋겠다. 내가 가끔 꿈에서 보던 바닷갈 빌라. 그 해변빌라는 벽 전체가 유리인데 하필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조수미가 아닌 어느 남자 가수가 부른 나가거든이 나오고 있었다. 이 노래 왠지 슬프다. 그리고 두번째는 [나는 땅 위에 사는 포유류다운 체온을 모르고 살아왔다. 가슴이라든가, 젖이라든가, 엄마라든가, 포옹이라든가, 정이라든가, 이웃이라든가, 아버지라든가, 그런 단어에 비위가 상하곤 했다. 나는 스스로 피투성이가 되며 알에서 나온 맹금류 같은 마음으로 살았다. 차라리 누구도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사람, 인간은 포유류라고 배웠다. 하지만 못 느끼고 살 수도 있다. 윤유지든 손유지든 그런 성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존재감과 소속감 자존감등 많은 인간들이 하는 갈등 외에 또 다른 세상을 사는 듯한 느낌 왜이리 공감이 가는지 사랑받고 자라온 사람만이 사랑할 줄 안다지만 난 사랑받는 방식도 서툴고 사랑하는 방식도 서툴지만 그래도 사랑받고 사랑하며 살고 있는데 유지를 조금만 안아 줬더라면 고모가 아닌 엄마로서 대해줬더라면 의문도 많지만 그닥 의문 가지도 않게 만드는 스토리의 책이다. 고향이 싫은데 추억도 나쁜것만 있는 듯 한데 나도 유지랑 다르지 않는 듯하다.

이린의 약국과 유리문에 복사, 도장이라고 적힌 가게가 나란히 있을 것 같은 건물
피아노 호텔도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해변히고는 모래사장이 없어서 폐해수욕장 기분은 안나지만 그래도 이 동네는 또다른 어촌이었다. 해변호텔을 보면서 1990년대의 내가 가던 바닷가를 떠 올렸다. 그곳은 가능성은 없지만 슈바빙도 있었고 콰이강의 다리도 있었다. 지금은 철교인 콰이강의 다리는 은퇴하고 바로 옆에 다른 다리가 세워 졌다고 들었다. 책이 많이 옆길로 나가 버렸다. 여튼 이 해변빌라는 나의 1990년대 이야기 같다. 단, 고모였던 엄마를 이름으로 호칭하는게 많이 거슬리기는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