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한자를 잘 모른다. 내 이름 정도는 쓸 수 있지만, 그게 다다. 요즘은 사실 한자를 꼭 알아야 할 필요가 없다. 신문도 한글이고, 영안실에서 쓰는 '부의'도 한자가 이미 박힌 봉투를 파니까. 언론들은 한자를 모른다고 대학생들을 비난하지만, 난 도무지 이해가 안갔었다.
하지만 그래도 한자는 알아야 한다는 걸 최근에 깨달았다. 허가서류를 작성해 관청에다 내고 왔는데, 도장을 잘못 찍었다고 연락이 왔다. 그래서... 서류를 다시 작성하느라 꼬박 이틀이 걸렸다. 우리 소장의 성은 '이', 도장을 찾다가 '이'가 있기에 그냥 찍었다. 하지만 그건 소장과 성을 같이 쓰는 '이대리'의 도장이었다! 소장은 날 무척이나 한심한 놈 취급을 하고, 내 생각에도 난 좀 한심한 것 같다. 그래도 억울한 면은 있다. 왜 도장을 한자로 파냔 말이다. 그리고 이대리는 왜 이씨냐는 거다. '이'밖에 모르는데 어떻게 구별하라고? 이런 일이 처음 발생했다는 게 용하다 싶다.
이렇듯 억울함에도, 사람들은 날 그다지 동정하지 않는다. 선배 P는 밥을 사주면서 "니가 인간이냐"며 핀잔을 준다. 난 P에게 '사필귀정'을 한자로 써보라고 했다. P는 '사필'까지 쓰다가 포기했다.
"것봐! 선배도 모르면서! 내가 운이 없었던 거지, 누구나 저지를 수 있는 실수라고"
P는 그것과 이것은 엄연히 다르다고 얘기를 하지만, 그게 다른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아무튼, 이제부터 한자 공부를 좀 해야겠다. 최소한 우리 사무실 사람들 이름은 한자로 쓸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