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억짜리 일감이 있었다. 관공서 일인데, 늘 거래하는 회사에서 우리에게 하청을 준 것. 그 공사를 얻기위해 로비도 꽤 했고, 일이 성사된 다음에는 그런 거래에서 당연히 줘야 할 커미션을 그 회사 사람들에게 지급했다. 술자리에서의 향응도 당연히 뒤따랐고.
날 포함해서 우리 직원들은 정말 열심히 일했다. 하지만 설계가 다 되었을 시점에서, 그 관공서가 추진하던 일을 없던 걸로 하기로 했다. 예산이 안나와서 그랬는지 높은 분의 마음이 바뀌었는지 난 모른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렇게 했던 일들이 다 무효가 되었다는 사실. 이 경우 우리는 잘해야 원래 받기로 했던 돈의 20-40%밖에 챙기지 못한다. 우리의 노력과 더불어 이 일을 위해 찔러 준 커미션과 향응은 모두 헛것이 되버렸다. 이 경우 “미안하니까 그때 받은 로비자금과 커미션을 돌려주겠다”고 하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다. 그런 나약한(?) 정신을 가지고 있으면 이 바닥에서 버티지 못할 테니까.
돈을 받을 길이 없는 건 아니다. 소송을 하면 된다. 하지만 그 회사와 오랜 기간 거래를 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감히 그런 짓을 할 수가 없다. 그저 술이나 마시면서 쓰린 속을 푸는 수밖에. 일년에 한번 정도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우리의 사기를 땅 끝으로 이끌지만, 세상 사는 게 다 그런 게 아니겠는가.
가끔은 건축주들이 말썽을 부리는 수도 있다. 건축이라는 건 땅 위에 구조물을 세우는 건데, 그걸 무슨 초등학생들이 공작시간에 만드는 집 같은 걸로 착각하는 사람이 있다. 건축에 대해 하나도 모르면서 도저히 서있을 수가 없는 건물을 지어 달라고 한다. 최근에 만난 건축주는 호수 옆에 건물을 세운다면서 돌고래 모양의 건축물을 요구해 애를 먹였다. 건축의 최대 사명은, 최소한 나는, 튼튼하게 짓는 거라고 생각한다. 모양은 그 다음이며, 아름다움을 위해서 안전을 희생한다는 건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런데도 그 건축주는 돌고래를 거듭 주장했는데, 정 그렇게 돌고래가 좋으면 집 안에 돌고래를 한 마리 키울 일이지 왜 우리를 괴롭히는가. 그 사람을 설득해야 하는 한시간이 내게는 참으로 짜증나는 시간으로 남아있다. 물론 그는 우리에게 일을 안맡기기로 했지만, 내가 알기에 그를 위해 돌고래 건물을 지어줄 사람은 이 땅에 없을 것 같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