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에 해태라는 구단이 있었다. 프로에 참여한 구단들 중 가장 가난했던 해태는 하지만 선동열을 비롯한 알짜배기 선수들을 데리고 우승을 무려 9번이나 한다. 그때는 트레이드가 그다지 활성화되지 않아서 그렇지, 그런 제도가 있었으면 선수들을 무진장 팔아넘겼을 거다. 우승을 자주 했음에도 해태가 양키스나 요미우리같은 명문구단이 되지 못했던 이유도 짠돌이라는 데 있지 않을까.

그와 대조되는 팀이 바로 삼성이다. 원래부터 우수한 선수들로 이루어진 삼성은 재일교포 선수나 외국인 선수를 데려올 때도 무진장 비싼 선수들만 뽑았고, 그래서 메이져리그에서 지금도 뛰는 훌리오 프랑코 같은 애가 삼성 유니폼을 입곤 했다. 트레이드가 활성화되니까 각 팀에서 뛰던 주전 선수들을 모조리, 엄청나게 비싼 값에 사들여 초호화군단을 이루었다. 그래서? 삼성은 하지만 지독한 불운으로 한국시리즈에서 번번히 패했고, 2002년 마해영의 활약 덕분에 딱 한번 우승했을 뿐이다. 우승을 밥먹듯이 하는 팀과 맨날 지는 팀, 사람들은 당연히 후자를 응원할 것 같지만, 삼성을 싫어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엘지팬도 삼성을 싫어하고 두산팬은 당연히 삼성을 가장 싫어한다. 한마디로 삼성팬 말고는 삼성이 가장 싫은 팀이다. 그러니까 삼성이 명문구단이 되지 못한 이유는 돈에 걸맞는 성적을 내지 못함이고, 거기에 더해서 지나치게 돈질을 해서다.

미국에도 삼성과 비슷한 팀이 있다. 26번이나 우승을 했던 뉴욕 양키스. 그 팀은 다른 팀에서 최고의 활약을 보이는 선수들만 모아서 야구를 한다. 너무 우수한 선수들만 모인 탓일까. 20승 투수 다섯명이 모이면 100승은 쉽게 할 것 같고, 3할 타자로 1번부터 9번을 채우면 매경기 10점씩은 너끈히 낼 것 같지만, 실제 경기에서 이들은 시너지는커녕 자기 실력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랜디 존슨과 작년 시즌 18승을 올린 파바노, 에이스 중 에이스 케빈 브라운 등이 뛴 올해도 뭐 제대로 던지는 선수는 드물었고, 양키스는 결국 시즌 중 계속 투수를 영입해야 했다. 그러고도 성적이 2등이니 돈을 물쓰듯한 구단주는 미칠 노릇이다. 신기한 것은 양키스에서 빌빌대던 선수들이 다른 팀에 가면 펄펄 난다는 것. 양키스를 떠난 제프 위버도 그렇고, 로아이자도 지금 잘하고 있다. 돈으로 매사를 해결하려는 양키스는 당연히 야구팬들의 공적이라, 월드시리즈가 되면 양키스 팬이 아닌 사람 중 양키스를 응원하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키스가 최고의 명문구단인 이유는 돈을 쓰는만큼 우승을 많이 해주기 때문.

이와 비교되는 팀이 바로 오클랜드다. 돈이 별로 없는 이 구단은 선수를 키워서 부지런히 팔아치우며 구단 운영을 한다. 신기한 것은 그러면서도 성적은 언제나 좋다는 거다. 젊은 에이스 3인방 중 멀더와 하든을 내보낸 올시즌, 오클랜드는 3인방의 마지막 선수인 지토에다 살루스와 블란톤, 리치 하든을 내세워 와일드카드 2위를 달리고 있다. 1위는 물론 양키스지만, 게임차는 겨우 한게임밖에 안난다. 돈을 들인 걸 따지면 양키스는 거의 2억불, 오클랜드는 5천만불도 안되는데 승수가 비슷하다니 정말 대단하지 않는가. 물론 지역적 특성상, 그리고 이렇다할 프랜차이즈 스타가 없는 탓에 오클랜드는 그다지 인기있는 구단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선수를 키우고 다른 팀에서 눈여겨보지 않는 진주를 캐내는 능력 하나만큼은 정말 존경스러울 정도.

이와는 별도로 보스톤이라는 구단이 있다. 86년 동안 우승을 못해서 밤비노의 저주니 어쩌니 해가지고 무지하게 동정을 받았던 구단으로, 작년 시즌 우승을 함으로써 한을 풀었다. 양키스와 더불어 최고 인기구단인 보스톤은 그러나 금전적인 면에서 양키스와 많이 닮았다. 보스톤 역시 무한대로 돈을 쏟아부으며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는데, 커트 쉴링과 연봉이 2천만불인 매니 라미레즈, 한때 마운드의 중심이었던 페드로 마르티네스가 작년 보스톤 우승의 주역이었다. 보스톤의 구장인 펜웨이 파크는 연중무휴로 매진이 되는 구장. 하지만 돈을 그렇게 쓰고도 우승을 못하는 보스톤을 팬들은 사랑한다. 돈을 쓰고 우승을 못하는 삼성을 우리 팬들이 싫어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결론;
-돈을 웬만큼 쓰고 우승을 많이하는 구단은 명문구단.
-돈을 지나치게 많이 쓰면 우승을 많이해도 사람들이 싫어한다.
-돈을 아껴가며 성적이 좋으면 역시 사람들이 싫어한다. 야구는 스포츠지, 장사가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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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9-06 0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단의 돈질로 인하여 완전히 하락한 스포츠가 바로 배구죠. 김세진에 이어 현대로 향할것이라는 신진식을 싹쓸이하면서 무패행진의 신화를 썼지만 그것은 곧 배구의 하락신화와 맥을 같이 해버리고 말았죠.
그나마 야구는 아직까지 돈질만큼 효과를 보여주지 못하네요. 삼성의 무방비한 독주체재가 이루어진다면 야구의 하락세도 하루아침이겠죠. 돈을 쓰고 우승못하는 삼성이 보스턴과 비슷하다면 무명을 발굴하고 선수를 되팔아 운영하는 현대는 오클랜드와 비슷하네요. 참, 전 현대팬입니다. 근데 좋아하는 선수는 양준혁인지라 언젠가 양준혁이 현대에서 뛸 가능성없는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니콜키크더만 2005-09-0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님은 배구 좋아하시는군요. 신진식, 김세진 좀 심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언젠가 '삼성으로 인해 배구가 조종을 울렸다'고 썼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