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웹이란 선수가 있다. 호주인이고 골프선수 중에서는 예쁜 편이라 나도 좋아하는데, 이 선수는 골프를 정말 잘쳤다. 94년 말에 프로에 입문해 십년간 번 돈이 무려 천만달러, 우승 횟수는 30회다.

몇년 전만 해도 애니카 소렌스탐과 웹이 여자골프계를 양분했었다 (박세리는 그 둘 아래 있었다). 99년엔 6승, 2000년엔 메이져 2개 포함 7승을 하면서 '올해의 선수'가 되었다. 그 해에 명예의 전당 자격조건도 갖췄다.

그러던 그녀가 슬럼프에 빠졌다. 2003년부터 그녀의 이름을 상위권에서 찾는 건 어려워졌다. 우승도 가물에 콩나듯 했다. 슬럼프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싶었다. 라이벌이던 소렌스탐을 박세리가 저지하기는 역부족, 여자골프계는 소렌스탐 천하가 되었다. 소렌스탐은 나오면 우승이었다(올해는 그게 더 심해진 듯하다). 웹의 슬럼프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98년 메이져 2관왕으로 화려한 데뷔를 한 박세리는 2000년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몇개씩의 우승트로피를 챙겼다. 2001년과 2002년은 다섯번씩 우승을 했다 (아직까지 올해의 선수상은 받지 못했다). 작년도, 미켈롭 오픈에서 우승함으로써 명예의 전당 자격조건도 갖췄다. 그 직후, 캐리 웹이 그랬던 것처럼 슬럼프가 찾아왔다. 아마선수나 치는 한 라운드 9오버파를 치기도 했고, 컷오프되는 일이 빈번해졌다. 컨디션을 점검한다고 쉬기도 해보고, 별짓을 다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올 시즌, 그녀는 12개 대회에 출전했지만 우승은커녕 10위 안에 진입한 적도 없다. LPGA 홈페이지에 의하면 올해 그녀가 번 돈은 6만여달러에 불과하다 (해마다 100만달러를 넘겼는데 말이다!) 장타자로 알려진 박세리가 드라이브 비거리 68위, 드라이브 정확도는 155위라니 정말 놀랍다. 컷오프 된 뒤 눈물을 흘리기도 했던 박세리, 그녀의 슬럼프는 과연 언제나 끝날까.

테니스에서는 우승후보가 대개 우승을 한다. 우승을 못한다해도 결승이나 4강까지는 간다. 하지만 골프는 다르다. 마스터스 우승을 '신만이 안다'고 하듯이, 골프대회에서 우승후보가 우승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그건 골프가 실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리라. 변수가 많기로 골프만한 게 또 있을까 싶다.

타이거 우즈가 나오면서 모든 통념이 깨졌다. '우승은 타이거우즈'라고 예언하면 절반은 맞는다. 올해 브리티쉬 오픈에서 우승함으로써 이제 서른살인 그는 메이져대회에서 10번, 그리고 PGA 통산 44번을 우승했다. 4라운드에서 언제나 빨간색 옷을 입는 그는 그 옷 때문인지 도무지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번 대회에서도 그는 3, 4라운드에서 타수를 별로 줄이지 못했지만, 추격자들은 제풀에 무너졌다.

그라고 슬럼프가 없었던 건 아니다. 하지만 그의 슬럼프는 다른 선수들과는 격이 다르다. 우승을 서너번밖에 못했다, 그리고 그 우승 중 메이져대회 우승이 없다고 '슬럼프'라고 몰아부치는 거다.

1996년 10월 우즈가 프로에 데뷔했을 때, 우즈 신드롬이 불었다. 그때 어떤 골퍼가 한 말이 있다. "왜 다들 우즈 타령이냐. 그가 한 대회에서라도 우승을 한 뒤 그딴 말을 해라"
한달 뒤, 우즈는 프로 첫대회 우승을 했고, 1997년 오거스타에서는 무려 18언더파로 코스 신기록을 세우면서 그린재킷을 입는다. 우즈 신드롬을 비웃던 그 골퍼는 할말이 없었을 것이다.

내가 골프를 밤새워 보기 시작한 것도 우즈가 나온 뒤부터다. 엄청난 거리의 퍼팅을 성공시키는 장면, 상상력이 풍부한 샷으로 위기에서 탈출하는 장면은 팬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다. 나같은 사람이 의외로 많아서, 그가 선두권에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시청률이 5% 이상 왔다갔다한단다.

소렌스탐의 독주는 지겹지만, 우즈의 독주는 하나도 지겹지 않다. 그건 왜 그럴까. 소렌스탐의 샷에 상상력이 없기 때문일까? (그럴 수도 있다. 소렌스탐은 지나치게 안전한 골프를 한다. 그녀가 잘쳐서 그런 거겠지만, 도무지 위기가 없다. 특히나 그녀의 아이언 샷은 정말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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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5-07-18 16: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골프를 잘 모르지만, 타이거 우즈는 정말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요..

니콜키크더만 2005-07-20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정말 대단한 선수입니다. 4살 때 9홀을 45타 쳤다는 선수니깐 천재라고 봐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