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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은 꽃으로 남았다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마이너스(Miners) 옮김 / 해밀누리 / 2025년 9월
평점 :
"욕망은 꽃으로 남았다"라는 제목은 셰익스피어의 <비너스와 아도니스>의 결말을 묘사하는 것을 넘어, 작품의 핵심 정서를 함축적으로 응축한 표현이다. 한국 독자들에게 작품의 비극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여운을 즉각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붙인 것이다. - '작품 해설' 중에서

(사진, 책표지)
책의 저자는 월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년)는 영국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극작가이자 시인으로, 세계 문학사에 큰 발자취를 남겨 그의 작품들은 널리 읽히고 또 연구되는 그런 인물이다. 햄릿, 오셀로, 맥베스, 리어왕 등 4대 비극悲劇을 비롯, <로미오와 줄리엣>, <한여름 밤의 꿈> 같은 희곡으로 수많은 연극 애호인들로부터 찬사를 받아왔다.
하지만 셰익스피어의 문학적 여정은 사실 연극 무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시詩에서 출발했음을 많은 사람들이 잘 모르고 있다. 1593년, 런던의 극장이 전염병으로 폐쇄되자 그는 연극 대신 시집을 집필하고 출간을 모색했으며 이때 세상에 나온 첫 작품이 바로 <비너스와 아도니스>였다.
이는 그리스로마신화에 등장하는 비극적인 사랑을 모티프로 삼고 있다. 즉 로마시인 오비디우스의 서사시 '변신이야기' 제 10권에 나오는 스토리로 여신 비너스(아프로디테)는 사냥꾼인 미남 청년 아도니스에게 첫 눈에 반해 그에게 사냥의 위험을 경고한다. 그럼에도 아도니스는 오직 사냥을 사랑하다가 결국 사고를 당한다.
질투에 눈이 먼 전쟁의 신 아레스(한때 비너스와 사랑을 나눈 관계)가 멧돼지로 변신해 아도니스를 공격함으로써 불의의 습격을 받은 아도니스는 결국 사망하고 만다는 이야기이다. 이처럼 여신 비너스는 적극적으로 구애한 반면, 아도니스는 이를 냉정하게 거부한다. 보통의 사랑이라면 남성의 끈질긴 구애求愛에도 여성은 이를 즉각 수용하지 않고 방어하는 그런 행동을 보여주는데, 여기선 그 역할이 바뀐 구도를 보여준다. 당시로선 매우 파격적인 설정인 셈이다.

(사진, 첫 번째 시)
아도니스는 오직 사냥을 사랑했다. 이에 상사병에 걸린 비너스는 적극적으로 구애한다. 셰익스피어는 인물의 입술, 숨결, 피부 등 신체 부위를 과일, 보석, 날씨 등에 비유한다. 이같은 감각적 이미지는 마치 카메라가 해당 인물을 따라가며 촬영하는 듯한 연출 기법이다.
경이로운 이여, 부디 말에서 내려주오.
그 오만한 머리를 안장머리에 매어 두시오.
이 부탁을 들어준다면, 그 보답으로 그대는
꿀처럼 달콤한 비밀 천 가지를 알게 되리라.
이리 와 앉으시오, 뱀 한 마리 얼씬 않는 이곳에.
자리에 앉으면 입맞춤으로 그대를 덮어주리이다.”
“허나 그대 입술이 역겨운 포만감에
질리게 하진 않으리.
오히려 풍요 속에서 굶주리게 만들 터.
붉어졌다 창백해졌다, 신선한 변화를 주며.
열 번의 짧은 입맞춤은 한 번처럼,
한 번의 긴 입맞춤은 스무 번처럼.
여름날 하루가 한 시간처럼 짧게 느껴지리.
시간을 잊게 하는 그런 유희에 흠뻑 빠져든다면.”
(10쪽)

(사진, 10쪽)
그가 눕자마자 그녀도 그 옆에 길게 몸을 눕히고,
둘은 팔꿈치와 엉덩이에 몸을 기댄 채 있었다.
그녀가 그의 뺨을 쓰다듬자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꾸짖으려 하자 그녀는 재빨리 입술로
그의 말을 막았네.
입 맞추며 욕정 어린,
숨이 끊어지는 듯한 속삭임으로 말했으니,
“꾸짖으려 한다면, 그대 입술은
결코 열리지 못하리.”
(12쪽)
“입 맞추기 부끄럽나? 그렇다면 눈을 감게,
나도 눈을 감으리니, 그러면 낮은 밤이 될 것이네.
사랑은 단둘뿐인 곳에서 축제를 벌이는 법,
대담하게 즐기시오,
우리의 유희는 아무도 보지 못하네.
우리가 기댄 이 푸른 핏줄의 제비꽃들은
결코 비밀을 누설하지도,
우리의 뜻을 헤아리지도 못하네.”
“그대의 매혹적인 입술에 맺힌 부드러운 봄은
그대의 미숙함을 드러내지만,
맛볼 가치는 충분하네.
시간을 활용하시오, 기회를 허비하지는 말게.
아름다움은 그 자체로 낭비되어서는 안 되네.
한창때 꺾이지 않은 고운 꽃들은
곧 썩고 시들어 사라지고 말 것이네.”
(19쪽)

(사진,19쪽)
이제 아도니스는 나른한 정신으로,
무겁고, 어둡고, 불쾌한 눈빛을 띠고,
찌푸린 눈썹이 그의 고운 시야를 가렸으니,
마치 안개가 하늘을 뒤덮은 듯했네.
뺨을 찡그리며 외쳤네.
“아, 사랑 얘기는 그만하시오.
햇볕에 얼굴이 타니, 이만 가야겠소.”
“아아,” 비너스가 말했네
“젊은데 어찌 이리 무정한가!
떠나려는 변명으로 그런 구차한 말을 하다니!
내가 천상의 숨결을 내쉴 테니, 그 부드러운 바람이
이글거리는 태양의 열기를 식혀주리다.
내 머리칼로 그대를 위한 그늘을 드리우고,
머리칼마저 타오르면, 내 눈물로 꺼주리다.”
(24쪽)

(사진,52쪽)
잘 익은 자두는 떨어지고,
푸른 것은 단단히 붙어 있거나,
일찍 따면, 맛이 시큼하오.
죽은 아도니스는 꽃으로 태어난다. 야생화 애호가들에게 널리 사랑받는 바람꽃이자 '아네모네'인 것이다. 봄에 피는 꽃은 바람꽃, 가을에 보라색 꽃을 피우는 아네모네가 바로 신화 속의 미남 사냥꾼 청년 아도니스가 현생한 모습이다.

(사진 107쪽)
셰익스피어의 이 작품은 소위 원전으로 언급되는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와 비록 닮았지만, 뚜렷한 차이점을 보인다. 오비디우스는 아도니스 사후를 꽃으로 변신시켜 초자연적이고 서사적인 사건에 중점을 두었다. 하지만 셰익스피어는 아도니스에게 결국 거부 당하는 비너스의 '거부된 욕망'을 확대하여 화려한 언어와 심리로서 재구성한 드라마인 셈이다. 셰익스피어 문학을 애호하는 모든 분들에게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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