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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사다리 - 불평등은 어떻게 나를 조종하는가
키스 페인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12월
평점 :
품절
기내 난동 연구가 보여주는 또 다른 인상적인 사실은 불평등과 가난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주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나는 이 책에서 바로 이 현상에 대해 말하고자 한다. 불평등이 심해지면 가난하지 않은 사람들가지 빈곤감을 느끼고 가난한 사람처럼 행동하게 된다. 머릿속에 불평등과 가난은 빼닮이 있기 때문이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불평등과 가난은 동의어가 아니다
비행기 이코노미석의 승객이 더 좋은 좌석으로 업그레이드되는 불평등을 목격할 경우 기내에서 소동을 벌릴 확률이 훨씬 커진다고 말하는 저자 키스 페인은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대학교에서 심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불평등과 차별이 인간의 마음을 형성하는 원리에 관한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미국 심리학계의 차세대 리더이다.
그가 주로 연구하는 주제는 사람은 '왜 불평등이 심할수록 자멸적인 의사결정을 내리는가?', '왜 가난하다는 느낌이 실제 가난만큼이나 강력한 영향을 미치는가?', '왜 공정하려고 노력해도 편향될 수밖에 없는가?'로, 실험심리학을 이용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감정적, 인지적인 메커니즘을 밝혀내고 있다. 그의 연구들은 불평등이 사람들을 예측 가능한 방향으로 바꾸는 방식에 대한 중요하고도 새로운 통찰을 보여주었을 뿐만 아니라, 가난을 개인의 인격적 결함으로 보는 잘못된 시각을 바로잡아 주었다.
책 제목의 '사다리'는 불평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즉 사다리를 올라갈수록 더 나은 지위와 소득, 건강, 안전, 미래를 누릴 수 있으며, 그 사다리의 아래쪽에 있다면 죽음조차 불평등하다. 책의 내용에 소개된 심리학, 신경과학, 행동경제학 분야에서 이루어진 다양한 연구들은 불평등이 경제적으로 우리를 분열시킬 뿐만 아니라, 도덕적 개념에 대한 시각까지 바꿔놓는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일반적으로 불평등은 가난 때문이라고 단정하기 쉽다. 하지만 저자는 이와같은 섯부른 단정에 철퇴를 가한다. 불평등의 문제는 소득 불균형이 아닌 상대적 평가 내지는 인식과 관련이 깊다고 주장한다. 즉 중산층이나 부유층이라 할지라도 상대적으로 스스로 빈곤감을 느낀다면 자신이 마치 가난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하며 나아가 이런 행동은 사고방식은 물론이고 건강, 기대수명, 정치성향, 신앙심 등에까지 전반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무상 급식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
무상無償은 말그대로 '공짜'를 의미한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우스개소리가 있을 정도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한다. 하지만 엄정한 잣대로 따져볼 때 사실상 이 세상에 공짜란 없다. 우리들은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기 때문이다. 저자 또한 무상 급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달았을 때 친구들 간의 계층 차이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그렇다. 똑같은 학교 유니폼을 입었지만 급식비를 내고 식사를 하는 아이들은 왠지 더 잘 차려입은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신발도 양말도 헤어스타일도 달라보이기 시작했다. 가정 형편이 넉넉치 못해 집에서 대충 가위로 머리카락을 자른 것과 비싼 미용실에서 스타일리스트가 멋지게 꾸민 헤어컷이 같을 리가 없다. 심지어 말투조차 다름을 느꼈다. 무상 급식자들은 특유의 느릿느릿한 말투를 구사했고, 급식비를 내는 아이들은 마치 뉴스 앵커 같은 목소리로 말했던 것이다.
그렇찮아도 내성적이었던 저자는 이후부터 학교에서 거의 입을 닫다시피했다. 그의 눈에 계층의 사다리가 보이기 시작하면서 층층의 계층이 그의 위로 쭉 펼쳐져 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사다리가 내보내는 메시지를 해독하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다. 신발, 헤어스타일, 말의 억양에 따라 아이들은 각기 서로 다른 사다리 층에 위치해 있었다. 물론 그의 주변에는 그 어떤 것도 변하지 않았다. 단지 그의 시각이 바뀌었을 뿐이다. 보이는 것만큼 안다고 했다. 이제 그는 가난뱅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실 오래전 먼 옛날부터 인간 사회에는 계층의 사다리가 존재해왔다. 그런데, 빠른 속도로 세상이 변하면서 작금의 사다리는 초고층빌딩만큼 높아졌다. 바라만봐도 아찔하다. 아무튼 인간은 높은 지위에 도달하려는 욕망을 지녔다. 점점 더 높은 곳으로 말이다. 한편으로는 자신의 위치가 어디쯤인지 생각해본다. 여기에서 비교의 문제가 등장한다. 나아가서 상대적 빈곤감을 느끼게 된다. 이런 주관적인 인식은 향후 자신의 삶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왜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의 만족도가 더 낮을까?
고전 경제학에서는 노동을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특정가격에 매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취급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더 적은 시간 동안 일하고 더 많은 돈을 받을 때 더 만족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하지만 경제학자 앤드루 클라크와 앤드루 오즈월드는 소득과 만족도 간의 상관관계를 분석햇더니, 이상하게도 소득 상위 20%에 속하는 사람들이 하위 20%에 속하는 사람들보다 만족도가 약간 낮았고, 근무 시간은 만족도에 그리 영향이 미미함을 밝혀냈다.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결과였다.
"가난뱅이는 백만장자를 질투하지 않는다. 더 잘 나가는 다른 가난뱅이를 질투한다"
- 버트런드 러셀
왜 더 많이 버는 사람들의 만족도가 더 낮을까? 한 가지 이유는 사다리를 올라갈수록 사회적 비교도 변하기 때문이다. 상위 20퍼센트의 고소득자는 더 높은 곳을 비교 대상으로 삼을 것이다. 1년에 20만 달러를 버는 가정의학 전문의는 100만 달러를 버는 뇌 외과의와 자신을 비교하면 불만이 생길 것이다. 물론, 돈보다는 상대적 비교가 만족감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가정 하에서 그렇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존재는 '더 이상 잃을 게 없다'고 마구 덤비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한 연구에 따르면 마약 조직원들 대부분은 최저임금을 벌면서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왜 그들은 많은 돈을 버는 것도 아니면서 이처럼 위험천만한 일을 택했을까? 일반 조직원들은 서로의 생활을 들여다 보기에 자신들이 힘든 일을 한고 있다고 생각치 않는다. 비록 성공 가능성이 낮지만, 성공애 대한 희망 때문에 큰 위험도 감수하는 것이다.
오늘 집세 1000달러를 내지 않으면 집을 잃게 될 경우를 당했을 때 어떻게 하겠는가? 도박에서 500달러를 딸 수 있는 확률이 90퍼센트, 1000달러를 딸 수 있는 확률이 40퍼센트라면 어느 쪽을 택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확률은 낮아도 1000달러를 딸 수 있는 쪽을 택할 것이다. 따기만 하면 집세 문제가 해결될 테니 말이다. 이는 기대효용의 관점에서 보면 비합리적이지만, 다른 의미에서는 합리적이다. 수학적으로 최선인 거래보다 기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할 때도 있다.
정치 성향에도 영향을 끼친다
우리는 자기와 의견이 같은 사람은 똑똑하고 통찰력 있다고, 의견이 다른 사람은 현실을 제대로 못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절대로 옳고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은 어리석다고 믿는 성향이 갈등을 부추긴다. 심리학자 리 로스가 주장했듯이, 내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있다고 굳게 믿는 이상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의 행동을 편협한 시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가 무능하거나 비합리적이거나 아니면 악한 인간일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니 어떤 논리적인 설명으로도 그를 설득할 수 없을 거라고 단정 지어 버린다.
"알고 있었나요? 나보다 천천히 차를 모는 사람은 멍청이, 나보다 더 빨리 달리는 사람은 미치광이라는 걸" - 코미디언 조지 칼린
이런 경향이 자신을 부자로 느끼는 사람들에게 특히 강하게 나타난다면, 불평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염려되는 점이 있다. 소수의 최상류층이 수많은 노동자들에게서 점점 더 멀어질수록, 그들의 정치적 견해도 바뀔 가능성이 높다. 그들은 사리사욕을 진정한 원칙과 혼동하고, 자기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무시할 것이다. 무능하고 비합리적이며 비도덕적인 인간으로 보이는 상대와는 타협하고 싶은 마음도 생기지 않게 마련이다.
높은 지위에 있다는 우월감이 생기면, 자신은 현실을 제대로 보는 반면 상대방의 생각은 잘못됐다는 느낌이 다욱 커진다. 사회적 사다리의 꼭대기와 밑바닥이 서로 멀어질수록 정치는 점점 더 분열될 것이다. 정치학자 놀런 매카티와 그의 연구진은 1947년 이후 미국 의회에서 얼마나 양극화되어 왔는지 측정했다. 소득 불평등을 측정한 지니계수와 미 하원의 정치적 양극화가 놀라울 정도로 비슷한 궤도를 그려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불평등은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을 비롯한 경제 선진국의 사망률은 꾸준히 떨어졌지만, 눈에 띄는 예외가 있다. 1990년 이후 중년 백인 미국인들의 사망률은 상승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대학 학위가 없는 백인 남자들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동일 연령대 흑인 미국인들의 사망률이 더 높긴 하지만, 다른 소수 집단들의 경우처럼 서서히 감소하는 추세였다.
저학력의 중년 백인 남자들은 무너진 기대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고등학교까지 졸업한 백인들은 비슷한 학력의 흑인들보다 평균적으로 더 많이 벌긴 하지만, 백인으로서 예부터 누려온 특권이 있기 때문에 더 많은 것을 기대하는 경향이 있다. 경제학자 앤 케이스와 앵거스 디턴은 소득 불평등이 점점 심해지고 사회 계층 간 이동이 정체되어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세대는 미국 역사상 최초로 그 부모 세대보다 부유하지 못한 세대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불평등과 신앙심의 상관관계
종교가 널리 퍼지는 데에는 소득뿐만 아니라, 국가 특유의 역사와 문화 같은 다른 요인들도 작용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종교적 박해를 피해 달아난 이민자들의 손에 세워졌으니 이례적인 수준의 독실함도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를 보면 더 강력한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정치학자 프레더릭 솔트는 광범위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여러 국가의 종교성 수준을 조사한 후, 일반적인 동향과 예외적 경우를 모두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찾았다.
공산주의 국가들과 비공산주의 국가들 간의 차이를 고려하자 중국은 더 이상 예외 국가에 속하지 않았다. 훨씬 더 중요한 요인은 소득 불평등이었다. 불평등이 심한 국가일수록 평등한 국가보다 종교성이 훨씬 더 강했다. 불평등은 실제 소득만큼이나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종교와 소득 불평등 간의 관계로 그래프를 작성하자 미국 역시 정상 분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가난과 불평등을 함께 고려하면 국가들 간의 종교성 차이를 대부분 설명할 수 있었다.
흑과 백의 불평등
흑인 남성, 흑인 여성, 백인 남성, 백인 여성의 얼굴에서 골라낸 특징들을 합쳐 합성사진을 하나 만들었다. 이 얼굴에 시각적 소음을 더했다. 이 과정을 수백 번 반복해서, 서로 약간 다르고 약간 흐릿해 보이는 수많은 얼굴들을 만들어냈다. 그런 다음 연구 참가자들에게 사진을 두 장씩 짝지어 보여주며, 두 사람 중에 복지 수혜자처럼 생긴 사람을 골라보라고 했다. 우리는 '복지 수혜자'로 평가받은 모든 이미지들을 결합한 다음, '비수혜자'로 선택된 이미지들끼리 또 따로 결합하여 두 장의 새로운 합성 사진을 만들어냈다.
새로운 참가자들에게 그 두 사진을 보여주자 그들은 복지 수혜자의 사진을 흑인으로, 비수혜자의 사진을 백인으로 묘사하며 수혜자는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적대적이고 무식해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인간 같아 보이지 않는다는 오싹한 평가를 내린 사람도 있었다. 비수혜자는 눈이 선명하게 보이는 반면 수혜자의 눈은 움푹 꺼져 있다. 인종과 불평등은 아주 단단하게 뒤얽혀 있다. 경제적 불평등은 지위에 근거하여 '우리'와 '그들'이라는 이분법을 만들어내고, 인종 편견도 한층 강화시킨다.
소득의 증대가 불평등을 해소하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불평등과 가난을 자주 혼동하고, 불평등 감소라는 목표를 경제 성장의 목표와 혼동한다. 하지만 불평등이 사람들의 건강과 선택, 정치 및 사회적 분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 결과들을 보면, 경제 성장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지니계수와 관련된 통계를 보면, 불평등을 조장하는 가장 큰 요인은 부자들의 부유함이다. 누군가가 하룻밤 사이에 모든 사람들의 소득을 2배로 만드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내놓는다면, 불평등 문제는 나아지기는커녕 더 심각해질 것이다. 1년에 1만 5000달러를 버는 사람의 소득은 3만 달러가 되겠지만, 백만장자들의 소득은 그보다 훨씬 큰 액수로 늘어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