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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작의 미술사 - 미술사를 뒤흔든 가짜 그림 이야기
최연욱 지음 / 생각정거장 / 2017년 12월
평점 :
세계 3대 범죄를 꼽자면 마약 유통, 총기 및 묵 거래, 그리고 미술 범죄다. 미술작품은 실제로 그림 제작에 들어간 비용에 비하면 엄청난 이윤이 남는다. 유통 단계도 복잡하지 않아서 작품이 준비되면 구입하겠다는 고객을 찾아 넘기고, 돈을 받으면 된다. 문제가 있다면 '돈이 되는 작품'을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위작이 등장한다. 위작은 원작에 비해서 구하기가 훨씬 쉽다. - '시작하며' 중에서
지금 이 순간에도 위작은 유통되고 있다
이 책 <위작의 미술사>는 지금까지 일어난 위작 사건들을 소개하며 그리스부터 현대까지의 서양미술사를 위작을 통해 바라본다. 원작과 똑같이, 혹은 원작보다 더 원작같이 그리기 위해 사용한 기법을 통해 미술사조별 특징을 알아보고, 미술과 위작이 우리 일상에 끼친 영향도 재미있게 풀어봄으로써 미술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책의 저자 최연욱은 미국 마샬대학교에서 순수미술과 시각디자인을 전공했고, 부전공으로 종교학과 미술사를 공부했으며 '동양미술의 성모 마리아의 도상학적 분석(2002)'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졸업 후 3년간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하다가 전업 화가로 전향했으며, 전시회를 열기도 했고 공모전에도 수차례 입상했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온라인 카페를 통해 매월 한두 번씩 미술초보자들과 전시 탐방 모임을 가졌다. 2007년부터는 전 세계 30여 개국의 미술관과 박물관을 직접 다니며 모은 자료를 바탕으로 추천할 만한 국내외 미술관과 박물관 130여 곳을 선정해, 블로그에 '미술관 가는 길'이라는 제목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다. 유럽 각지를 여행하며 빈센트 반 고흐의 발자취를 찾아다녔고, 우키요에 거장 카츠시카 호쿠사이의 후카쿠 36경을 답사하기도 했다. 2014년부터는 블로그에 '서양화가 최연욱이 들려주는 재미있는 미술 스토리'를 매일 연재하고 있으며, 그 중 반 고흐 스토리는 현재 약 70편 가량 된다. 저서로는 <비밀의 미술관>이 있다.
위작僞作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다. 이는 속임수이며, 불법과 합법, 모방과 창조의 선을 넘나드는 뒷이야기들이 마치 탐정물을 대하는 것처럼 짜릿한 긴장감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책의 내용은 거장 위주로 또는 시대 순으로 주요 작품을 나열하며 구구절절 설명하는 기존 방식에 비해 100배는 더 즐겁다. 그럼에도 여전히 미술은 어렵다는 선입견이 있기에, 위작을 이용해서 서양미술사를 풀다 보면 '어느 순간 알게 돼버리는' 놀라운 경험을 맛보게 된다.
위작, 모작, 그리고 대작
일반적으로 위작의 방법으로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이미 존재하는 작품을 똑같이 그리는 것이고, 둘째는 위작할 화가의 스타일을 습득해 마치 원작 화가가 그린 것처럼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기존 작품과 똑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다. 미술학도들도 거장들의 작품을 모작하면서 자신의 실력을 배양하니 말이다. 얼마 전에 물의를 일으킨 가수 조영남의 경우는 다른 사람이 대신해서 그림을 그려서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모작模作~ 취미 또는 연습용, 타인의 작품을 그대로 본떠서 만든다
위작僞作~ 어떤 의도를 갖고 다른 작가의 작품을 그댜로 본떠서 만든다
대작代作~ 작가를 대신해서 작품을 만든다
아래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 현대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붉은 바지의 오달리스크〉로, 앙리 마티스의 작품이다. 얼핏 보면 비슷하면서도 많이 다른 두 점의 작품이다. 하나는 진품이고 하나는 위작이다. 어느 작품이 진품일까? 앙리 마티스의 원작은 왼쪽이다. 그런데 위작이 더 잘 그린 것 같지 않은가?
고작 한 살에 조각을 할 수 있을까?
르네상스 조각의 거장 미노 다 피에솔레가 조각한 1430년에 죽은 마리아 카타리나 사벨리의 대리석 무덤, 석관에 누워있는 여인과 그 주변에 화려한 문양 그리고 기둥과 장식 등 어느 부잣집 부인의 무덤이 너무나도 아름다워서 1924년 4월 3일에 미국 보스턴 미술관은 이 작품을 미술관 입구에 전시했을 정도였다. 대리석 무덤 하단에는 라틴어로 '서기 1430년 마리아 카타리나 사벨리가 죽었다'고 새겨져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은 4년도 못되어 반품되고 말았다. 하단에 새겨진 라틴어 문장 때문이었다.
마리아 카타리나는 교황 오노리오 4세를 배출 한 로마의 명문 사벨리 집안 며느리였다. 미노 다 피에솔레(1429~1484년)가 그녀의 무덤을 만들었을 당시 그의 나이는 고작 한 살이었다. 아무리 천재 거장 조각가인들 한 살에 기저귀를 차고 대리석을 깎았을 리도 없고, 라틴어를 구사하지도 못한다. 사실 이작품은 당초 뉴욕의 대형 미술관인 프릭 컬렉션의 창립자 헨리 클레이 프릭의 딸 헬렌 클레이 프릭에게 팔려고 했지만 그녀의 안목에 차지 않아서 거래가 성사되지 않았다고 한다.
위작은 물감 때문에 탄로난다
어떤 경로로 이탈리아에서 영국으로 오게 됐는지 불분명하고, 그저 르네상스 시절의 산드로 보티첼리가 그린 것으로 피렌체 메디치 집안에 걸려 있던 걸작이라고만 알려진 <베일을 쓴 마돈나〉는 '판넬'에 그려진 작품으로, 작품 중간 중간에 벌레가 나무를 파먹어서 뚫린 구멍이 있었다. 하지만 엑스선으로 찍어보니 반듯한 일자 형태의 구멍이었다. 벌레는 이리저리 꿈틀거리며 다니므로 구멍이 곧게 뚫릴 수 없는데 말이다. 결국 누군가 인위적으로 못을 박아 구멍을 냈다는 얘기였다.
시간이 한참 더 지나 1994년에는 학자들이 작품의 재료를 분석하는 기술인 EDX로 이 작품을 샅샅이 분석했다. 그 결과 짙은 코발트블루, 노란색에 가까운 징크 크로메이트 , 크롬 옥사이드 그린 등의 염료가 사용된 것이 확인됐다. 짙은 파란색인 코발트블루는 1800년대 초 물감으로 처음 만들어졌고, 녹차색인 크롬 옥사이드그린은 1860년대까지는 없던 색이다. 산드로 보티첼리는 1445년에 출생, 1510년에사망했으니, 타임머신을 타지 않은 이상 19세기 화방에서나 살 수 있었던 안료로 그림을 그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 작품은 위작 화가이자 이탈리아 시에나 미술대학교 강사였던 움베르토 준티가 그린 것으로 밝혀졌다.
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2층 벽화는 진짜일까?
말년에 고야는 <아들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를 포함한 총 14점의 작품을 방과 거실, 부엌 등의 벽에 유화물감으로 그렸다고 한다. 워낙 어두침침한 그림이라서 이를 '검정 그림 시리즈'라고 부른다. 그런데 원래 고야가 살았던 시절에는 1층 집이었다고 한다. 고야가 손자 마리아노에게 유산으로 물려준 1830년 서류에는 1층 건물로 등록돼 있다. 즉 2층은 고야가 죽고 나서 증축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층의 7점은 누가 그린 것일까? 2층이 완공되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 돌아와 그리진 않았을 것이고 누군가가 고야의 스타일로 2층의 7점을 그렸다는 얘기가 된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직도 학계에서 많은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 서류가 잘못 기록됐을 수도 있다. 집을 유산으로 물려줬을 때는 고야는 이미 정신병이 심해서 2층을 1층으로 표기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퀸타 델 소르도는 워낙 외지에 있어서 기록 역시 충분하지 않아 누구 하나 작품의 진위 여부에 대해서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