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 트릴레마 - 삼중고에 빠진 부채, 어떻게 풀 것인가
김형태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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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금부채에 쪼들린 사람들은 병원 치료를 연기하고 결혼을 미루고 집 구매도 포기한다. 이 정도면 부채가 한 사람의 일생을 좌지우지하는 셈이다. 부채 부담이 커지면 고정적으로 갚아야 하는 이자 때문에, 위험을 부담하는 창업을 포기하고 정기적으로 월급을 주는 안정적인 직장을 구한다. 경제의 활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 '프롤로그' 중에서

 

 

"다음 경제위기는 학자금부채에서 비롯된다"

 

이는 다소 생뚱맞게 들리지 몰라도 미국의 이코노미스트들이 현 미국 경제상황을 진단한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이 미국에만 해당될까? 결코 아닐 것이다. 한국은 오히려 더 심각하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저자가 이 책을 집필하게 된 동기이다. 한국 부모들의 교육열은 너무나도 뜨거워 자녀들이 대학교를 가지 못하면 무슨 큰 일이라도 나는 듯 생각하기 때문에 학비지원이 어렵더라도 우선 빚을 내서라도 입학부터 시킨다.

 

저자 김형태는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금융과 재무학 전공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MIT와 펜실베이니아대학 와튼스쿨에서 연구를 이어나가다 귀국해선 자본시장연구원장으로 6년간 재직했다. 사모투자펀드(PEF), 주식연계증권(ELS), 자본시장법 제도화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했고 국민경제자문위원, 금융발전심의위원, 한국거래소 및 코스닥증권 경영자문위원을 역임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에서 객원교수로 연구와 강의를 했고, 새로운 시각에서 경제, 금융시장, 기업을 연구하는 글로벌금융혁신연구원을 미국에 설립해 CEO 겸 원장으로 정책 자문, 비즈니스 컨설팅을 수행하고 있다. 미국에서 다양한 벤처기업, 금융회사 그리고 주정부를 컨설팅하면서 '부채 개혁'과 '부채 너머의 미래 세상'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이 책을 쓰는 계기가 됐다.

 

 

 

 

3개의 목표 중 2개는 달성할 수 있지만 3개를 동시에 달성불가능한 상태를 트릴레마라고 말한다. 이 책의 주제로 제한할 경우 대학교육의 확대, 가계부채의 축소, 그리고 정부부채의 축소라는 3가지 목표를 동시에 한꺼번에 달성할 수 없다는 얘기가 된다. 대학교육의 확대는 가정을 나아가 국가를 이끌 미래 인재의 양성이기에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중차대한 과제이므로 이는 가계 또는 정부의 부담 중 하나는 유발하기 마련이다.

 

반면에 가계부채와 정부부채를 동시에 축소한다면 대학교육의 확대는 지장을 받는 게 불가피할 것이다. 이런 경우 단순히 부채 차원에만 집착한다면 부채 트릴레마의 해결책은 나올 수가 없다. 이와같은 트릴레마 문제를 해결하려면 새로운 차원을 도입해야만 한다. 저자가 말하는 해결책은 '소득나눔 학자금' 또는 '학자금지분'의 도입이다.

 

위의 두 가지 방안 중에서 소득나눔 학자금이란 미래소득의 일정 퍼센트를 일정한 기간 자금공급자와 나누기로 약속하고 대학등록금을 조달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이렇게 된다면 학생들은 부채에 의존하지 않아도 되므로 가계부채나 정부부채를 늘리지 않아도 대학교육의 확대가 무리없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부채란 무엇인가?

 

최근에 들어 경제 이슈와 관련해 가장 많이 듣는 주제어 중 하나가 '부채'다. 즉 가계부채, 학자금부채, 정부부채, 기업부채 등등 말이다. "과연 부채란 무엇인가?", "부채를 부채로 만드는 본질은 어디에 있는가?" 등의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 있다면 부채문제의 90%는 풀린다. 이처럼 부채의 본질과 본모습에 대한 이해가 전제되어야, 비로소 부채문제를 새롭게 정의할 수 있고, 나아가 부채라는 차원을 넘어서는 창의적 아이디어를 모색할 수 있다. 

 

부채에 관한 기록은 그 역사가 수천 년을 넘고 있을 정도이다. 인류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그 기록을 찾았다고 한다. 정말 그 생명력이 대단하자고 말할 수밖에 없다. 부채의 생명력은 어떻게 이토록 끈질기게 살아남아 그것도 날로 번창하면서까지 우리들은 어렵게 만들고 있을까? 결론은 자명하다. 부채를 승자勝者로 만들어준 환경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부채의 본질적 특성

 

부채는 차입자의 개별 사정을 봐주지 않는다

부채는 이자를 조금씩 갚다가 뭉칫돈인 원금은 나중에 갚는다

 

 

과도한 정부부채

 

경기가 침체되면 국민소득이 늘지 않고 소득이 늘지 않으면 세금을 늘리기 쉽지 않다. 거래가 위축되니 거래세도 준다. 결과적으로 생기는 현상이 정부부채 발행 증가다. 이 경우 정부부채 증가는 결과다. 정부부채가 늘더라도 재정투입을 확대해야 경제가 성장한다는 것이 케인지안(케인즈학파)의 주장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재정적자가 쌓이고 정부부채가 일정 수준, 즉 부채수용력을 넘으면 오히려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연구결과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경우에는 과도한 정부부채가 '결과'가 아니라 경제회복과 성장을 가로막는 '원인'이 된다. 결과라면 이미 결정된 것이니 고칠 수도 없고 논란이 많지 않다. 원인이라면 신속히 고쳐야 한다.

 

정부부채가 경제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면 정부의 부채를 수용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부채를 사용하야 한다. 그러나 집권 정부가 선거를 의식해서 나중은 생각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선심 행정과 복지를 마구잡이로 집행함으로써 부채를 크게 증가시켜 국가신용등급을 하락시킨다면 이는 국가 경제에 위험을 초래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가계부채는 정부부채에 가깝다

 

정부의 책임 또는 부담이란 측면에서 보아도 가계부채는 정부부채에 가깝다. 가계부채가 잘못되었을 때 정부부채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기업에는 '창조적 파괴'라는 개념을 적용할 수 있지만 가계에는 적용할 수 없다. 가계는 '창조적 구제'의 대상이지 창조적 파괴의 대상이 아니다. 가계는 정치적 투표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도 기업과 다르다. 기업은 투표권이 없다. 삼성전자라도 대통령 투표권이 없다.

 

투표권 때문에 가계의 부채가 일정 범위를 넘어서면 아이로니하게도 스스로 자생력을 갖게 된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마치 연중행사를 벌이듯 거론되는 '부채탕감' 시행처럼, 어떻게든 정부가 개입해 처리해줄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가계부채는 정부부채와 함께 생각해야 한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가계부채 특히 학자금부채는 정부부채의 또 다른 이름'이다.

 

 

소득나눔 학자금 제도의 도입

 

미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이 제도의 도입이 적극 논의되고 추진되고 있다. 최근 논의의 두드러진 특징은 과거의 우회적이고 간접적인 방식을 넘어서 학자금대출의 기본 특성 즉 '부채'라는 성격 자체를 직접적으로 공격한다는 것이다. 물론 나라마다 특성이 달라서 다양하게 반영되기는 하지만 혁신의 기본 방향은 일치한다.

 

부채의 빡빡함을 완화하고 융통성을 늘리는 것이다. 학자금의 부채적 성격을 줄이고 지분적 성격을 강화하는 것이다. 지분적 성격의 강화란 바로 '상태의존적 계약' 형태를 갖게 된다는 뜻이다. 상태의존적 학자금에서는, 자금조달자인 대학생들의 미래수입 정도나 경제적 상황여부에 따라 상환금액의 패턴이 달라진다. 즉 상황이 어려우면 적게 갚고, 정상적이면 평상시대로 갚고, 상황이 좋으면 좀 더 많이 갚는 구조다. 부채처럼 경직되지 않고 유연하다. 

 

 

정부의 부채수용력

 

부채수용력과 부채총량불변의 법칙을 합해서 생각해보면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가계부채든 기업부채든 없어지지 않고 정부가 부담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정부의 부채수용력에 명확한 한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즉, 정부가 자기부담으로 전환시켜 부담할 수 있는 부채수준에는 한계가 있다. 부채수용력을 초과하는 국채발행은 국가신용등급을 하락시키고 안전자산이었던 국채를 위험자산으로 전락시킨다. 몰라서든 아니면 알기는 하는데 '뭔 일이야 있겠어?'라는 방만한 생각에서든 이 한계점을 넘으면 국가경제가 치명적 위기를 맞게 된다. 그리스 위기처럼 말이다.

 

물론 소득을 높이면 부채를 갚을 수 있지만, 지금까지의 부채는 가계든 정부든 소득이 많이 부족해서 생겨난 게 대부분이다. 따라서 소득을 올리는 것은 정책적 목표가 될지는 몰라도 부채를 줄이기 위한 정책적 수단이 되기가 어렵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한국경제의 미래를 좌우한다

 

책에는 교육화폐가 거론되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요즈음 부실 우려가 큰 가상화폐 때문에 경제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많이 생기고 있지만 이는 교육전용이기에 다른 용도로는 사용 불가능하다. 이를 탈러('티칭'과 '달러'의 합성어임)라고 부르는데, 대학등록금으로 납부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주정부가 주립대락에 탈러를 등록금으로 받도록 독려하고 이에 상응하는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예를 들어, 대학이 탈러를 가져오면 달러로 교환해주고, 탈러 등록금 학생을 정원외로 인정해준다. 자녀들의 교육 때문에 상당히 많은 가계에서 학자금대출을 이용한 후 상환 압박을 받고 있는 게 국내의 현실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매우 신선한 해결책으로 다가온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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