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왜 짐이 되었는가 - 서울대 박찬국 교수의 하이데거 명강의
박찬국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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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박찬국은 현재 서울대학교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을 비롯한 실존철학이 주요 연구분야이며 최근에는 불교와 서양철학 비교를 중요한 연구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다. 2011년 <원효와 하이데거의 비교 연구>로 제5회 '청송학술상', 2014년 <니체와 불교>로 제5회 '원효학술상', 2015년 <내재적 목적론>으로 제6회 '운제철학상' 등을 수상했다.

 

또한, 2016년 논문 <유식불교의 삼성설과 하이데거의 실존방식 분석의 비교.로 제6회 '반야학술상'을 받았으며, 그의 저서 <초인수업>은 중국어로 번역되어 대만과 홍콩, 마카오 등에서 출간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는 <그대 자신이 되어라-해체와 창조의 철학자 니체>, <들길의 사상가,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나치였는가>, <니체와 하이데거> 등이 있다.

 

인간은 현대라는 거대한 기계 속에서 얼마든지 이용하고 착취할 수 있는 부품으로 전락해버렸다. 신에 대한 신앙이 인간의 삶을 철저하게 규정했던 중세시대처럼, 오늘날 과학기술은 우리의 주인이 되어 삶의 모든 양식을 지배하고 있다. 모든 것을 수량화, 수치화하려는 과학의 속성은 사물뿐 아니라 인간에게도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자 하이데거는 그 어느 때보다 인간이라는 존재의 무게가 바닥으로 떨어진 시대가 바로 현대사회라고 강조한다.

 

물질적으로 그 어느 시대보다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번아웃증후군, 고독사 등 현대인들은 오히려 정신적으로는 황폐함과 공허함으로 고통받고 있다. 불안, 고독, 무기력, 공허함 등을 보상받고자 현대인들은 소비, 오락, 향락 등 자극적인 것에 탐닉하고, 타인의 흠을 들추어 상대적으로 자신의 우월함을 확인하려는 잡담이나 가십거리로 하루를 채워보지만 결국 남는 것은 더 큰 공허와 권태일뿐이다. 이에 대해 하이데거는 "오늘날 인간은 존재를 망각했다"라고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존재 상실에서 오는 공허함을 무엇으로 채울 수 있을까? 책을 통해 하이데거 사상을 살펴보도록 하자.

 

 

 

 

현대인의 고향은 어디인가?

 

"세계는 황폐해졌고, 신들은 떠나버렸으며, 대지는 파괴되고,

인간들은 정체성과 인격을 상실한 채 대중의 일원으로 전락해버렸다"

- 마르틴 하이데거

 

하이데거는 우리들이 살고 있는 시대를 '고향 상실의 시대'라고 부른다. 여기서 말하는 고향이란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다. 즉 '편안하고 아늑한 곳'을 지칭한다. 독일어 'Heimat'(고향)에서의 'Heim'은 바로 집을 의미한다. 집은 우리들이 온갖 세파에 시달리다가 돌아가서 편히 쉴 수 있는 장소이다. 여기엔 냉기보다는 어머니의 따뜻한 사랑이 존재하는 것이다.

 

진공청소기가 먼지를 빨아들이듯, 대도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을 빨아들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시기와 질시 그리고 경쟁이 은밀하게 혹은 공공연하게 사람들을 지배한다. 우리는 과거에 비해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울지 몰라도 마음은 한없이 허전하고 외롭다. 인간마저도 한갖 에너지원으로 여겨지면서 최대한의 에너지를 내품도록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우상숭배

 

"노동하는 동물은 자신이 만들어놓은 것에 도취되어 있다.

이를 통해 그는 자기 자신을 해체해버리고 공허한 무無로 파괴해버린다"

- 마르틴 하이데거

 

서양철학 전통에서 인간은 이성적 동물로 파악되었고 이러한 인간 이해가 극에 달한 것이 바로 과학기술문명이다.이 시대의 과학기술은 전지전능한 신과 같은 존재가 되었다. 현대인들은 스스로 과학기술문명의 주체라고 자부하며 살지만 실은 현대라는 거대한 기계 속의 부품으로 소모되고 있을 뿐이다. 다시 말해 현대기술문명의 근본적 문제점은 비판적이고 윤리적인 이성은 멀리하고 도구적인 이성만을 발전시킨다는 데에 있다는 것이다.

 

흔히 현대를 과학기술시대라고 말하는데, 이는 단순히 현대인들이 자동차, 비행기 등 옛날 사람들이 꿈도 못 꾸었던 과학문명의 산물들을 사용하고 있다는 뜻이 아니다. 서양의 중세를 기독교시대라고 부르듯, 과학기술시대라는 표현은 근현대적 과학과 기술 등이 우리들의 삶을 철저하게 규정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비교, 잡담, 호기심이 지배하는 삶

 

하이데거는 그의 저서 <존재와 시간>에서 우리들의 일상적 삶이 잡담과 호기심으로 점철되어 있다고 보았다. 또 타인에 대한 비교의식에 일상적으로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들은 학업성적이나 사회적 지위, 재산 같은 세속적인 가치들을 중심으로 하여 자신을 타인과 비교하고 규정한다. 따라서 학업성적이 별로라면 스스로를 공부 못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상대적으로 공부 잘하는 사람들에게서 열등감을 느낀다.

 

이를 하이데거는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격차에 대한 우려에 사로잡힌 꼴이라고 말한다. 자기 자신이 남보다 많이 뒤처져 있으면 그 격차를 줄이려고 애쓰고 또한 맘이 자신의 뒤를 바짝 뒤따라오면  그 격차를 더 벌리려고 한다. 이렇게 비교의식이 지배하는 인간관계에서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 서로 경쟁라는 구도에 놓여 상대를 노골적으로 질투하거나 시기까지 하는 것이다.

 

"장미는 그 자신에도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지도 묻지 않는다"

 

이는 독일 바로크시대의 신비주의적 종교시인 질레지우스가 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들은 흔히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까 걱정한다. 그리고 이렇게 타인의 시선에 신경을 쓰면서 우리는 자기 자신을 강하게 의식한다. 타인의 시선이 불편한 이유는 '나'라는 존재가 그들이 평가하는 대상으로 완전히 전락해버리기 때문이다.

 

 

실존이란 무엇인가?

 

"천 가지 계획과 만 가지 생각이 불타는 화로 위의 한 점 설雪이로다"

 

이는 서산대사가 임종할 때 남긴 시 구절 중 일부이다. 사실 우리들은 살아가는 동안 수천, 수만 가지 계획을 세우고 이보다 더 많은 수만 가지 생각을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불타는 화로 위에 떨어지는 눈 한 송이에 불과한 것이다. 화로 위에 눈 송이가 떨어지면 그 즉시 흔적도 없이 녹아버린다. 우리들은 그런 눈 송이가 있었는지조차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들의 삶도 마찬가지다. 불타는 화로 위에 떨어지는 눈 한 송이에 불과한데 왜 우리들은 여기에 수고를 아끼지 않는가 말이다. 인간은 이렇게 죽음을 생각하면서 자신의 인생을 덧없는 것으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다. 물론 인간 이외의 동물들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죽음 직전에는 죽지 않으려고 몸부림칠 것이다. 하지만 그 어느 동물도 자신이 덧없는 존재라고 느끼며 살지는 않는다. 하이데거는 이렇게 인생의 의미를 물을 수 있다는 게 바로 인간의 본질적인 특성이라고 보았다.

 

 

소박한 자연에서의 삶을 추구하다

 

하이데거는 34살 때 독일 남부의 거대한 숲 슈바르츠발트에 있는 토트나우 산의 1,150미터 지점에 산장을 만들었다. 전기나 상수도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지만 이 산장에선 하늘 그리고 숲과 계절의 변화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다. 산의 진중한 모습과 거대한 바위를 바라보길 좋아했고, 봄이면 꽃이 만발하는 목장의 아름다움에 취했다. 달 밝은 가릉밤엔 멧돼지들이 술렁이는 소리에 귀기울였고 겨울엔 눈 덮인 산야를 감상했다. 또한 그는 농부들과 어울려 담소 나누기를 좋아했다.

 

그는 베를린 대학으로부터 두 번에 걸쳐서 교수로 초빙을 받았지만 거부했다. 화려한 도시보다는 단순 소박한 자연을 택한 것이다. 그는 대부분의 연구와 저술을 토트나우 산의 산장에서 작업했고 자신의 사유思維가 산장과 그곳을 둘러싸고 있는 자연의 풍광 그리고 농부들의 세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생각했다.

 

 

삶 그 자체를 '경이'로 받아들여라

 

하이데거는 시인을 이야기한다. 시인은 언제나 단순하고 소박한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시의 말을 통해 존재의 소리를 구체화한다. 시인이 세상을 바라보듯, 세인들의 무의미한 잡담이나 호기심에서 탈피해 스스로 내면의 평정을 찾을 때 우리들의 삶은 은은한 기쁨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래서 하이데거는 이런 삶의 방식이야말로 현대사회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보았다. 이 책이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메세지 또한 "시인으로 돌아가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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