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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의 인생 실험실 - 나에게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줄 알았던 일에 대한 치유 보고서
장현갑 지음 / 불광출판사 / 2017년 9월
평점 :
이 책은 내가 살아온 지난 76년간의 삶을 회고하면서 응어리진 수많은 고난들과 그 고난들을 극복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찾아 헤맨 방법들과 지혜들을 정리해본 것이다. 옛날부터 우리는 삶을 고통의 바다에 비유하며 '인생고해人生苦海'라는 말을 즐겨 써왔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살아온 76년간의 삶의 궤도도 끊임없이 이어지는 고난과 이의 극복과정이었다. 힘든 여정이었다. - '머리말' 중에서
삶의 고뇌를 헤쳐나가는 지혜로운 방법
책의 저자 장현갑은 서울대학교 심리학과와 동대학원에서 심리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서울대학교 심리학과 교수, 영남대학교 명예교수, 가톨릭 의과대학 외래 교수 등으로 재직했으며, 한국 명상치유학회 명예회장, 한국통합의학회 고문 등을 역임했다. 명상과 의학의 접목을 시도한 '통합의학'의 연구와 보급에 앞장서고 있다.
저자는 40년 전 그의 나이 36세 때, 불안과 우울 그리고 의욕 저조로 인해 정신 분석 치료를 받았다. 당시 그는 서울대학교 심학과 교수였고, 동시에 동대학교 의대 약리학 교실과 가톨릭 의대 생리학 교실의 외래 교수로 재직함에 따라 여러 실험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뇌과학과 정신약리학이라는 첨단 과학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나타내어 동료들로부터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그럼에도 그는 정신분석 치료를 받고 있었다.
그는 이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모든 정신적 고통은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며, 이를 해결하는 방법은 약물이나 의사도 아니며 오직 자기 자신뿐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온갖 방법을 찾아 헤매었다. 이때 그가 처음 발견한 것이 하버드 의대 벤슨 박사가 쓴 <이완반응>에서 소개된 만트라 명상법이었는데, 이는 그의 명상과는 첫 인연이었다.
그에게 정신분석 치료를 맡았던 이는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정신과 의사였는데, '도도 정신치료'라는 동양 정신의 도도에 바탕을 둔 독특한 정신치료법을 전 세계 정신의학자와 심리치료가에게 전파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이 선생님은 저자에게 "뇌과학을 전공하고 있으니, 명상이나 참선 같은 정신수련이 뇌와 몸에 미치는 영향을 과학적으로 연구해 보라"는 조언까지 해주었던 것이다.
가족여행 중 교통사고를 당하다
애리조나 투산을 출발, 로키산맥을 거슬러 캐나다 국경과 인접한 몬태나로 올라가는 여정에 나섰다. 아끼던 제자 부부에게 운전대를 맡겼다. 조지워싱턴대 미술사 석사과정에 입학예정인 셋째 딸, 군을 막 제대해 버팔로에서 영어연수를 받을 예정인 아들도 렌터카 여행에 동참했다. 식구들은 그랜드 캐니언, 옐로스톤, 빙하 국립공원 등 색다른 이국 풍경을 맘껏 즐겼다.
행복이 무너지는 것은 한 순간이었다. 핸들을 잡은 제자의 졸음 운전으로 인해 반대편에서 달리던 차와 정면으로 충돌했다. 시속 100킬로미터 이상으로 달리던 차의 조수석에 앉았던 저자는 운전석까지 파고든 범퍼에 두 다리가 끼어버렸다. 어처구니없는 실수의 대가는 너무나 컸다. 육체적인 고통과 함께 뼈가 산산조각 난 분쇄골절을 당했다.
엄청난 통증과 함께 공포가 몰려왔다. 그 와중에서도 나는 아버지였다. 본능적으로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됐다.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다가, 검고 뿌연 연기의 안쪽에서 피투성이가 된 피붙이들을 발견했다. 죽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의 주검을 곁에 둔 채, 나는 그렇게 하반신이 박살난 몸으로 1시간 동안 방치돼 있었다. 20년 전의 사고로 아내와 딸을 눈앞에서 잃고 말았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고 목발에 의지해야 하는 그에게 동정의 눈길을 보냈다. 이에 휴직을 권고하는 총장과 동료 교수들의 연민을 뿌리치고 그는 목발을 짚고 학교 계단을 오르내렸다. 여봐란 듯이 강의하고 연구하고 저술했다. 자신의 진면목을 증명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는 매우 힘겨웠다.
낡은 허물을 벗어내지 못한 인간은 허물과 함께 썩는다. 고통을 그저 걸림돌이라 여기고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고통은 우리를 더욱 얕잡아보고 더욱 잔혹하게 짓밟을 것이다. 반면 고통을 디딤돌로 삼아 더 나은 인생으로 가려는 노력을 꾸준히 보여준다면, 고통도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가져다줄 것이다. 그는 혈육을 잃었지만, 용기를 얻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지만, 진심으로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얻었다. 시련은 미래가 보내주는 선물이다.
마음의 괴로움이 몸을 망가뜨린다
한국인의 사망 원인의 절반은 암(27%)와 심장병, 뇌졸증을 포함한 순환기질병(23%)이 차지한다. 암과 순환기질환은 장기간 잘못된 생활습관을 고치지 못하거나 스트래스에 효율적으로 대처하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다. 스트레스와 스트래스를 유발하는 생활은 만병의 근원이자 우리들의 행복지수를 급격히 떨어뜨린다.
누구나 똑같이 받는 것이 스트레스임에도, 어떤 사람은 암에 걸리고 어떤 사람은 암에 걸리지 않는 것일까. 개인적 차이에 대한 해답은 인간이 비록 스트레스를 피할 수는 없어도 극복할 수는 있는 존재라는 인식에서 찾을 수 있다. 스트레스를 수용하고 대처하는 태도 여하에 따라 몸이 망가질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야말로 마음이 몸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나쁜 마음이 몸을 병들게 한다면 좋은 마음은 몸을 낫게도 하는 셈이다.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위대한 능력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든다. 이는 불교를 창시한 붓다의 가르침이다. 그런데, 현대과학은 이것이 사실임을 여러 측면에서 증명하고 있다. 최근 신경과학계에선 '신경가소성'이란 개념에 주목하고 있다. 이를 한 마디로 정리하면 머리를 쓰면 쓸수록 머리가 좋아진다는 결론이다.
악기연주가 직업인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뇌를 MRI로 촬영해 분석해보면, 언어와 음악기능을 담당하는 '브로카 영역'이라는 뇌의 부위가 일반인에 비해 월등히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 점자를 익힌 맹인들은 점자를 인식하는 집게손가락을 지배하는 뇌 부위가 눈에 뜨일 만큼 크게 확장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명상은 '마음의 근육'을 키우는 기술이라고 말한다. 위스콘신대학의 감성뇌과학 연구소장 리처드 데이비슨은 수십 년에 걸쳐 첨단영상장비로 뇌 기능을 분석한 결과, '감정을 지배하는 뇌반구'를 찾아냈다. 불안, 분노, 우울 등의 불쾌한 감정을 느낄 때는 우측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고, 반대로 유쾌한 감정을 느낄 때는 좌측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된다.
티베트 스님들을 대상으로 데이비슨 박사가 행한 실험은 가히 획기적이었다. 그는 달라이 라마의 도움을 받아 수많은 승려들의 뇌를 검사할 수 있었다. 승려들은 길게는 50년 이상 짧게는 10년 이상 명상을 지속해온 고수들이었다. 놀랍게도 이들 모두는 좌측 전전두피질이 활성화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에 반해 격무 때문에 스트레스가 심한 생명공학회사의 직원들의 뇌는 정반대였다.
인생은 결국 마음놀음이며 마음먹기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 이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덕담이다. 매사에 불평불만을 일삼는다면 뇌 역시 부정적인 생각과 감정을 처리하는 부위만 발달해갈 것이다. 더구나 비관적 사고는 급기야 우울증과 자살을 초래하는 악순환을 향해 치닫고 만다. 반면 삶에 대한 관점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면 뇌 역시 웃음과 익숙해질 것이다. 가장 위대한 혁명은 나로부터의 혁명이다.
나는 외톨이였다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주제는 '격리성장과 행동장애'였다. 그가 실제로 격리성장을 한 까닭이다. 무리와 섞이지 못하고 외롭게 자란 유년시절의 아픔이 오랫동안 뇌리에 박힌 결과다. 그만큼 고독의 체험은 뼈저린 트라우마로 자리했다. 한참 자라나는 어린 짐승이 동료 없이 혼자 생활하게 되면 인지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실험하고 살펴보고 기록했다.
결국 격리성장한 동물은 공간기억능력이 요구되는 미로 학습이나 전기충격을 재빠르게 피해야 하는 조건회피 학습에서 상당히 뒤떨어진 수행을 보인다는 씁쓸한 발견을 했다. 격리성장한 동물들은 뇌 부위에 이상이 생겼거나 신경전달물질의 대사기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반면에 낯선 동물과 마주칠 때 지나친 과민성과 공격성을 드러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는 공부를 제외한 모든 분야에서 젬병이었다. 달리기, 씨름, 팽이치기, 딱지치기, 구슬치기 등 아무것도 잘하지 못했다. 아이들만의 세계에서는 언제나 그는 골찌 수준이었다. 친구들과 신체적으로 겨루는 일은 애초에 포기하는 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중학교에 진학해선 짖궂은 선배가 힘이 센 급우와 싸움을 붙이는 통에 피투성이 굴욕감까지 맛보았다. 집 떠나 객지에서 하숙을 하던 시절이라 정말 외롭고 서러웠다. 심지어 동료 친구가 무서웠다.
번뇌가 곧 깨달음이다
마음에 드리운 검은 그림자는 자존감을 억압한다. '나'라는 존재의 존귀함과 가능성을 과소평가하게 돼 스스로를 공격하고 저주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일으킨다. 자기비하적인 평가가 지속되면 갈수록 지치고 약해지며 끝내는 스스로를 망가뜨리고 만다. 비록 뇌의 부정적 편향성이 진화의 산물이고 생물학적 뿌리라 해도, 진정으로 행복해지려면 부정적 편향성을 반드시 교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상당한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 과업이더라도 말이다. 우리 인간은 부정적 편향성에서 긍정적 편향성으로 바꿀 수 있는 위대한 힘이 있다.
번뇌란 일견 단순하다. 마음이 어느 한곳에 머물지 못하고 속절없이 방황하는 상태다. 붓다는 이러한 번뇌가 괴로움의 본질이라고 설파했다. 곧 번뇌를 없애려면 마음을 한곳에 집중시키는 훈련이 필요하다. 마치 닻을 내려 배의 위치를 고정시키듯. 마음훈련의 핵심은 흔들리는 마음을 '지금(now)', '이곳(here)'에 붙잡아두고 달래는 것이다. 마음을 훈련하지 않으면 마음은 본능적으로 과거로 달려가 불쾌한 기억을 끄집어오거나, 미래로 달려가 실재하지도 않는 것에 대한 불안에 사로잡히게 마련이다.
상처 좀 받으면 어때
N씨는 법학전문대학원에 다니는 여학생이다. 그녀는 수업시간에 과제발표를 할 때마다 극도의 불안과 두려움에 시달렸다. 중증의 사회공포증으로, 남들 앞에만 서면 사지가 마비되는 경험까지 했던 바다. 결국 자신은 공개된 법정에서 수많은 대중을 설득해야 하는 변호사는 절대 될 수 없을 것이라며 낙담했다. 그러나 8주간의 명상훈련이 끝난 후 그녀는 "이완반응 효과와 마음챙김 기술 덕분에 나는 이제 내가 봐도 놀랄 만큼 발표시간에 전혀 떨지않는다"는 기록을 남겼다.
N씨의 깨달음은 저자의 깨달음이기도 하다. 외로웠던 기억과 암울했던 기억으로 오랫동안 위축된 채 살았다.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하고 심리학자의 길을 걸으면서도, 정작 그는 자신의 '심리'를 알아내지 못해 오랜 세월 전전긍긍했다. '마음의 병이 어디서 오는지 그리고 왜 왔는지'를 지식으로는 파악할 수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치유하진 못했다. 다행히 명상이 그를 구원했다.
시베리아 북행 열차에 올라타라
베스트셀러 <무소유>의 저자인 법정 스님은 이렇게 말햇다. '헛것일 뿐인 생각에 끌려 다니지 말라', '반응하기 전에 관찰하라', '화를 내기 전에 심호흡을 하라' 등등. 이는 스님이 누차 강조한 '늘 깨어있는 삶'의 요지다. 깨어있는 삶은 욕망과 분노의 노예가 되지 않는다. 술김에, 홧김에, 내친 김에 살다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실수를 반복하고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가 말이다.
저자는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요령으로 이렇게 조언한다.
"먼저 멈춰서라(stop). 그리고 호흡하고(breath) 상황을 살펴라(notice). 마지막으로 적절한 반응을 선택하라(reaction)"
이는 약자로 'SBNR'이다. 알기 쉽게 시베리아 북행 열차를 타는 것에 비유하는데, SB는 시베리아, NR은 북행 열차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주저없이 차디찬 시베리아 북행 열차에 올라타면, 그 열이 바로 식혀질 것이기 때문이다.
살면서 좋은 기억만 갖고 살기란 몹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오르막길만 끝나면 평지에 이를 수 있다는 희망으로 한 걸음 한 걸음씩 뚜벅뚜벅 전진해야 한다. 좋은 기억만 간직하고 선한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뉴런도 감동하는 법이다. 스스로를 꾸준히 믿고 사랑하면, 뇌는 기필코 바뀐다. 이것이 바로 수행에 의해 뇌가 바뀌는 이치다.
마음챙김 명상을 하라
요컨대 명상은 우리의 인격을 성인군자 못지않게 만들어주고 우리의 인생을 날마다 행복한 시간들로 가꾸어주는 매개인 셈이다. 마음을 수행하면 뇌가 바뀐다. 명상수련이 망상과 고뇌에 찌든 우리의 삶을 보다 맑고 건강하게 치유하는 위대한 가르침이자 치료라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할까? 이제 더 이상 무엇을 주저할 것인가? 선택은 우리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