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중독자 - 멸종 직전의 인류가 떠올린 가장 위험하고 위대한 발명, 내일
다니엘 S. 밀로 지음, 양영란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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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다니엘 S. 밀로는 철학자이자 역사학자 및 진화생물학자로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삶에서 언제나 '과잉'에 대한 과잉된 강박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과잉된 감정을 실험적 역사 연구로 승화시켜 <시간을 배반하다Trahir le temps>, <역사 총서Histoire>와 <또다른 역사Alter histoire> 등을 집필했다. 이후 지구의 역사 속 생명체들이 보여준 '삶에 대한 힘'에 관심을 가지고 생물학으로 연구의 범위를 넓혔다.

 

그는 지나침의 기원을 찾아내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동료들이 거의 발을 들여놓지 않은 미지의 영역으로 여행하여 진화론을 탐구한 끝에 내놓은 보고서가 바로 이 책 <미래중독자>다. 오래 전 멸종 위기에 처했으나 5만여 년에 걸쳐 마침내 지구라는 생태계의 정점에 서게 된 호모 사피엔스의 역전을 해명하기 위해 인류 선조들이 도구나 불, 언어보다 훨씬 혁명적인 것을 발명했다는 대담한 주장을 펼친다. 이는 바로 '내일'이다.

 

책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지나침의 역사를 보여준다. 첫 번째는 거품(현재)이다. 여기서 저자는 호모 사피엔스의 특이성을 지나침, 과도함으로 정의한다. 두 번째는 뿌리(과거)다. 여기서 우리는 오히려 뇌의 지나친 성장 때문에 극도로 취약한 입장에 놓이게 된 우리 조상들을 만나볼 수 있다. 세 번째는 전이(미래)다.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동료들과 공유하는 역량은 현대인이 가진 결정적인 장점이라고 이야기하면서, 내일을 발명한 이후 호모 사피엔스는 연속적으로 거품을 만들어내는 제조자가 되었다고 밝힌다.

 

 

 

 

오직 인간만이 내일이 존재함을 안다

 

케냐와 에티오피아 중간쯤 되는 어디에선가 기적이 일어났다. 동굴에 살던 어떤 인간이 동굴에 살던 다른 인간에게 "내일 보자!"라는 인사말을 건네면서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것이었다. 지금으로부터 140억 년 전에 일어난 빅뱅 이후 그 같은 일은 그때까지 단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전자, 양자, 태양, 별, 미생물, 동물, 식물 등 모든 존재가 영원한 현재의 포로였다.


선사시대 인간이 동료에게 "내일 보자!"라고 말한 바로 그날, 역사는 '전pre미래'와 '후post미래'라고 하는 균등하지 않은 두 부분으로 나뉘었다. 스몰뱅은 "두 시간 후", "내일 새벽", "다음 주" 등처럼 예측을 시간적으로 구분하는 것을 가리킨다. 거울 효과에 의해 우리는 동일한 시간 구분이 과거에도 일어났다고 전제할 수 있다.

 
우리는 정확하게 언제, 어떤 상황에서 최초의 "내일 보자!"가 나왔는지 결코 알 수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미래라는 개념이 판세를 바꿔놓기 시작한 시점에 대한 상당한 단서를 가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만 8,000년 전, 인간 종을 구성하는 몇몇 구성원들이 그들의 고향, 즉 아프리카를 떠나 장도壯途에 오를 때가 바로 그 순간이었을 것이다.

 

 

진화론에 대한 오해

진화론과 관련해 좋지 않은 오해 가운데 하나는 바로 진화론이라는 이름에서 기인한다. 비전문가들은, 프로들도 마찬가지지만 자연선택에게는 '진화'라고 하는 단 하나의 임무만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아니, 진실은 오히려 그 반대다. 자연선택은 무엇보다도 진화를 배제하기 위해 힘쓴다. 적어도 활용성이 발견되기 전까지 변화는 자연의 으뜸가는 적이다. 다윈이 자신의 이론을 '정체론'이라고 작명하기만 했어도 과녁에서 멀리 벗어나는 일은 없었을 것이고, 따라서 오류가 확산되어 나가지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랬다면 아마 이론 자체도 전파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참고로 다윈은 <종의 기원>의 여섯 번째이자 마지막 판본, 그러니까 1872년판에서야 '진화'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동물이 섹스하는 이유

자주 인용되는 하나의 사례를 소개해본다. 수사자 한 마리가 암사자들의 규방을 차지하게 되면 제거된 수사자의 아들들을 죽이는 일부터 시작한다. 이렇게 죽임을 당하는 죄 없는 새끼 사자들의 비율은 80 퍼센트에 달한다. 신다윈주의자들은 이러한 행태를 유전학적 논리로 설명한다. 새로 나타난 수컷 알파가 아비 잃은 고아들을 제거하는 까닭은 이전 우두머리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자식들을 보호해주고 먹여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덜 미래지향적인 설명도 가능하다.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한 암사자는 배란을 하지 못한다. 새로 권력을 차지한 수사자는 자신의 리비도를 충족시키기 위해 아예 새끼들을 죽여서 암사자를 다시 발정이 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처럼 수사자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아빠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짝짓기를 하기 위해서 손발에 피를 묻히는 것이다.

 

"나는 나의 게놈이 살아남도록 하기 위해 짝짓기를 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섹스를 할까? 흔히 짐승은 번식을 위해 섹스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 섹스를 한다고 생각한다. 번식은 단지 쾌락의 부산물 정도로 치부한다. 과연 그럴까? 아니다, 이러한 생각은 틀렸다. 오직 인간만이 종족 보존을 위한 번식이라는 숭고한 사명을 지키고자 소위 의무방어전처럼 섹스를 한다.

 

 

동물에게는 오늘만 존재하는가?

그렇다. 그리고 동물들만 그런 것은 아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요소들은 온/오프/온/오프/온의 톱니바퀴에 물려 돌아가다가 결국 최후의 오프상태가 된다. 우리는 우주 전체에서 계획을 세우는 역량을 갖춘 개체라고는 단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하나의 전자, 하나의 뉴런, 한나의 단백질, 하나의 미생물, 하나의 달팽이, 귀여운 항 명의 아기, 이 모든 것들은 예외 없이 '지금 여기'의 프레임에 갇혀 있다.

 

동물들이 현재에 닻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 그들에게 기억이 없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주인을 반갑게 맞는 개가 그 사실을 입증한다. 그들의 현재는 베르그송식의 시간 개념에 상응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아코디언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현재는 때로는 오르가슴 순간처럼 한껏 수축하는가 하면, 때로는 두통이 올 때처럼 늘어나기도 한다.

 

물론 겨울을 준비하는 동물들도 존재한다. 그렇지만 이는 계획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DNA에 그렇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앞날을 예측하는 동물은 오직 인간들뿐이다. 혹시라도 말을 할 줄 아는 두루미를 만나 녀석에게 어디로 가는 길이냐고 묻는다면, 녀석은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보고는 잠시 숨을 가다듬고서 간단하게 대답할 것이다. "나는 날고 있어"


 

뇌에 낀 거품

 

100만 년 동안 호미니드의 뇌는 원숭이의 뇌가 6,500만 년 동안 커진 것보다 네 배나 더 커졌다. 여섯 살이 될 때까지 우리 뉴런의 40퍼센트는 파괴된다. 이 놀라운 가지치기가 이루어진 후 뇌는 전체 체중의 2퍼센트 가량을 차지하게 되는데, 무게는 겨우 2퍼센트에 불과하면서 몸 전체가 소비하는 열량의 25퍼센트를 취한다. 그러니 무제한적으로 추억을 저장하려면 얼마나 많은 양의 에너지를 필요로 할지 상상해보라. 그렇게 될 경우 인간은 제아무리 더 큰 것, 더 위대한 것만 기억한다고 할지라도 더 이상 뇌를 유지할 수 없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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