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 - 북아일랜드 캠프힐에서 보낸 아날로그 라이프 365일
송은정 지음 / 북폴리오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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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고 색다른 환경은 사고의 전환과 흥분, 해방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러는 동시에 딱 그만큼의 두려움이 매일 밤 다른 얼굴로 나를 찾아왔다. 다름에서 비롯된 차이를 편견 없이 받아들이기에 나는 이미 바위처럼 단단히 굳어 있는 사람이었다. 매순간 부딪쳤고, 아팠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어제의 나는 오늘의 나와 미묘하게 달라져 있었다. 하지만 아직은 그 미세한 변화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것이 앞으로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갖게 될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지난한 과정을 통과하고 나면 보다 만족스러운 나로 변모해 있을 것이라 기대할 뿐이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북아일랜드 캠프힐에서의 1년 생활

 

책의 저자 송은정은 짧은 직장생활을 거쳐 서울의 낡은 골목에서 여행책방 일단멈춤을 운영했고, 지금은 매일 안방 옆 '집업실' 책상으로 출퇴근하며 여행에 관한 이야기를 짓고 있다. 무엇이 되었든 글 언저리에서 오랫동안 살아가고 싶은 그녀는 영화 <런치박스>의 대사처럼 때로는 잘못된 기차가 우리를 바른 목적지로 데려다줄 것이라 생각한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다 그러하듯, 출근길 지옥철과 야근, 월말이면 왜 그렇게 통장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돈이 많은지 등과 같이 마음 한 켠에 상수常數의 불만을 품고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럼에도 이러지도저러지도 못한 채 늘 퇴사와 이직을 고민하는 게 직장인의 숙명일까? 저자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가장 원하는 삶의 방식이 뭔지도 모르고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어제의 나'를 오늘 또 반복한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정보를 찾던 중 북아일랜드에 위치한 장애인 공동체, 캠프힐에 대해 알게 되고 그곳에서 1년 간 살아보기로 결심, 그곳의 장애인들을 보살피며 생활하는 자원봉사자인 코워커에 지원했다. 일상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이자 지금과는 다른 삶이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긴장감 속에서 캠프힐의 문을 두드렸다.

 

이곳은 일일이 사람 손이 필요하며 누군가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해내고 부르는 것이 일상인 곳이었다. 데드라인이 존재하지 않는 느긋한 시골 생활, 지친 심신을 위로해 줄 유기농 식단 그리고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장애, 성별, 인종, 국적, 언어, 문화, 사고방식 심지어 날씨와 식습관까지 완전히 뒤바뀐 채 저자는 느리고 서툴지만 삶을 천천히 음미하는 법을 배우며 인생의 소중함도 경험한다.

 

 

 

 

저자가 근무하던 직장은 인문역사사를 만드는 작은 출판사였다. 유일한 직원이었지만 담당했던 편집 업무는 만족스러웠다. 월급이 턱없이 적었지만 책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인해 물질적인 공허함을 채울 수 있었지만 이런 그녀의 순진함은 반 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직장인이라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퇴사와 이직이라는 고민이 슬그머니 다가왔던 것이다. 책은 3부에 걸쳐 총 33개의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다. 저자가 경험한 캠프힐에서의 1년 생활을 따라가보자.

 

 

만나본 적 없는 사람들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캠프힐은 인지학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철학을 기반으로 카를 쾨니히가 설립한 장애인 공동체다. 쉽게 말하자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려 사는 작은 마을인 셈이다. 영국과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세계 각처에 이런 형태의 공동체가 수백여 개 산재해 있다. 이곳에서 일하는 자원봉사자를 코워커라고 부른다.

 

"안녕하세요. 새로 온 코워커시죠?"

 

캠프힐에서는 장애인을 빌리저villager 또는 레지던트resident라고 부른다. 마을의 주민임을 의미한다. '토마스, 헬렌, 안나, 크리스틴', 하우스패런츠인 카인은 한 사람씩 이름을 짚어가며 각자의 성격과 특징에 대해 들려주었다. 가족 관계, 나이, 참여하는 워크숍. 그리고 개별적인 장애 등 기본적으로 숙지해야 할 내용들이었다. 카인은 아주 천천히, 명확하게 단어를 발음하고 설명했으며,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 반복해서 확인했다.

 

자리를 비운 빌리저들과 곧장 인사를 나눌 수는 없었다. 카인이 들려준 정보로 그들을 상상해 보았지만 그럴수록 실체는 더욱 의뭉스러웠다. 마치 설화 속 주인공들처럼 점점 흐릿한 안개 속에 숨어들었다. 무의미한 상상력은 접어둔 채 아직 만나본 적 없는 이들의 이름을 마음속으로 여러 번 불러보았다.

 

 

자이언트 코즈웨이로 여행하다

 

북아일랜드 북동쪽 끝에 위치한 자이언트 코즈웨이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명소이다. 당일치기 여행으론 꽤나 먼 곳이었지만 저자를 포함한 다섯 명은 8월 한 달간 프로모션 요금을 시행하는 로컬 버스 회사의 혜택을 누리기 위해선 반드시 다녀와야 할 이유였다. 2층 버스에 몸을 싣고 5시간 만에 도착했다. 유명 관광지라는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호젓했다.

 

자이언트 코즈웨이는 약6천만 년 전의 화산활동으로 주상절리가 생성되어 있었다. 무려 4만여 개의 현무암 육각 기둥이 해안가 주변으로 펼쳐져 있었다. 제주도를 여행 다녀온 사람은 주상절리의 풍광을 쉽게 이해할 것이다. 마치 벌집의 단면을 닮은 육각형 기둥은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다듬은 듯 정교했다. 근처 숙소에서 하룻밤 묵고 싶은 욕망이 간절했지만 내일의 일과가 기다리기에 마지막 환승 버스에 올라탔다.

 

 

 

 

안나 할머니

 

어쩐 일인지 안나 할머니가 저자의 손을 이끌고 자신의 방으로 안내했다. 침대에 걸터앉은 할머니가 저자에게 보여준 것은 앨범이었다. 뜬금없는 행동이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그녀의 손가락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투명한 접착 비닐 아래 보관된 사진 속 주인공은 젊은 시절의 안나였다.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그녀를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깊은 눈매와 보조개가 팬 미소만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안나와의 대화는 수신이 약한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는 것과 닮았다. 귀를 바짝 세운 채 슬금슬금 다이얼을 돌리다 보면 흐릿했던 목소리가 점차 또렷해진다. 물론 안나는 말을 하지 않았으므로, 대신 자신의 방식대로 신호를 쏘아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몇 가지 무언의 신호를 공유했다. 하지만 목소리로 전달되는 의사소통에 익숙한 저자는 한동안 그 사인을 놓치거나 흘려보내기 일쑤였다.

 

 

나 자신을 다시 깨닫다

 

집 떠나 또래의 친구들과 어울려 살고 잇는 20대 코워커들에게 술이 없는 밤이란 정말 시시하기 짝이 없다. 수확한 채소와 농기구를 보관하는 창고이자 휴식 공간인 랜드빌딩은 마을 안쪽에 위치해 있어서 음주하기엔 최적의 장소였다. 소란을 피워도 괜찮고 열댓 명의 코워커들이 다 함께 둘러앉을 수 있을 만큼 넓기 때문이다. 하지만 갈수록 이런 자리가 불편해졌다. 혼자 만의 고요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스토아 안의 카페는 티타임을 가지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대기 줄의 끝자락에 서 있는 저자의 뒤로 마그다가 따라 섰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었다. 작은 마을이지만 일하는 워크숍이 다르면 좀처럼 만나기가 어려운 게 코워커 사이였다. 마침 마주친 김에 오늘 밤 술자리에 올 것인지 물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이 돌아왔다.


"방에서 쉬려고. 사람들이랑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있어. 안티 소셜 상태랄까. 요즘이 그래"

 
우연히 펼친 페이지에서 인생의 문장을 마주했을 때처럼, 자신의 심정을 정확히 대변한 마그다의 말은 위로 그 이상이었다. 아차 싶었다. 스스럼없이 자신을 드러내는 그녀와 달리 속내를 감추고 숨기는 데 늘 골몰했던 저자였기에 말이다. 스스로를 안티 소셜이라 비꼬는 그 당당함이 오히려 마그다를 더욱 이해하고 싶어졌다.

 

서둘러 다가오면 뒷걸음치는 사람, 가끔 홀로 있는 시간을 즐기는 사람, 고독한 시간만큼 함께하는 순간 또한 소중히 여기는 사람. 그게 바로 나라는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캔들마스의 의미

 

얕게 패인 땅 속에 양초 하나를 반듯이 세우고 불을 밝힌 후, 일용한 양식을 기거이 내어준 땅에게 감사의 마음을, 어김없이 찾아올 봄에게 반가움의 인사는 건네는 노래를 합창한다. 사람들은 자리를 옮겨 채소밭과 허브가 자라는 화원에서도 계속됐다. 캔들마스는 과수원, 축사를 순례하며 초를 켜고 다가올 봄을 축복하는 날이었다.

 

눈을 껌뻑이는 소들을 향해 노래를 불러주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니. 이따금씩 그들이 보여주는 이런 작은 마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노래가 끝난 뒤 하우스패런츠 대니가 스피치를 위해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All the difference are here"


이는 저마다 다른 이들이 지금 이곳에 함께 있다는 뜻이다. 이 말이 새삼스레 감동으로 다가왔다. 지금처럼 엉터리인 채로 살아도 얼마든지 괜찮다는 것을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유난히 키가 작은 사람과 유난히 키가 큰 사람, 혼자 있을 때 더욱 편안한 사람, 말이 없는 사람,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사람,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사람. 그 모두가 여기 함께, 그리고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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