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라는 참을 수 없는 농담 - 짧지만 우아하게 46억 년을 말하는 법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지음, 이상희 옮김 / 추수밭(청림출판) / 201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다수 역사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리고 인간이 등장했다." 우주가 인류를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 같은 오만한 말이다. 그러나 역사란 그런 것이다. 역사는 누가 어디서 무엇을 이야기하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역사란 존재하지 않는다. 오직 나와 당신의 다양한 역사들만이 존재한다. - '여는 글을 대신해' 중에서

 

 

이기적인 수많은 역사들만이 존재할 뿐이다

 

책의 저자 알렉산더 폰 쇤부르크는 '당신과 나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글쟁이'로 소개한다. 그는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의 베를린판 편집자와 <쥐트도이체자이퉁>의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지금은 <빌트>에 글을 쓰고 있다. 지은 책들 가운데 <폰 쇤부르크 씨의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법>, <폰 쇤부르크 씨의 쓸데없는 것들의 사전> 등이 한국에 소개되었다.

 

역사는 객관적인 진실을 붙잡는 학문이 아니다. 사실로 가득한 서류철보다 동화 속에 더 많은 진실이 응축되어 있을 때도 있다. 기존 질서에 도전하는 아담과 이브의 이야기, 죽음이라는 자연법칙을 깨부수려고 길을 떠나는 인간을 다룬 <길가메시 서사시> 등이야말로 가장 진실한 고백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에게 중요한 것은 역사라는 학문보다는 그것이 주는 치유 효과에 있다.

 

 

 

 

교역, 종교, 과학의 시너지 효과

 

16세기와 17세기, 기독교 국가의 항해자들은 경제나 제국주의적 이해관계만이 아니라 과학과 종교적인 이익도 함께 추구했다. 정복전쟁이 벌어지면 늘 출정과 탐험, 선교가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과학자와 성직자가 함께 배에 오르는 것이 원칙이었다.

 

'구원'을 전파하려는 기독교인들의 갈망은 과학과 교역의 힘과 결합되어 세계를 정복하는 과정에서 교역, 종교, 과학이라는 세 가지 요인이 시너지 효과를 발휘했다. 유럽의 아메리카대륙 진출, 지구의, 비교적 정확한 세계지도, 우편, 휴대용 시계, 시계탑, 인쇄술, 화약 등 그 성과물을 일일이 열거하기가 힘들 정도다. 하지만 화기火器의 등장으로 전쟁은 전쟁기계가 되었고 병사들은 전쟁의 부속품으로 전락했다.

 

 

바스티유 감옥의 습격

 

1789년 7월 14일, 바스티유 감옥이 습격당했다. 하지만 그날 이 감옥에는 열 명도 채 안 되는 죄수들만이 있었다. 성추행범 솔라제 백작과 스스로 카이사르라고 주장하는 긴 흰 수염의 아일랜드인도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긴박감 넘치는 하루였으리라 생각되지만, 그날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예배에 참석했고, 푸짐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저녁에는 일기장에 "리앙Rien", 즉 아무 일도 없었다고 적었다.

 

역사에는 일종의 가속 추진제인 빅뱅의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같은 순간들을 알아채는 때는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이다. 기후연구의 권위자 한스 요아힘 셸른후버는 "기후변화는 슬로모션으로 나타나는 소행성 충돌에 비견할 현상이다"라고 말한다. 인간의 반사적 방어행동이 직동하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가 결정된 대전환의 순간들' 중에서)

 

 

'도시'에서 멀어지는 현대의 도시들

 

현대의 대도시에는 더 이상 중심이 없다. '첸트로 스토리코'와 같이 관광객들에게 보여주는 역사적 중심지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반면 진짜 삶은 다른 곳에서 펼쳐지는데, 중심의 주변부에 위치한 수많은 쇼핑센터들이 그 무대가 되고 있다. 이제 도시는 '다중심적'으로 변했다. 이로써 한때 도시 삶의 근본이었던 요소들도 옛날이야기가되어 버렸다.  

예전만 해도 사람들은 도시를 동경했다. 도시야말로 문화의 본고장이었다. 예의바름을 뜻하는 '폴리테스politesse'도 폴리스polis(도시)에서 비롯된 말이다. 과거에는 시골이라고 하면 투박하고 교양 없다는 이미지가 가장 먼저 떠올랐다. 이제는 그 반대가 되었다. 역사는 언제나 연속적으로 전개되는 것만은 아니다.

 

 

민주주의

 

우리는 민주주의가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처칠이 보여준 통찰 이후로 우리는 민주주의가 모든 보잘 것 없는 정부 형태 가운데에서 그나마 가장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민주주의는 최후의 진실이란 여전히 베일에 싸여 있으며 내가 남보다 잘 모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민주주의 개념이 무수히 오용되고 민주주의적이라고 불리는 많은 것들이 초라한 모습을 띠고 있을지라도 민주주의는 어쩌면 자유 다음으로 가장 아름다운, 또 가장 겸허한 인류의 이념일지도 모른다.

 

 

역사 속의 악당

 

악을 멀리 밀어내고 싶은 욕구는 인간적이다. 현대에 들어서는 악에 병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려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충격적인 범죄가 발생하는 즉시 우리들은 범인에게 '미쳤다'고 외친다. 이렇게 일단은 그 범죄자를 우리로부터 멀찌감치 떨어진 안전한 거리에 두게 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대부분의 범죄는 당신과 나와 그다지 다르지 않은 인간들이 저질렀다.

 

히틀러, 나폴레옹, 얀 판 레이덴, 이디 아민, 폴 포트 등과 같은 이들은 비정상적인 인물들이 아니다. 이들은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보통사람 모두가 동의한 일에 맞서는 힘겨운 선택을 해서라도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했던 이들이야말로 역사적으로 예외적인 존재였다.

 

 

모든 역사에는 끝이 있다

자유를 옹호하려면 자신을 가장 짜증나게 하는 사람들의 자유를 지키는 데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자유주의가 자신을 선전하는 유일한 방법은 자유주의적인 삶의 방식이 얼마나 매력적인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자유주의가 여타 이데올로기처럼 타인의 견해를 강제로 변화시켜 자신의 우월함을 과시하기 시작하거나, 나만이 옳다고 주장하며 반대자들을 동화시키려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자유주의라고 할 수 없다.

 

또한 자유주의적, 쾌락적 인생관을 공유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들을 향해 바보나 아웃사이더라고 손가락질한다면, 이야말로 지극히 반자유주의적인 태도다. 이는 교조주의적인 자유주의로 귀결되고 결국 스스로를 부정하는 일이 된다. 우리는 함께 살기 위해 한국으로 이주해온 온건한 무슬림들에게 그들의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해선 안 된다.

 

 

잘못 알았던 역사적 진실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면 되잖아요"와 같은 말을 한 적이 없다. 이 말이 처음 등장한 기록은 장 자크 루소의 <고백론>에서였다. 루소가 그 책을 쓴 시기는 마리 앙투아네트가 열 살 무렵으로, 당시 그녀는 합스부르크가 공주로 오스트리아 푸쉴 호숫가에서 구김살 없이 뛰놀고 있던 때였다. 그 말은 단지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

 

나폴레옹은 키가 작았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키는 169센티미터로 당시의 프랑스 남성 평균치를 웃돌았다. 그의 초창기의 애칭 중 하나였던 '작은 하사관'은 단지 호감의 표시였을 뿐, 그의 기럭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나폴레옹은 키가 큰 장교들로 구성된 황실 근위대에 둘러싸여 있기를 좋아햇다. 아마도 이런 이유에서 키가 작다는 소문이 나돌았을지도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