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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계는 어떻게 경제를 바꾸는가 - 위기의 한국경제 구조개혁과 성장의 조건
조권 지음 / 흐름출판 / 2017년 6월
평점 :
대우조선해양과 같은 회계 스캔들은
주식 또는 채권 가격 하락, 관련자의 행정처분과 형사처벌에 그치지 않는다. 이런 대기업은 종합주가지수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기에 전체 주가에
악영향을 미친다. 주가가 하락하며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이 요동쳤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대형 회계 스캔들 때문에 투자자들은 상장회사가 공시하는
영업실적을 믿지 못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예 주식은 투자대상이 아니라고 외면하거나 주식에 투자할 때에는 소위 '따끈한 내부정보'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분식회계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을 초래한다
또 다시 대형 회계부정 스캔들이 터져 나왔다.
2016년 12월, 검찰은 안진회계법인 소속 전현직 공인회계사 네 명을 외부감사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하고 해당 법인에 대해서도 양벌규정에
따라 기소했다. 담당 회계사들은 피감사 회사의 분식회계를 묵인했기 때문이었다. 이 회사는 바로
대우조선해양이다.
2016년
국제경영개발원이 발표하는 회계투명성 순위에서 우리나라는 평가대상 61개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낮은 회계투명성은 우리나라 기업가치가 국제적으로 저평가되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현상으로 이어져왔다. 꼴찌 수준의 회계투명성을
우리나라 경제력 수준인 세계 10위권으로 올린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회계정보는 경제적 의사결정의 기준이다. 산업 개편과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는 지금, 한정된 재원과 인력을 어디로 집중할지 방향을 알려주는 경제의 나침반, 회계투명성이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책의 저자
조권은 공인회계사로 1996년 삼일회계법인에 입사, 기업회계, 회계감사, 세무회계, 기업 구조조정 업무, 인수합병
업무 등을 수행했다. IMF 외환위기 시절, 몇몇 기업의 워크아웃 프로그램을 마련하는 데 참여했다. 2001년 금융감독원으로 이직 후 회계감독,
제재 심의, 기업공시 심사, 저축은행 및 손해보험사 검사 업무 등을 맡아 주로 회계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상장회사와 금융회사의 관련 법규 위반
여부를 심사해왔다.
15년 이상 기업회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어왔고, 기업범죄 수사와 관련하여 검찰청 파견 근무를 하기도 했던 그는 노스웨스턴대학교 법학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과정을 이수했고, 워싱턴 D.C.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다. 금융
선진국들이 회계투명성 개선을 위해 취하고 있는 절차를 관찰하고 한국 기업의 회계투명성 제고를 위한 방안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예금 투자자들의
분노
2011년 한국 경제의 화두는 단연코
저축은행의 뱅크런 사태였다. 그해 1월 삼화저축은행의 영업정지 사태를 시작으로 2월에는 국내 최대 저축은행이었던 부산저축은행 계열 5개
저축은행도 영업정지되었다. 그해에만 총 16개의 저축은행이 영업정지 당했으며, 2012년에도 8개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되었다. 은행은 망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믿음의 대가 치고는 예금자들에게 너무나도 잔인했던 사태였다.
어쩌면 금융감독기관의 안일한 태도가
사태를 이렇게 크게 키운 것은 아닐까? 원래 상호신용금고였던 명칭이 논란 끝에 저축은행으로 변경되면서 이런 사태를 예고했던 셈이다. 은행은
예금자의 돈을 비싸게 운용해서 금리 차익을 먹는 사업을 주로 한다. 이를 예대마진이라고 한다. 저축은행은
시중은행보다 높은 금리를 내세워 거액의 예금을 유치한 후 이를 다소 신용이 떨어지는 기업이나 개인 또는 프로젝트에 비싸게 대출하는 영업방식을
택했던 것이다.
고위험 고수익 사업이었던
프로젝트파이낸싱(PF)대출에 저축은행들이 앞다투며 과도하게 투자했기 때문에 마치 도미노 현상같은 부실사태가 초래되고 말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PF사업은 유지하기 어렵게 되었음에도 저축은행들은 제대로 공시하지 않고 회계분식을 통해 예금자와
후순위채권자를 모집했다.
이 사태로 인해 무려 피해자는 7만
4천여 명, 피해금액은 2조 6천억 원 정도였다. 당시 예금보험공사는 27조 1천억 원을 공적자금으로 투입하고 이중 9조 7천억 원을 회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적으로 부족한 차액은 국민의 부담으로 남는다. 예금보험공사는 정부가 주주이자 채권자이며 정부가 손해를 보면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하기 때문이다. 재래시장에서 힘들게 장사해 모은 돈을 단순히 고금리라는 이유로 저축은행에 맡겼다가 법적으로 보장된 예금만 회수하고 나머지는
한순간에 그냥 날려버렸으니 예금 투자자들의 분노는 극에 달했던 것이다.
어떻게 부정을
저지르는가?
문제는 이런 사태로 인해 사회 전체에
경각심을 불러와 더 이상 재발되는 일이 없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부정이 발생되고 있다는 데 있다. 분식粉飾은
말 그대로 실제보다 멋있게 보이려고 마치 얼굴에 분칠 하듯 거짓으로 꾸민다는 뜻이다. 진한 화장으로 민낯을 숨기는 것처럼
말이다.
부정을 저지르는
이유
외부자금의 유치를 위해
주가의 안정과 상승을 위해
구매처와 신용거래의 유지하고자
전문경영인의 이익 극대화(성과보수와 연임 목적)
배당의 안정성 확보를 위해
노사협상용
정치권 로비자금을 마련코자
절세 등 세무상 목적을 위해
회사 자금의 횡령을 은닉하고자
반면에
역逆분식을 하는 경우도 있다. 영업실적의 결과가 좋은 경우 근로자들은 자신들의 노력에 의해 실적 개선이
이루어졌다고 노사협상에서 임금인상을 요구하기 때문에 오히려 실적을 줄이거나 나쁘게 만드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 미래 실적이 저조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임금인상은 부담이 될 수 있다. 특히 대주주는 임금인상 요인이 드러나지 않게 재무실적을 조작할 동기가 크다. 이런 경우 경영진은
매출 또는 이익을 축소하려는 회계분식을 벌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유형들
양도성예금증서를 빌려서 제시하고 반환받는 방법
재고자산 과대계상, 특히 해외공장의 실사가 어렵다는 점을
악용
채권채무 조회서를 위조해 제출
금융거래 조회서를 위조해 제출
감사인과 내부자 간의
공모
2016년 5월 말 회계감사업계가 발칵 뒤집어졌다. 그동안 말이 많았던
'도덕적 해이'를 보여준 사례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반인들도 놀랐다. 최은영
한진해운 전 회장이 삼일회계법인 안경태 회장과 전화 통화 후 보유 중이던 한진해운 주식을 모두 팔아치웠다는 뉴스
때문이었다.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동단속반은 최 전 회장과 안 회장의 통화 내역을 확인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검찰은 아래와 같이
발표했다.
"최 전 회장은 안 회장과 통화 후 바로 직원에게
'보유 중이던 주식을 매각하라'는 의미의 메시지를 보냈다"
삼일회계법인은 국내에서 제일 큰 회계법인으로 국내에서의 영향력도 막강하다. 그것도 공모한
당사자가 회계법인의 실무자도 아닌 회장이었다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던 것이다. 당시 한진해운의 예비실사를 맡았던 삼일 측의 결과를 미리
알려준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었다. 이에 공인회계사의 기본적 윤리가 완전히 무너졌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왜 '공인'이라는 타이틀을
부여했겠는가? 이는 '공익公益'이라는 대의를 지키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김우중 회장의 '세계경영', 회계부정으로
출발했다
1993년 초,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세계경영'을
선포했다. 그가 내뱉은 말이 바로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였으며, 같은 제목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되어
서점가를 점령했었다. 젊은 청춘들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에게 큰 꿈과 희망을 선물했지만, 이는 희대의 사기극이었다. 결국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한 대우호는 '대마불사大馬不死'라는 말이 무색하게도 침몰하고 말았다. 아마도 한국경제에 IMF 위기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이 사기극은 더 오래 지속되었을 것이다.
김우중 회장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세계경영의 꿈은 실패로 끝났다. 대우그룹은 단기차입금을
이용하여 수익성이 불확실한 동유럽에 집중투자를 지속했는데 해외 공장인수 또는 해외법인 인수가 많았다. 수익이 충분히 발생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했다. 따라서 유동성 부족 사태가 언제 터질지 몰랐다.
이에 대우그룹은 이를 모면하기 위해 분식회계를 선택했다. 금융기관으로부터 자금을
지속적으로 차입하기 위해 자산이 양호하고 유동성이 충분하며 이익이 발생하는 것으로 재무제표를 조작했던 것이다. 항간에 떠도는 대우그룹 유동성
위기설은 진실이었다. 금융감독원의 조사결과 대우그룹의 총 분식규모는 22조 9천억 원이었다. 불행하게도 이런
엉터리 기업을 살리려고 국민들의 혈세인 공적자금이 막대하게 투입되었다.
분식회계에 취약한
기업지배구조
2000년 10월, 대우그룹 사태의
발생 원인을 살펴보고 제도개선의 필요성을 파악하기 위해 국회 정무위원회가 소집되었다. 정무위에서 민주당 소속 모 국회의원이 산동회계법인 대표에게
"분식회계를 근절하기 위해 어떤 조치가 필요하냐?"고 질문하자 회장 1인 지배체제가 확고한 상황에서 회장의 지시를 거역할 수 없으므로 이런 구조
하에선 회계법인도 분식회계의 적발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했다.
그리하여
우리나라도 사외이사제도 등을 도입했다. 그러나 도입 당시부터 업계의 로비활동에 의해 사외이사나 감사위원 관련
제도는 지배주주 또는 기업 총수의 전횡을 제대로 감시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 즉, 관련 법률상 지배주주가 독립성이나 전문성과 무관하게 선택한
인사들이 사외이사나 감사위원으로 선임될 수 있었다.
이처럼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은 선임 단계에서부터 견제기능을 발휘할 수 없는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배주주 등의 전횡을 막아내는 이사회,
감사위원회, 감사의 기능이 마비되어 재벌 관련 스캔들을 다른 나라에 비해 많이 걸러내지 못하는
실정이다.
회계감사의 부끄러운 실상
일국의 국가경제에는 다양한 산업이
존재하고 각각의 산업 내에 수많은 기업들이 경쟁을 벌인다. 그런데, 회계법인들이 와부감사를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각 산업과 개별 기업의
특수성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즉 경험과 지식이 풍부하지 않은 회계사나 보조들이 감사에 투입되면 결코 제대로 된 감사 업무를 수행할 수
없다.
최근 수주산업에 속하는 회사들이 일시에 거액의 영업손실을
인식한 사태를 맞이했다. 이를 이른바 회계절벽 또는 빅 배스(Big Bath)라 불른다. 빅 배스란 목욕을 해서
때를 씻어낸다는 뜻으로, 회사들이 과거의 부실요소를 한 회계연도에 모두 반영하여 손실이나 이익규모를 있는 그대로 회계장부에 드러내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빅 배스는 그동안의 과오를 과거의 CEO에게 돌리고 앞으로의 실적향상 같은 긍정적인 요소는 현 CEO의 공으로 돌릴 수 있기
때문에 회사의 CEO가 교체되는 전환기에 종종 일어난다. 관련 회사로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삼성엔지니어링 등이
거론된다.
이런 회사들의 재무제표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주산업의 특성을 속속들이 알아야 한다. 주문형 생산방식, 고부가가치, 쌍방독과점, 공사후반기 수주금액의 집중적 회수 등의
산업적 특성, 글로벌 경기침체, 유가하락 등에 따른 인도 지연 또는 대금결제 지연 등 외부적 위험요인, 기술 및 경험 부족에 따른 잦은 설계변경
및 공정 지연, 과도한 저가수주 경쟁 등 내부적 위험요인 등에 대해 기존 회계감사팀의 전문적 인식이 부족했다는 평가다.
사실 국내 회계법인 감사인력의
이직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신입회계사의 80% 정도가 재직하고 있는 대형 회계법인의 이직률이 높아 전체
이직률을 좌우하고 있다. 업계 소식에 따르면 삼일, 안진, 삼정, 한영 등 4대 회계법인의 이직률은 20% 내외다. 4대 회계법인 구성원의
60% 이상이 경력 5년차 이하다. 경력 5년 이상의 회계사는 결국 관리자라는 의미다. 감사현장을 누비는 회계사의 전문성이 어느 정도인지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직률이 높은 이유는 업무량에 비해 위험은 크고 보수가 적으며 회계사 개인의 성장이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2016년 3월 말 기준 등록 회계사
중 회계감사를 업무로 하지 않고 있는 회계사는 총 등록회계사의 39.8% 수준이다. 그런데 이러한 휴업회계사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보고한 회계법인의 자료에 따르면 2013년 3월 기준으로 36.5%, 2014년 3월엔 37.5%가
휴업중이다. 대형 회계법인은 회계감사와 기타 업무로 나누어 수행하므로 실제론 휴업회계사가 이보다 더 많다고 보아야 한다. 즉 기업체나 학계에서
활동하는 회계사가 많은 추세이다. 이는 회계법인이 회계사들의 확보와 유지를 위한 품질이 떨어진다는 반증이다.
회계가 투명할수록 국가의 품격이 높아진다
회계정보는 경제적 의사결정의 기준이 된다. 회계정보의 질이 높으면 기업의 경쟁력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고, 어떤 사업에 투자할지 어떤 사업을 접을지 적절한 판단이 가능하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를 맞아 산업 개편과 구조조정을 앞둔
이때 한정된 재원과 인력을 어디로 집중할지, 어떻게 구조조정 대상 기업을 선정할지 방향을 알려주는 회계투명성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