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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요 - 단 하루도 쉽지 않았지만
케리 이건 지음, 이나경 옮김 / 부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나는 수천 가지 이야기를 들었지만,
이 책에는 그들이 꼭 나누고 싶어 한 이야기만 담았다. 어떤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 묻어 둬야 하지만, 어떤 이야기는 모두에게 전해야 한다는 것을
그들이 나보다 먼저 알고 있었다. 그들이 바란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살아야 할 몇 년, 몇십 년 동안 그들이 삶의 끝에 와서야 비로소 배운
것을 깨닫고 발견하는 것이다. - '삶의 끝에서 글로리아가 말했다' 중에서
삶의 끝자락에서 삶을
성찰하다
저자 케리
이건은 뉴욕 주 롱아일랜드에서 태어나 워싱턴대학교와 리대학교에서 학사 학위, 하버드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결혼 후 첫 아이를 출산하면서 투여한 진통제의 부작용으로 몇 달간 환각, 망상, 자살충동, 정신분열 등의 정신질환 증세를 겪었고, 완치 후에도
트라우마로 인해 오랜 시간 깊은 우울감과 상실감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정서적 위안을 주는 호스피스 채플런으로 일하며 다양한 환자들을 만나게 된다. 대학 신입생 시절 총기 사고로 반신불수가 된 청년, 평생
아들의 출생의 비밀을 감춘 할머니, 자신의 뚱뚱한 몸을 혐오한 여인, 어려서 죽은 아들 때문에 몇 십 년 동안 괴로워한 할아버지 등 이들은
삶의 끝에서 각자의 후회와 깨달음, 그리고 놀랍게도 삶에 대한 희망을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이 죽기 직전에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로 현명해지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영혼이 치유된다는 것만은 잘 안다. 실제로 내가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이 겪었던 것처럼,
내게도 어떤 일이 있었다. 호스피스에서 일하기 전까지는 지금 내 삶을 규정하게 된 이 일을 수치스럽게 여겼다. 나는 망가지고 절망했다. 내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 파괴되었으므로 다시는 예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으며,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호스피스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까지만
해도, 사람은 모두가, 말 그대로 모두가 상처받고 애처로운 존재임을 알지 못했다" - 14~15쪽
환자들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삶을 반추하면서
전하는 이야기에 깃든 치유의 힘을 직접 경험한 그녀는 그러한 감동적인 이야기와 삶의 끝에 와서야 비로소 깨달은 그들의 통찰을 이 책에
소개하고 있다. 이는 고달픈 삶에 지치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잃고 고민하는 이들에게 진실한 위로와 살아나갈 용기를 줄
것이다.
영화의 한 장면에선 환자가 숨을
거두기 직전에 호스피스 채플런이 등장해 마지막 순간에 털어놓는 고백을 들어 주고 슬퍼하는 가족을 위로한다. 마침내 숨을 멈추고 나면 눈을 살며시
감겨 준다. 하지만 이는 허구다. 호스피스에서 '영적 간호'라고 부르는 일 대부분은 환자가 사망하기 전 몇 주, 몇 달, 혹은 드문 경우 몇 년
동안 이루어진다. 그래서 저자도 직접 목격한 호스피스 환자의 죽음은 손에 꼽을 정도라고 밝힌다.
아들의 출생 비밀을
평생 감추다
"내가 최고로 잘한 일인데, 남들이
손가락질할까 봐 평생 입을 다물고 살았어요"
세상엔 참 비밀이 많다. 환자들과 그
가족들이 채플런에게 털어놓은 비밀도 있다. 대부분은 말해 준 사람의 과거, 그들이 저지른 부끄러운 일, 그리고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다고 믿었던
일 등이다. 이런 비밀의 핵심은 바로 수치심이다. 사실 비밀이 자신과 남을 지켜 준다는 그런 믿음은 너무나
비인간적이라 남에게 노출할 수 없다는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환자 글로리아는 "열아홉 살 때 애를
가졌어"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결혼 전에 발생한 일로, 상대는 자신의 가장 친한 친구의 남자 친구였다고 고백했다. 사실 그 때는 친구와 그
남자는 헤어진 상태였기에 남자가 드라이브를 가자고 했을 때 들뜬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녀에겐 남자 친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전에 남자와
잠자리를 가져본 적도 없었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몰랐던 것이다.
나중에 임신한 걸 알았을 때, 그녀의
친구는 그 남자와 다시 재회하여 약혼까지 한 후였다. 임신 사실을 안 아버지는 너무나도 엄한 스타일이라 그녀를 멀리 떨어진 시설로 보내 그곳에서
아이를 출산하도록 했다. 6개월 뒤 출산하자, 시설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이의 얼굴을 보지 말고 집으로 귀가하라고
했다.
다음 날, 그녀는 자신이 큰 실수를
했음을 깨달았다. 아이를 되찾아야 한다는 생각에 시설로 연락해 유대인 복지사와 이를 상의했다. 처음에 복지사는 단칼에 거절했지만 집요하게
부탁하자 지금까지 아기한테 들어간 돈을 보상받아야 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육사는 이런 선택은 최악이라고 차갑게 반응했다. 아무튼
글로리아는 자가용, 옷, 전축, 레코드, 심지어 저축까지 몽땅 털어 돈을 마련해 아이를 데려오려다가 오히려 집에서
내쫓김을 당했다.
친구들을 찾아갔지만 그녀를 도와주지
못했다. 아기의 생부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이마저 거절당하고 그녀는 할머니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기꺼이 아기랑 함께 살아도 좋다고
하락하셨다. 할머니와 함께 시설로 가서 아이를 무사히 인도받았다. "당신보다 더 엄마다운 엄마는 본 적이 없어요"라는 보육사의 격려와
함께.
글로리아는 아기가 두 살 때 지금의
남편과 결혼했는데, 남편은 친자식이 아니라서 그런지 그 아이를 잘 대해주지 않았던 것이다. 이야기를 마친 글로리아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
사실을 알려달라고 저자에게 부탁했다. 이에 저자는 직접 말해야 한다고 권했지만 그녀는 아들이 왜 찾으러 왔느냐고 말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아들이 주말에 찾아왔을 때 결국 내가 말했어"
몸에 관한 가장 좋은 기억을
이야기한다
호스피스 시설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외모를 증오한 것을 후회한다. 그 다음으로
살면서 자신의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미처 깨닫지 못했음을 아쉬워한다. 환자 신시아는 통통한 손으로 묵직한 가슴과 암이 퍼진 배를 쓰다듬는다.
그녀는 자신의 뚱뚱한 몸을 혐오했다고 고백한다.
죽어가는 사람들은 현실을 날마다 직면한다. 그래서 이들은 몸에 관한 가장 좋은 기억을
이야기한다. 하굣길에 과수원에서 몰래 따 먹은 사과의 맛과 달아날 때 가슴과 다리에 느끼던 터질 듯한 감각, 스키니 디핑을 처음 했을 때 맨몸에
닿은 물의 느낌, 아기 머리에서 맡은 냄새, 야외에서 사랑을 나눴을 때 맨살을 스치던 바람의 느낌. 그리고 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도
많았다.
남자들보다는 여자들은 눈을 감고 2차 대전 중 위문
공연에서 췄던 춤, 사우스캐롤라이나의 해변 별장에서 추던 춤, 가로변 술집과 클럽과 헛간 등 몸과 음악이 있는 어떤 장소에서든 춤을 추며 보낸
멋진 밤에 대해 수백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모두 한결같이 이렇게 말했다.
"만약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난 무조건 춤을 더 많이 췄을
거야"
몸이 얼마나 소중한지 미처 모른 채
산다
건강을 잃은 후에야 건강의 소중함을 안다고 한다. 마찬가지다. 몸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는 곧 몸을 잃게 된다는 현실에 직면할 때까지 잘 알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뚱뚱한 몸, 작은 눈, 바뚤어진 코, 곱슬머리, 짧은
다리, 처진 눈꺼풀, 고르지 못한 치아 등을 부끄러워한다. 또 큰 유방과 섹시한 엉덩이 등 성적으로 매력 있는 몸을 지닌 것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여성들도 있다.
비록 늦었지만 죽음 직전에 이르러서야 본질적인 것을 깨닫는다. 생김새가 어떠하든, 자신을
담고 세상을 살게 해 준 몸 자체가 소중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몸으로 세상을 다시는 경험하지 못하게 될 때가 가까워졌음을 알고선
매우 아쉬워한다. 그런데, 저자가 만난 환자 신시아는 남보다 이를 일찍 깨달은 듯하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그거 알아요, 케리?" 신시아는 가운의 소맷자락으로
눈을 문지르며 말했다. "내가 비록 뚱뚱하고 암에 걸린 지 20년이나 되었지만, 그리고 머리카락이 나 있었던 때는 기억도 안 나지만, 그래도 내
몸이 싫지 않아. 사람들이 하는 말은 틀렸어. 사람들은 항상 틀리니까. 내가 죽을 거라는 걸 예전부터 체감하고 있었기 때문에 몸의 소중함을 좀
더 일찍 깨달은 것 같아. 그래서 내가 지금 이 모양이어도 행복한 거야 "
마흔 셋에 처음 출산한 쌍둥이를
잃더라도
"아기가 떠나도 나는 영원히 엄마
거예요.
내가 받은
선물이죠"
살면서 누구나 상실의 아픔을 겪게 된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이런 일에 직면했을 때 우리들이 어떤 자세와 태도를 가지는냐 하는 것이다. 엄마가 되고 싶었지만, 계속되는 유산으로 아이를 낳는 것에
실패하다가 마침내 쌍둥이를 출산했지만 얼마 안 되어 모두 죽게 되는 아픔과 마주한 여인이 있었다. 나이는 마흔 셋, 앞으로 더 이상의 임신은
불가능할 듯하다. 하지만 그녀는 이에 절망하지 않는다.
중환자실로 들어가자 아기는 따뜻한 담요에 싸여
있었다. 의사가 아기를 엄마에게 안겨 주었다. 엄마는 코와 입에 튜브를 끼지 않고, 머리에 정맥 주삿바늘을 꽂지 않은 딸의 얼굴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녀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울지도, 의사에게 뭘 묻지도 않았다. 그녀는 품에 안은 작은 아기에게 "고마워"라고 말했다.
"네 엄마가 되게 해 줘서 고마워" 우리 셋은 신생아 중환자실 한쪽 구석에 한참 동안 앉아 있었다. 아기와 엄마, 그리고
나.
삶에서 겪는 상실은 사람을 어떤 식으로든 변하게 한다.
그렇지만 인생에서 무언가를 가졌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는다. 쌍둥이를 잃었다고 해서, 엄마가 되었었고 영원히 엄마로 남는다는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살아 있는 것들은 죽는 순간까지 계속해서 변화해야 한다. 자신이 한때 어떤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지만, 그 모습으로
돌아갈 수도 없다. 그저 끊임없이 변화할 뿐이다. 마치 나이테처럼 그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인생이 된다.
고통을 끝내는 방법은 죽음
뿐이다
백혈병으로 죽어가는 40대 여성 환자가 있었다. 그녀는 병을 이겨 내고 다시 아이들에게
엄마 노릇을 하고 싶다고 오랫동안 간절히 기도했다. 아이들이 엄마의 고통을 보며 자라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에 기도하고 또 기도했지만 병은 더
심해졌고, 모르핀을 아무리 써도 고통을 멈추게 할 수 없었다. 이제 몇 주 후면 죽음을 맞게 될 상태였다. 아무리 기도해도 그것을 바꿀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저자가 방문한 어느 날, 그녀는 평온한 표정으로 신이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리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죽는 것이 응답이라는 걸 이제야 알게 되었어요" 고통을 끝내는 방법은 죽는 것뿐이었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잘 죽는 법을 가르칠 생각이었다.
그것이 자신의 병과 죽음에서 찾은 의미와 목적이었다.
죽어가는 사람들이 얻은 삶의
통찰을 전해 듣는 특권을 지닌 사람으로서, 나는 그들의 이야기가 때때로 굉장히 자유롭고 엄청나게 창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환자들은 내
상상력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그 의미는 늘 내가 상상한 어떤 것보다 훨씬 더 경탄스럽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직접
의미를 찾도록 해야 한다. 그들이 나보다 훨씬 더 잘 해낼 테니까.
산다는 것은 축복이자 고통이다
우리들의 삶은 야누스의 얼굴을 가졌다. 하루하루 산다는 것 자체가 축복인 동시에
고통이다. 호스피스 환자들의 일상은 더욱 그러하다. 그들은 죽는다는 것은 언젠가 꼭 한 번은 하게 되는 과정일 뿐이므로, 삶을 충실히 살며
죽음을 향해 두려움 없이 나아가라고 독려한다. 80대 할머니 글로리아는 마지막으로 저자를 만난 날 이렇게 말했다. 이는 우리 모두에게 전하려는
메시지인 셈이다.
"자신에게 약속해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멋진 삶을 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