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프로젝트 - 무엇이 인생의 차이를 만드는가
헬렌 피어슨 지음, 이영아 옮김 / 와이즈베리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나 자신도 코호트 연구의 수혜자였다. 코호트 연구가 '어머니'의 권리와 의료를 개선하는 데 어떻게 일조했는지 알아 가고 있을 때 셋째 아이를 임신하고 출산했다. 그리고 과학자들의 연구에 힘입어 만들어진 임산부 케어와 출산 휴가를 누렸다. 임신 기간 동안 알코올을 피하고 생선을 먹었던 것은, 코호트 연구 결과를 통해 도출된 사실이 이제 '상식'이 되었기 때문이다. 매일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 주면 좋다는 '상식'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고 워킹맘으로서 일과 육아의 균형을 어떻게 유지해야 할지 고민하거나 집을 살 형편이 안 돼 걱정할 때도, 그것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1970년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전형적인 현상이라는 객관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 코호트 연구는 이처럼 내 인생을 바라보는 뚜렷한 준거 기준이 되었다. - '들어가는 글' 중에서

 

 

고호트 연구의 결과를 집대성하다

 

저자 헬렌 피어슨은 세계적으로 권위 있는 과학 전문 잡지 <네이처>의 수석에디터로, 이 책의 모태가 된 기사 <일생을 통한 연구(Study Of a Lifetime)>는 2012년 영국과학저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기사'로 선정되었다. 그 외에도 '위스타 사이언스 저널리즘 어워드'에서의 수상 등 등 영국의 대표적인 과학 기자이자 작가이다.

 
에든버러대학교에서 진화발생생물학 박사학위, 캠브리지대학교에서 자연사 박사학위를 취득한 의학과 생물학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로서, 다년간의 기자 생활로 다져진 간결하면서

 

 

 

 

 

 

 

 

 

 

 

 

1946년 영국,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영국 여성들의 임신과 출산을 파악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이 일은 런던정치경제대학의 작은 사무실에 일하고 있던 31살의 제임스 더글러스 박사에게 맡겨졌다. 그는 넉넉치 않은 연구비에도 불구하고 성실한 조수와 함께 출생 연구를 해낼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과 열정이 있었다. 그는 1946년 3월 3일에서 9일까지 태어난 아기를 조사 대상에 포함, 출산 후 8주를 기자렸다가 가정 방문 보건관들을 파견하기로 했다.

 

결국 보건관들은 1만 3687명이나 되는 산모들을 인터뷰했다. 그 주에 태어난 아기들의 91퍼센트에 달하는 수치였다. 답변이 완료된 설문지들은 보건의료 담당관들을 거쳐 더글러스에게 발송되었다. 6월 말 즈음 그의 책상과 바닥에는 설문지들이 종이탑처럼 쌓이기 시작했다. 그 야심에 걸맞은 어마어마한 규모의 산모 조사를 시작으로 이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모든 영국민들의 인생에 영향을 미치고 전 세계 과학자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실패할 운명을 타고난 아이들

 

1957년 3월 5일은 특별한 날이었다. 더글러스의 코호트 연구가 11년째 되는 날이자 11플러스 시험을 치르는 날이었다. 더글러스는 이 시험을 치른 모든 코호트 구성원의 결과를 알아보았다. 그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동안 여러 번 다시 찾아갔고, 학교에 상주하는 상담자를 모집하여 아이들의 진척 상황을 그에게 보고하도록 했다. 아이들은 8세, 11세, 15세가 됐을 때 지적능력검사도 실시했다. 


1964년, 더글러스는 조사 결과를 <가정과 학교>라는 제목의 책으로 발간했다. 유쾌한 분위기의 담황색 표지 안에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심각한 내용이 담겨 있다. 중산층의 영리한 아이들은 노동계급 아이들보다 학교 성적이 좋고 11플러스시험에 합격할 확률이 훨씬 더 높았다. 지적 능력이 동일한 아이들을 비교했더니, 중상류층 아이들은 절반 이상이 그래머스쿨에 진학한 반면, 하층 근로자 계급의 아이들은 겨우 22퍼센트만 진학했다.

 

그래서 그는 선발제 중등학교에서 학생들의 분포가 이렇게 나타나는 것은 사회 평등이나 국가 이익 면에서 정당화되기 어렵다고 기술하고 있다. 그뿐 아니라, 아이들이 학교생활을 하는 동안 중산층과 노동계급 간의 성적 차이도 점점 더 커지는 것처럼 보였다. 요컨대 교육 제도는 전혀 공평하지 않았고, 사회계급에 따른 교육 불평등은 전혀 해소되지 않았다. 이렇듯 똑똑하지만 가난한 아이들의 재능이 낭비되고 있었다.

 

 

세 살 건강 여든까지 갈까

 

 

 

더글러스는 영국 전역을 최저 오염 지역에거부터 최고 오염 지역까지 네 범주로 분류했다. 그런 다음 코호트 아이들의 주소를 그 지역 오염도와 15세까지의 건강 기록과 맞춰보았다. 2689개의 지역, 수천 명의 코호트 아이들, 15년 치의 건강 데이터를 아우르는 일은 매우 복잡한 일이었다. 1966년 그가 발표한 결과는 깨긋해진 런던 하늘만큼이나 투명한 패턴을 드러냈다.

 

최고 오염 지역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기침이 잦았고, 기관지염과 폐렴 같은 하기도 감염에 걸릴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아파서 학교에 결석할 확률도 높고, 귓병으로 귀에서 고름이 날 확률도 조금 더 높았다. 이번만은 사회계급과 무관했다. 노동계급이든 중간계급이든 오염 지역에 산다면 똑같이 영향을 받았다. 아무리 잘살아도 깨끗한 공기를 마실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결과는 일정한 패턴을 보였다. 오염에 많이 노출될수록 건강상의 문제가 더 많았고, 가장 놀라운 일은 새로운 법이 제정된 이후, 즉 아이들이 10살이 된 후부터는 오염도가 급격하게 줄었는데도 폐 건강의 문제가 적어도 15살까지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어릴 때 오염에 노출되면 폐에 영속적인 손상을 입을 수 있음을 암시했다.

 

 

 

 

 

 

태아기가 전 생애를 결정할까?

 

 

 

코호트 연구자들은 인생의 첫 몇 년이 전반적인 인생의 행로를 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우리의 운명이 고정불변으로 정해지는 건 아니라는 조건을 얼른 덧붙인다. 인생은 유연하고 가변적이기 때문에 운명의 사슬을 끊고 건강한 삶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1946년 코호트 연구를 통해 출생체중이 낮을수록 중년에 근력이 약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하지만 반드시 그런 건 아니다. 근육세포를 적게 가지고 태어났다면 근력 운동을 통해 근육을 키움으로써 타고난 약점을 만회할 수 있다. 지금까지 어떤 위험 인자를 축적해 왔든 흡연과 음주를 줄이고, 과일과 채소를 많이 먹고, 체중을 조절하고, 운동을 하면 어느 정도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 

 

 

 

흙수저에도 날개는 있다


읽기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삶을 추적해 보니 상황은 더 심각해 보였다. 그들은 모든 단계에서 뒤처진 인생을 살아온 것 같았다. 학교를 제대로 졸업하지 못하고, 교육을 시간 낭비로 여기고, 저임금, 미숙련 직업을 갖거나 취직하지 못했으며, 결국엔 가난 때문에 열악한 주거 환경에서 살거나 노숙자 신세로 전락할 확률이 높았다.

 

남성들은 30대 중반에 혼자 살고, 여성들은 10대에 이미 엄마가 되어 4명 이상의 아이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또 남성이든 여성이든 컴퓨터를 가지고 있거나 사용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았는데, 컴퓨터 기술을 필요로 하는 직업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는 현실을 생각하면 아주 염려스러운 일이었다.

 

인생의 어느 시기든 교육이 상황을 반전시킬 수 있다. 더 좋은 인생길을 설계하고 싶은 사람에게 이를 설명하기 위해 바이너"인생에는 너무 이른 것도 너무 늦은 것도 없다"라는 경구를 만들었다. 충분한 동기 부여와 지원만 있으면 언제든 위로 놀라설 수 있고, 불행한 인생 궤도를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운명을 뛰어넘은 아이들

 

더글러스는 훌륭한 가정교육이 아이의 학업에 아주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선구적인 분석을 보여주었다. 부모가 자녀 교육에 관심이 많으면 노동계급 출신이라는 핸디캡을 극복하는 데 어느 정도 도움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수년 동안 교사들로부터 정보를 수집란 결과, 학업 능력은 좀 뒤처지더라도 자녀 교육에 열성적인 부모를 둔 아이들은 그래머스쿨로 진학하는 확률이 아주 높았다. 

 

그러나 2000년대에 들어선 영국은 달랐다. 부모의 관심과 포부가 있으면 아이들이 가난이나 하류계급 등의 불리한 조건을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많은 연구 결과들이 있었다. 영국의 한 코호트 연구는 3000명의 아이들을 3살 때부터 추적 조사하면서 모범적인 조기 교육 방법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구 결과, 부모의 직업, 학력, 소득보다는 부모가 좋은 '학습 환경'을 조성해 주는 것이 아이의 지능과 사회성 발달에 더 중요한 역할을 했다.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동요와 그림을 가르쳐주고, 알파벳과 숫자를 보여주고, 도서관에 데려가고, 여행을 함께하고, 이 모든 것들이 성장하는 아이들의 지능, 사회성, 행동 발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다섯 개의 출생 코호트

 

영국은 다섯 세대의 아이들을 출생 시점부터 지속적으로 주의 깊게 추적하고 잇다. 1946년 코호트, 1958년 코호트, 1970년 코호트, 1991년 코호트, 밀레니엄 코호트 등 다섯 개의 코호트가 바로 그것이다. 이런 자료들을 통해 유년기의 건강과 발달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함으로써 건강한 미래의 영국을 준비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의 경우, 심각한 저출산율로 향후 지구상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연구 발표까지 있었다. 한국은 지금 무엇을 준비하고 있는지 고민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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