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로 바바리맨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63
유영민 지음 / 자음과모음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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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사업을 하다가 쫄딱 망했다. 대형 마트에 두부를 납품하는 게 그 사업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마트에서 제멋대로 거래를 끊었다. 마트와의 계약만 믿고 은행 빚을 내서 공장에 설비투자를 한 아빠는 엄청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 일로 말미암아 공장 문을 닫게 되고 말았다. 그리고 세계적인 두부회사로 공장을 키우겠다는 아빠의 꿈도 물거품이 됐다. - '캬아, 변태야' 중에서

 

 

바바리맨이 되려고 한 아빠

 

작가 유영민은 1979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제3회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금껏 어둡고 칙칙한 분위기의 글을 써온 탓에, 청소년문학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지인들이 충격과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우리나라 청소년 문학계의 앞날에 대한 개탄과 우려를 표명했다고 한다. 아무려나, 본인은 큰 상을 받은 이상 앞으로 청소년문학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보려고 한다.

 

이렇게 비자발적으로 공장 문을 닫는 아빠는 현재 동네 슈퍼의 카운터를 지키는 사람이 되었다. 이런 아빠를 두고 엄마는 악담만을 늘어놓는다. '허우대만 멀쩡한 인간', '무능력자', '반 백수', '기둥서방' 등등. 그래서 아빠는 이런 멸시와 모멸감을 해소하고자 독서 삼매경에 빠진다. 글쎄, 무협지 읽는 것도 독서의 범주에 드는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아빠는 무협지 속에서 완전히 딴 사람으로 변신한다. 즉 무림 사파邪派에 홀로 대항하는 협객이 된다.

 

비록 언덕길 꼭대기에 위치한 동네 슈퍼일지라도 엄마는 동네에서 '슈퍼 갑'으로 불린다. 이는 슈퍼 가게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 아니라 억척스럽게 일수 놀이를 하기에 그렇게 불린다. 덩달아 소설 속의 아들 동현도 아예 '일수'로 불리기도 한다. 함께 살고 있는 허접 삼촌은 공부하는 꼴을 별로 본 적이 없지만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공시생'이라고 나름 대접받는다. 엄마의 불법 사채업을 비호하는 인물로 양성 중인지 몰라도 비록 맘에 들지 않아도 엄마는 꾹꾹 참고 산다.

 

'굼벵이도 구르는 재주가 있다'고 했다. 현실에선 백수 건달이지만 삼촌은 온라인 상에선 서로 모셔가려는 대어급 겜돌이다. 툭하면 라면에다 김치나 음료 심부름을 시키는 그는 떡진 머리에다 눈가에 눈곱이 더덕더덕, 덥수룩한 수염 등 정말 꼬질꼬질하다. 여기에다 방바닥은 속옷, 양말, 컵라면 용기, 각종 음료 캔 등이 흩어져 있다. 한 마디로 더럽다. 늦둥이로 얻은 탓에 할머니가 너무 끼고 키워서 그런가 보다. 꼴에 수컷이라고 스스로 김태희 뺨친다며 자뻑에 빠진 미용실 나리 누나와 가끔씩 데이트를 즐긴다.  

 

어느 날, 삼촌 방에서 흥미로운 물건을 발견했다. 웃는 얼굴 모양의 가면이었다. 새하얀 피부에 가는 콧수염과 일자로 뻗은 턱수염이 나 있었다. 삼촌 말로는 지난 할로윈데이에 클럽에서 사용했던 거란다. 관심을 표명하자 삼촌은 가면 줄테니 가게에서 콜라 집어오라고 제안했다. 거래는 당장 성사됐다. 이후 이 가면이 아빠의 필수품이 될 줄이야.

 

 

 

 

 

아빠, 바바리맨이 되다

 

막 샤워를 마치고 나온 듯한 아빠가 팬티만 입은 채 엄마에게 입을 옷이 없다고 하소연한다. 사실 오래전부터 집안일에 소홀한 엄마는 빨래를 몇 주간 모았다가 하는 스타일이라 이런 일이 이미 예견되던 바였다. 아무 거나 걸치라고 막 대하는 엄마에게 아빠가 화를 내며 입을 옷이 없다고 하자, 엄마는 장롱에서 옷을 꺼내 마구 집어던진다. 모직 코트, 오리털 점퍼, 바바리코트 등이 바닥에 널브러졌다.

 

 


이어서 엄마는 갑자기 흐느껴 울며 아빠의 두부 공장이 망한 뒤 외할아버지와 이모들에게 빌린 돈을 굴려 용두동 지하경제의 큰손으로 거듭나기까지 자신이 겪은 고난과 역경을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동네 사람들이 나보고 뭐라는 줄 알아? 저승사라래, 저승사자!내가 왜 그딴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거야!"라며 아빠를 향해 소리쳤다.

엄마의 말에 아빠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그런 다음 자신의 발치에 떨어져 있는 바바리코트를 몸에 걸치고서 밖으로 나갔다. 집 뒤편으로 간 아빠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알몸에 바바리코트만 걸친 꼴이 웃기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잠시 후 아빠는 윗몸을 수그리고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 쫄쫄쫄, 하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날벼락일까. 아빠 건너편 샛길에 누군가 나타났다. 교복을 입고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여고생이었다. 소변을 보는 아빠와 정면으로 마주친 여고생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비명을 내질렀다.

 

"캬아, 변태야!"

 

바바리맨의 역사는 동서양 모두에 있다고 한다. 바바리코트라는 의상도 동일하고, 여자와 마주쳤을 때 바바리코트를 펼쳐 알몸을 내보이고 냅다 줄행랑을 치는 행위도 같다. 이는 심리적인 면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바로 억눌린 성적 욕구 탓이다. 한국의 경우도 그 수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임을 보여준다. 2007년에 370여 명이었는데, 2010년엔 1000여 명으로 늘었다. 그래서 아들 동현이 아빠를 생각해 엄마에게 동생을 만들어 달라는 장면이 어른스럽기만 하다. 비록 퇫자를 맞지만 말이다. 엄마는 양육비라는 금전적인 계산만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바바리맨, 의인義人이 되다

 

본의 아니게 바바리맨이 된 아빠는 얼굴에 가면을 뒤집어 쓴 탓인지 용기 있는 행동을 내보인다. 한번은 덩치 큰 남자가 골목길에서 여고생을 치근대고 있었다. 이에 바바리맨으로 변신한 아빠는 덩치를 향해 코트를 확 펼쳤다. 놀란 덩치는 비명을 질렀지만 더이상 바바리맨의 액션이 없자 이내 달려들어 폭행을 가하기 시작했다. 당하던 바바리맨은 호신용 스프레이를 분사해 전세를 역전시켜 덩치에게 한 방 먹여 바닥에 넉다운시켰다. 구석에 등을 보인 채 웅크리고 있던 여고생은 바바리맨이 덩치를 제압한 걸로 상황을 파악했다. 이후 이런 전공이 여고생들 사이에 입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너 그 얘기 들었어? 바바리맨이 치한에게 걸린 2반 애를 구해줬대"

 

급기야는 이런 좋은 미담 때문에 여고생들은 바바리맨의 행동에 익숙해지더니 결코 불쾌하거나 무서워하질 않았다. 오히려 정말 툭공 무술 유단자인지 묻지를 않나, 얼굴이 궁금하다고 가면을 벗어보라고까지 친근하게 말을 걸었다. 이에 바바리맨도 경력이 쌓이면서 편안히게 해동하면서 심지어 여유롭게 비명을 감상하곤 했다.

 

부슬비가 내리는 아침, 한쪽 다리에 깁스를 한 여고생이 목발을 짚고 언덕길을 오르고 있었다. 빗물에 미끄러져 넘어질 순간이 몇 차례 있었다. 이를 지켜보던 바바리맨이 갑자기 튀어나와 코트를 펼치는 대신 등을 내보인 채 쪼그려 앉았다. 바바리맨의 엉뚱한 행동에 놀란 여고생이 잠시 얼떨떨해 하다가 결국엔 거부감 없이 등에 업힌 것이다. 언덕길 끝에 도달하자 바바리맨은 여고생을 내려 놓았다. 답례로 여고생은 바바리맨에게 몽쉘통통을 건네면서 "아저씨는 멋진 분이세요!"라고 말했다. 바바리맨의 다리에는 경쾌한 리듬이 실렸다.

 

 

짜가 때문에 왕따를 당하다

 

다소 모자란다고 동현이와 학교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종민의 아빠는 모창 가수 나후나다. 경력이 벌써 이십 년이 훌쩍 넘었다. 공부든 운동이든 싸움이든, 뭐 하나 잘하는 게 아무 것도 없었던 나후나 아저씨는 성장하면서 늘 열등감에 사로잡혔다. 특히, 그가 다녔던 중학교는 시험이 끝나면 교실 벽면에 학생들의 등수표를 부착했는데, 늘 맨 아래 칸 차지는 그였던 것이다.

 

간신히 고등학교까지 마친 후 대학을 포기하고 군대를 다녀온 후 그는 자동차 정비소에 취직했다. 일이 힘들고 수입도 적었지만 그는 매우 성실하게 근무했다. 즉 남들보다 한 시간 더 일찍 출근, 한 시간 더 늦게 퇴근하곤 했다. 이렇게 근무하는 직원을 당연히 사장은 좋아하기 마련이다. 3년 정도 일한 어느 여름날, 회사 동료와 함께 동해안으로 피서를 갔다가 재미로 참가한 모창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한 게 계기가 되어 가수의 길을 걷게 되었다.

 

원하는 가수의 길을 위해 정비소를 그만둔 후 아저씨는 거의 일 년 동안 골방에 처박혀 나훈아의 공연이 녹화된 비디오를 보고 또 보며 노래와 몸동작을 익혔다. 하루 종일 오로지 연습만 하다가 밤이 되면 쓰러지듯 잠에 빠졌다. 태어나서 무언가에 그렇게 열성적으로 매달리기는 정말로 처음이었다.

 

 


웬만큼 모창 실력에 자신이 붙자 아저씨는 외모도 나훈아처럼 고치기로 마음먹고 두려움을 참고서 성형외과를 찾았다. 의사의 권유대로 아저씨는 턱뼈와 광대뼈를 조금씩 깎았다. 운 좋게도 눈매만은 원래부터 나훈아와 비슷한 편이어서 얼굴 윤곽을 다듬자 단박에 그와 쏙 빼닮을 수 있었다.


이윽고 모든 준비를 마치고 공연업소에 나가보니, 그 세계에는 이미 수많은 나훈아 모창가수가 활동하고 있었다. 나운아, 나우나, 나운하 등등. 처음엔 그 틈에서 기가 많이 죽긴 했으나 아저씨는 꿋꿋이 버텨나갔다. 그리고 더욱 완벽한 모창가수가 되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을 기울였다. 일을 마친 뒤 집으로 돌아오면 아무리 피곤해도 꼭 서너 시간씩 연습했고, 나훈아의 공연장을 찾아다니며 그 모습을 관찰하고 연구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그는 현재 슈퍼 A급 모창 가수다.

 

 

삼촌이 경찰에 체포되다

 

그동안 동네에 출몰한 바바리맨을 체포하려고 경찰서장은 집요하게 내사를 하다가 마침내 바바리맨의 꼬리를 잡았다. 진범을 아빠와 삼촌 둘 중 한 사람으로 지목하고 조사를 시작했다. 아무튼 결정적인 증거를 제시하지 못함에 따라 체포까지는 성립되지 않았다. 하지만 CCTV에 바바리맨과 함께 찍힌 개(동팔이)가 결정적인 단서였다.

 

사실 삼촌도 동네에 출몰하는 바바리맨이 아빠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경찰은 윗동네 재개발 추진과 바바리맨을 연결하여 공안사범 내지는 정치범으로 지목하고 있었던 것이다. 위장 수사를 펼치고 있는 덫에 걸려들었다. 교복 차림의 여고생으로 위장한 최순경 앞에 바바리맨은 코트를 펼치다가 함정에 빠졌음을 알고 도망을 치다 윗동네 건너편 아파트 단지 굴뚝 꼭대기 난간에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서 있었다. 현행범이 되고 말았다.

 

파출소장은 아빠임을 확신하고 확성기로 "동현이 아버님, 이제 그만합시다!"라고 외쳤다. 시간이 흐르자 바바리맨은 사다리를 타고 굴뚝을 내려왔다. 아들 동현은 파출소장의 옷소매를 꽉 붙잡은 채 빨리 도망가라고 외쳤다. 하지만 바바리맨은 느린 동작으로 가면을 벗기 시작했다. 파출소장과 순경들은 모두 어리둥절한 모습이었다. 장본인은 아빠가 아니라 삼촌이었던 것이다.

 

이후 여고생들은 피켓을 들고 시위를 펼쳤다. 서른 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바바리맨, 변태가 아니라 히어로"라면서 즉각 구속을 풀고 석방하라는 요구였다. 잠시 후 검정 점퍼를 입은 형사가 나타나 아빠에게 범칙금만 물고 삼촌을 데려가라고 말했다. 그 형사는 당초 의심했던 재갤발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음이 밝혀졌고 과거 범죄 경력도 없고 위기에 처한 여학생들을 구하 점 등이 참작되었다고 설명했다. 한편, 용두동 재개발 계획도 보류됨에 따라 강제 철거당할 위기에 처했던 윗동네 사람들도 당분간 그대로 살 수 있게 되었다.  

 

 

진짜와 가짜의 차이는?

 

 

 

 

진짜 가수 나훈아와 모창 가수 나후나, 진짜 바바리맨인 아빠와 가짜 바바리맨인 삼촌, 진실과 거짓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진실이 거짓이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기도 한다. 진실이란 흐르는 강물과 같이 늘 변하기 때문에 우리는 결코 진실의 전부를 볼 수 없다. 바바리맨은 변태變態의 상징이다. 변태란 곤충이 껍질을 벗으며 성장하는 과정이다. 즉 껍질을 벗을 때 비로소 어른 곤충이 되는 것이다. 바바리맨이 된 아빠와 아들 동현 모두 지금 성장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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