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에게 미처 하지 못한 말 - 마음속에 새기고 싶은 인생의 키워드 20
정여울 지음, 이승원 사진 / arte(아르테)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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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나의 30대를 차분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내가 힘들게 깨친 삶의 지혜를 나의 독자들은 좀 덜 힘들게, 외롭지 않게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 책을 만들었다. 그러니 이 책은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을 사랑해준 독자들에게 보내는 내 수줍은 연애편지다. 너무 외로워서 글이라도 써야겠다고 다짐했던 나의 파란만장한 30대를 향한 이별의 편지이기도 하면서. - '프롤로그' 중에서

 

 

스무 가지 인생 키워드

 

작가 정여울은 1976년 생으로 서울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등에서 문학과 글쓰기 강의를 하고 있고, 국악방송 라디오에서 <정여울의 책이 좋은 밤>을 진행했다. 그녀는 풍요로운 우리말의 힘으로 문학과 여행, 독서와 예술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글을 쓴다. 읽고, 쓰고, 듣고, 말함으로써 소통하는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글을 쓰고 강의를 한다.

 

저서로는 인문학적 감수성을 담은 유럽 여행기 <내가 사랑한 유럽 Top10>, <나만 알고 싶은 유럽 Top10>, 에세이집으로는 <그림자 여행>, <헤세로 가는 길>,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마음의 눈에만 보이는 것들>, 인문서로는 <공부할 권리>, <마음의 서재>, <시

 

 

 

 

 

 

 

 

 

 

심리학자 카렌 호나이는 이렇게 말한다. 환자가 치료자를 찾는 이유는 신경증을 치유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서라고. 그렇다. 우리는 스스로를 완성하기 위해, 더 나아가 매순간 새로 태어나기 위해, 매일매일 더 나은 자신과 만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한다. 바로 그 소중한 하루하루가 모여 '나다움'을, '내 나이'를 만들어갈 것이다. 

 

 

소개

 

글쓰기가 직업인 저자는 자기소개서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로 다가오는 경험을 한다. 책을 출간할 때마다 책날개에 '프로필'을 실어야하기 때문이다. 또 강의를 할 때마다 이를 주관하는 곳에선 매번 이력서를 요구한다. 이력서를 제출하는 대상은 분명 '외부'에 있지만, 이력서를 작성하면서 정작 만나야 할 대상은 '나 자신'이다. 이는 자신의 부끄러움과 마주하는 일이며, 피할 수 없는 외로움과 맞닥뜨리는 일이다. 

 

그래서 그녀는 "이력서나 프로필을 쓸 때마다 내 안의 일부가 조금씩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을 느낀다"라고 말한다. 무너지는 것은 자존감이고, 부서지는 것은 자신감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이리도 초라하고 작은가'라는 생각 때문에 괴롭다. 그런데 그 자괴감 속에는 뜻밖의 자존감도 깃들어 있다. 바로 '나'라는 존재는 결코 이력서나 프로필로는 요약될 수 없다는 내 안의 외침이 들려오기 때문이다. 결코 몇 줄의 이력서에 나를 온전히 담을 수 없다는 믿음이야말로 내가 이력서를 쉽게 쓰지 못하는 진짜 이유다.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의 줄거리는 이렇다. 19세기 말 런던, 아름답지만 개성 없는 부잣집 도련님으로 살아가는 도리언 그레이는 천재 화가 바질의 초상화 모델이 된다. 이 초상화를 본 탐미주의자 헨리 경은 이를 불후의 명작쯤으로 찬사를 날린다. 태어나 처음으로 그런 과찬을 들은 그레이는 마치 나르키소스처럼 스스로에게 열광한다. 소원을 빈다.

 

"거꾸로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영원히 젊은 상태로 있고, 그림이 늙어간다면!"

 

이 소원이 정말 현실이 된다. 초상화의 얼굴이 흉칙하게 변해가는 동안, 그레이는 변함없이 완벽한 미모를 과시하며 런던 사교계를 주름잡는다. 그는 가는 곳마다 스캔들이 끊이지 않고, 그가 색욕과 주색잡기로 타락시킨 젊은 청춘들이 자살하는 일까지 벌어진다. 이처럼 외적인 이미지에 지나치게 신경 쓰느라 정작 내 마음의 안부를 묻지 못한다면 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일까.  

 

 

선택

 

우리의 인생은 'B'로 시작해서 'D'로 끝난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태어나서(Birth) 살다가 죽는 것(Death)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영어 알파벳 B와 D 사이에는 C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C는 바로 선택(Choice)이다. 우리 모두의 인생은 선택이라는 피할 수 없는 숙명 앞에 놓여 있다.    

 

인생은 수많은 선택들의 기계적인 모자이크라기보다는 예측불능의 변수들과 통제 불능의 욕망, 그럼에도 그 모든 우연을 뛰어넘는 의지와 노력의 화학반응으로 이루어지는 미지의 화합물에 가깝다. 인간은 A와 B 중 하나를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로 인한 '결과'까지 선택할 수는 없다.

 

이와같은 선택이라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없을까? 작가는 자산의 노하우를 우리들에게 밝힌다. 첫째,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는 환상을 버려야 한다. 즉 한탕주의를 경계하라는 말이다. 둘째, 성공한 사람들의 가치관을 답습하지 말고 '내가 직접 만들고, 나에게 어울리며, 내가 실천할 수 있는 가치관'을 정립해야 한다. 즉 내 삶의 결정권을 다른 무엇에서 찾지 말라는 것이다. 셋째, 자신의 존재를 투자의 대상이나 수확의 대상으로 상품화하지 말아야 한다. 즉 뭔가가 있어야 행복한 삶이 아니라 그것이 없어도 괜찮은 나로 단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직업

 

"모든 사람은 잠재적으로 같은 양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 에너지를 여러 가지 사소한 일들로 낭비한다. 나는 내 에너지를 단 한 가지, 그림에만 집중한다. 그림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을 포기한다" - 피카소

 

작가는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찾는 방법을 찾았다며 이를 책에 소개한다. 첫째, 지금 하고 있는 일과 전혀 다른 일을 한번 해보는 것이다. 둘째, 단 며칠만이라도 완전한 휴식을 경험해보는 것이다. TV도 영화도 버지 말고, 정말 쉬는 것이다. 셋째, 단 하루라도 수입과 미래에 대한 불안을 깡그리 접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해보는 것이다.

 

우리의 선택은 대부분 현실적인 걱정의 테두리 내에서 이루어진다. 안정된 수입 때문에, 가족에 대한 걱정 때문에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것을 무시하곤 한다. 이런 걱정 속에서 진짜 두려움을 만난다. 만약 최선을 다했음에도 꿈을 이루지 못하면 어떻게 될까, 온 힘을 다 쏟았음에도 좋은 글을 쓰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등의 두려움 또한 현재의 자신이 판가름할 순 없다.

 

여전히 두렵다. 평생 제대로 된 직장을 가지지 못할까 봐. 지금까지 간신히 쌓아올린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와르르 무너져버릴까 봐. 하지만 그 공포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 삶'을 평생 외면했을 때의 공포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게 도대체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젊은이들의 푸념을 들을 때마다 작가는 속으로 중얼거린다. '나는 그걸 깨닫기까지 30년이 넘게 걸렸는걸. 아직 모르는 게 당연해. 진짜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

 

 

 

 

후회

 

프랑수아즈 사강<슬픔이여 안녕>에 등장하는 세실은 열일곱 살의 소녀로 바람기 있는 홀아버지와 함께 산다. 이 둘은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쾌락이 시키는 대로' 살아간다. 그런데, 이 두사람 앞에 죽은 엄마의 친구이자 디자이너인 마흔두 살의 올드미스 안느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바뀐다. 공부와 독서하곤 담을 쌓은 채 자유분망한 세실, 6개월마다 데이트 상대를 갈아치우는 바람둥이 아버지는 절제의 화신인 안느가 자신들의 삶에 태클을 걸 것임을 알고 이를 두려워한다.

 

샹젤리제 바에 출입하고 스튜디오에서 댄서를 하는 엘자라는 젊은 여인과 동거 중이던 아버지는 안느가 지금껏 상대해 온 다른 여성과는 전혀 다른 매력을 지녔음을 알고 이를 사랑하게 된다. 이 두사람이 사랑에 빠진 날, 세실은 안느에게 처음으로 적대감을 표현한다. 왜냐하면 안느가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흔들 것이라고 예감했기 때문이다. 결혼이 결정되고 누구에게 한번도 통제를 받지 않던 세실의 자유는 위협받기 시작한다. 대학 입시 공부를 해라, 씨릴과의 관계를 정리하라고 말이다.

 

결코 자유로운 삶을 포기할 수 없는 앙큼한 세실은 자신의 애인 씨릴을 엘자와 막 시작하는 커플로 위장해 아버지의 질투심을 유발하는 데 성공한다. 안느는 엘자와 바람둥이 남편이 키스하는 장면을 목격하고는 수치심과 절망감을 느끼고 심한 충격에 빠져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운전대를 잡는다. 결국 교통사고로 사망하고 만다. 이로써 세실은 안느를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는 공작에 성공한다. 하지만 크나 큰 후회가 세실에게 밀어닥친다.

 

타인에 대한 뼈아픈 죄책감이 탄생하는 순간, 우리는 가슴속에 깊은 그림자를 안은 채 진짜 어른이 되기 시작한다. 내 행동의 부끄러움을 깨닫는 순간이야말로 진짜 인생이 시작되는 순간이기에.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이 탄생하는 자리가 우리네 인생의 2막이 시작되는 곳이기에. 평생 후회할 일을 저지르는 순간, 우리는 진짜 어른이 되기 시작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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