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프루프 - 안전 시스템은 어떻게 똑똑한 바보를 만들었나
그레그 입 지음, 이영래 옮김 / 21세기북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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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안전에 대해 거짓된 감각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거짓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것에 변화가 없는 한, 안전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실제로 우리를 더 안전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조건에는 늘 변화가 있기 마련이다. 환경이 복잡해지면 우리의 상호작용도 복잡해지고 의도치 않은 결과와 참사가 발생할 가능성도 커진다. - '프롤로그' 중에서

 

 

안전하다는 일방적인 믿음이 위험하다

 

미국은 이미 1700년대 초부터 미시시피강을 따라 제방을 건설해서 둑과 범람원을 정착과 농경, 산업에 사용했다. 그 결과 제방이 무너지면 더 많은 사람들이 홍수의 피해를 보게 되었다. 일본은 쓰나미로부터 도시와 산업을 보호하기 위해 해안을 따라 방조제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해안을 따라 인구가 늘어나고 핵발전소가 들어섰다. 최근 들어 미국 서부를 자주 휩쓸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산불 역시 기후변화의 탓만은 아니다. 이전 수십 년간 산림감시원들이 불을 빈틈없이 억제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엔 공통점이 있다. 사람들로 하여금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안전하다는 느낌 때문에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사이에 위험이 다시 나타날 수 있었다. 안주安住의 본질은 결국 그런 것이다. 경계를 늦추고, 너무 많은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면 끔찍한 사고가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를 증명해 보이는 많은 연구가 있다. 도로에 눈이나 얼음이 덮여 있을 때에는 가벼운 사고와 작은 부상이 많이 일어나지만 오히려 심각한 부상이나 사망자가 나오는 경우는 드물다. 왜냐하면 운전자들이 더욱 주의를 기울여 천천히 운전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안티록 브레이크ABS와 징 스노타이어가 장착된 차를 운전할 땐 위험한 조건에서도 고속으로 달리는 대담함을 발휘한다. 이런 장치를 고안한 사람은 사실 운전자가 안전하다는 느낌을 받을 때 운전 형태가 달라질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다. 그래서 사고가 발생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진다.

 

안전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을 경계하는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타이타닉호의 승무원들은 배가 가라앉지 않을 것이라 믿고 사방에 빙산이 펼쳐져 있는 바다를 전속력으로 항해했다. 이런 유형의 사고가 현대에도 발생했다. 2009년, 228명의 승객과 승무원을 태운 에어프랑스 447편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파리로 향하는 길에 심한 뇌우雷雨가 있는 지역을 지나다 갑자기 사라졌다. 2년 만에 블랙박스를 복원한 후 사건의 내막이 밝혀졌다. 부기장이 급격히 고도를 올리려다가 에어버스 A330의 시동이 꺼지면서 급격하게 추락한 사고였던 것이다. 항공기 기체에 생성된 얼음 때문에 자동조종장치가 멈춰버려 조종사의 행동을 제한하지 못했다. 위험 경보가 울려도 아마도 조종사들은 이런 상황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에 경보를 무시했을 것이다.

 

책의 저자 그레그 입은 미국의 저명한 경제, 금융 저널리스트로 <월스트리트저널>의 경제 부문 수석논설주간이며, 미국과 세계 경제 개발 및 정책에 관해 글을 쓰고 있다. 캐나다의 <글로브 앤드 메일>과 <파이낸셜 포스트>를 거쳐 <월스트리트저널>에서 11년 동안 기자로 활동했으며 그 후 <이코노미스트>에서 6년간 경제 에디터로 일했다. 세계리더십포럼에서 올해의 비즈니스 저널리스트 상 등 다수의 상을 받았다.

 

그는 책을 통해 이와같은 사건들을 단순히 도덕적 교훈을 가르치는 장면으로만 바라본다면 대단히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한다고 경계의 목소리를 높인다. 문제의 원인이 비도덕적인 일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경제, 환경, 기술 등의 해악으로부터 인류를 보호하려는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들이 상당한 이익을 가져다 준다. 따라서 열린 마음으로 역사와 증거를 고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엔지니어 vs 생태주의자

 

경제의 키를 잡고 우리의 환경을 관리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이러한 걱정에 시달린다. 철학적인 측면에서 이들을 두 파로 나눌 수 있다. '엔지니어'라고 부르는 분파는 우리가 가진 지식과 능력의 최대치를 이용해서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더 안전하고 더 안정적인 곳으로 만들려 애쓴다. '생태주의자'라고 부르는 다른 분파는 그러한 노력을 의혹 섞인 시선으로 본다. 사람들이나 환경의 복잡성과 적응성으로 인해서, 그러한 노력이 우리가 해결하려는 문제보다 어쩌면 더 심각한 예기치 못한 결과를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제 엔지니어들에게는 경제를 경영할 기본적인 도구들이 주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도구들을 얼마나 활발하게 사용해야 하는지, 그들이 궁극적으로 성취하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뉴욕 연방준비은행 총재이자 이 시스템의 실질적 리더인 벤저민 스트롱은 포괄적인 그림을 그렸다. 종전終戰이 되자 그는 경제의 변동을 줄이고자 공개시장조작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1920년대에는 이 방법이 잘 먹혀들었다. 이에 주요 경제학자들은 불황의 문제는 사라졌다는 결론을 내렸다. 은행은 연방준비은행을 강력한 댐에 비유하는 포스터를 보여주며 고객을 안심시켰다. 1929년 가을,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경제학자 어빙 피셔 "주가가 영원히 하락하지 않는 고원의 경지에 도달했다"고 선언했다. 물론 이는 경제학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실언失言이었다. 1929년, 경제는 깊은 불황에 빠졌다. 대공황의 정확한 원인은 지금까지도 논쟁거리다.

 

1930년대 초에는 엔지니어들이 지나치게 욕심을 부리다가 자기 꾀에 넘어갔다는 이론이 등장햇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가 이끄는 몇몇 오스트리아 태생 경제학자들은 경제 활황이 수상쩍거나 수익을 내지 못하는 프로젝트에 과도한 투자를 했다고 주장하면서 경제는 이러한 불필요한 자산의 과잉을 제거하기 위해 슬럼프가 필요하다는 추측을 내놓았다.

 

"불황은 억제시켜야 하는 유해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다. 반드시 이루어져야 하는 변화에 대한 적응의 형태다" - 조지프 슘페터,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또 후버 대통령 시절 재무장관을 역임한 앤드루 멜런도 이런 생태주의적 견해에 동조했다. 그는 대공황이라는 세척효과를 환영했다. 후버는 멜런으로부터 "노동자를 청산하고, 주식을 청산하고, 농민을 청산하고, 부동산을 청산하면, 시스템으로부터 부패가 축출될 것이다. 생활비가 떨어지고 사치스러운 생활이 줄어들 것이다. 사람들은 더 열심히 일하고 도덕적인 삶을 살 것이다. 가치가 조정되고 기업가 정신이 왕성한 사람들은 경쟁력이 다소 떨어지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잔해를 건져 올릴 것이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회상했다.

 

하이에크나 멜런 등의 생태주의자들은 엔지니어들이 지나쳤다고 비난하는 반면, 엔지니어들은 생태주의자들이 한 일이 너무 모자랐다고 생각했다. 1928년 대통령에 당선된 후버는 이 두 분파 사이에서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멜런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멜런의 처방을 묵살하고 부흥금융공사를 설립해 뱅크런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은행들에 대출을 해주는 방법으로 공황과 싸우는데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충분한 조치가 되지 못했다.

 

1933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새로운 대통령으로 취임, 은행 휴업을 시행하고, 금에 대한 달러의 가치를 절하하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정비를 진행하고, 정부의 역할을 확장시켰다. 당시의 경제학자들은 광범위한 경제가 어떻게 움직이는지에 대한 거시경제학의 개념이 없었다.

 

대공황은 경제가 스스로 평형 상태를 찾지 못한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이때 획기적인 식견을 내놓은 경제학자가 등장했다.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어드 케인스는 <고용, 이자 및 화폐에 관한 일반이론>(1936년)에서 기업 투자가 '낙관적 정서와 비관적 정서의 물결'에 의해 움직인다고 묘사했다. 모두가 저축을 더 많이 하고 지출을 줄인다면 모든 사람의 수입이 줄어들고 형편이 좋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경제는 침체 상태에 빠질 것이라는 '절약의 역설'을 주장했던 것이다. 

 

케인스의 제자들은 통화정책(금리)과 재정정책(예산)이라는 지렛대를 사용해서 수요와 고용을 촉진하고 경제의 완전고용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동안은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 전략은 결국 물가를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1967년, 밀턴 프리드먼은 노동자들이 높은 인플레이션에 익숙해지면서 더 높은 임금을 요구하게 되고 이는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노동 수요를 무효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1970년대에 실업이 증가하고 물가가 올라가고 불황이 심해짐에 따라 이 주장이 옳았음이 입증되었다.     

 

 

저축 과잉이 위기를 키우다

 

태국은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두 자릿수 인플레이션, 과도한 민간 대출, 심각한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었다. 이에 건전성 회복을 위해 여러 강력한 정책이 시행되었다. 바트의 환율을 고정하는 것도 이 정책의 일환이었다. 환율의 안정 덕분에 외국 투자자들은 태국 기업에 자국 통화로 대출할 때 걱정을 덜게 되었다. 이에 태국 기업들은 달러로 돈을 빌렸다. 정상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매우 위험한 일이다. 바트의 가치가 하락하면 더 많은 돈을 상환해야 하는 리스크를 안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국은 주요 차입국이 되었다. IMF 총재는 태국에 달러 페그제를 끝내라고 계속 경고했다. 파운드 화에 투자해 큰 돈을 번 조지 소로스는 이번에도 바트화의 하락에 엄청난 돈을 걸었다. 결국 태국은 1997년 7월 바트화를 평가절하했다. 바트화는 하루 만에 6분의 1이 급락했다. 계속해서 다음해에는 반토막이 되어버렸다. 아시아의 금융위기가 시작되었다. 태국의 사태를 본 저축자들은 빠져나가는 움직임을 보였다. 일주일 후 필리핀도 평가절하했고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한국이 그 뒤를 따랐다.

 

IMF와 미국은 서둘러 긴급자금 대출을 실행했다. 엄격한 조건으로 말이다. 태국은 세금을 올리고, 예산 균형을 꾀하고, 자금 부족에 허덕이는 기업의 구조조정과 국영기업의 보조금 중단 등 조치를 해야만 했다. 한국은 외국인들이 한국 기업과 은행의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게 하고, 재벌에 대한 정부의 대출 지시를 중단하고, 수입 관세를 낮추어야 했다. 인도네시아는 부패한 수하르토 대통령 일가를 표적 삼았다. 자동차와 비행기 개발 프로젝트의 중단, 인프라 프로젝트의 취소, 설탕과 정향 등의 독점을 방지해야만 했다. 사실 이런 조건들은 위기의 원인과는 무관한 것이었다. 한국인은 이 위기를 오랫동안 'IMF 사태'라고 불렀다. 긴급구제의 굴욕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결국 외국인들에게 빚을 지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남겼다.

 

수많은 나라들은 세계시장의 혼란에 대비하는 보험용으로 엄청난 해외자산을 쌓았다. 특히, 중국은 엄청난 규모의 달러화를 보유하고 있다. 이는 긴급구제가 필요한 상황을 결코 만들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출이었다. 2014년 기준 이렇게 조성된 자금의 총액은 무려 12조 달러로 위기 이전의 두 배 규모다. 케인즈가 말한 '절약의 역설'이 세계적으로 파급되고 있는 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부터 중국에 이르는 여러 나라들이 자신의 경제를 지키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전략이 다른 나라의 성장을 저해하고 금리를 끌어내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금융투기를 부추겨 다음번 위기의 씨앗이 되고 있다. 앞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하지만 지난 100년의 역사가 보여주듯이 모든 국가가 개별적으로 스스로의 안전을 도모할 때 그 집합적 결과로 세계는 이전보다 덜 안전해진다.

 

 

리스크 분산이 초래한 재앙

 

리스크 분산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구성의 오류는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구성의 오류는 개인에게 혜택을 주는 것이 전체에게도 득이 된다고 잘못 받아들여질 때 발생한다. 예를 들어 영화를 보던 사람이 일어서면 화면이 잘 보이겠지만 다른사람도 모두 일어선다면 영화를 보기가 힘들어지고 서로 불편해진다.  

 

주택저당증권이나 파생상품과 같은 금융혁신은 개인이나 은행, 기업이 위험한 일을 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 위험을 다른 사람에게 이전할 수 있게 해준다. 더 안전해졌다는 믿음으로 투자자나 은행은 더 많은 리스크를 감수한다. 이렇게 해서 시스템 내 위험의 총합이 증가한다. 이 위험들이 서로 연관성이 없다면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생명보험 산업이 돌아가는 것은 보험계약자들이 한 번에 모두 죽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이 한 번에 죽는다면 생명보험업자는 파산할 것이다.

 

하지만 금융에서는 리스크들이 서로 연관된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상관관계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나 드러난다. 이는 리스크를 나누기 위해서 고안된 금융혁신이 더 광범위한 시스템을 더 안정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의미다. 1970년대부터 등장한 금융파생상품들은 단순한 주식이나 채권이 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리스크를 보장하기 때문이다.

 

 

재난을 피할 수 없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캐나다는 주택 거품으로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그 가운데에서 규제기관들은 계약금과 대출 만기, 대출자가 반드시 충족시켜야 하는 조건들을 꾸준히 강화해오고 있다. 언젠가 미국에서와 같이 캐나다의 주택 거품도 터질 것이다. 규제기관의 노력으로 그 과정에서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기를 바란다.

 

안전을 확실하게 보장한다는 것은 마치 움직이는 과녁을 맞히는 것과 같다. 이 과녁을 맞히기 위해 엔지니어와 생태주의자는 나름의 처방전을 내놓고 경합을 벌인다. 엔지니어들은 불확실한 것과 알려지지 않은 것에서 오는 불안을 잠재우며 우리의 통제 욕구를 충족시킨다. 경제 공학자들은 불경기와 금융위기를 덜 가혹하게 만들 방법을 생각해냈다.  

 

우리는 재난과 위기의 빈도와 강도를 낮출 수 있지만 그 발생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다. 그것을 바라서도 안 된다. 주기적인 위기는 리스크의 부담을 조장하고 그에 대해 보상을 준 경제 시스템에 대해 우리가 지불해야 하는 대가다. 주기적인 재해는 매력적이고 생산적인 장소에 도시를 지은 데 대해 우리가 치러야 하는 대가다.

 

엔지니어와 생태주의자는 다른 방식으로 최고의 문명을 구현한다. 꼭 어느 한 편에 서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양쪽으로부터 최선의 것을 취하면 된다. 우리의 목표는 큰 재해를 제거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보다 큰 보상과 안정성을 바라보고 현존하는 약간의 위험과 불안정성을 감수하는 것이어야 한다.

 

 

 

 

 

새로운 위기관리법을 고민하라

 

안전은 위험을 부르고, 위험은 안전을 부른다. 호랑이를 두려하던 과거 시대든 금융공황을 두려워하는 지금 시대든, 인가닝 해야 할 일은 변하지 않았다. 더 안전하고 풍요로운 미래를 위해 새로운 위기관리법을 고민하고 연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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