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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 지음 / 매일경제신문사 / 2017년 3월
평점 :
청와대는 구중궁궐처럼 폐쇄적이고
박근혜 대통령은 제왕처럼 행세했다. 박 대통령과 장관들의 관계는 갑과 을의 수직관계였으며, 장관들은 무엇을 하는지 전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했다. 반면 프랑스는 대통령과 장관들이 꽤 평등한 관계로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매주 수요일 아침 엘리제궁에서 국무회의를 마치고 각자의
집무실로 돌아가는 장관들의 손에는 한 아름의 서류 뭉치가 들려있고, 현안을 기자들에게 브리핑한다. 이를 통해 이번 주 프랑스의 주요이슈는
무엇인지 국민들도 알게 된다. - '프롤로그' 중에서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를
말하다
책의 저자
최인숙은 파리3대학에서 <선거여론조사 공표가 프랑스 여론형성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 석사학위를 받았고
이후 파리정치대학에서 <일본과 한국 여론조사의 제도화 과정>을 역사사회학적 관점에서 비교, 분석해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파리7대학 일본학과에서 일본의 선거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이를 계기로 일본 히토츠바시대학 사회심리학과에서 1년간 교환학생으로 수학했다. 그 후 동경대 사회심리학과에서 일본인의 심리구조와 여론형성 관계를
연구해 박사후기 과정을 마쳤다.
현재 성공회대학에서 '여론과 정치', '정치심리학'을 가르치며 뉴스토마토에 <파리와 서울
사이> 칼럼을 연재하는 등 다수의 언론·교육활동을 펼치고 있다. 주요 업적으로는 <한국과 일본의 여론을 찾아서>, <한국과
일본의 탈물질주의>, <이원집정제 권력모델 분석연구 : 프랑스, 오스트리아 사례를 중심으로> 등의 논문과 번역서 <서로
사랑하는 일에는 나이가 상관없다>등이 있다.
이 책에 실린 내용은 저자가 오마이 뉴스와 뉴스토마토 등에 기고했던 칼럼에다 새로운 글을 추가해 재편집했다. 2015년
1월부터 2017년 1월까지 한국과 프랑스에서 일어난 갖가지 정치, 사회적 사건 중에서 첨예하게 다른 양상을 나타내는 주제를 골라 이에 대해
학문적 이론과 시, 동화, 샹송 등을 곁들여 알기 쉽게 비교, 분석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프랑스의 정치를 미화하려는 게 결코 아니라 이를 참고로 삼아 현재에도 여전히 정치 후진국 수준에
머물어 있는 한국정치의 품격을 높이고 효율성을 높여보자는 동기에서 비롯되었음을 고백한다. 사실 지금까지의 국내 선거를 살펴보면 번번히 정치세력의
연대를 통해, 즉 무늬만 야권통합이라는 위선적인 행태로 당선에만 목적을 두었기에 우리 유권자들을 무시하고 조롱해 왔다고
본다.
그 결과로 한국정치사에 더 이상 있어서는 안될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까지 발생하지 않았나 싶다. 과거 역사를
보더라도 십상시十常侍라는 인물이 황제의 성총盛寵을 흐리게 만들고 사리사욕만 취함에 따라 민생이 도탄이 빠진 사례가 있었다. 이런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한다는 것은 그만큼 정치계 인물들의 역량이 후진국 수준임을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 vs 세월호
침몰사건
2015년, 연초부터 프랑스는 테러의 공포에
휩싸였다. 시사 풍자를 다루는 <샤를리 에브도>의 1177호가 발간된 1월 7일, 이슬람 극단주의자 두
명이 이 잡지사에 무차별 난사를 가하는 테러를 저질렀다. 잡지사에 근무하던 만화가, 편집자 등을 포함한 열한 명의 무고한 생명을 앗아갔고, 열한
명의 중경상자를 발생시킴으로써 삽시간에 프랑스 국민들은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이날 오전 11시 30분, 올랑드 대통령은 엘리제궁
집무실에서 이 사건을 보고받자 2분 후 곧바로 <샤를리 에브도>에 전화를 걸어, "내가 지금 바로 그곳으로
가겠다"라고 전하며 신속한 행동을 개시했다. 그리고 마뉘엘 발스 수상에게 전화를 걸어 두 가지 일을 요청했다. 하나는 테러리즘에
대한 대책 수단을 총동원해 줄 것, 다른 하나는 오후 2시에 국가 비상사태 국무회의를 소집해 달라는 것이었다. 현장에 도착한 그는
경찰관·소방관들과 대화를 나눈 후에 이 테러의 상징적 파급력을 감지해 냈다.
그는 곧바로 텔레비전에 출연해 국민에게
"내일(8일)을 국가 애도의 날로 정한다"고 공포했다. 이어 시시각각 내각의 장관, 비서관들과 함께 사태수습을
위한 릴레이 회의를 진행했다. 대통령은 수상, 내무부장관, 법무부장관 등과 함께 대통령 집무실에서 실시간으로 사태의 추이를 보고받으며 테러진압
전략을 짰다.
또 "테러범들을 조속히 소탕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라
판단하고, 테러범들을 엄습하기로 했다. 이후 대통령의 전략은 성공적으로 수행됐다. 두 명의 테러범들은 사살되었고, 전 프랑스인들을 충격에 빠뜨린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건'은 종결되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아프리카를 비롯한 전 세계의 지도자들을 파리로 초청, 국가 차원의 테러리즘에 대항하는 역사적인 '대행진Grande
marche'을 조직했다.
국가가 위기에 직면했을 때 올랑드 대통령이 보여 준
리더십은 프랑스 국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기 충분했다. 당연히 그의 지지율은 급등했다. 취임 당시(5~6월) 53%였다가 18%(2014년
12월)까지 지지율이 하락함으로써 역대 대통령 중 최하위를 기록했던 그는 테러 직후의 여론조사(2015년 1월 16일)에서 38%로 급반전했던
것이다. 이에 대비되는 세월호 침몰 사건은 아직도 국민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으니 크게 비교가 된다.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매스컴은 그
대처능력이 치졸했다.
프랑스 혁명의
의미
프랑스 혁명은 시민혁명의 전형이다. 이는
1789년 7월
14일부터 1794년 7월 28일에 걸쳐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으로 스무 살의 어린 왕 루이 16세는 우유분단한 성격에다 정치에 크게 흥미를
느끼지 못함에 따라 정치적 사안이나 국민들의 현안에는 관심이 없었다. 또 한 살 아래의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도 정치적 감각이 부족해 왕비의
역할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별궁에서 콘서트나 즐겼기 때문에 귀족과 부르주아지의 대립을 조정하지 못함에 따라
촉발되었다.
혁명은 경제, 사회적 변동뿐만 아니라 우발적으로
발생한 에피소드나 스캔들에서도 초래된다. 프랑스의 경우도 직접적인 도화선은 귀족과 부르주아지의 대립과 이를
조정하지 못한 왕의 무능 때문이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그 유명한 '목걸이 스캔들'이다. 라 모트
백작부인을 비롯한 무리가 로앙 추기경과 보석상을 속이고 왕비를 사칭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취한 사건을 말한다. 이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미쳤다. 사건 연루자들은 재판에서 왕비의 소행임을 주장했고, 프랑스 국민은 그들의 말을 믿었다. 특히 법정공방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궁정의 민낯은 결국 왕비에 대한 원성으로 폭발했다.
더 큰 문제는 세간의 악평과 왕궁의 추태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측근들이 없었다는 점이었다. 왕을 걱정해야 할 아우와 사촌들은 오히려 어떻게 퇴위시킬지를 궁리했다. 왕은 권력자로 자리 잡은 왕비와
무책임한 측근들의 계획대로 끌려다녔다. 그 결과로 마침내 루이와 마리 앙투아네트는 단두대에서 처형되었고, 이로써 프랑스의 절대왕정은 종말을
맞았다.
한국의 최순실 사태도
이와 비슷하게 보이지 않는가? 어린 시절부터 청와대에 머물며 불의의 사고로 죽음을 맞은 어머니를 대신에 스물두 살의 어린 나이에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하며 온갖 영예를 한몸에 받았던 박근혜 대통령은 오직 배운 게 부패한 권력과 권위적인 정치이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마치 자신의 식모
정도로 여겼던 최순실이 온갖 이권에 개입해 부정을 저지르면서 이로 인해 스스로의 정치적 생명을 단축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국민들이 촛불을 들고
일어선 이유도 바로 무능함에 대한 규탄이었고 이를 정확하게 읽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에 결국 탄핵이라는 정치적 사형을 선고받은
셈이다.
항상 반복되는 정치적
야합
연대의 정치학적 의미는 공통의 생각을 가진 여러
정당이 선거나 국회에서의 의정에서 공동의 행동을 실현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 있어서는 이미 깨어진 DJP
연합에서 보듯이, 그저 권세를 차지하겠다는 일념 하나로 모아진 정치적 야합에 불과한 것이었다. 단순히 의석수를 늘리는 꼼수의 일환으로 사용될
뿐이다. 그렇기에 결과를 얻고 나면 그 연대는 흐지부지되고 깨어지고 만다. 이는 결과적으로 유권자를 봉으로 삼아 사기를 치는 것과
같다.
매번 반복되는 이런 소모적인 야권연대를 이젠 청산해야
한다. 그렇다면 대책은 뭘까? 최근 정치권에서 논의되었던 대통령 결선제의 도입이 아닐까 싶다. 즉 과반 이상의
득표를 차지하는 사람이 진정한 대통령이라는 것이다. 이미 프랑스는 1889년부터 대통령, 국회의원, 그리고 시의원 선거에서
결선투표제를 도입해 실시하고 있다. 프랑스 하원의원 선거는 두 번에 걸쳐 실시된다. 유권자들은 1차전에서 가장
선호하는 후보 하나를 선택한다. 이때 25% 이상의 유권자들이 참여해 절대적 다수표인 50% 이상을 얻은 후보가 있다면 그 후보가 바로 당선자로
확정된다. 그러나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다면 가장 많은 표를 얻은 두 후보가 일주일 후에 열리는 2차전에 올라가 선거를 치룬다. 이렇게
결선투표제는 대의민주주의의 기본 원리인 대표성 확보를 위해서도 최선의 수단이 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 거부의 목소리도 있다. 두 번의
투표로 인해 선거비용이 낭비되는 비효율성을 들고 나온다. 그러나, 이 비용을 아끼느니보다는 쓸데없는 야합 풍토를 종식시키고 제대로 폼나는 반장
선거를 해보는 게 좋지 않겠는가 말이다. 지금의 자세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결선투표제가 얘기되었을 때 제일 처음 반대한 인물이 바로 선두주자였던
문재인 후보였다. 이는 과반 이상을 차지하기 어렵다는 속내를 드러낸 반증이 아닐까? 연일 혁명만 외쳐대는 정치세력과 건전한 연대를 원하는 정치
집단이 과연 얼마나 될까 싶다.
먼저 프로페셔널이 되어야
한다
프랑스의 환경부장관
르와얄은 2015년 6월 15일 공영 TV에 나와 살충제 피해와 전면전을 펼치기 위해 "미국 농화학 기업인
몬산토의 라운드업이 원예전문 매장에서 셀프 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겠다"고 발표했다.
또한 "프랑스는 이 살충제 사용 저지를 대공세로 몰아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 조치는 세계보건기구 산하 국제 암연구센터가
'라운드업이 인체에 암을 유발하는 글리포세이트 물질을 함유하고 있다'고 분류한 후 프랑스, 유럽의 위생기관과
소비자 연합회, 농업부장관이 이 제품을 아마추어 정원사들에게는 더 이상 셀프 판매하지 않도록 당부한 직후 취해졌다.
또 그는 스테판 르 폴 농산부장관과 함께 공식성명을
발표하고, 2018년 1월 1일부터 자격증을 가진 판매자의 중개에 의해서만 이 살충제 구매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또 아마추어 정원사가 이 제품을
구매할 때 판매자는 라운드업이 곧 판매 금지된다는 사실과 대체재에 대한 정보를 조언해 줄 것을 언명했다.
이렇게 프랑스 정부는 국민의 건강과 밀접한 사안이
부각되자 신속하게 대처했다. 환경부장관은 TV를 통해 라운드업의 위험성을 홍보하는 등 투명한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켰다.
한국의 보건복지부가 가습기 살균제의 위험성을 인지하고도 그 정보를 서랍 속에 잠재운 것과는 너무나 다른 행보가
아닐 수 없다.
한국의 보건복지부 질병관리본부는 옥시 가습기 살균제에
함유된 화학물질 PHMG에 노출된 사람의 폐 손상 위험률이 노출되지 않은 사람에 비해 116배가 넘는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이런 귀중한 정보를 국민들에게 알리지 않은 채 묵인하고 있었다.
정부는 국민을 위한 기구인데, 도대체 왜 함구해야만 했을까? 프랑스의 올랑도 대통령은 환경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환경부장관에게 내각 서열 3위
자리에 앉히며 막중한 권한을 부여했다고 한다.
대통령의
소통
프랑스의 드골 대통령은 나라를 위기에서 구출한 영웅으로 평가받는다. 알제리 문제나
4공화국의 무능에 분노한 국민들이 모두 거리로 몰려나와 정국이 혼미 속에 빠졌을 때, 그는 국민들 앞에 서서 호소했다. 호소에는 진정성이 담겨
있었기에 국민들을 설득하기에 충분했다. 이후 그는 대중 매체를 이용한 여론정치와 미디어정치의 모델을 만든 장본인으로서 훌륭한 정치 커뮤니케이션의
장을 열었다.
2012년 6월 취임한 올랑드 대통령은 개각하거나
선거에 참패했을 때, 불황을 극복하고자 새로운 경제정책을 내놓았을 때 등 수차례에 걸쳐 텔레비전 담화를 발표했다. 이를 통해 국민에게 국정을
이야기했는데, 담화가 끝나면 프랑스 미디어와 국민은 설득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열렬히 평가한다. 그리고 그 평가를 대통령이 귀담아듣는 피드백이
이뤄진다.
이처럼 프랑스 지도자들은 소통
능력을 리더의 필수자질로 가지고 있다. 이런 정치문화가 형성된 주요 요인은 국민이다. 프랑스인들은 그들의 리더가
'높은 문화적 수준'을 지니길 염원한다. 높은 문화적 수준이란, 논쟁에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능력을 말하며,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로 배양해야만 한다.
그런데 프랑스 지도자만이 소통 능력을 겸비하고 있는
것일까? 역사 속의 리더들을 살펴보면 훌륭한 지도자들은 하나같이 탁월한 소통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마키아벨리와 한비자의 통치술을 보라.
리더가 갖추어야 할 덕목 중 가장 중요한 자질이 소통 능력임을 그들은 말하고 있다.
정치평론이 한국정치를
망친다
후발 방송국으로 등장한
종합편성채널의 주요 프로그램은 뉴스와 정치평론이다. 말이 평론이지 이들이 하는 말은 거의 가십거리 일색으로 마치
과거의 복덕방 할아버지 수준이다. 혹세무민惑世誣民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세상을 어지럽히고 벡성들을 기만한다는 뜻이다. 소위 평론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떠들어대는 말이 오히려 사회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주역들이다.
이들은 한결같이 패거리 정치를 논하고 있다. 방송을
보노라면 조선시대의 사색당파가 떠올려진다. 하는 말에 신빙성이라도 있으면 그냥 넘어갈 만하겠지만 그저 본인의 사견임을 전제로 하거나 아니면 이미
뉴스를 탄 정치 기사를 해석하는 정도이다. 그렇게 정치를 잘 알면 정치계에 입문해서 소신 있는 정치 능력을 펼치는 게 옳은 일일 것이다. 마치
복덕방 할아버지처럼 이 집은 어쩌구 저 집은 어쩌구 식으로 특정인을 추켜세우거나 깎아내리는 포지션 토크에 주력하고 있으니 말이다. 묻고 싶다.
특정 후보의 서포터즈 임명장이라도 받은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