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1.4킬로그램 뇌에 새겨진 당신의 이야기
김대식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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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추함과 아름다움, 잔인함과 선함 같은 양면성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즉 호모 데카당스와 호모 스피리투알리스가 동시에 존재하는 모순적인 존재입니다. 그리고 가장 흥미로운 사실은 이 같은 양면성과 모순이 한 시대나 나라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 한명 한명의 머릿속에도 존재합니다. 뇌과학자인 저는 우리가 어떻게 천재적인 행동을 하는 동시에 잔인하기 그지없는 행동까지 서슴없이 할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지요. - '서문' 중에서

 

 

인간의 뇌를 읽어내자

 

이 책의 저자 김대식KAIST 전기전자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뇌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MIT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았으며, 일본 이화학연구소 연구원, 미국 미네소타대학교 조교수, 보스턴대학교 부교수를 역임했다. <중앙SUNDAY>에 인기리에 연재되었던 칼럼이 <빅 퀘스천>으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조선일보>에 뇌과학 칼럼 <김대식 교수의 브레인 스토리>를 연재했고, KBS에서 <장영실쇼>를 진행했으며

 

1강(뇌와 인간)에서는 '나'라는 '존재' 자체를 탐문하면서 '나'를 '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분명한 근거는 내 몸에서 결코 변하지 않는 단 하나, 바로 뇌세포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2강(뇌와 정신)에서는 합리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을 묻는다. 유명한 철학자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이는 뇌가 손상되면 성립하지 않음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선택은 대부분 비합리적이며 다만 우리 뇌가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자신만의 이야기를 꾸며내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서 3강(뇌와 의미)에서는 의미를 갖는 존재로서의 인간을 추적한다. 인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예술이나 문화에 의미가 존재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고등 지능을 가진 동물은 물론 인공지능 기계도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하며 의미는 오직 인간의 정상적인 뇌에서만 만들어진다고 해석한다. 4강(뇌와 영생)에서는 인간의 영원성을 탐문하고, 마지막으로 5강(뇌과학자가 철학의 물음에 답하다)에서는 뇌라는 기계의 작동 원리, 그 매뉴얼을 통해 인간 존재의 의미에 관한 질의응답을 다룬다.

 

 

 

 

인간은 뇌가 없이는 불가능한 존재

 

 

 

 

뇌과학이란 뇌의 구조와 기능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는 생물학적 자연과학이면서 동시에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적 성격도 지니고 있다. 아인슈타인의 천재적인 행동도, 히틀러의 악마 같은 행동도 모두 뇌에서 나온다. 인간의 창의성과 도덕 그리고 윤리, 결국 모두 뇌라는 생물학적인 원인을 가지고 있다게 바로 뇌과학의 주장이다.

 

예컨대 파킨슨병은 뇌의 신경세포가 파괴됨에 따라 발생하는 퇴행성 질환이다. 흑질이라는 세포가 망가진 탓에 뇌가 걷겠다는 명령을 내릴지라도 걷지 못하고 제자리에 멈춰 서 있고 만다. 이처럼 걷는 것 같은 단순한 동작뿐만이 아니라 인간의 모든 것은 결국 뇌가 정상적으로 작동해야 가능해진다는 사실이다.

 

 

인간의 뇌를 관찰하다   

인간의 뇌가 단순한 관찰이나 철학적 이론을 넘어 과학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였다. 이탈리라 의사 카밀리오 골지가 최초로 신경세포를 염색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냈는데, 이를 골지 컬러링이라 부른다. 1890년, 이 방법으로 신경세포에 염색이 가능해짐으로써 관찰이 용이해졌던 것이다.

 

골지 컬러링의 특징은 염색 물질이 신경세포 단백질에만 붙어 신경세포만 눈에 보이게 만든다는 점이다. 골지가 관찰한 신경세포들은 마치 거미줄같이 서로 연결되어 있는 듯했다. 그래서 그는 신경세포는 단일 세포가 아닌 서로 연결된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그런데, 이 이론에 반기를 든 사람이 나타났다. 스페인 학자 산티아고 라몬 이 카할이었다. 그는 젊은 시절 화가를 지망했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렸고 관찰력도 뛰어났다. 이를 토대로 그는 신경세포가 거미줄 모양이 아니라 나뭇잎 모양의 단일 세포로 존재한다는 이론을 발표했던 것이다.

 

이 두 사람은 1906년 최초로 노벨 생리의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당시 골지는 카할이 이 상을 받으면 안된다고 물의를 빚기도 했는데, 시간이 흘러 2000년대에 염색 방법이 훨씬 발달하면서 카할의 이론이 맞는 것으로 밝혀졌다. 세계적인 뇌과학자인 제프 리히만 하버드대 교수 등이 2007년 <네이처>지에 발표한 '브레인보우'가 변별력을 키우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모든 생각은 나에서 시작되어 나로 끝난다     

이 순간에도 강렬하게 느낄 수 있는 나라는 존재는 대체 무엇일까? 다음 세 가지 중의 하나일 것이다. 첫째,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 둘째, 우리가 모르는 것. 셋째, 우리가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 사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대부분 세 번째 상태일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지 잘 모른다. 예컨대 나라는 존재는 지금 내가 알고 있는 나일까, 아니면 내가 안다고 믿고 있는 나일까? 이도 아니면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존재일까?

 

인간의 피부세포는 시간당 3~4만 개가 죽는다. 아무리 집을 깨끗이 청소해도 하연 먼지가 쌓인다. 허연 먼지의 실체는 바로 죽어서 떨어져나간 피부이다. 매일 밤 피부에 비싼 화장품을 발라 봤자 몇 시간 지나지 않아 먼지가 될 정도로 매년 3.6킬로그램의 피부세포가 떨어져나간다.

 

파부세포만이 아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창자세포도 2~3일에 한 번, 허파세포는 2~3주에 한 번, 적혈구세포는 4개월에 한 번, 간세포는 5개월에 한 번 바뀐다. 이처럼 우리 몸안에 있는 모든 세포들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100퍼센트 다 바뀐다. 나의 몸으로 판단했을 때 나라는 존재는 1년 전의 나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나'라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이는 뇌세포 때문이다. 몸 속 다른 것은 다 변해도 뇌세포는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합리적이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이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은 합리적으로 의사 결정과 선택을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인간의 선택은 대부분이 비합리적이며, 서로 연결되지 않은 독립적인 프로세스로 이루어진다. 다만 우리 뇌가 그 선택을 정당화하기 위해 스토리를 만들어낼 뿐이다. 사회적으로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한 시스템을 경제학에선 '파레토 최적'이라고 한다. 만약 인간이 합리적이라면 우리는 파레토 최적 사회에 살아야 한다.

 

그런데, 개개인의 선호도에 따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면 균형 가격에서 최적의 가격이 결정될 것이다. 즉 팔고 싶은 사람의 최적 가격과 사고 싶은 사람의 최적 가격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균형 가격이다. 하지만 1637년 튤립 열풍으로 인해 한 촉에 현재 가치로 약 5억 원이 될 정도로 폭등했으니 잘못된 선택을 한 게 아닐까?

 

 

정신 질환은 뇌의 손상

 

정신 질환은 특별한 병이 아니라 뇌의 특정 영역이 손상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역으로 손상된 뇌를 복원할 수 있다면 정신 질환도 치료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 질환이 과학의 영역으로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였다. 브로카 영역은 말을 하게 하는 영역으로 왼족 측두엽 앞부분에 해당하고, 베르니케 영역은 말의 의미를 만드는 영역이다. 

정신 질환의 일종인 '코타르 증후군'은 이해하기 어려운 병이다. 이 병에 걸린 환자는 자신이 죽었거나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너무나 당연하고 확실한 명제이다. 그런데 코타르 증후군 환자들에게 데카르트는 설득력이 없다.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믿음이니 말이다.

 

 

의미는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만약에 인간이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예술이나 문화에 과연 의미가 존재할까? 현대 뇌과학에서는 높은 수준의 지능이 있는 문어나 돌고래 같은 동물은 물론 인공지능 기계나 식물인간, 태어나기 전의 아이도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해석한다. 오직 인간의 '정상적인' 뇌에서만 의미가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 주에 거주하던 테리 샤이보는 평소 과체중을 비관해 거식증을 앓던 중, 어느 날 갑자기 심장 마비로 뇌에 손상을 입어 식물인간이 되었다. 이 상태는 1990년부터 2005년까지 계속되었다. 뇌사 상태임에도 그녀는 물을 마시거나 눈을 깜박거리는 것도 가능했고, 일으키면 서기도 했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1998년 아내의 생전의 뜻이라면서 영양 공급관 제거를 요청함으로써 그녀의 부모와 장기간의 법정 공방이 진행된 끝에 마침내 플로리다 주 대법원은 제거 명령을 내렸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안락사 논쟁을 초래했다. 냉정하게도 뇌과학은 식물인간의 뇌는 이미 죽었기 때문에 더 이상 인간이 아닌 그저 물체에 가깝다고 해석한다. 오직 정상적인 뇌를 갖고 있어야 의미를 만들 수 있다는 결론이다.     

의식이란 무엇인가?

좀비에게도 기계에게도 없지만 우리들 인간에게는 있는 것, 이는 바로 의식이다. 의식이 어디서 어떻게 비롯하는지는 여전히 비밀에 싸여 있다. 다만 과학적으로 뇌 한복판에 있는 클라우스트룸을 끄면 의식이 사라진다는 것은 밝혀졌다. 많은 과학자들은 의식이나 정신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일부 과학자들은 정신도 물질처럼 존재한다는 가설하에 지금도 연구 중이다.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환자의 뇌에 전기 자극을 가해 클라우스트룸을 켰다 컸다 하는 실험에 성공했는데, 클라우스트룸을 끄자 환자가 기절하지는 않았지만 식물인간이 되었다가 다시 클라우스트룸을 켜면 시스템 작동이 꺼지기 전에 했던 말을 이어서 했음이 밝혀졌다. 클라우스트룸은 마치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마에스트로의 역할을 한 것이다. 지휘자가 뇌에서 일어나는 일들의 순서를 정하지 않으면 그저 좀비에 불과해 진다.

 

붉은색 부분이 클라우스트룸 

 

 

영생永生과 엘레우시스의 비밀스런 의식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이야기하는 신화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프로세르피나 신화이다. 라틴어 프로세르피나는 그리스어로 페르세포네라 부른다. 프로세르피나는 곡식의 여신 또는 농업의 여신으로 알려진 데메테르의 딸로 매우 아름다웠다. 그 자태에 반한 지옥의 신 하데스(주피터의 동생)는 그녀를 납치해서 지하세계로 데려갔다. 지하세계로 한번 들어오면 결코 지상으로 나갈 수 없는 특별한 규칙이 있었다.

 

농업을 관장하는 데메테르가 딸을 찾느라고 자신이 할 일을 하지 않게 되자 곡식들은 죽어가고 덩달아 동물들도 죽어나갔다. 사람들 역시 하나둘 굶어 죽기 시작했다. 그리스 신들도 인간이 바치는 제물의 연기를 먹어야 살 수 있는데, 제물이 없어지고 제물을 바칠 인간도 없어지므로 큰 낭패가 발생했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주피터는 하데스에게 프로세르피나를 지상으로 돌려보내라도 명령했지만 응하지 않자 협상안을 제시하여 겨우 이 사태를 봉합했다. 협상안은 바로 1년의 1/4은 지하에서, 3/4는 지상에서 살도록한 것이다. 결국 프로세르피나는 봄, 여름, 가을은 엄마와 함께 살고, 겨울에는 지하 세계에서 엄마를 떠나 살게 되었다.

 

 

고대 그리스에는 엘레우시스의 비의秘儀가 있었다. 이는 피할 수 없는 사후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고 행복한 사후를 약속해주는 의식이었다. 그런데, 이 의식에는 황제나 귀족만이 멤버가 될 수 있었다. 이 클럽에 가입한 사람은 1년에 한 번씩 동굴에 들어갈 기회를 얻는다. 한 달간의 의식을 치른 후 환각 상태에서 동굴 속으로 들어가 동굴 끝에 이르면 삶과 죽음의 비밀을 알 수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 비밀을 발설하는 사람은 즉석에서 죽는다는 저주가 있었기 때문이다. 

 

엘레우시스 비의에는 그리스인들이 예전에 가지고 있던 믿음, 즉 인생과 우주는 순환 관계에 있다는 믿음이 반영되어 있다. 즉 우리 인간의 삶은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나는 등의 순환성을 띤다는 것이 엘레우시스 비의의 숨은 의미라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 우리 인간이 알아야 하는 최고의 비밀이기도 하다.

 

 

영원히 살 수 있을까?

 

인공지능의 발달로 가상현실 또는 증강 현실이라는 세상이 다가오고 있다. 가상의 이미지가 실제 현실처럼 우리의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멀리 떨어진 사람은 물론 죽은 사람과도 상호 작용할 수 있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이다. 가상현실 또는 증강현실에 비친 우리의 모습은 어떨까? 그 모습이 우리가 진정 원하던 모습일까? 

 

많은 미래학자들은 기술의 발달로 인해 반영구적인 삶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예를 들어, 머리의 이식이 가능하다면 50년마다 새로운 몸을 구해 머리만 계속 그쪽으로 옮기는 것이다. 공상과학 소설 같은 이야기에 그칠 수도 있겠지만 수백 년 후에 뇌와 거의 비슷한 컴퓨터가 만들어진다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미래학자 레이먼드 커즈와일은 나라는 존재를 계속 복사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인간 존재에 대한 철학적 물음에 뇌과학으로 답하다

인간은 138억 년 전 빅뱅이 생기고 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실패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지구에서 살고 있다. 만약에 인간의 조상이 한 명이라도 실패했다면 진화의 고리는 끊어졌을 것이다. 우주가 창조되고 지금까지 이어져온 불패의 성공, 138억 년 동안의 어마어마한 노력으로 인간은 여기까지 온 존재이다. 

 

겨우 1.4㎏짜리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인간의 뇌가 과학적으로 연구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부터다. 현대 뇌과학은 인공지능이라는 거대한 변혁 앞에 서 있다. 인간의 의식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지 아직 그 비밀을 풀지 못한 채 우리 인간들 앞으로 '기계의 시대'가 찾아온 셈이다. 이제 뇌의 언어를 밝혀내는 것은 인간들의 당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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