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 신호등
하수은.비행청소년.시쓰는사람단 지음 / 북랩 / 2016년 10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하수은의 <행복의 물약>, 비행청소년의 <겨울 계절의 난로처럼>, 그리고 시쓰는사람단의 <날개> 등 세 가지 작품을 포함하고 있다. 일종의 단편소설집을 연상하게 한다. 먼저 "행복은 어디에서 올까?"라는 질문을 던지는 <행복의 물약>은 동화같은 이야기를 통해 행복은 결코 물질적인 것이 아님을 깨닫게 해준다.

 

다음 이야기 <겨울 계절의 난로처럼>은 마치 원고지에 써내려간 듯한 분위기를 주는 18편의 에세이다. 추운 겨울에 얼어붙은 심신을 녹여주는 난로처럼 우리들에게 훈훈한 감동을 준다. 작가의 필명이 하늘을 자유로이 날아다니는 피터팬을 연상하게 하고 따뜻하게 몸이 녹이라는 소망을 담고 있기에 상처받은 많은이들을 위한 연고와 반창고가 되기에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날개>는 기차 여행 중에 마주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등장시켜 다양한 형태의 감정들을 만나볼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 '절망', '상실감', '후회', 답답함', '바람' 등등의 감정 말이다. 작가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들에게 날개를 가졌는지, 가졌다면 이는 생생한 것인지, 아니면 상처받은 날개인지를 묻고 있다. 그 답은 각자의 몫일 것이다.

 

 

 

 

사색思索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것에 대하여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짐'이다. 책의 제목에 포함된 사색은 이처럼 이야기를 통해 스스로 깊게 생각해보라는 주문일 것이다. 그런데, 책소개에 따르면 다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네가지 색 사색四色이다. 이는 세 사람의 작가와 독자를 포함한다는 설명이다.

 

책의 구성을 살펴보면 이야기가 끝나는 매단락 후미에 작가가 독자들에게 던지는 세 가지 질문이 실려 있다. 예를 들어, 하수은 작가는 독자들에게 첫 번째 질문으로 '행복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두 번째 질문으로 '여러분의 꿈은 뭔가요?', 세 번째 질문으로 '슬픔을 이겨내는 방법은 무엇인가요?'라고 말이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 세상에 전쟁이 끝나질 않고 계속 이어져 인심이 흉흉해지자 신은 한 요정에게 '행복의 물약'을 선물했다. 신비하게도 이 물약을 지니고 있으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능력을 가질 수 있었다. 신비한 물약 덕분에 요정은 언제나 웃을 수 있었고, 긍정적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에 요정의 주변에 있기만 해도 덩달아 행복해질 수 있었다. 요정이 머물다 간 마을은 한 해 동안 넘치는 음식과 재물로 풍요롭게 살 수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요정을 '행복의 요정'이라고 불렀다.

 

행복이 있으면 이를 빼앗으려는 반작용이 있기 마련이다. 행복의 물약을 탐내는 마녀가 있었다. 하지만 물약은 요정이 항상 휴대하고 있었기 때문에 손아귀에 넣기가 어려워지자 짝퉁을 만들기로 작정하고 수없이 많은 실험을 해봤지만 끝내 성공할 수 없었다. 이에 마녀는 더이상의 짝퉁 제조를 포기하고 대신에 요정의 물약을 훔쳐낼 방법을 고민했다.

 

 

어느날, 마녀가 살고있는 마을에 행복을 나누어 주려고 요정이 방문했다. 그러자 마녀는 자신이 비슷하게 만든 가짜 물약을 진짜와 몰래 맞바꾸려는 계획에 착수했다. 마녀는 우연히 집앞 아름드리나무 밑에서 발견했다는 행복의 물약을 요정에게 보여주며 아마도 자비로운 신께서 세상 곳곳에 이와같은 물약을 많이 숨겨두고서 도움이 간절하거나 기특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숨겨둔 장소를 알려주는 것같다고 요정을 현혹했다. 

 

다음 단계로 마녀는 요정의 낡은 약병을 자신의 깨끗한 물약병으로 교환해주겠다고 요정을 설득했다. 이미 마녀의 말을 믿고 있는 요정은 오히려 감사한 마음으로 진짜 물약병을 가짜 물약과 교환하고 말았다. 이후 진짜를 손에 넣은 마녀는 이를 남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탐욕스럽게도 모두 마셔버렸다.

 

한편, 가짜 물병을 휴대한 요정은 다른 마을을 방문했다. 파란색 앞치마 차림의 한 아주머니의 집을 찾아 갔다. 물약병을 손으로 만지는 것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 아주머니는 2층에 있는 아들에게 빨리 내려와 요정의 행복을 받으라고 외쳤다. 하지만 내려온 아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물약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난 그런 거 안 믿어요"

 

아들의 논리는 행복은 감정인데, 어떻게 물약에 담을 수 있느냐고 반박하면서 행복은 주고받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만 만들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집을 나온 요정은 아들의 말이 귓가에 맴돌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아들의 말이 지극히 당연한데, 그동안 의문을 품지 않았던 게 오히려 더 이상했던 것이다.

 

이후 마녀의 행동이 '행복의 물약'에 대한 생각을 바꾸게 하는 계기가 된다. 당초 진짜 물약을 혼자서 독차지할 경우 자신만 홀로 행복을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가짜 물약을 가진 요정은 여전히 늘 행복한 반면 자신은 행복은커녕 오히려 그런 요정의 행동에 짜증이 나고 화가 치밀었던 것이다.

 

땅바닥에 깨어진 가짜 쪽물병

 

이에 마녀는 지금껏 평범한 물이 행복의 물약이라고 속임을 당했다고 판단되어 이를 따지려고 요정을 찾아 나섰다. 어느 마을에서 행복을 전파하는 요정을 만나게 되자 마녀는 마을 사람들이 보는 자리에서 요정의 목에 걸려있는 물약은 자신이 쪽을 물에 넣어 우려낸 평범한 물일 뿐  모두 요정에게 속고 있다고 폭로하면서 요정의 목에 걸린 가짜 쪽물병을 빼앗아 땅바닥에 내팽개쳤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술렁이기 시작했지만 요정의 감동적인 말을 듣고서 마을 사람들은 이내 진정을 되찾았다.

 

"우리는 행복을 얻기 위해, 한낱 물약 따위를 서로 쟁취하기 위해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매달릴 필요가 없어요. 제발, 우리 진정한 행복으로 가득찬 세상을 다시 되찾아요!"

 

 

답은 항상 정답이 아니다

 

 

                

     

작가 비행청소년<겨울 계절의 난로처럼>에는 일련의 수필이 실려 있다. 수필의 내용은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힐링 역할을 한다. 18편의 작품 중 <답>이라는 글을 소개하려 한다. 살아보니 우리들 인생에서 만나는 수많은 갈림길에서 신중하게 선택한 결정이 늘 정답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작가 또한 이를 우리들에게 전하려 한다. 고심 끝에 찾은 '답'이 '정답'일 수도 '오답'일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오답이 두려워 앞으로 나아가는 걸 멈출 수는 없다. 틀려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실패에도 불구하고 오뚜기처럼 다시 재기하는 회복탄력성을 키워야 한다는 사실이다. 성공했다는 사람의 인생일지라도 100점짜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부단히 노력하면 100점에 가까워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당신의 날개는 생생한가?

 

탈출을 꿈꾸는 주인공은 자유롭게 훨훨 날 수 있는 날개를 찾아 기차 여행을 떠난다. 기차 안에는 무수한 인간 군상들이 있다. 배 불룩한 사내, 배 불룩한 여자, 등 굽은 노인, 검은색 긴 드레스를 입은 여자, 흰 머리카락과 깊은 주름살의 노인, 정신과 의사 등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기차 여행은 종착역이 있기 마련이다. 종착역이 다가오는데, 주인공은 살아있는 날개를 아직 보지 못했다. 고작 본 것이라곤 날개가 떨어진 흔적뿐이었다. 도박 때문에 대물림으로 물려받은 날개를 상실한 상처로서의 날개였다. 술병을 든 사람이 주인공에게 꼬깃한 쪽지를 전달한다. 날개가 있는 장소를 적어놓았다고 말했다.

 

그 사람과 작별한 주인공은 날개를 찾아 나섰다. 한적한 바닷가, 그는 해가 움직이는 자리를 따라다닌다는 어부를 찾고 있다. 한 아주머니가 오두막집으로 찾아가라고 알려준다. 도착하니 막 배에 그물을 얹고 출항을 서두르는 한 노인을 만났다. 기차에서 만난 사람이 알려주어 여기까지 찾아왔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노인은 배에 올라타라고 말했다. 자신의 날개가 있는 곳으로 안내하겠다는 것이다. 배는 해를 따라간다. 노인은 부지런히 해를 쫓아간다. 해가 멈춰 선 자리에 노인은 그물을 펼치고 때를 기다린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후 노인은 주인공에게 그물을 함께 당기자고 요청한다. 그는 모든 힘을 다해 그물을 잡아당겼다. 파닥거리는 생명들이 그의 몸 위에 힘차게 뛰고 있었다.

 

"어떤가? 나의 날개들일세. 자네의 날개가 될 수 있겠는가?"

 

 

노인은 이 많은 날개들이 늦은 나이까지 먹을 것을 제공했고, 돈벌이가 되어 자식들도 키울 수 있었다면서 바로 빛나는 자신의 날개라고 말했다. 주인공은 바로 그 자리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노인은 걷는 법부터 제대로 배운다면, 창공을 날 때에도 흔들리는 법이 없을 것이라고 그를 격려해주었다. 이미 주인공의 몸 곳곳에 싱싱한 날개가 자라나고 있었다.

 

 

치유가 필요할 때 잠시 멈춰 신호를 기다려라

 

왠지 정체되어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또한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잃고 막막한 사람들에게 신호등이 되어 준다. 계속 걸어갈 것인지, 멈출 것인지, 아니면 다음 신호를 기다릴 것인지... 선택은 바로 자신의 몫이다. 책장을 덮는 순간, 도서의 제목이 왜 '사색신호등'인지 미소가 절로 피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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