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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오는 길은 언제나 따뜻하겠지 - 비우고 채우는 프랑스 르 퓌 길 800km 걷기 여행
류승희 지음 / 꼼지락 / 2017년 3월
평점 :
품절
1998년, 프랑스 르
퓌 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또한 이 길 위에 놓인 도시 가운데 세계문화유산이 15개나 된다. 이 말은 르 퓌
길을 걸으면 적어도 이틀에 하루꼴로 깜짝 놀랄 만한 장소와 마주친다는 얘기다. 그렇다. 르 퓌 길은 자연을 중시한 길도 길이지만 매혹적인 문화의
흔적도 무한정 접하게 해준다. - '프롤로그' 중에서
프랑스 르 퓌 길 800킬로미터를 걷다
책의 저자
류승희는 화가로 파리1대학 판테옹 소르본에서 미술사와 미술기호학을 공부했으며, 1989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줄곧 그곳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녀는 우연히 한 권의 책을 통해
'산티아고 가는 길'을 알게 되어 매력을 느꼈지만 차마 떠날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며 자료만 수집하다
마침내 용기를 내 그토록 꿈꾸던 산티아고 콤포스텔라행 첫발을 내딛게 된다. 이 책은 그중 프랑스 르 퓌 길
800km의 여정을 담았다.
이후 도보 여행이라는 특별한 즐거움에 빠져 일찍 걷지 않은 것을 후회하면서 그 정열로
유럽에 산재해 있는 장거리 도보 루트를 꾸준히 방문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약 3,000km를 걸었다. 어떤 길에서나 꼴찌의 오명을 안고 있지만
새해가 오면 '올해는 어떤 길을 걸을까?'를 생각하는 걷기 마니아다. 지은 책으로 <화가들이 사랑한 파리>, <안녕하세요, 세잔 씨>,
<파리 메모아르>, <빈센트와 함께 걷다> 등이 있다.
푸른 선이 르 퓌 길
총 길이 800km에 이르는 르 퓌 길은, 프랑스 르 퓌
앙 블레에서 론세스바예스까지의 구간을 말한다. 스페인 산티아고 콤포스텔라를 향해 가는 이 길은 950년 첫 순례자 고데스칼크가 걸었던 길이기도
하다. 파리 고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한 한 권의 책을 통해 그녀는 '산티아고 가는 길'의 존재를 알고 매료되었으나, 용기를 내지 못하다가 화가
반 에이크가 그 길을 걸었다는 사실에 용기를 얻너 그토록 꿈꾸던 첫발을 내딛게
된다.
애처롭게 핀 들꽃, 멀리서 달려오는 자동차 뒤로
흩날리는 흙먼지, 까닭 없는 슬픔, 유서 깊은 도시, 찬란한 중세 건축물, 섬세한 장인의 손길, 가슴이 뻥 뚫리는 광활한 대자연, 매혹적인
마을, 감춰진 문화와 예술, 프랑스 오감의 신비…… 끝도 없는 낱말들이 르 퓌 길 하면 떠오른다는 그녀는 진정 르 퓌 길은 눈을 위한 파티이자
감동의 연속이었다고 감회를 밝힌다. 이제 우리들도 그녀와 함께 책을 통해 그 길을
걸어보자.
순례자들이 걷는 길, 르
퓌 길
이 책은 르 퓌 길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 길에 관련된 프랑스의 역사, 문화, 파리지앵으로 사는 저자의 삶이 함께 버무려져 있다. 책의 특징으로는 매 꼭지마다 명언들을 덧붙였는데,
이는 본문과의 관련성 여부를 떠나 저자가 직접 한 장의 종이에 적어서 실제로 도보 여행 때 가져갔던 명언이라고
한다.
"모든 여행은
첫발자국으로 시작한다"
- 중국
속담
출발 지점으로
가다
화산이 낳은 도시 르 퓌 앙 블레가 도보 여행의 첫
출발지이다. '르 퓌'는 뾰족한 화산을 의미한다. '블레'는 켈트어로 고대 골 부족
명장名將의 이름에서 유래했다. 이곳은 화산으로 인한 특이한 암석의 돌출과 현무암 기둥으로 자연이 빚어 놓은 작품인 셈이다. 여기서 가장 유명한
것은 도시 정상에 위치한 종교 기념물이다.
프랑스에서 가장 오래된 예배당 생 미셀, 붉은 색의 거대한 성모상, 도시를 장악하는
로마풍의 대성당 등이 바로 그것이다. 미셀 예배당은 산티아고 첫 순례자인 고데스칼크
주교가 순례를 마치고 돌아와 962년에 지은 건물로 알려져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현무암으로 된 거대한 손가락처럼 보인다. 뾰족한 바위산
정상에 위치해 있어 268개의 계단을 올라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또 다른 바위 코르네유 정상엔 1860년에 만든 '프랑스
성모'라 불리는 붉은 동상이 있다. 크림 전쟁 때 세바스토폴에서 포획한 213문의 대포들을 녹여서 만든 것이다. 무려 835톤의
성모상이 있는데, 높이가 무려 16미터로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1886년)이 있기 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컸다.
프랑스 성모상을 지나 내려오면 대성당이다. 초기
이교도이교도들의 성전이 있던 곳에 세워진 거대한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이다. 11~12세기 생 미셀 벽화와 샤를마뉴 시대부터 내려온 필사본
테오돌퓌 성경으로 유명하다. 9월 중순에 르 퓌 길 순례를 떠난다면 '새의 왕' 축제가 볼 만하다. 르네상스 시대의 가면과 복장을 한
선남선녀들이 펼치는 카니발이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대성당
순례자들의 휴식처, 건조
마차
길은 평지로 이어졌지만 궤도 이탈은 꿈도 못 꾸는 태양과의 전쟁이 계속되었다. 더위가
극에 달하는 순간, 버려진 나무 마차가 눈에 띄었다. 그 마차 위로 나이를 알 수 없는 무지무지하게 큰 나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마차 옆에
작은 연못만 갖춰진다면 영락없이 영국 화가 존 컨스터블(1776~1837년)의 그림 <건초
마차〉(1821년작, 내셔널갤러리 소장)다.
존 컨스터블은 영국 화가인데, 성공한 제분업자의
아들로 태어나 목가적인 풍경을 그려냈다. 당시 풍경화는 별로 대접받지 못하던 때였으나 그는 영국의 자연 풍광을 잘 표현함으로써 풍경화의 권위를
높였다고 평가받는다.
태양을 피해 그곳으로 하나둘씩 모여들었던 순례자들은 옹기종기 앉아 허기를 달래자마자 마차
위에 제멋대로 드러눕기 시작했다. 사진작가 얀 아르튀스 베르트랑이 헬리콥터를 타고 그 장면을 찍는다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다.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저자는 태양과 내면의 자아와 전쟁
중이었으니까 마치 전쟁 중의 휴전만큼이나 행복했다.
존 컨스터블, <건조 마차>
수녀들이 구제한
수도원
생 콤 돌트에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아주 훌륭한
숙소가 있다. 르 퓌 길에서 보기 드문 현대식인데다 새로 정비를 마쳐 아주 깨끗했다. 수녀, 신부, 순례자 무리가
식사 시간이 되어 모이면 수용 인원이 꽤 많다는 걸 알 수 있다. 이용료는 기부제인데 자원봉사자에 의하면 보통 프랑스 길에서는 10~20유로
정도가 기본이고 주머니 사정이 좋은 사람은 이왕이면 많이 지불한단다. 프랑스에서 이것이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다. 아침과 저녁 식사가 포함된
가격이다. 밭에서 직접 재배한 유기농 채소와 달걀, 치즈로 이뤄지는 식사인데 분위기가 맛을 돋운다.
수녀원은 너무 낡아서 이 건물을
없애기로 결정하였다. 그런데, 수녀들이 발벗고 나서서 구제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수녀들 개개인이 일해서 평생 모은 돈과 연금을 모금하여
새롭게 건물을 지어 현재의 모습이 된 것이라고 한다. 어려운 사람들의 무상 휴식처로 이용되며, 은퇴한 수녀들의 요양원이나 안식처로 활용되고
있다.
프랑스에선 매년 가장
아름다운 마을을 선정한다. 이때 생 콤 돌트도 뽑혔다. 먼저 눈에 띄는 장소가 생콤 돌트
성당이다. 교회 지붕이 비비 꼬여 있기 때문이다. 1552년에 건축된 것으로 르네상스 양식의 문 장식이 독특하다. 마을에
들어서면 고풍스러운 옛집들이 즐비하다. 스케치하고 싶은 소재들로 가득한 곳이다. 마를 자체가 한 폭의 잘 그린 그림과
같다.
비비 꼬여 있는 성당의 종탑이 보인다
순례자의 부상
소식
"느림은 대부분 끝까지
가지만 성급함은 길을 방해한다"는 아랍 속담에 딱 맞는 일이 발생했다. 잽싼 걸음걸이를 자랑하던 어느 순례자가 여행길을 멈췄다는
소식이었다. 이 순례자는 저자도 만난 적이 있던 인물이었다. 모순처럼 들리지만 이 도보 여행길에서 가장 비일비재한 이유가 바로 인대를 다쳐
응급실로 실려나가는 일이다.
걸음걸이가 남달리 재빠르거나 서두르는
순례자들, 특히 젊은이들이 주로 무릎을 다치거나 인대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왠지 무리해서 사는 사람들의 인생길과 유사하지 않은가.
출셋길에 질주하는 사람들, 모든 일이 쉬워만 보이는 사람들, 반짝반짝 빛나는 스타들, 아직 육체의 한계를 느껴보지 못한 젊은이들 등등. 상처받기
쉬운 여린 속살과 섬세한 인대는 누구에게든지 존재한다.
길 위의 자원봉사자
비밀 정원, 카오
아침 6시에 르 페크를 출발했다. 가랑비가 흩뿌리는 잿빛
하늘, 비가 내리는 이런 날에는 발의 통증은 없지만 습도로 인해 쉽게 지친다. 순례자에게 문제가 없는 날은 결코 없다. 인간의 삶과 닮지
않았는가. 순례자 저마다 크고 작은 문제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삶 가운데 지칠 때면 때때로 우리는 현실을 피하고자 여행을 가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으로 보상받진 못한다. 우리를 바꾼다는 건 더욱 꿈도 꾸지 않는 게 좋다. 여행은 우리를 바꾸는 게 아니라 우리 스스로를 알게 해준다.
그런데 순례 도보 여행은 다르다. 우리를 바꿀 수도
있다.
카오에는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특이한
다리가 있고 포도주로도 유명한 곳이다. 오랜 시간 길을 걷다보면 산업 기술 문명에 길들여진 자신과 멀어진다. 도시 중심에 도달하자 먼저 다리를
건너 관광 안내소를 찾았다. 어주 오래된 도시답게 오묘한 옛ㄱ것들로 가득했다. 오래된 특이한 집, 물시계, 건축물 등을 보며 마치 타임머신을 탄
기분이 들었다.
카오는 케르시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2천 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로트 강으로 둘러싸인 도시는 섬에 가깝다. 3개의 탑으로 유명한 발랑트레 다리는 생
테티엔 성당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고, 프랑스 정부가 뽑은 예술과 역사의 도시로 선정되었다. 교황 요한 22세의 출생지이며,
비록 18세기에 파괴되었지만 그가 1331년에 세운 유서 깊은 카오 대학이 있었다.
왼쪽 편에 보이는 다리가 '발랑트레
다리'이다
"르 퓌 길을 걷다 보면,
프랑스의 매력과 나 자신의 매력을 찾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