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경제학 - 왜 부족할수록 마음은 더 끌리는가?
센딜 멀레이너선 & 엘다 샤퍼 지음, 이경식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4년 3월
평점 :
절판


우리가 이 책에서 주장하고자 하는 것은 매우 단순하다. 결핍은 사람의 주의력을 사로잡으며 결핍이 제공하는 편익, 즉 절박한 필요성을 좀 더 잘 제어한다는 것은 협소하다는 점이다. 그런데 우리가 치러야 하는 결핍의 대가는 매우 크다. 당연히 관심을 기울여야 할 다른 일들을 무시하게 되고, 일상생활을 할 때도 훨씬 효율적이지 못한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주장은 결핍이 우리의 행동을 규정하는 방식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우리에게 어떤 놀라운 결과들을 알려준다. 그리고 나아가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인 결핍을 어떻게 제어해야 할지 알려주는 한 줄기 새로운 빛이 될 것이다. - '서문' 중에서

 

 

결핍은 인지 능력을 떨어뜨린다

 

책의 저자 센딜 멀레이너선은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행동경제학과 개발경제학 분야의 전문가로 폭넓은 인간 행동과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는 인도의 사탕수수 농부에서부터 직장을 구하기 위해 대기업에 이력서를 넣은 워킹맘 등 다양한 사람들의 행동과 의사결정 방식 등을 연구하여 놀라운 결과와 통찰을 보여주고 있다. 신세대 천재학자로 주목받고 있으며, 세계경제포럼은 그를 "젊은 글로벌 리더"로 손꼽았다. 맥아더재단으로

 

 

 

 

 

 

 

 

너무 늦었다고 느껴질 때

 

우리들은 시간이 부족하다고 느끼면 해야할 일에 더욱 집중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누구나 중간고사 일정이 코 앞에 다가왔을 때 또는 새벽에 당일치기 시험공부를 할 때 공부에 더 잘 집중되는 경험들이 있었을 것이다. 이는 결핍이 우리의 정신을 얼마나 확실하게 사로잡는지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또 마감시한은 생산성을 높여준다. 원고마감을 눈 앞에 둔 작가들이 평소 작업량보다 훨씬 많은 원고를 느끈하게 수행해낸다고 한다. 시한이 제법 많이 남아 있을 경우엔 개인적인 용무나 지인들과 어울려 시간을 허비한다. 물론 이때에도 원고 쓰기를 머리에 떠올리긴 한다. 그렇게 절박하지 않기에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다. 시간의 결핍 상황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터널링, 오직 그것에만 집중한다

 

긴 터널에 들어가면 오로지 멀리서 빛을 발하는 출구만 보이고 주변의 사물은 깜깜해서 보이지 않는다. 이처럼 관심을 두는 대상만 보이고 나머지는 보이지 않는 현상을 터널 시야 현상이라고 부른다. 결핍이 사람들로 하여금 터널링, 즉 임박한 결핍을 제어하는 데만 오로지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게끔 유도한다.

 

터널 시야에 사로잡힐 때 우리는 때로 다른 것들을 완전히 무시하기도 한다. 어떤 급한 일로 정신없이 바쁠 때 사람들은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을 포기하거나, 재정 상태를 확인하는 일을 게을리 하거나, 정기검진을 미룬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는 "아이들이 정말 나를 필요로 하는데, 나는 언제쯤 시간을 낼 수 있을까?"라고 말하기보다는 "주말은 이번이 아니더라도 많으니까 아이들과 함께 보낼 시간은 얼마든지 낼 수 있어"라고 말하기 쉽다. 터널 속에서는 환하게 보이는 출구 외에 다른 것들은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결핍 효과

 

실험 진행자가 굳이 결핍을 상기시키지 않는다 해도 빈곤은 유동성지능과 실행제어 능력을 축소시킨다. 이런 사실은 가난한 사람의 인지능력에 대한 논의에 상당한 왜곡이 있음을 암시한다. 가난한 사람은 부유한 사람보다 인지능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그의 능력이 원래 그렇게 낮아서가 아니라 그가 가진 정신의 일부가 결핍에 사로잡혀 있는 데서 빚어진 오해일 따름이다.

결핍은 사람들로 하여금 좀 더 큰 실수를 하도록 유도한다. 연체료는 계획오류나 약속을 잊어버리는 행위에 대한 벌칙이다. 하지만 이것은 결핍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훨씬 더 적대적인 환경을 조성한다. 쉽게 사먹을 수 있는 정크푸드는 가난하고 바쁜 사람들에게 비만을 유발할 수 있는데,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 나쁜 환경에 노출되고 더 집중하기 어려운 악순환에 빠진다. 하지만 부유하고 유유자적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들이 덜 위협적이다. 실수할 여지를 제공하고 사람들을 곤경에 빠트리는 환경을 극복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힘든 과제이다.

 

 

경제학자조차 오류를 범하는 기회비용

 

전 세계의 경제학을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기회비용을 생각하지 못하다니 놀랍지 않은가? 하지만 그들은 높은 월급을 받고 있고, 따라서 경제적으로 매우 풍족한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다. 사소한 트레이드오프와 맞닥뜨리는 일에 익숙하지도 않은데, 굳이 사소한 기회비용을 계산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말하자면, 경제학 교과서 기준으로는 오답을 제시했지만, 일상적인 인간 행동의 기준으로는 정답을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그들을 포함해서 많은 부유한 사람들은 작은 돈을 놓고서 트레이드오프를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행동경제학은 사람들이 이런 기본적인 경제학적 예측들과 다르게 행동하는 것을 관찰한 결과에서 탄생했다. 이 사람들은 기회를 비용이라고 생각치 않는다. 어떤 물건에 돈을 기꺼이 지불하겠다는 의지는 너무도 쉽게 움직인다. 그렇지만 경제학은 희소성이라는 결핍의 논리를 추구하는 학문이다. 그러므로 경제학의 예측은 결핍의 정신 상태를 실잘적으로 가진 사람들의 행동을 대상으로 할 때 더 정확해질 수 있다.

 

 

땜질 처방으로 미래 무시하기

 

중요하지만 긴급하지 않은 활동을 뒤로 미루는 것은 모자라는 요소를 빌리는 행위나 마찬가지다. 그렇게 뒤로 미루면 지금 당장은 넉넉한 시간이 생긴다. 하지만 이때 미래에 청구될 비용이 발생한다. 나중에 다시 일을 처리하려면 그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을 따로 또 찾아야 한다.

 

언젠가는 이렇게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대한 비용을 치러야 하거나, 혹은 그 일을 즉시 처리했을 때 얻을 수 있었던 편익을 누리지 못하게 된다. 예컨대, 편지 더미 아래 놓여 있는 서류를 찾느라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이런 식으로 사람들은 날마다 조금씩 비용을 발생시킨다. 이 비용은 결코 일을 긴급하게 만드는 마감시한처럼 크지 않다.

 

 

왜 계속 저글링을 해야 할까?

 

저글링은 터널링의 논리적인 귀결이다. 터널링 상태에서 우리는 어떤 문제들을 미봉책으로만 '해결'한다. 현재 상태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지만, 그 해결책은 나중에 새로운 문제를 일으킨다. 오늘 날아온 청구서는 대출을 낳고, 이 대출은 나중에 또 다른 좀 더 큰 금액을 요구하는 청구서를 낳는다. 싸구려 치료는 잠깐 동안은 효과가 있지만 나중에 더 비싼 치료비를 들여야 하는 상황을 낳는다.

 

터널링 상태에서는 저글링을 하는 여러 개의 공 가운데 이제 막 떨어지려는 공에만 초점이 맞춰진다. 때로 우리는 그 문제를 영원히 해결할 수도 있다. 하지만 떨어진 공을 잡자마자 다시 또 떨어지는 다른 공을 받으려고 잡은 공을 위로 다시 던져 올려야 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239

 

 

실패가 실패를 부르는 가난

 

가난한 사람들이 가장 흔히 시달리는 결핍 가운데 하나가 대역폭帶域幅이다. 부족한 돈을 어떻게든 쪼개고 만들어서 살아가려는 힘겨운 투쟁이 이 사람들에게서 대역폭이라는 필수적인 자원을 박탈한다. 여기에 따른 결핍은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영양 부족 및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는 표준적인 생리적 다양성과 전혀 다른 것이다. 또한 대역폭은 빈곤에 의해서 항구적으로 훼손되지 않는다. 이것은 돈에 쪼들림에 따라서 나타난 현재의 인지부하이다. 즉 소득이 늘어나고 형편이 나아지면 인지능력이 향상된다는 말이다. 

 

우리는 대역폭을 이용해서 포커에서 자기가 이길 가능성을 계산하거나, 다른 시람의 표정을 읽거나, 감정 표현을 자제하거나, 충동을 억느르거나 책을 읽거나, 혹은 창의적으로 생각한다. 발전된 거의 모든 인지능력은 대역폭에 의존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대역폭에 매겨진 세금은 쉽게 간과하고 만다.

 

대역폭

우리가 가진 계산 능력, 즉 주의력을 기울이고 좋은 판단을 내리며 앞서 세웠던 계획을 고수하며 유혹에 저항하는 능력의 척도이다. 지능과 SAT  성적에서부터 충동 조절 및 다이어트 성공에 이르는 모든 정신능력과 관련이 있다. 

 

 

일상에 숨겨진 결핍들

 

지속적으로 경계해야 하는 행동을 단 한 차례의 행동으로 변환하는 것이다. 싱크대 한쪽에 놓여 있는 과자를 집으려 할 때마다 경계를 할 게 아니라, 아예 슈퍼마켓에서 그 과자를 사지 말라는 말이다. 많은 평범한 과제들이 이와 동일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집을 깨끗하게 정돈된 상태로 유지하려면 지속적인 경계가 필요하다. 하지만 경제적인 여유가 있다면 도우미를 고용하는 단 한 차례의 경계만으로 그 지속적인 번거로움의 고통을 해결할 수 있다. 자동이체 설정을 한 번만 하면 한 달에 한 번씩 날아오는 청구서를 해결하느라 늘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된다. 하이패스를 구매하면 고속도로를 통행할 때마다 현금을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

결핍의 세상에서 마감시간을 길게 설정하는 것은 문제에 대처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만 초기에 풍족한 상태는 낭비를 촉진한다. 그리고 마감시한이 가까이 다가오면 터널링과 무시가 자리를 잡는다. 길게 잡은 마감시한을 짧게 여러 번으로 나누어서 설정할 때 이런 상태를 막을 수 있다. 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한해 소득을 일시불로 손에 넣은 농부도 초기에는 풍족하다가 나중에는 극심한 결핍에 시달리는 양상을 반복한다. 이 농부는 한 해 소득을 한꺼번에 받지 않고 다달이 나누어서 받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또 식료품 할인 구매권을 지급받는 저소득 가구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람들이 한 달이라는 기간에 걸쳐서 소득을 골고루 지출하지 못한다는 사실은 앞에서도 확인했다. 

 

 

결핍은 인간의 행동을 좌우한다

 

가난한 사람은 왜 계속 가난할까? 바쁜 사람은 왜 계속 바쁠까? 가난한 사람은 왜 지능지수가 낮고, 아무런 대책이 없을까? 매우 중요한 미팅임에도 불구하고 약속시간에 늘 늦는 사람이나 리포트를 항상 늦게 제츨하는 학생들은 도대체 왜 이런 행동을 보일까? 책의 저자들은 해결책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단서를 포착했다. 그것이 바로 '결핍'이다. 이를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접근할 때 비로소 해결책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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