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불평등해졌는가 - 30년 세계화가 남긴 빛과 그림자
브랑코 밀라노비치 지음, 서정아 옮김, 장경덕 감수 / 21세기북스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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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경제적, 정치적 행위는 대부분 개별 국민국가 차원에서 일어나지만 세계화는 그 어느 때보다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세계화는 개개인의 소득 수준, 고용 전망, 지식과 정보의 양, 날마다 사는 제품의 가격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한겨울에 신선한 과일을 구할 수 있느냐 여부까지도 결정짓는다. 또한 세계화의 등장으로 세계무역기구WTO, 이산화탄소 배출 제한, 국제 조세회피에 대한 단속과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가 탄생했고 이를 통해 새로운 경쟁규칙이 도입되고 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소득 불평등을 국가적 현상으로만 보던 20세기 관습에서 탈피하여 세계적 현상으로 간주해야 한다. - '들어가며' 중에서

 

 

불평등은 해소될 수 있는가?

 

저자 브랑코 밀라노비치는 세르비아계 미국인 경제학자로 룩셈부르크 소득연구센터의 선임 학자이며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의 객원석좌교수이다. 세계은행 연구소 수석 경제학자로 활동한 바 있으며, 메릴랜드대학과 존스홉킨스대학 초빙교수를 역임했다. 불평등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정상급 경제학자답게 그

 

 

 

 

 

 

 

 

A 지점은 전 세계 소득 분포의 중간값 근처에 있다(중간값은 분포를 정확히 절반으로 나눈다. 즉 전체 분포가 중 위소득인 사람보다 잘사는 50%와 가난한 50%로 나뉘는 지점이다). 실질소득 증가율이 가장 높았던 사람들이 A지점에 해당한다. 일부는 20년 동안 실질소득이 80%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소득 성장이 중앙값 근처에 있는 사람들에 국한된 현상은 아니었다. 전 세계 소득 분포의 약 40분위부터 60분위에 이르는 사람들의 소득이 증가했다. 이는 세계인구 가운데 1/5에 해당한다.

B지점에 있는 사람들이 A지점 사람들보다 부유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B지점의 세로축값이 0에 가깝다는 사실에도 주목해야 한다. 이는 20년간 B지점 사람들의 실질소득이 전혀 증가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이 집단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을까? 대부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인 고소득국가 국민이다. 그중에서 동유럽 국가, 칠레, 멕시코 등 비교적 최근에 회원이 된 나라를 제외하면, 3/4 정도가 WENAO(Western Europe, North America, Oceania)로도 나타내는 서유럽, 미국, 오세아니아 등 '전통적인 부자나라'와 일본에 사는 사람들이다.

 

"세계화의 최대 승자는 아시아의 빈곤층과 중간계층이며

최대 패자는 부자 나라들의 중하위층이다" 

 

레이건-대처 혁명 이후에 자국과 세계 경제에서 시장의 역할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던 서구 정치가들은 엄청난 찬양을 받던 세계화가 자국민 과반수에게 가시적인 혜택을 가져다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을 듯싶다. 다시 말해 정치가들이 사회보장제도보다 신자유주의 정책의 이점이 크다며 설득의 대상으로 삼았던 사람들이 바로 세계화의 패자가 된 것이다.

 

 

 

제2 쿠즈네츠 파동의 하강 요인

 

1971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사이먼 쿠즈네츠는 산업화 초기에 높아진 소득 불평등이 경제가 성숙함에 따라 다시 낮아진다는 이른바 역U자 가설을 만들었다. 하지만 실제론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낮아졌던 불평등이 1980년대 이후 다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불평등 추세는 가설과는 반대로 U자형을 그리고 있다.

 

제2 쿠즈네츠 파동은 제1차 파동과 여러 가지 공통점을 지닌다. 제2 파동이 상승한 요인도 2차 기술혁명과 세계화다. 이 두가지 기술 혁명 모두 지대地代를 창출했다. 2차 기술혁명의 경우 이동통신, 제약, 금융 부문에서 지대가 발생했으며 그 수혜자는 기술부문 선두주자와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여 독점권을 얻고 보호를 받는 사람들이었다.

 

저자는 어떤 양성 요인이 고소득국가를 제2 쿠즈네츠 파동의 하강 부분으로 이끌어갈지 논하려 한다. 그가 제시하는 양성 요인은 5가지다. 첫 번째 요인은 세율 인상과 누진 과세의 강화로 이어지는 정책 변화다. 국민에게 완전한 선거권이 있는 민주주의 체제에서 이러한 정책 변화는 '당연히' 나타날 만한 일이다. 불평등이 심화되면 정부의 재분배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리라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양성 요인은 교육과 숙련도 간의 경주다. 특히 미국에서는 상승한 숙련도 프리미엄 가운데 일부가 고숙련 근로자의 공급 확대로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필연적인 한계가 뒤따른다. 교육연수를 평균 13년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확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세 번째 양성 요인은 기술혁명 초기 단계에 발생한 지대地代의 소멸이다. 기술혁명이 진행되고 다른 개인이나 기업이 초기의 혁신적인 주자를 따라잡게 되면 지대가 감소하거나 사라지고 소득 불평등이 축소된다. 실제로 현재의 부富는 대부분 실리콘밸리로 대표되는 신기술 부문에서 발생했다. 

 

고소득국가의 불평등 증가를 억제할 네 번째 양성 요인은 글로벌 차원의 소득 수렴이다. 한마디로 중국과 인도의 임금이 오늘날 고소득국가 수준으로 상승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25년 동안 세계화의 진행과 더불어 우리가 목격했던 현상과는 반대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는 얘기다. 글로벌 소득 수렴은 고소득국가의 중산층 공동화를 끝내고 국가 내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기반을 조성할 것이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다른 저소득국가가 부상하여 중국과 인도가 물어난 자릴를 차지하고 미국과 다른 고소득국가의 임금에 계속해서 압력을 가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소개하는 양성 요인은 현실보다는 이론을 바탕으로 한다. 저숙련 근로자의 생산성을 고숙련 근로자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저숙련 편향적 기술진보가 바로 다섯 번째 양성 요인이다. 이와 같은 생각은 현재처럼 기술진보가 고숙련 편향적이거나 반복적 과업을 수행하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시대에는 얼마간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내생적 기술변화(비용이 덜 드는 생산요소의 사용을 늘리는 식으로 기술이 적응하는 것) 이론이 시사하듯이 고숙련 근로자와 저숙련 근로자 사이의 임금 격차가 계속해서 확대된다면 저숙련 근로자에 유리한 혁신기술이 나오리라 예상하는 것이 당연하다. 고숙련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비싸지면 저숙련 노동력이 수행하는 생산이 더 큰 효율성을 획득하는 시기가 도래할 수밖에 없다.

 

 

지역 요인의 중요성

 

우리는 지역 요인이 어떤 사람의 생애소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세상에 살고 있다. 좋은 지역(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은 '시민권 프리미엄'을 누리고, 그렇지 못한 지역(나라)에서 태어난 사람은 '시민권 페널티'를 감수해야 하는 세상이다. 이민 등의 사안과 연관이 있으므로 경제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시민권 프리미엄이라는 것을 '정의正義'의 측면에서 정당화할 수 있는지 고찰할 경우 철학적으로도 중요성을 띠는 주제다.

 

 

중국 내의 불평등

 

2010년 이후로는 중국의 불평등 수준에 관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어쨌든 중국의 소득 불평등이 정점을 찍었다는 낙관론이 정설이다. 곧 감소 추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의 정치체제는 상의하달上意下達 방식이다. 이런 정책 덕분에 중국 정부는 1980년대의 경제특구에서부터 최근 몇 년 동안의 상하이 증권거래소 운영에 이르는 실험을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한 정치체제로 지난 반세기 동안 큰 성과를 거둔 것은 사실이지만 몇 가지 취약점을 내포하고 있다.

 

첫 번째 취약점은 지방정부 관료들의 탐욕에서 드러난다. 이들은 부패했기 때문이든 다른 지방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든 악랄한 착취를 일삼는다. 예를 들어 헐값으로 농민의 토지를 수용하거나 근로자를 매우 열악한 근로환경에 몰아넣는다. 이런 착취로 인해 중국 전역에서 2013년 한 해에 발생한 시위가 50만 건에 달했다.

 

그러나 중국처럼 고위직 간부의 선임 방식, 간부의 권한, 이들이 권좌에 머물 수 있는 기간 등을 명시한 법률규정이 존재하지 않는 체제에서는 중앙의 목적이나 이해관계를 통일하기가 쉽지 않다. 지방의 '강도 재벌'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분권체제 하에서는 중앙이 조금만 흔들려도 성省급, 현縣급 정부가 지금보다 더 멋대로 행동할 것이 분명하다. 그럴 경우 중앙 정부가 성급 정부의 결정에 휘둘리는 결과가 나타난다. 궁극적으로는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국가가 해체될 수 있다. 따라서, 저자는 국가 해체야말로 중국이 향후 수십 년 내에 직면할 수 있는 가장 큰 위험이라고 생각한다.

 

 

 

포퓰리즘과 자국민 우선주의

 

유럽 국가가 금권정치로 돌아설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주자나 난민 흡수 문제가 한두 세대 이후에도 정치계에 강력한 악영향을 끼칠 것이다. 이주 문제로 모든 고소득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세계화에 의한 '일반적인' 압력이 가중되어 지난 25~30년 사이에 중하위층의 소득이 하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에 따라 유럽에서는 세계화의 압력이 두 가지 판이한 형태로 구체화된다. 노동력의 이동(이주)에 의한 압력과 상품의 이동(수입)과 자본의 이동(유출)에 의한 압력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러한 압력에 대한 대응으로 결국은 중산층의 포퓰리즘이나 자국민 우선주의가 나타난다.

 

 

금세기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질까?

 

소득 불평등과 정치적 문제는 앞으로도 밀접하게 연결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불평등 증가로 금권정치가 강화되긴 하겠지만 정치체제가 근본적으로 뒤바뀌는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예상된다. 반면에 중국은 불평등의 증가로 기존 정치체제가 흔들리면서 집권 공산당이 좀 더 민족주의적이고 독재적인 정권으로 변질되거나 민주주의로 대체될 가능성이 있다. 둘 중 어떠한 결과로 이어지든 정치적 변화는 경제적 대혼란과 성장 하락을 수반할 것이다.

모든 사람의 교육 수준이 높은 사회에서는 교육 프리미엄이 0에 수렴될 수 있다는 틴베르헌의 가설이 실현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예측과는 달리 임금 격차의 확대 추세가 뒤바뀌는 일은 없을 듯싶다. 행운뿐 아니라 가족의 기본 재산과 인맥의 중요성이 한층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그 가운데서도 어떤 인맥을 쌓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정치인, 영화배우, 주식거래인의 자녀라고 해서 부모와 같은 직업을 수행할 최적임자라고 할 수 있을까? 단연코 그렇지 않다. 그저 부모가 이룬 직업적 성공이 자녀의 성공을 비롯한 더 큰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일 뿐이다. 채용을 결정하는 사람과 친분이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그러한 친분을 쌓으려면 가족 배경과 인맥이 필요하다.

높은 경제 성장은 계속해서 중요할 것이다. 특히 아프리카의 저소득국가는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와 중미의 일부 국가도 고성장을 달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주된 관심사는 성장 둔화를 유도하기보다 최저소득국의 성장을 끌어올리는 데 있다. 게다가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저소득국의 성장과 이주 압력 간에는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저소득국가가 성장세를 탄다면 이주를 받아들이는 나라 역시 억눌린 이주 수요나 이주와 관련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가 쉬워진다. 그렇게만 된다면 유럽 정치계에서 포퓰리즘과 외국인 배척주의를 어느 정도 가라앉히고 미국에서는 이주가 정치적 논쟁거리로 악용되는 일을 줄일 수 있다.

 

 

 

 

"불평등이 민주주의적 자본주의 체제를 흔들고 있다"

 

책의 마지막 장은 미래의 소득 불평등과 세계화에 관한 10가지 질문을 묻고 답하는 방식으로 저자의 주장을 정리하고 있다. 이 중 인상적인 대목은 "불평등을 줄이는 데 경제 성장은 여전히 중요한가?"라는 질문에 저자는 "장기적으로 볼 때 성장과 불평등은 상충관계를 나타내지 않는다"고 답한다. 경제 성장이 글로벌 불평등을 줄이는 가장 강력한 수단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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