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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숨겨진 경제학자들 - 역사와 경제를 넘나드는 유쾌한 지식 수다
최태성.박정호 지음 / 탐 / 2016년 9월
평점 :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저희는
뜻하지 않은 커다란 보람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역사를 보다 풍성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접근해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역사를 다른
어떠한 역사보다 가치 있게 만드는 작업은 그 누구도 대신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 민족 스스로가 해야 할 일들이지요. 우리 두 사람은 그간 좀처럼
시도된 바 없는 경제적 관점에서 우리 역사를 되짚어봄으로써 우리 역사 속에 숨은 또 하나의 가치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 과목과 과목의 경계를
허물어 버리고 마음대로 다른 영역을 넘나들면서 새로운 발상을 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와 교육 시스템은 바뀌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도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같은 인물들이 쏟아져 나올 것입니다. 그러한 변화의 방향에 저희가 작은 도전을 합니다. - '저자의 말'
중에서
역사와 경제가 만나는 콜라보 무대
저자
최태성은 단편적인 사실에 그치지 않고 역사의 본질을 파고드는 수업 진행으로 유명하다. "역사를
공부할 때는 무엇보다 먼저 '왜?'라고 묻고, 그 시대 사람들과 가슴으로 '대화'하며 답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재 대광고등학교 역사교사로 재직 중이며, 2002년부터 10년 넘게 EBS의 한국사
강의를 맡아 사랑과 열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수험생들 사이에서는 일명 판서의 본좌, 대한민국 수험생의
한국사 고민을 종결지은 역사 지존 으로 통한다. 웃음과 감동이 함께하는 가슴 뜨거운 역사 수업을 위해 오늘도 동분서주하며 슈퍼파워를
발휘하는 유쾌한 역사 교사이다. 중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 및 역사부도 집필에 참여했으며, KBS 1TV [역사저널 그날] 패널로
활약중이다. 저서로는 <큰-별쌤 최태성의 한눈에 사로잡는 한국사>, <교과서 밖으로 나온 한국사>(공저),
<Keyword 365 한국사., <큰-별쌤 최태성의 중급 수능 한국사>등이
있다.
경제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 경제학이나 경제 지식에 대한 관심이 과거에 비해 한층 높아졌다. 그런데, 학문으로서의 경제학에 대해서
우리들은 대체로 서양에서 수입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쉽게 말해서 '수입품'으로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선조들은 경제 현상에 관해
전혀 식견이 없었을까? 아니다. 우리의 역사 속에도 경제적 식견과 지혜를 갖춘 인물들이 있었다. 이 책은 바로 이런 점에 초점을 맞추고 기술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양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있다면 우리 역사엔 실사구시의 경제학을 표방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있다.
국가의 부富를
이야기하다
경제학이란 학문의 원조로 대부분 '보이지
않는 손'을 주창한 영국의 도덕철학자이자 정치경제학자인 애덤 스미스( 1723~1790년)를 꼽는다. 특히, 그는
1776년 '국가의 부富의 본질과 원천에 대한 탐구', 즉 <국부론>의 초판을 통해 노동
분업이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원동력이라고 강조했다. 오늘날의 거시경제학의 원조 격인 이 책은 다음과 같은 대명제로
시작한다.
"일국의 국민의 연간 노동은 그들이 연간 소비하는
생활필수품과 편의품 전부를 공급하는 원천이며, 이 생활필수품과 편의품은 언제나 이 연간 노동의 직접 생산물로 구성되고 있거나, 이 생산물과의
교환으로 다른 나라로부터 구입해 온 생산물로 구성되고
있다"
<국부론>(1776년
초판)
조선시대의 정약용은 애덤 스미스보다 약 40년 늦게 출생했지만 당시의 확고한 시대관을
토대로 더 이상 조선사회에 작동하지 않는 성리학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개혁군주 정조가 죽은 후 이른바
'세도정치'의 폐해가 '삼정三政의 문란'으로 나타나자 정약용은 토지개혁 등 국가
경제의 재건을 위한 저서들을 집필했다. <경세유표>, <목민심서>, <흠흠신서> 등이 바로 그의 3대
명저다.
여기서 삼정三政을 살펴보고 넘어가자. 이는 '전정', '군정', '환곡'을 가리키는데,
전정은 농사를 짓는 땅에 부과하는 토지세의 수취를 말한다. 군정은 군역을 부담하지 않는 16세부터 60세까지의 모든 남자들에게 부과하는
군포軍布의 수취를 말하며, 환곡이란 먹을 것이 귀한 춘궁기에 곡식을 빌려주고 가을 추수기에 이를 상환받는 제도이다. 당시 한양에서 지방을
통제하는 힘이 떨어지자 지방 수령들의 가렴주구가 극에 달했고, 심지어 관직의 매매까지 성행했을 정도이다. 유배지에서 이를 목격한 정약용은
백성들의 삶을 개선하려면 국가의 개혁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던
것이다.
<경세유표>~ 세상을 어떻게 통치하느냐에 관한
학문
<목민심서>~ 지방 수령이 부임해서 그만둘
때까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흠흠신서>~ 어떻게 공정하게 형벌을 내릴
것인가
부국을 위한 방법은 바로 '분업'이었다. 분업을 통해서 효율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이는 애덤 스미스나 정약용 모두 확고한 신념을 가졌다. <국부론>에는 그 유명한 핀pin공장 이야기가 나온다. 각자 핀을
펴고, 심을 박는 역할을 하는 분업을 통해 훨씬 생산성이 높아짐을 설명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는 이런 과정에서 제일 중요한, 경제적 의사결정을 누가 해야 하는데? 주어가
누군데? 라는 부분에서 개인이 해야 한다, 당사자가 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한 사람이다. 반면 정약용은 국가가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것이
<경세유표>를 마무리 짓지 않고 <목민심서>나 <흠흠신서?로 간 이유이기도
하다.
조세의 역할을
뒤엎다
조선의 15대 왕 광해군은 다른 왕과 호칭도 다르다.
중간에 정변이 일어나 쫓겨난 임금에겐 '군君'이란 호칭을 붙였다. 중종반정 때 연산이 쫓겨났고, 인조반정 때 광해가 쫓겨났다. 이렇게 딱 두
번뿐이다. 우리들은 대체로 광해군을 폭군으로 이해하고 있다. 하지만 그는 임진왜란 때 세자로 책봉되어 많은 공을 세웠고, 전후 복구사업과
토지대장의 정리 등 큰 일을 수행한 왕이다. 특히, 그는 '대동법大同法'이라는 조세제도를 도입한
군주였다.
임진왜란 때 당시 왕인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제일 먼저 북으로 도망쳤다. 이에 백성들은
왕에 대한 시선이 싸늘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대동법은 대표적인 감세정책이다. 조선의 농민들은 3대 세금을 부담해야 했다. 전세, 공납, 역 등
세 가지이다. 전세는 자신의 경작지에서 나온 생산물에 대해 일부를 납부하는 것이고, 공납은 그 지역의 특산물을, 역은 노동력을 납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공납이 제일 큰 문제거리였다. 얼핏 생각하면 특산물의 납부가 제일 쉬워 보인다.
하지만 그 생산이 일정하게 유지되지 않는 게 문제였다. 예를 들어, 제주도에 태풍이 몰아치면 귤의 생산이 저조해서 툭산물을 바치기가 어려워진다.
이때 대행 서비스업자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방납防納업자라고 불리는데, 지방관과 결탁하여 폭리를 취했다. 즉
지방관에게 상납하는 것 이상으로 챙긴 것이다. 일종의 독점권이니 그럴 수밖에. 이 폐단 때문에 대동법이 탄생된
셈이다.
다양한 특산물을 단일화한 것이다. 즉 쌀로만 납부하도록 한
것이다. 토지 1결당 12두의 쌀을 내도록 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들에게 불리하게 작용되는 조세제도인 것이다. 대토지
소유자들에겐 증세의 부담으로 나타나고, 토지 무소유자들은 세금을 낼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따라서, 토지를 많이
가진 사람들이 강하게 저항했다. 이 법의 시행까지 무려 100년이
걸렸다.
대동법이 국가 재정과 시스템을 잡는 데 역할을 했다. 또 한편으로 사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중의 하나가 공인貢人의 등장이다. 옛날엔 특산물을 지역별로 납부했는데 대동법을 시행하면서 쌀로
대신하도록 했다. 하지만 임금이 쌀만 먹을 수 있겠는가? 즉 국가가 필요한 물건들을 사와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 그 과정에서 쌀을 가져다가
물건으로 구매해 오는 사람이 등장했는데, 바로 공인이다. 이는 상품화폐의 발달을 초래했던
것이다.
경제가 바뀌면서 신분제도가 급변했다. 조선은 엄격한 신분 사회로 출발했지만 경제가
발전하면서 돈 많은 상민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양반'을 돈으로 사면 되는 정도로 여겼다. 실제로 거래가
되면서 신분제도가 무너져내렸다. 마침내 상거래 종사자들에게서 거대한 부자들이 출현하면서 신분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셈이다. 덩달아 새로운 문화
예술의 향연이 생겻고 김홍도, 신윤복 같은 풍속화의 대가들이 탄생할 수 있었다. 현재 북한에서도 경제력을 장악한
소위 '돈주'들이 득세를 하고 있다고 한다. 경제가 원활하지 않으면 사회가 지탱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셈이다.
한국사와
경제학이 만나다
책은 한국사에 등장하는 인물 중 경제학과 연관지을 수 있는 대표적인 10인을 소개하고
잇다. 나라의 부부를 주창한 정약용, 독과점을 재정의한 허생, 조세의 역할을 뒤엎은 광해군, 기술에 경제학을 입힌 문익점, 자유무역의 화신이 된
해상왕 장보고, 경제학의 시초가 된 단군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현대의 융합의 시대이다. 역사학과 경제학이라는 개별적인 과목의 경계를 허문다면
새로운 발상이 무궁무진해질 것이다. 이 책의 출간 동기도 이와 같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