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의 선택 - 야당 36년의 역사에서 통합의 길을 찾다
민영삼 지음 / 지식중심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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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 없는 정치 행태는 수많은 분열과 결별을 초래했다. 상대에게 지기 싫어하는, 상대의 승리를 인정해주지 않는 붋복의 습성은 결국 그 상대와 통합하지 않고 결별하는 쪽으로 수를 낸다. 한국 정치는 분열과 결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영삼-김대중, 김대중-이기택, 김대중-김종필, 노무현-정몽준, 문재인-안철수...거물급들의 결별 사태만 봐도 이 정도다. 국민들은 정치의 주체이지만 동시에 관전자다. 경기를 뛰는 건 선수들이다. 그들은 지금 경기릐 룰을 잘 지키며 상대를 존중하고 승리를 인정하고 패배에 승복하며 살고 있는가. 이 질문에 쉽게 '그렇다'고 인정하는 정치인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 '들어가며' 중에서

 

 

아름다운 정치의 계절은 없을까?

 

저자 민영삼은 1984년 11월 어느 날, 대학원을 마칠 즈음 선배가 ‘선거 아르바이트’나 해 보라는 권유에 재미삼아 뛰어든 게 정치입문의 계기가 되었다. 그로부터 30여년 째 정치밥을 먹고 있다. 그 가운데 대부분의 시간을 야당의 찬밥 신세로 살아야 했다. 2012년 12월 대선을 끝으로 현장의 무대에서 내려와 4년째 카메라 앞에서 정치평론가의 삶을 살고 있다.

 

'자신에게는 한없이 너그럽고 상

 

 

 

 

 

 

 

 

 

 

정치권에서는 2017년 대선이 1987년 대선의 재판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쏟아지고 있다. 김영삼과 김대중, 양김은 끝내 국민들의 단일화 열망을 저버리고 각자도생各者圖生에 나섬에 따라 이와같은 야권 분열의 반사이익을 등에 업고 결과적으로 노태우 대통령의 당선으로 마침표를 찍고 말았던 것이다. 당시 양김이 상호 조금씩 양보해서 통합과 단일화를 이뤄냈다면 한국의 정치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왜 이리 대권 후보가 많은지 모르겠다.

 
체계적인 한국야당사가 없는 가운데 저자는 이제야말로 그동안 수없이 보아온 야당의 분열과 반목의 악습을 끊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지난 삼삽여 년 야당사의 정리와 함께 자기희생과 아름다운 승복이라는 새로운 정치문화를 창출해야 한다는 바람에서 이 책을 집필했다.
그동안 야당이 걸어온 길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반목함으로 인해 분열과 결별의 연속이었다. 다음은 저자가 경험한 대표적인 야당사의 결정적 장면들이다.

 

 

노무현의 공덕동 로터리 10분 정차

2002년 12월 19일 대선 전날인 18일 밤 정몽준은 후보 단일화 약속을 파기한다. 당시 노무현 후보는 많은 선대위원들이 빨리 정몽준의 집으로 가야한다는 질타 섞인 채근을 했지만 노무현은 방문 설득을 완강히 거절했다. 정대철 선대위원장과 김원기 고문의 끈질긴 설득에 못이겨 정몽준 대표의 자택으로 향하긴 했지만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가기 싫어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이는 12월 18일 명동 합동유세에서 노무현 후보가 "미국과 북한이 싸우면 우리가 말린다"고 표현했는데, 이는 국민통합21(정몽준 대표)의 정책 공조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선언하면서 발생한 사태였다. 

 

당시 선대위 부대변인으로서 총괄선대위원장이었던 정대철을 보좌하고 있었던 저자는 노무현 후보가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몽준 대표가 집에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정몽준 대표가 지금 자택에 없다"는 연락을 취했다. 이에 노무현 후보 차량은 공덕동 로터리 부근에 멈춰서 10여분간 갈지 말지 고민하며 지체를 했다. 결국 이 10분이 역사를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무현 후보가 정몽준의 자택에 도착했을 때 정몽준은 5분 앞서 이미 집으로 들어간 뒤였다.

 

"우리는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정몽준 후보와 오해를 풀고 공조를 유지해 나가겠습니다" 

 

정몽준은 끝내 문을 열어주지 않았고 노무현 후보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되돌아섰다. 이 장면은 그대로 TV를 통해 국민들에게 알려졌고 노무현 후보에 대한 동정론이 거세게 일었다. 이것으로 끝이었다. 만약 그때 노무현 후보가 공덕동에서 10여분을 지체하지 않았다면 자택 앞에서 두 사람은 불편한 장면을 연출했을 것이고 노 후보 또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비쳐졌을 것이다. 아슬아슬한 10여분 공덕동 지체가 대선 결과를 돌려놓는 데 결정적인 한 수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노무현의 당선은 정몽준이 만들어 준 셈이었다.

 

 

당선자 노무현 "이게 나라입니까?"

노무현 당선자의 인수위 시절, 정대철 선대위원장은 미국으로의 출국 전 노 당선자의 혜화동 자택에서 특사단 멤버들과 모임을 가졌다. 정대철은 당시 언론에 기회가 있을 때마다 "미국에 가서 '전통적인 대미 우호관계는 유지된다. 미군 철수하는 것 반대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노무현에 대해 제대로 알리는 것"이라고 수차례 강조한 바 있다. "반미면 어떻습니까?"와 같은 대선 기간 중 발언과 미국을 한 번도 방문하지 않은 것에 대해 미국도 좀 껄끄러워할 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런데 정대철은 노무현 당선자와 특사 방문 직전의 혜화동 자택 모임에서 좀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바로 노무현의 대미관이었다. 정대철은 모임을 끝내고 나오자마자 저자에게 "야, 너무 놀랐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이러했다. 잠시 당시 노무현의 '워딩'을 정대철 대표의 표현을 통해 옮겨본다.

 
"이게 나라입니까? 1994년 미국은 북한 영변 핵시설을 폭격한다는 계획을 우리나라한테는 일체 얘기나 통보도 없이 몰래 진행했습니다. 자주 주권국가인 우리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이게 나라입니까. 이렇게 무시당하고 살아야 합니까"

 

노무현의 패기와 열정은 인정할 수 있었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다소 편향된 시각을 가진 것은 아닌지, 그 얘기를 들은 저자도 좀 걱정스러웠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편협되거나 편향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면 그 나라가 불행해질 수 있다. 이후 노무현 정권은 친북 노선을 계속 추구했다. 북한은 그 덕분에 핵미사일 개발자금을 쉽게 얻을 수 있었다. 이는 앞으로도 해결되지 않을 한반도의 비극이다.

 

 

고건 전 총리의 대권 도전 돌연 드롭 미스터리

2006년 5월 지방선거 결과에 나타나듯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연속적인 정책 실패로 인해 국민들의 지지도가 바닥었다. 민심 이반에 따른 반사이악과 안정적 국정 운영에 대한 기대감으로 고건 전 총리의 지지율은 꾸준히 30%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대통령 후보 적합도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었다.  

 

저자는 고전 전 총리의 대권캠프 공보팀장을 맡고 있었다. 고건 전 총리의 1월 16일 대선 불출마 발표 일주일 전쯤에 그 사실을 고 전 총리로부터 직접 들을 수 있었다. 1월 8일쯤 갑자기 저자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서 동숭동에 있는 단골집 모 카페에서 만났다. 70년대 유명 여배우의 모친이 운영하던 곳이었는데, 저자와 당시 외신공보담당이었던 김상도 씨(중앙일보 출신)가 고 전 총리와 함께 양주 폭탄을 엄청나게 마셨다. 고 전 총리의 술 실력은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의 주량으로, 알만한 이는 다 알고 있었다.

 

그는 우리를 불러놓고 계속 겉도는 얘기만 했다. 시종 건강이 좋지 않다면서 말이다. 우리는 그때까지 고 전 총리가 '드롭'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다소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내일 모레 대권 출마할 사람이 계속 건강이 안 좋다는 얘기만 하는 걸까...'

고 전 총리가 1월 초 김대중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난 뒤 곧바로 주변 핵심측근들에게 직접 통보하고 만나며 자신의 '불출마 선언'얘기하고 다녔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단순히 1월 8일이 저자와 만나는 순서였던 것이다. 건강 이상은 모양새 맞추기일 뿐, '탄력적 햇볕정책론'내세운 고 전 총리를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교동계는 야권 주자로 인정하지도 지원하지도 않겠다는 입장을 보였기 때문인 듯하다. 퇴임했지만 야당의 권력을 계속 쥐겠다는 그런 스탠스가 아니었을까 싶다.

 

 

  

 

 

야당은 어떤 선택을 할까?

 

야권의 입장에선 집권의 환경이 갑자기 나아졌다고 마냥 좋아할 수 없다. 이는 박근혜 정권의 잘못에서부터 비롯된 반사이익일 뿐이다. 국정농단 사태와 탄핵정국이 마무리되면 보수는 마땅히 새로운 변혁을 추구할 것이다. 그런데, 촛불 민심은 동시에 야당도 변해야 살아남는다는 신호를 보낸 것임을 소위 대권주자인 야당 지도자들도 깨달아야 한다.

 

이에 야당은 국민들의 바람과 기대에 부응하는 선택을 해야 한다. 남의 과수원에 매달린 사과를 따는 게 아니라 지금부터라도 야당의 과수원 농사를 잘 가꾸어 통합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이를 실기하면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정치계 투신은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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