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인생을 바꾸는가 - 타고난 운명에서 원하는 삶으로
조한규 지음 / 스노우폭스북스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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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확신한다. 살아가면서 얼마든지 '팔자를 고칠 수 있다'고,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말이다. 흔히 '운칠기삼運七氣三'이라며 운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하지만 운은 변하지 않는 게 아니다. 역易이요,변화다. 정적靜的이지 않고 동적動的이다. 다만 우리는 그 운명 개조의 방편을 모를 뿐이다. 그래서 방편方便이 필요하다. '인생을 바꾸는 일곱 가지 방편'을 정리해보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인생을 바꾸는 일곱 가지 방편

 

저자 조한규는 정치부 기자 출신으로 <세계일보> 사장을 지냈던 칼럼니스트이다. 그는 <세계일보> 정치부 기자를 시작으로 언론계에 투신하여 <스포츠월드> 총괄본부장, MBN 해설위원, 방송위원회/방송통신심의위원회 전문위원 등을 역임했다. 경희대학교 겸임교수와 호서대학교 벤처대학원 강사로 '기업홍보론' 등을 강의했다.

 
현재 <매일경제> 프리미엄 정치뉴

 

 

 

 

 

 

 

 

사주팔자는 단지 참고서일 뿐이다. 인간은 대자연에서 다양한 에너지를 흡수하며 살아간다. 해, 달, 별로부터 빛을 통해 생명에너지를 공급받고, 코와 폐로 들이마시는 공기에서도 눈에 보이지 않는 기氣를 받고, 발을 디디는 땅으로부터 역시 생명에너지를 받는다. 이처럼 우주와 지구의 자기장으로부터 기를 받고 자연에서 나는 물과 음식물을 섭취해 생명에너지를 보충하고 있다. 이런 모든 요소들이 인간의 생존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저자는 생활 속에서 타고난 운명을 바꾸는 방법에 대해 오랫동안 탐구해왔다. 우주와 대자연의 초월적인 '보이지 않는 힘'이 인간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우리 인간은 그 힘을 어떻게 수용, 적용, 실천해야 하는가에 대해 깊은 사색을 했다. 또한 과거 선인들이 남긴 경전과 서적을 공부하며 해법을 강구했다. 그 결과로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다.

 

 

독서 때문에 왕위에 오르다

 

"충녕대군이 천성이 총민히고 학문을 게을리 하지 않아, 비록 몹시 춥고 더운 날씨라도 밤을 세워 글을 읽고, 또 정치에 대한 큰 흐름을 알아, 매양 국가에 큰일이 생겼을 때에는 의견을 냈는데, 그것이 모두 범상한 소견이었으며, 또 그 아들 중에 장차 크게 될 수 있는 자격을 지닌 자가 있으니, 내 지금부터 충녕을 세자로 삼고자 하노라" 

 

위는 <세종실록>에 나오는 태종의 말이다. 세종이 조선의 왕이 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이유를 말해준다. 셋째 아들인 세종은 원래 왕위에 오를 수 없었음에도 세자로 책봉되었다. <실록>에 기록됐듯이 '독서'의 힘이 크다. 세종은 뛰어난 머리를 지녔음에도 같은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서거정<필원잡기>에 따르면 충녕은 <좌전>과 <초사>를 100번 이상 읽었고, 소동파의 서간문집인 <구소수간>은 1,100번이나 읽었다고 한다. 그는 이와같은 백독백습百讀百習이 창조성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이 대학자가 된 비결

 

다산 정약용은 <유배지에서 보낸 편지>에서 하늘의 도움을 받아 <주역사전>을 집필했다고 밝힌다. 이는 절대로 인력으로 통할 수 있고 이룰 수 있는 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독서와 글쓰기로 입신의 경지에 올랐음을 말해준다. 즉 독서와 글쓰기가 뇌의 시냅스를 활성화하고, 대자연의 기운과 소통해 성리학의 한게를 극복하고 실학實學을 정립하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던 것이다.

 

당시의 여러 여건으로 볼 때 18년간의 유배를 견딘다는 것은 일반인으로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다산의 유배생활지인 강진 다산초당은 만덕산 기슭에 있었는데, 외증조부 윤두서의 손자인 윤단이 세웠다. 지금도 다산초당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다. 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백련사 이외에는 인가도 드물다.

 

다산은 윤단의 아들 윤규로의 도움을 받아 1,000여 권의 서적을 구입해 도서와 글쓰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산속에서 그것도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면서 18년을 버티었다는 것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다산이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면서도 독서와 글쓰기를 중단하지 않은 것은 자신과 후손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생존 전략이었다.

 

 

 

 

산책명상은 영감의 원천이다

 

산책명상은 걷기명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걸으면서 발의 동작과 느낌을 관찰해 알아차림으로써 집중력과 깨어 있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수행법이다. 이를 위파사나에서는 경행經行, 간화선에서는 행선行禪이라고 일컫는다. 산책은 휴식을 위해 천천히 걷는 일이기에 명상과 잘 어울린다.

 

이는 세계적인 평화운동가 틱낫한 스님이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에서 수행공동체 플럼빌리지를 이끌면서 유명해졌다. 스님의 산책명상은 위파사나의 현재적 변형이다. 그는 들숨과 날숨의 호흡을 관찰하거나 걷는 것만으로도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한국 사찰에서 시행하는 템플스테이 과정에도 산책명상이 포함되어 있다.  

 

호흡을 하면서 산책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다. 숲속에서 산책명상을 하면 더없이 좋지만, 대도시 길거리를 걸으면서도 가능하다. 출퇴근길에서, 쇼핑을 하면서, 얼마든지 산책명상을 할 수 있다. 자신의 현안을 단전으로 챙기면서 산책명상을 하게 되면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날 수 있다.

 


셰익스피어괴테는 식사 후 반드시 산책을 했다. 베토벤, 모차르트도 산책이 영감의 원천임을 강조했다. 장 자크 루소는 "생각의 발로는 '발'에서 나온다"라고 말했다. 임마누엘 칸트는 매일 오후 세 시에 산책을 했다. 그 산물이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상비판>. <판단력비판> 등을 비롯한 많은 저술들이다. 칸트는 어려서부터 허약 체질이었지만 규칙적인 산책과 건강관리로 80세까지 살았다. 다산 정약용도 매일 다산초당에서 백련사까지 800미터를 산책했다. 500여 권의 저술도 산책명상의 산물이었다. 신문사 논설위원들에게만 전해지는 글쓰기 비결이 있다. '사설이 안 되면 방 안에서 걸어라!' 옥상도 올라가고 주차장에서도 걸으면 사설이나 칼럼이 쉽게 써진다.

 

한편, 구글을 비롯해 애플, 야후, 맥킨지, IBM 등 이 시대 최고의 기업들은 사내에서 명상 프로그램을 시행하거나 명상실을 운영한다. 명상이 행복감뿐 아니라 창의력을 높여주기 때문이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윌리엄 조지 교수는 "명상은 업무 효율성을 높여주고, 리더로서 더 나은 결정을 내리는 데 유익하다"로 말했다.

 

 

소식小食, 장수長壽의 비결

 

1875년부터 1997년까지 122년을 살아 기네스북에 최장수 인물로 등재된 프랑스 여성 잔 루이즈 칼망. 그녀는 85세에 펜싱을 시작했고, 110세까지 자전거를 탔다. 그녀의 장수 비결은 음식에 있다. 그녀는 모든 음식에 올리브유를 발라 먹었고, 레드와인을 즐겨 마셨으며, 마늘과 채소를 자주 먹었다. TV를 켜면 '맛집', '먹방', '요리대결' 등의 프로그램이 대세일 정도로 음식에 치중하는 우리의 음식문화에 경종을 울린다.

 

부처님의 열반도 사실 음식과 관련이 있다. 기원전 544년에 80세의 나이로 열반에 든 부처는 제자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향하는 중, 빠바 마을의 대장장이가 공양한 음식물을 먹었다. 그런데 이 음식엔 상한 돼지고기가 들어 있었다. 결국 부처님은 식중독에 결렸고 열반에 들게 되었다.    

'식이 운명을 좌우한다'는 식사철학은 <주역>을 토대로 삼는다. 인생을 바꾸는 식사법은 자연과 어울리는 검소한 식사를 기본으로 한다. 사람 중심의 식사와는 거리가 멀다. 맛 중심의 식사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다. 최근 우리 인간들이 갈수록 폭력화되고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는 이유는 자연과의 어울림을 배제한 식사에 있다. 자연에서 나오는 싱싱한 채소와 전통의 발효식품으로 식단을 꾸렸던 예전과 달리 패스트푸드, 탄산음료, 즉석요리 등 가공된 음식을 즐겨 먹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과거보다 훨씬 많이 먹고 있다. 자연과 거리가 먼 음식을 먹고, 또 필요 이상으로 많이 먹어 우리 몸은 부대끼게 된다. 소화되지 못한 음식물 찌꺼기가 몸속에서 숙변과 독소를 양산한다. 그 숙변과 독소는 간을 지치게 만들고 위와 장을 힘들게 한다. 이에 따라 우리 뇌의 신경세포는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못한다. 뇌신경회로가 헝클어지고 전체 배선도가 뒤엉키게 된다. 그 결과 인생은 뒷걸음을 친다. 살인과 성추행 등 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몸을 맑게 하지 않으면 절대로 인생이 바뀌지 않는다.

 

 

차로 흥하고 차로 망하다

 

3세기 중국의 동진東晉은 차茶를 통해 나라의 재건을 모색했다. 동진은 <삼국지> 마지막에 등장하는 사마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이다. 당시 동진의 지식인들은 서진西晉의 멸망 원인을 지배게급의 사치와 퇴폐에 있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이를 치유할 목적으로 찾아낸 해결책이 바로 차茶였다.

 

"찻잎을 오래 마시면 생각이 깊어지고 졸음을 쫓고 몸이 가벼워지며 눈이 맑아진다"

- 화타, 후한 말의 전설적 명의名醫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목은 일본의 다도가 한국 상류사회에서 친일문화를 조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16세기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다도 스승으로 일본 다도를 정립한 센노리큐의 후손들에 의해 만들어진 일본 다도의 3대 유파인 오모테센케, 우라센케, 무샤노코지센케가 서울, 부산 등에서 자주 다회를 개최하고 있고, 우라센케, 오모테센케의 한국 지부는 서울과 부산에 있다. 특히, 우라센케 서울 지부는 신라호텔에서 한국 상류사회 부인들을 대상으로 다회를 열고 있다.

 

일본의 다도가 버젓이 한국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차로 인해 두 번 다시 이 땅이 수난을 겪어서는 안 될 것이다. 차가 역사를 바꿀 수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 차가 역사적 대전환을 견인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부는 함께해야 한다

 

혼자서 공부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토론이 없기 때문에 발전이 더디다. 혼자서 공부하는 것은 수행 그 자체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으로 납자衲子들이 하안거와 동안거에서 함께 정진하는 것을 감자 씻기에 비유한다. 감자를 씻을 때 하나씩 껍질을 벗겨가며 씻으면 시간도 많이 걸리고 힘도 든다. 그러나 감자를 모두 큰 그릇에 넣고 함께 비비면 껍질도 쉽게 벗겨지고 힘도 덜 든다. 그래서 공부는 함께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학교가 생긴 이유도 비슷하다. 직하학궁稷下學宮 이래로 동양에서는 함께 공부하는 교육기관이 생겨났다. 직하란 '직문의 아래'라는 뜻이다. 직문은 중국 제나라의 수도 린츠의 13개 성문 중 하나였다. 남문으로 추정으로 이 성문 밖에 직하학궁이 있었다. 제나라 위왕은 이곳에 많은 학자들을 유치, 안전을 보장하고 사회적 신분을 제공해 강의, 토론, 집필에 주력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 역사에서는 삼국시대부터 국가의 공식 교육기관이 생겼다. 고려의 국자감, 조선의 성균관이 그 대표적인 교육기관이며, 민간에는 서당이 있었다.

 

 

수신修身, 몸과 마음에 불을 켠다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천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인생을 바꿔주는 한 방편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실천 과정에서 실수를 하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수가 있다. 다이어트를 해 본 사람은 이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실천하는 삶은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인 것이다. 깨어있지 않으면 실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선인先人들은 수신修身을 강조했다. 수신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실수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수신은 몸가짐과 정신자세를 일컫는 말이다. 예를 들어 밥상에선 몸을 바로 세우고 어른이 먼저 숟가락을 들고난 후 뒤따라 식사에 임하라고 가르친다. 이런 가르침은 <명신보감>에 잘 소개되어 있다. 

 

서당에서 수신을 익힌 저자는 중학생 시절 학교생활이 잘 적응되지 않았다. 친구들과 어울려 재미있게 놀지도 못했다. 걸음걸이를 조심하고 말을 삼가고 자세를 바르게 하려다 보니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시간이 나면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심지어 남학생과 여학생이 탁구장에 가는 것을 보면 "아, 저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사실 과거엔 남녀칠세부동석南女七歲不同席을 준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처럼 수신은 뜻을 이루는 기틀을 만드는 작업이다.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수신은 무엇보다 실수를 최소화해준다. 수신이 이뤄지지 않으면 목표를 향해 전력 질주할 수 없다. 수신이 이뤄져야 뜻이 이뤄지고 목표가 성취될 수 있다. 몸과 마음을 동시에 닦는 일은 바로 불을 켜는 일이라 하겠다. 목표를 달성하혀면 먼저 수신이 선행되어야 한다.

 

메디치가家 명문가로 태어나다

 

과거 못 살던 시절, 소위 보릿고개 때엔 길거리나 동네 골목에 걸인들이 정말 많았다. 길을 걷다가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한 푼만 적선합쇼"라고 말을 해왔다. 여기서 적선積善이란 선을 쌓는 것으로, 예로부터 좋은 일을 많이 하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특히, 동양생활권에서는 이것이 기본적인 생활철학이었던 것이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선한 일을 하는 자는 하늘이 복으로써 갚아주고, 불선하는 자는 하늘이 재앙으로써 갚아주느니라" - <명심보감>

 

불교에서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를 강조하는데, 이는 자신이 선행을 하면서도 이 행동 자체를 선행이라고 의식하지 말라는 가르침이다. 즉 선행이란 의도적이거나 의식적이어서는 안 되며, 순수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연말 정산 때 기부금은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으므로 절세의 수단으로 원치도 않는 유니세프 기부금을 납부하는 가식적인 행위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중세와 근대 유럽의 대표적인 명문가로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가家를 꼽는다. 이 가문은 무려 7대에 걸쳐 350년 동안(1397~1737년) 피렌체 지역을 실질적으로 지배했다. 3명의 교황과 프랑스 앙리 4세 왕비도 배출했다. 이럴 수 있었던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적선 때문이었다. 이 가문은 예술과 학문 분야에 막대한 자금을 후원함으로써 르네상스를 일으킨 주역이었다. 

 

메디치가의 주요 신조

 

유능함을 드러내지 말고 뒤로 물러설 것

온화하게 몸을 낮추며 조용히 처신할 것

언제나 대중의 편에 서서 옳을 일을 할 것 

 

메디치가는 원래 농사지었으나 피렌체로 가서 상업에 종사하면서부터 부를 축재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돈으로 수많은 예술가, 시인과 학자들을 식객으로 거느렸다. 이를테면, 미켈란젤로를 집안의 양자로 받아들여 최고의 예술가로 길러냈고, 갈릴레오를 후원해 천문학의 발전에 기여했다. 마키아벨리<군주론>을 쓴 것도 메디치가를 위해서였다. 오페라를 처음 탄생시킨 것도 메디치가이며, 이러한 예술과 학문에 대한 후원, 즉 적선이 보잘것없던 메디치가를 명문가로 만들었다.

 

 

내 인생은 내가 바꾼다

 

타고난 운명 때문에 스스로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신세 한탄을 하지 말자. 시선과 고개를 돌려 주위를 살펴보면 개천에서 용이된 개룡족들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가진 것 별로 없이 오직 스스로의 노력과 실천으로 성공과 부를 거머쥔 사람들이다. 이 세상에 타고난 팔자는 없다. 저자가 우리들에게 전하려는 메세지이다. 독서, 명상, 소식, 차와 음악, 공부, 목표, 적선 등 일곱 가지의 좋은 습관으로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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