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클린의 소녀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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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내 말이 당신에게 얼마나 큰 부담을 주게 될지 알 수 있었지만 난 끝내 고집을 굽히지 않았어. 내가 당신에게 운명을 걸기로 작정한 이상 내 머릿속에 자그마한 의구심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결혼해서 함께 살기로 한 이상 당신에게도 내 의구심을 풀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어. 당신이 지난날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면 내가 그 짐을 나누어 갖고 싶었어. 내가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당신이 못이기는 척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을 거라 믿었지. - '그리고 그 여자는 내게서 도망쳤다' 중에서

 

 

왜 안나는 사라졌을까?

 

이야기꾼 기욤 뮈소가 이번에는 정통 스릴러물로 우리들을 찾아왔다. 그의 작품이 국내에 소개되는 게 이번이 13번째라니 한국에도 그의 팬이 많다는 것을 증명하는 듯하다. 그는 매년 신작을 발표하는 프랑스 출판계의 개근상 감이다. <구해줘>,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사랑하기 때문에>, <종이 여자>, <7년 후>, <내일>, <센트럴파크> 등 다작임에 틀림없다.

 

그의 소설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다. 등장인물의 실종, 이를 추적하는 스토리, 뉴욕이나 프랑스가 배경지로 등장하는 점 등이 그렇다. 실종 사건이 자발적으로 계획한 고의 실종인지, 타인에 의한 강제 실종인지를 알고 싶기에 독자들의 입장에선 그 스토리의 전개에 몰입하게 된다.  더구나 섬세한 필치로 배경지를 설명하기 때문에 그곳을 찾아가고픈 충동마저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아무튼 나는 <구해줘>라는 작품으로 그를 처음 만났다. 뮤지컬 배우가 꿈인 줄리에트와 아내의 자살로 홀아비가 된 의사 샘이 주인공이다. 둘은 마치 자석에 끌린 것처럼 급하게 사랑에 빠진다. 뭐 특별한 이유도 없는 섹스 신이 등장한다. 그래서 그 사랑은 오래 가지 못한다. 줄리에트가 다시 프랑스로 귀국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토리가 재미없어지려는 순간 실종이라는 미스터리가 등장한다. 비행기가 이륙하기 직전에 갑자기 줄리에트는 비행기에서 내리고 이 비행기는 추락, 승객들은 사망한다. 이후 줄리에트는 어떻게 됐을까? 궁금해하면서 이 소설에 빠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기욤 뮈소의 소설에 대해선 독자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듯하다. 어떤 독자는 소설의 공통점 내지는 특징이 뻔하기 때문에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더 이상 그를 찾지 않는다고 한다. 나도 몇 편의 작품을 더 읽은 후 한동안 읽지 않았다.

 

실로 오랫만에 기욤 뮈소의 작품을 손에 집어 들었다. 이는 최근에 개봉한 김윤석, 변요한 주연의 한국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2007년에 발표한 같은 제목의 소설이 바로 기욤 뮈소의 작품이었다.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알약 10개를 획득한 사나이가 30년 전의 자기 자신을 만난다. 후회스러운 지난 날의 사건을 바꿔보려고 애쓰는 '수현(변요한)'이 바로 주인공이다. 

 

 

            

 

"당신은 지금 우리 사이를 망치려 하고 있어"

 

결혼식을 3주 앞 둔 소아과 여의사 안나 베커와 작가 라파엘 바르텔레미는 앙티브의 코트다쥐르 해안으로 휴가를 떠났다. 그곳에서 둘은 조촐한 결혼식을 하기로 합의하면서 결혼의 증인으로 라파엘의 친구 두 명과 아들 테오만 하객으로 참석하기로 결정했다. 평소 말수가 적고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으며 우수 어린 눈빛에 매력을 느낀 그였지만 안나에게 지난 고과거의 비밀을 다 털어놓으라고 강요했다. 주먹으로 테이블을 내리치면서 말이다.

 
서로 속마음을 모르면서 부부 사이가 된다는 건 바람직하지 않고 자그마한 의구심도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한 그는 안나도 당연히 이를 풀어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다. 나아가 그녀가 지난날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다면 그 짐을 나누어 갖자는 의도 때문에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다. 대체로 남자들이란 여성들에게 과거를 고해 성사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했다가 신혼 초야에 이혼 도장을 찍는 일이 많다고 한다. 각설하고 두 사람의 대화가 급기야 말다툼으로 비약했다.

 

사실 안나는 과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매우 꺼려 했다. 감추고 싶은 비밀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만약 지난 과거의 일을 얘기했을 때 이후에도 변함 없이 사랑할 수 있는지 반문하고 그렇다고 대답을 듣자 불에 탄 3구의 사체가 있는 사진 한 장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자신이 한 짓이라고 고백한다.

 

충격적인 과거 이야기를 듣고 그는 그녀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그 자리를 박차고 밖으로 나가 버렸다. 그것도 가져온 가방까지 집어들고 말이다. 이후 곰곰히 생각한 끝에 이는 자신이 시작했던 일의 결과임을 깨닫고 다시 펜션으로 돌아왔지만 이미 그녀는 사라지고 그 자리에 없었다.

 

 

"저를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라파엘은 이웃 사촌이자 전작 형사인 마르크에게 도움을 청하자 그는 안나에 관해 더 이상 감추지 말고 있는 내용 그대로 모두를 자신에게 털어놓으라고 말한다. 그는 지난 30년 동안 수많은 범죄자를 취조한 경력의 소유자였다. 이에 안나가 제시한 사진에서 본 불에 탄 사체 얘기를 들려주었다. 하지만 수사에 착수할 근거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한 마르크는 식기세척기에서 안나가 사용하는 머그잔에서 그녀의 엄지손가락 지문을 채취했다. 이를 조회한 결과 그녀의 신분이 위조되었음을 알게 된다.

 

마르크는 현직 형사로부터 안나에 관한 신상 정보를 도움받는다. 안나가 2010년 초에 살았던 주소지와 일치하는 치과의사 필리프를 만나 그녀에 관한 정보를 들었다. 당시 파리-데카르트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던 학생으로 오직 집과 공부밖에 몰랐다는 내용이엇다. 한편, 라파엘은 생트 세실 고등학교를 찾아가 클로틸드 블롱델 교장을 만나 안나에 대해 물었으나 두 사람의 애정사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고 냉정하게 거절당했다.

 

마르크는 치과의사의 제안대로 과거의 매제로 빵집을 운영하고 있는 마누엘 스폰티니를 만나 안나의 위조신분증을 보여주며 그녀에 대한 기억을 하나둘 듣는다. 당시 석달치 집세를 지불하고 12평짜리 방을 얻어 지냈는데, 마국인으로 프랑스대학에 공부하러 왔다고 자신을 밝혔고 가끔 귀티나는 금발머리 여자가 다녀가곤 했다는 거다. 자신이 알기론 그저 얌전하게 공부만 하는 학생이었다고 했다.

 

이렇게 탐문조사를 하는 가운데 안나는 10여 년 전에 있었던 미제 사건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사이코패스 하인츠 키퍼가 소녀들을 감금, 성폭행을 일삼다가 은신처에 불을 질러 집안에 있던 사람 모두가 불에 타 죽은 엽기적인 사건인 소위 '하인츠 키퍼 사건' 말이다. 이후 이 사건의 진실에 접근할수록 놀라운 현실과 마주치게 된다.

 

 

브루클린의 소녀

 

정부의 관련 부서들은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에 바빴다. 화재현장 분석만으로도 꼬박 이틀이 소요되었다. 화재현장의 배관파이프와 하인츠 키퍼가 타고 다니던 픽업에서 소녀들의 머리카락과 두 개의 지문이 발견되었다. 열흘 간에 걸친 과학수사연구소의 분석 결과 하인츠 키퍼와 세 소녀의 지문은 아니었다. 두 개 중 하나의 지문은 끝내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고, 나머지 하나는 클레어 칼라일의 지문으로 밝혀졌다.

 


하인츠 키퍼가 클레어 칼라일을 납치 감금할 무렵 리부른에서 불과 60킬로미터 떨어진 도르도뉴 지방 리베락에 사는 모친을 방문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화재현장을 중심으로 제법 넓은 지역에서 다시 수색작업이 시작되었다. 주택의 연못 바닥을 준설하기 위해 굴착기들이 동원되었고, 숲을 수색하기 위해 헬리콥터가 동원되었다. 경찰은 클레어 칼라일의 시체를 찾기 위해 자원봉사자들까지 동원해가며 대대적인 수색작업을 펼쳤다.

 
경찰의 수색 결과 끝내 클레어 칼라일의 사체를 찾아내지 못했지만 그녀의 죽음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인츠 키퍼가 집단자살을 시도하기 전 클레어 칼라일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 살해하고 시체를 유기했을 가능성이 유력하게 거론되었다.

 
하인츠 키퍼 사건 수사는 결국 미궁에 빠지게 되었다. 경찰은 결정적인 단서를 확보하지 못해 한동안 수사를 종결짓지 못하고 차일치일 시간만 흘려보냈다. 사건담당 검사는 2009년 말에 이르러서야 결국 클레어 칼라일의 사망 확인서에 서명하고 공식적으로 수사 종결을 선언했다. 그 후 아무도 브루클린의 소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왜 안나는 지난 날을 버리고 전혀 다른 누군가가 되고자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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