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의 역사 - 매일 5억 명의 직장인이 일하러 가면서 겪는 일들
이언 게이틀리 지음, 박중서 옮김 / 책세상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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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야 일상적인 일이지만, 한때 통근은 파격적인 행위였다. 과거와의 단절을 상징하는 동시에 새로운 삶의 방식을 상징하는 행위였다. 통근의 짧은 역사의 대부분 동안, 사람들은 통근을 긍정적으로 생각해왔다. 통근을 금욕적인 행위라기보다는 오히려 열망할 만한 행위로 간주해왔다. 그러나 초창기의 통근은 위험의 요소를 내포하고 있었다. 최초의 통근자들은 첫날부터 자기들이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 '서문' 중에서

 

 

통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

 

교통수단을 이용해 한 사람의 일터와 쉼터를 분리한다는 의미에서 통근, 즉 원거리 출퇴근은 지극히 합리적인 행위이다. 그 덕분에 사람들은 충분한 보상이 이뤄지는 일과 쾌적한 집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 이때 통근길 여행은 그런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에 최초의 철도 열풍과 함께 장거리 통근이 생겨났을 때 통근은 바로 이동의 자유를 상징했다. 이러한 도전을 수용할 수 있었던 용감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인생 지평이 열렸던 것이다. 초창기의 통근은 위험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이후 운송혁명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극소수였던 통근자가 이젠 다수가 되었다. 

 

책은 총 3부로 구성되었는데, 1부(통근의 탕생, 성장, 승리)에서는 과거의 통근을 살펴본다. 즉 통근이 전 세계 5억 명 이상의 일상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탐사한다. 2부(지옥철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법)에서는 통근자가 매일 마주치는 어려움들과 이를 극복하는 방법 등을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3부(얼굴을 맞대고 얘기하는 시간)에서는 통근의 미래를 살펴본다.

 

이처럼 통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를 살펴보는 이 책의 저자 이언 케이틀리홍콩에서 성장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저서로는 <담배와 문명>, <음주 - 알코올의 문화사> 등이 있다. 그는 이제 디지털화로 인해 통근조차 불필요하게 됨에 따라 사람이 일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일이 사람을 찾아오는 형태로 바뀔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집에 불을 피울 땔감을 구해오는 여정에 쓰는 시간을 낭비나 헛수고라고 말할 수는 없다. 우리는 통근 덕분에 이중의 삶을 영위할 수 있다. 즉 집에서는 배우자이고 부모이고 반항하는 자식인 동시에, 일터에서는 효율성의 화신으로 특유의 초연함과 침착함과 합리성으로 존경받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통근이라는 현실을 한탄하기보다는, 차라리 1세대 통근자들과 같은 개척자 정신을 되살려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들에게 통근은 그때까지 존재 고유의 특성이나 다름없는 고된 노동에서 벗어날 기회를 상징하는 동시에, 자신이 사는 세계를 개조할 자유를 상징했기 때문이다. - 16쪽에서

 

 

 

 

 

 

 

 

 

 

"사무실과 사생활은 별개"

 

과거로 돌아가보자. 사람들이 농장이나 대장간에서 일할 때는 일터와 쉼터가 동일했기에 사람들은 낮이고 밤이고 한결같았고, 항상 같은 사람들을 상대했기에 굳이 둘을 구분하는 개념이 없었다. 그러나 사무실이나 공장에서 일을 하게 되자 사람들의 옷차림과 행동이 매우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와같이 일터와 거주지를 분리하게 된 가장 주된 이유는 '위생' 때문이었다고 한다. 찰스 디킨스 시대의 런던에서는 하나의 하수도에 양쪽으로 수많은 공장과 빈민가가 이어져 있었다. 때문에 콜레라가 주기적으로 발생했고, 방 하나에 다섯 가족이 모여 살기도 했으며, 성인의 체격은 왜소한데다 기대 수명은 겨우 35년에 불과했다.

 

"주민이 380명에 달하지만 변소는 단 하나뿐이고, 그나마도 좁은 골목에 자리하고 있어서 인접 주택으로 악취가 스며드는데, 이것은 십중팔구 질병의 매우 비옥한 원천으로 입증될 것이다" - 제임스 필립스 케이, 맨체스터 팔러먼트 스트리트에 관한 보고서 

 

제임스 필립스 케이의 <맨체스터의 면화 제조업에 고용된 노동계급의 도덕적, 신체적 상태>라는 책에서 묘사된 도시의 더러움과 질병이 자기 집 문 앞까지 들이닥친다는 내용을 읽은 중산층 독자들은 가급적 빨리 도시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를 각성하게 되었던 것이다. 건강하고 부유한 곳에서 살고자 하는 욕망은 1830년대 '철도 문화'로 인해 화려한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19세기의 선남선녀들이 도시에 거주할 경우 자신들의 조상들이 누렷던 것보다 더 많은 이동의 자유를 누릴 수 있었고, 동시에 더 많은 선택권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더 이상에 땅에 묶여 있고 싶지 않았기에 전보다 훨씬 빨리 부모로부터 독립했다. 과거 같으면 1년에 한번 찾아오는 마을 축제 때나 낯선 이를 만날 수 있었지만 이젠 매일 가능했다.    

 

 

 

 

 

 

 

 

 

또한 그들은 자기 배우자감이 인접한 곳에 농토를 갖고 있는지 따위를 고려할 필요가 없었다. 관습도 변했다. 남자는 여자의 아버지가 아니라 여자에게 직접 청혼하게 됐다. 자신은 그녀의 지참금인 토지가 아니라 그녀 자체를 사랑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신혼부부는 둘만의 보금자리를 마련했으며, 점차 대가족보다는 핵가족이 표준처럼 됐다. -53쪽-

이리하여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통근의 기회를 잡았다. 이렇게 하면 위생, 절주節酒, 낭만과 아버지다움(빅토리아 시대의 통근자는 대부분 남자였음)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었다. 또한 도시와 시골 간을 왕래하는 하루 두 번의 기차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1856년 당시 영국의 잡지 <빌더>는 통근의 의미를 이렇게 적고 있다.

'런던 주민에게는 이것이 도덕적으로나 신체적으로 더 낫다. 하루 일을 마치고 시골이나 교외로 가면 도시의 소음과 군중과 불결한 공기를 피할 수 있다. 또한 카지노와 무도장을 비롯해 내가 차마 거명조차 못할 온갖 복마전이 있는 인근 지역으로부터 가족을 멀리 떨어뜨려 놓을 수 있다는 것은 남자에게는 적지 않은 이득이라 하겠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에서도 1대 통근자 대부분은 중산층이거나 부유했다. 미국의 객차는 영국의 객차보다 헐씬 길었다. 끝에서 끝까지 통로가 이어지고, 양편에 2인용 벤치가 배열된 형식이었다. 미국의 통근자들은 이동 중 대화를 즐기거나 온갖 종류의 놀이에 몰두했다. 퇴근길의 통근자들이 네 명씩 모여 앉아 휘스트라는 카드놀이를 즐기는 모습이 흔했다. 그런가 하면 철도와 도로 근처에 학교와 클럽이 생기고, 주택들도 가까운 곳에 지어졌다.

이처럼 철도는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지만 그 반대의 사람들도 있었다. 철도 운행 노선의 확정은 당시 영국의 국토뿐만 아니라 계급체계에도 흠집을 내고 말았다. 철도 열풍이 휩쓸고 간 자리에 손해를 입은 사람들의 상처는 깊게 파였다. 그들은 당연히 항의를 했다. 지역의 환경을 망치고 하인들의 태도를 삐뚤어지게 만든다고 말이다. 그야말로 통근이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명암明暗이었다.

 

책은 통근의 탄생이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냈고, 도시의 형성과 성장을 촉진했으며, 이와 함께 생활 문화가 전반적으로 향상되는 변화를 초래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철도는 우리 인류사에 크나 큰 영향을 미친 최대의 발명품임에 틀림없다. 지금까지 살펴본 1부(통근의 탄생, 성장, 승리)에 이어 2부(지옥철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법)와 3부(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는 시간)를 읽노라면 매일 5억 명의 지구촌 직장인이 겪게 되는 통근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상을 그려볼 수 있다.

 

 

 

 

미래의 통근은 어떤 모습일까?

 

결국 책은 통근의 미래 모습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미래의 직업은 '디지탈화'로 인해 상당히 많은 직업이 소멸되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될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다. 그래서 향후 통근 문화가 종말을 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예견에 대해 저자는 "집에 불을 피울 땔감을 구해 오는 여정에 쓰는 시간을 결코 낭비나 헛수고라고 말할 수 없다"라고 일갈한다. 인간의 생존 본능이 유지되는 한 통근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오늘도 통근길을 재촉하는 모든 직장인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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