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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노후빈곤 -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선데이마이니치 취재반 지음, 한상덕 옮김 / 21세기북스 / 2016년 10월
평점 :
20년 후, 나는 70세를 바라보는 노인이 된다. 과연 웃으면서 살고 있을까... 고령자를 취재할 때마다 그런 생각에 사로잡혔다. 요즘 나는 70대 후반인 부모님이 지금 내 나이였던 당시의 삶의 방식이나 사회 모습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중략) 나이 든 사람도 젊은 사람도 모두 노후 불안을 언제 폭발할지 모를 마그마처럼 떠안고 있다. 나에게도 곧 작치게 될 미래를 위해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현실을 직시하자. 거기서부터 취재가 시작되었다. - '머리말' 중에서
일본 선데이마이니치 취재반의 노후빈곤 르포
책의 저자인 선데이마이니치 취재반의 도고 노리코는 마이니치신문의 사회부 기자로, 스포츠 및 사회, 생활정보 등 을 취재. 2005년부터 [선데이마이니치] 편집부 소속. 주로 연금, 의료, 개호 등 사회 보장 관계 취재를 계속하고 있으며 가나자와 다쿠미는 일본, 해외 미디어 기자를 거쳐 2015년부터 <선데이마이니치> 편집부 소속으로, 고령자들의 생활, 사건, 성과 사랑 등을 주제로 취재 를 계속하고 있다.
이 책은 일본의 <선데이마이니치> 시사지에서 장기간 연재한 <탈, 노후빈곤> 기사를 책으로 엮은 것으로, 초고령사회 진입에 대비해 만반의 준비를 해온 일본의 현실을 파헤쳤다. 연금 생활을 해도 일해야 하는 80세 노인, 편찮은 노부모를 부양하다 지쳐 동반자살한 노부부와 딸, 독거노인의 고독사 증가 그리고 청소업체와 집주인 손해보험 상품 등. 이는 경제적, 사회적 고립이 낳은 노후의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립에서 벗어나 긍정적으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이 있다. 최소한의 취미생활을 통해 즐겁게 사려는 노인, 노인 밀집 구역에 콜센터 네트워킹을 구축하는 NPO 단체, 편찮은 노모를 부양하기 위해 프리랜서로 전향한 아들 등.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금의 한국 사회가 맞닥뜨린 장수 사회의 현실을 냉정하게 수용하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한 해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의 비참한 현실이다.
한국의 현실은 어떠할까? 보건복지부의 자료(2012년)에 따르면, 한국의 부모가 자녀 1명을 대학까지 양육하는데 드는 비용이 평균 약 3억 896만원이다. 그리고 자녀의 결혼비용(2015년)은 평균 2억 7420만원이 드는데 전체 답변자의 33.5%는 결혼비용 중 60% 넘게 부모가 부담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새삼 놀랍지도 않은 현실이지만 갈수록 우리들의 체감도는 높아만 간다. 그만큼 부담스럽다.
알콩달콩 행복한 삶을 산다는 게 만화나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닌지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누군가는 '결혼은 미친 짓이다'라고 갈파하기도 했다. 결혼해서 30대는 직장에서의 자리잡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40대는 자녀들의 학비에 부담을 느끼며, 50대는 자녀들의 결혼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의무감 때문에 우리 부모들은 자신들을 위한 노후 준비는 늘 뒷 전이다.
유례없던 지구촌의 저성장기와 함께 우리 경제에도 여지없이 찾아든 '3저(저성장, 저물가, 저금리) 시대'를 맞아, 이제사 정신을 차린 한국의 부모들은 '자식이냐, 노후 준비냐'의 문제를 앞에 두고 양자택일을 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현실을 감안할 때 과연 우리들은 앞으로 어떻게 노후 준비를 해야 할까? 일본의 현실을 파헤친 이 책이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화두인 셈이다.
일본 도쿄를 충격에 빠뜨리다
2010년 일본 도쿄, 정말 믿기지 않을 끔찍한 현장이 발각되었다. 당시 111세로 알려진 최고령 도쿄 주민 가토 소겐 씨가 이미 30년 전에 사망, 백골 상태의 시신으로 현장을 방문한 담당 공무원에 의해 발견된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바로 '돈' 때문이다. 자녀들이 장수에 따른 노인의 연금을 대신 수령하고자 사망신고를 고의적으로 하지 않았던 탓이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라 최근 일본에서는 이런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다고 한다.
어느 팔십 세노인의 하루
일본 도쿄 기타센규, 이곳에 거주하는 80세 노인 아키모토 다이치(가명)는 매일 아침 4시에 기상한다. 그 어떤 젊은이보다 더 일찍 일어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버려놓은 폐지를 남보다 빨리 수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점심 무렵, 노인은 수거한 폐지를 도매상에 넘기고 귀가해서 식사를 한 후 또 다시 폐지 수거에 나선다. 이 일은 어두워지는 오후 8시까지 계속된다. 365일 이렇게 반복되는 일과를 노인은 결코 멈출 수가 없다. 과연 이 노인의 수입은 얼마나 될까?
요코하마 고토부키 초의 복지 거리
요코하마 고토부키 초, JR 이시키와초 역 북쪽 출구로 나와 차이나타운 거리와 반대쪽 방향으로 걸어가면 만나게 되는 밀집 구역이 있다. 이곳은 과거 일본의 고도 경제 성장기를 지탱해온 일일 고용 노동자들의 간이 숙박소였다. 이 거리는 더 이상 일거리가 없어 생활보호(기초생활수급) 수급을 받는 이들의 고령화에 따라 복지 거리로 변모했다. 이곳의 70% 이상이 65세 이상의 고령자로, 이들의 85%가 생활보호 수급을 받고 있으며 휠체어 생활과 방문 간병인의 도움을 받는 이들도 많다.
"이곳에는 도쿄대를 졸업한 사람,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사람, 대학 교수였던 사람 등 일류 기업에서 근무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지금은 언제, 누가 이곳 고토부키에 와도 이상하지 않을 그런 시대인 겁니다"
이는 간이 숙박소 인근 노숙자를 돌보는 NPO 단체 대표의 말이다. 이곳 사람들의 과거는 천차만별로, 그 누구도 자신이 빈곤할 거라 생각한 사람은 없었다. 일본은 독거노인의 비율이 높아지는 만큼 고독사로 사망하는 사람이 전국에서 연 3만 명에 이르고 있다. 때문에 일본에서는 고독사 사건 현장을 청소하는 회사가 하나의 비즈니스로 자리 잡았고, 고독사에 대비한 집주인용 손해보험까지 등장하고 있다.
"고맙습니다. 국밥이나 한 그릇하시죠. 개의치 마시고"
한국의 상황은 일본보다 더 심각하여 노인자살률이 인구 10만명 당 82명으로, OECD 평균 22명보다 4배나 높다. 2014년 10월 29일, 집을 비우기로 한 세입자와 연락이 안된다는 신고를 접수한 동대문경찰서 형사팀이 급히 현장으로 출동했다.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 1층 주택에 도착했을 때 이미 세입자는 방에서 목을 매 숨져 있었다.
세입자 최씨는 전세금 6000만원인 15평 남짓한 이곳에서 생활해왔는데, 전세금 중 5700만원도 LH공사가 대출해준 독거노인 전세 지원금이었다. 최근 집주인이 바뀌면서 "주택을 철거할 계획이라 집을 비워달라"는 부탁을 받자 그는 28일 LH공사에 집을 비우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미혼으로 공사 현장에서 일하며 홀어머니를 모시던 그는 지난 3월 어머니가 별세한 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유일한 혈육인 형은 20년간 연락이 끊긴 상태였다.
경찰은 "최씨는 노모가 숨진 뒤로는 외출을 삼갈 정도로 외로워했다"며 "집을 비워야 하는 처지가 되자 신변을 비관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또한 "이웃들에 따르면 최씨는 이전 집주인 남편이 입원했을 때 병문안을 갈 정도로 인정이 많고 남에게 폐 안 끼쳤던 깔끔한 사람이었다"며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시신을 수습하고 사후 처리를 도운 경찰들에게 최씨가 무척 고마워한 것 같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의 시신을 수습할 사람을 위해 흰 봉투에 10만원과 함께 이 문구를 남겼다. 그는 기초생활수급을 받으며 치매를 앓던 노모를 요양하다 노모가 사망하자 48만 8070원으로 줄어든 기초생활수급액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달력에 공과금을 계산한 흔적이 그의 힘들었던 매일을 느끼게 한다. 노인의 자살은 경제적 빈곤은 물론 사회적 고립까지 더해 그들을 외톨이로 만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만들고 있다. 마음이 무거운 것은 앞으로 이 숫자가 더하면 더했지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는 두려운 현실 때문일 것이다.
생활보호(일본 헌법 제25조에 규정된 이념에 기초해 국가가 생활에 곤궁함을 겪고 있는 모든 국민들에게 최저한의 생활을 보장하고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옮긴이) 수급자 수는 계속해서 최다기록을 경신하고 있는데, 65세 이상이 그중 절반 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남성 독거노인 3명 중 1명, 여성의 경우 2명 중 1명은 빈곤 상태에 처해 있다고 한다. 어느 누가 이런 사회가 올 것으로 예측했겠는가 말이다.
"역시 병에 걸리면 어쩌나 싶어 두렵습니다. 지금이야 건강하지만 병원에 안 가봤으니 알 수 없는 일이죠. 언제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을지... 불안한 마음이 들지만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일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하려고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아아, 이렇게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는구나 생각합니다. 이불 속에서 죽고 싶지는 않거든요. 일하다가 죽는 것이 소원입니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더 힘들어질 겁니다", 취재에 응해준 고령자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한다.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있는 가운데 한 달에 약 1만 5000엔 씩이나 하는 보험료를 낼 수 없을 테니 앞으로 연금을 받지 못하거나 적게 받는 사례가 넘쳐나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이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자기 사정에 맞춰 외상처럼 젊은이들을 함부로 부려온 결과가 사회전체로 되돌아온다는 것이다.
이토록 장기화, 고령화된 히키코모리는 이미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다. 확대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최근 20년간 지속된 일본의 경기 침체, 또한 악화하고 있는 고용 환경이 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히키코모리 자식의 고령화가 진전되면 언젠가 노후 파산이 급증할 수 있다.
평생 받을 수 있는 임금이 대폭 줄어들었고, 퇴직금도 연금도 눈에 띄게 줄어든 시대인데 사상 최저의 저금리에, 세제 우대 금리가 오를 전망이라 30대, 40대의 부동산 구입 열기가 뜨겁다. 3000만 엔 이상 하는 주택에 선금은 전혀 없이 장기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광고물을 자주 볼 수 있다. 수십 년 뒤 여유 장기 대출의 악몽이 재현되는 것은 아닐지 두려워진다. 한국도 이미 이미 이와 유사한 현상이 진행되고 있다. 저금리 때문에 전월세로 사는 것보다 주택담보장기대출로 집을 장만한다. 경기가 되살아나지 않고 갑자기 고금리로 접어든다면 결국 이는 부담으로 나타날 것이다.
"노후빈곤, 이는 이미 우리 모두의 현실이다"